헤브리디스 부흥이야기-2

 - 이 스데반


2장 부흥의 시작

 


 The Power of God, the Spirit of God, was moving in operation, and the fear of God gripped the souls of men – this is God-sent revival as distinct from special efforts in the field of evangelism. (Duncan Campbell)

 하나님의 권능과 성령이 실제적으로 역사하였고,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이 사람들의 심령을 휘어잡았다. – 이것이 하나님이 보내신 부흥이며, 복음증거 사역에 있어서의 특별한 노력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다. (던컨 캠벨)

 인터넷에서 헤브리디스 부흥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읽자 마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진짜 부흥이 여기에서 일어났었구나! 시작은 이 헤브리디스의 가장 외곽 북쪽의 가장 큰 섬인 루이스 (Lewis) 섬에서 일어났다. 역시 스코틀랜드 본토를 벗어난, 사람들이 많지 않은 베들레헴 같은 변방 섬마을에서 부흥이 시작된 것이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루이스 섬의 발바스 (Barvas)라는 마을에서 부흥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것도 저택이 아닌 발바스의 허름한 한 오두막에서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 서쪽의 섬마을의 한 오두막이 부흥이 시작된 곳이다. 스코틀랜드-헤브리디스 섬 일대-루이스 섬-발바스 마을-한 오두막. 그렇다 부흥의 시작점은 역시 오두막처럼 초라한 곳인 모양이다.

 장소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이 부흥을 이끌어내도록 한 두 명이 있었으니, 혈기왕성한 청년도 아니고, 명석한 두뇌의 석학도 아니며, 말씀에 탁월한 설교자도 아니고, 부와 귀를 겸비한 권력가도 아닌, 두 명의 노인 자매님이었으니, 한 분은 당시 84세의 시각장애를 가진 페기 스미스 (Peggy Smith)이고, 다른 한 분은 두 살 어린 동생 크리스틴 스미스 (Christine Smith) 였는데, 그녀는 관절염으로 허리가 구부러진 상태였다. 그들의 이러한 건강상태로 인하여 공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에, 그들이 살고 있는 조그만 초가집이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처소가 되었다. 이들과 함께 부흥의 때에 쓰임 받은 한 목사님이 계시니, 이름하여 던컨 캠벨이라는 분이다. 그는 헤브리디스 부흥의 한 복판에서 모든 사건들을 경험한 증인이었는데, 그의 글과 녹음된 설교는 인터넷에서 입수가 가능하다. 한 마디로 성령의 역사라고 밖에는 그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었던 일이 부흥의 기간동안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다.

 1949년부터 1953년까지 헤브리디스 섬 지역 일대를 성령께서 강타하였다. 그리고 이 부흥의 여파는 그 이후 30여년 동안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 한 도시의 일시적인 부흥이 아니라, 수년간 지역 전체를 휩쓸며, 그 여파가 30년 이상 지속되었던 부흥이 이곳에 있었던 것이다. 이런 형태의 부흥은 웨일즈 부흥 이후로는, 이 헤브리디스 부흥이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아직 이런 형태의 부흥의 소식이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 우리 앞에 거대한 부흥이 와 있음을 감지하고는 있다. 얼마 전 루이스 섬 출신의 한 자매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녀는 젊은 청년이어서 부흥의 현장을 경험한 증인은 아니지만, 부흥의 여파 속에서 청소년기를 지내온 배경이 있었다. 대화 중에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의 기독교의 급격한 쇠퇴와는 달리, 루이스 섬 일대는 동일하게 쇠퇴기를 맞고는 있지만, 그 정도가 현저히 느리다고 한다. 아! 아직도 그 때의 엄청난 부흥의 기운이 남아 있단 말인가?

 1949년의 어느 날 루이스 섬의 지역 노회에서 특정 주일에 루이스 섬 내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선포를 하도록 공포하게 된다. 그 선포는 당시의 너무도 빈약한 영적 상태와, 젊은이들의 쾌락을 추구하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며, 퇴락하고 있는 믿음을 각성하게 하는 내용이 담긴 것이었다. 이것은 회개하지 않을 경우 그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도록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발바스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이 선포에 대해 깊이 반응하였다. 이 사람들 중에 이러한 영적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기도하며 나아간 두 연약한 노인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페기와 크리스틴 자매님이다.

 1949년 어느날 (아마도 그 해 여름이나 가을의 어느 한 날로 짐작된다. 아무도 페기가 이 꿈을 받은 날짜를 기술하고 있지 않다) 페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받는다. 그것은 교회가 젊은이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고, 한 낯선 사람이 설교대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이 곳에도 성령의 움직임이 분명히 있었지만, 전쟁 이후 1949년 까지 젊은이들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꿈은 현실과는 너무 동떨어진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비전이라고 부르는 것인가?

 그녀는 이 꿈을 들고, 당시 교구 목사였던 제임스 머레이 맥케이 (James Murray MacKay)에게 가서 그녀가 받은 꿈을 나눈다. 제임스 목사님은 그 노인이 기도하는 여인임을 알았으므로, 그 꿈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지하고, 페기와 상의한다. 이 꿈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여야 합니까? 페기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나는 동생 크리스틴과 교구 한쪽 끝에서 기도할 것이니, 목사님은 장로님들과 집사님들과 함께 교구의 다른 한쪽 끝에서 기도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은 깊은 영적인 씨름에 들어갔고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밤 10시부터 기도를 시작해서 그 다음날 새벽 2-3시까지 적어도 한달 이상을 기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임스 목사님은 교회의 리더들 7명과 밀짚 사이에 있는 한 오두막에 모여서 기도했고, 같은 시간에 페기와 크리스틴도 자신들이 있는 곳에서 기도하였다. 한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 기도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었는가?

(3장에서 계속)

사진출처: The Old Path 2007년 4월호, http://www.oldpathsmag.com

  • 기자명 이 스데반
  • 입력 2009.02.05 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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