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부 카시아 족 부흥운동과 그 영향

제일 먼저 웨일즈의 부흥운동 소식에 고무된 곳은 인도 동북부의 아삼 주 구릉지대였다. 이곳에는 많은 웨일즈 출신 장로교 선교사들이 사역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인도에서 부흥의 역사가 임하도록 기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1903년 중앙 아삼의 모플랑(Mawphlang)의 한 카시아(Khasia) 교회는 카시아 지역과 인도 전역에 성령이 임하시도록 매주 월요일 저녁에 저녁기도회를 시작했다. 1904년에 접어들면서 기도의 열기가 더욱 강해진 가운데 1904년 말에 카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웨일즈 모교회에서 일어난 놀라운 영적대각성운동의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들은 아삼 지역에서도 그와 같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사모하고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더욱 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다. 특히 청년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기도회에 적극 참여하며 기도운동에 앞장섰다. 1905년 초 카시아족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부흥을 허락하실 때까지 매일밤 기도회를 가졌다. 기도회는 보통 10시나 되어야 끝날 정도로 그 열기가 대단했다. 부흥은 사모하는 곳에 임한다는 역사적 진리가 여기서도 그대로 구현되었다. 1906년 3월 첫주 카시아 교회 주일예배 때 “성령세례”에 관한 설교가 있을 때 청중들 가운데 통회, 찬양, 성령의 임재가 있었다. 이날 예배 후 곧이어 파리옹(Pariong)에서 노회가 열렸을 때 성령의 역사가 그곳에서도 나타났다.


카시아 교회의 3월 둘째 주 주일저녁예배 때 “온 회중이 울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두 명의 카시아 족 설교자가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였는데도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성령의 역사는 예기치 않게 청중들 가운데 찾아왔다. 예배가 끝난 후 담임목사가 축도하려고 하자 회중 가운데 한명이 일어나더니 “오 하나님, 지금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내려주소서. 웨일즈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많은 축복하시면서 우리를 공수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이다. 마치 뇌관에 불을 당기듯 이 일 직후 “온 회중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큰 소리로 우는 사람들도 있었고 개중에는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역사가 나타났다. 저녁 식사 시간도 잊은 째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예배당은 사람들이 들어갈 틈도 없을 만큼 많이 모여 밤 늦도록 계속기도했다. 이후 18개월 동안 카시아 교인들은 부흥을 위한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06년 북부 카시아 교회의 영적각성은 나우공(Nowgong), 골라그하트(Golaghat), 십사고르(Sibsagor), 라킴푸르(Lakimpur)을 비롯하여 북부지역의 아삼센터들을 통해 북동부로 확산되어 나갔다. 나우공에서는 오후 2시 청년들이 집회를 끝낸 후 계속 남아 저녁 8시까지 통회와 회개의 기도를 드렸다. 성령의 역사가 여러 달 동안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다.


성령의 역사가 교파를 초월하여 브라마푸트라(Bramaputra) 계곡을 따라 침례교인들 가운데서 그대로 나타났다. 1907년에 접어들어 브라마푸트라의 영적각성운동은 9개월 동안 브라마푸트라 북부 지역에서 부족들이 사는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 부흥운동은 브라마푸트라 강 남쪽 지방으로 확산되어 나갔으며 골라그하트에서는 토요일 밤 집회 때 통회의 역사가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몸 부림치며 괴로워했으며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큰 소리로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했다.” 오전 6시에 시작된 주일 집회가 자정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인도 북부 아삼 카시아에서 시작된 부흥이 인도 북부 브라마푸트라 계곡과 브라마푸트라 남쪽 침례교회로 확산되더니 거기서 다시 남쪽 및 남동쪽 나가(Naga) 구릉지대로 옮겨졌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간절한 통회의 기도는 인도의 부흥운동의 특징이었고, 그것은 나가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1907년 나가족 가운데 세례 받은 사람의 수는 그 이전 5년간 평균 세례자의 3배나 되었다. 부흥의 불길이 인도의 북부 장로교회와 남부 침례교회 가운데 놀랍게 일어난 것이다. 이 소식은 남쪽에 살고 있던 루사이(Lushai) 구릉지대에 사는 미조족(Mizos)들에게 알려져 이들 가운데 장로교 7명과 침례교 3인 합 10명이 2주간 정글 속을 걸어 나와 카시족 총회에 참석하였다. 이곳 총회에 참석한 이들은 이들 중 카시어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곳에 임한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 직접 목도한 것이다.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면서도 언어적 장벽 때문에 부흥의 은혜를 힙입지 못하고 이들 미조족 10명은 “대단한 슬픔”에 쌓여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돌아가는 도중에 성령의 역사가 예기치 않게 그들 가운데 강하게 임하였다. 성령께서 그들의 간절한 소원을 외면치 않으신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7명의 장로교인과 3명의 침례교인은 장로교인들이 사는 마을 근처에 닿자 작별을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이때 성령께서 갑작스럽게 그들 가운데 임하신 것이다.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그들과 합류하면서 곧 그 소식은 주변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해서 부흥의 역사가 미조족 가운데서도 시작된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다양한 환경에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풀렌(Phullen)이라는 큰 마을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놀라운 부흥이 계속되었다. 큰마을에서 부흥이 시작되자 이교도들로부터 그리스도인에 대한 무서운 핍박이 풀렌에서 일어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거나 한밤중 자정에 집에서 쫓겨나 정글 속으로 내몰렸다. 1908년에는 부흥에 대한 반대가 이교도들 가운데 강하게 일어났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교회는 생명력을 유지해 나갔다.

  

북부 카시족 가운데 부흥이 일어났을 때 그 성령의 역사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났다. 부흥의 역사가 카시족 가운데 확산될 때 어린이들 가운데서도 놀라운 역사가 임했다. 부흥이 일어났을 때 어린이들이 자신들만의 기도회를 열기를 원했다. 어떤 사람이 카시아 지역 체라(Charra)에서 돌아오는 도중 한 예배당 가까이 왔을 때 흐느껴 우는 소리가 나서 급히 들어가 보니 어린이들이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2명의 청년이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슬퍼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다. 그 중 한 소년이 전날밤 지옥불을 보고 너무 무서워 피난처 되신 주님께 피신했다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일어서서 간증하자 그곳에 참석한 다른 어린이들이 그 말을 그대로 믿었고 다른 어린이들도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께 기도했다. 기도의 열기가 어찌나 강하게 어린이들을 사로잡았던지 어린이들은 기도회가 끝나 예배당을 나왔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예배당으로 다시 들어가 교사 한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를 계속하였다. 어린이들이 통회하고 그들 가운데 각성운동이 일어났다는 보고는 미국의 1차대각성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에서도 나타났다. 성령의 역사는 연령을 초월하여 모든 연령층에 깊숙이 침투하였다. 상풍(Shangpung)에서는 어린이들이 나가면 다른 아이들이 들어와 집회가 몇시간 계속되어 예배당을 떠나지 않았고 어떤 때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하루 종일 어린이 집회가 이어졌다. 은혜를 받은 어린이들이 근처 시장으로 달려가 시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도 있었다. 조와이(Jowai)에서는 어린이들이 매일 모여 함께 기도회를 가졌고 기도회가 한 달 이상이나 계속된 적도 있었다.


부흥운동이 한창 일고 있던 1906년 혹은 1907년으로 추정되는 어느 해 5월 8일 월요일 어린이 예배가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되었을 때 한 남자 어른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자 다른 두명의 소년이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도 했다. 그런 후 다른 소년이 일어나 바로 전날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보여주셨다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들의 죄를 위해 어떻게 고난받으셨는가를 이야기하자 그곳에 참석한 몇 명의 어린이들이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곧 전 교회당은 구원과 용서를 간구하는 어린이들의 통회와 회개의 기도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이들의 간절한 기도 소리를 듣고 주변의 어른들이 집에서 교회로 찾아들어 교회는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채워졌다. 어른의 회개와 어린이들의 회개, 그리고 어른과 어린이들이 한데 어우러진 가운데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된 기도회는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은혜를 받은 어린이들은 이방인 가정들을 방문하며 복음을 전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에서 집회를 열기도 했고 먼곳에 있는 마을로 가서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흥운동 기간동안 하나님께서 어린이들을 귀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이다.


부흥운동이 놀랍게 전개되고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놓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특별히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카시아 족 가운데 영적각성이 일고 있을 때 한 소녀는 어떤 소녀를 위해 여러 시간을 자지 않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꿈에 소녀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2일이 지난 후 그 소녀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복음을 전하자 그 소녀가 주님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났다. 주님께서 그 소녀에게 특별히 임하신 것이다. 성령의 은혜를 체험한 이 소녀는 먼 곳에서 목회하고 계신 아빠를 찾아가서 2주일을 함께 지내며 매일 밤 집회를 가졌는데 2주가 지난 후 이 소녀가 아빠의 부탁을 받고 카시어 찬송 한곡을 부를 때 성령께서 놀랍게 역사해 그 마을 전체에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다. 냉랭했던 교회가 영적으로 소생함을 받았고 그 영적각성이 곧 마을 전체로 확산되어 나간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린 소녀를 사용한 경우가 카시아 부흥운동에서 종종 있었다. 1906(1905?)년 2월 라이티라(Laityra)에서 열린 노회의 집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도 한 소녀에 의해 촉발되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바람에 두 번째 집회는 옥외에서 열었는데 비가 내리고 몹시 추운데도 사람들이 운집한 것이다. 찬양 후에 그 집회를 통해 은혜를 받은 한 소녀가 단에 올라 간증한 것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마을의 이교도 지도자였는데 이 소녀는 자신도 이교도로서 귀신을 섬겨왔으며 부모가 예수를 믿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했는데도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령의 충만한 가운데 부드러운 음성으로 간증한 것이다. 예수님이 지옥과 천국을 보여주셨다는 사실, 자신을 통해 부모와 동리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것을 약속해 주셨다는 사실을 간증한 것이다. 실제로 그 소녀는 부모와 동리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여 140명이 주님을 영접하는 역사가 나타났음을 고백하였다. 이 소녀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그와 똑 같은 일을 하실 것이라고 간증하자 그곳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 그곳에 참석한 2000명의 청중들은 “주 예수 이름 높이어” 찬양을 부르며 이 소녀의 간증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놀라운 역사를 한 마음으로 찬양했다.  


부흥운동이 진행되면서 예배는 정해진 시간이 없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가 많았다. 1905년 8월 실롱(Shillong)에서 모인 노회의 집회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자정까지 중간에 한 두 시간 휴식 시간을 제외하고는 계속되었다. 3번의 설교가 있었고 그 외에는 찬양과 기도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 현장에 있던 한 사람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때로 그 열렬함이 극에 달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수십명의 남자들이 영적인 황홀경에 빠져 거의 제 정신을 잃었다. 전에는 그런 광경을 목격한 적이 없었다. 문자 그대로 수십명이 춤을 추었는데 그 때 춤을 추지 않은 많은 사람들은 장엄한 카시어 찬송가를 장엄한 웨일즈와 영국 곡조에 맞추어 불렀다. 그리고 박자에 맞추어 팔을 들고 흔들었다. 이때 참석한 사람 중 수백 명이 30세 미만의 젊은이들었다.”


인도의 동북부 지역에서 부흥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의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보혈이었다. 이 지역에서 열린 부흥집회에는 입추의 여지없이 사람들로 가득찼다. 집회 때 찬송을 부르면서 사람들이 찬송에 맞춰 몸을 앞뒤로 흔들었고 입신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찬양이 끝나 기도할 때 그 열기는 교회당이 떠날 정도로 대단했다. 보통 집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 주일집회는 모여드는 사람들을 다 수용할 수 없어 옥외에서 드리는 경우가 많았다.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많은 800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던 어느 주일 오전예배 때 “하나님의 영이 온 회중 가운데 눈에 보이게 역사하셨다.”


부흥운동이 일고 있을 때 여러 곳에서 집회가 열렸고,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 예배를드리는 바람에 거리에는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한 밀림 지대의 한 마을에서는 한 교사가 인도하는 옥외 집회에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바람에 큰 시장이 텅 비어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종종 집회는 하루 종일 그리고 밤중까지 계속되어 진행되었다. 인도 부흥운동 역시 여느 유럽의 부흥운동이나 한국의 부흥운동처럼 은혜를 받은 개인의 각성이 삶의 변혁으로 이어진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밀림 속에서 태양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가운데 술에 취해 살아가던 이들이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피조물로 바뀐 것이다.


술을 팔던 한 여인은 은혜를 받은 후 자기 가게로 돌아와서 술을 다 땅 바닥에 쏟아 붓고는 집에 가서 증류주 양조장을 때려 부순 다음 집회가 열리는 학교 교사(校舍)로 돌아와 자신과 가족을 주님께 온전히 바치는 일이 있었다. 주변의 사람들이 구제 불능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늘 술에 취해 살던 한 노인이 은혜를 경험하고 술버릇을 고치는 역사가 나타났다. 전혀 소망이라고는 찾을 길 없이 아편에 중독되어 살던 한 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일어났다. 알콜 중독에 걸렸던 이들이 주님을 영접하고 복음전파의 도구로 쓰임받는 경우도 많았다. 알콜 중독에 걸렸던 한 집사는 자기 아내와 함께 마을에 아직 불신자로 남아 있던 두 사람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고, 결국 그 두 사람도 구원을 받았다.


부흥운동 기간 동안 신유의 역사도 나타났다. 오랫동안 피부병에 시달려 오던 한 여인은 병으로 인해 마을에서 추방되기 직전 부흥집회에 참석했다 깨끗하게 치료받는 역사를 경험했다. 마치 38년 된 혈루병 환자가 주님의 옷자락을 만지고 깨끗하게 치유된 것처럼 놀라운 신유의 역사가 재연된 것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철저한 죄에 대한 통회와 죄에 대한 청산을 통해 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고, 전신을 괴롭혀 온 질병에서도 해방시키신다. 


카시아 지방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카시 구릉지대, 루시아 구릉지대, 그리고 평야 지역의 마을들로 널리 확산되어 나갔고, 카시아 지방의 부흥운동 소식을 접한 인도 전역의 수많은 교회들도 그 은혜를 공유하기 시작했다. 카시 지방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는 “마치 대양으로부터 큰 파도가 계속 밀려오듯” 지속적으로 일어났으며 인도 전역의 영적각성운동의 진원이 되었던 것이다. 아삼 주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으로 그 지역 교인들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으로 결속되었고, 빚을 지지 않으려 했고 빚을 진 사람들은 속히 그 빚을 갚았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강한 소원, 헌금에 대한 열의가 이전에 비해 월등하게 높아졌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24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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