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라마바이의 묵티 부흥운동


웨일즈 부흥운동의 소식을 가장 먼저 접한 카시아 지방에서 부흥운동이 제일 먼저 일어났지만 곧 이어 인도의 다른 지역에서도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그 열기와 강도에 있어서 카사이 보다 강력한 경우가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라마바이의 묵티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이었다. 인도의 사회개혁자 라마바이가 중심이 되어 시작된 묵티 부흥운동은 기원상 케직 사경회운동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 힌두교도였다 1891년 회심한 유명한 라마바이(Pandita Ramabai)는 1898년 케직사경회에 참석해 그곳에 모인 4천명의 사람들에게 인도의 복음화와 부흥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녀는 봄베이 남쪽 푼(Pune) 지방에 “구원”이라는 뜻의 묵티라 불리는 젊은 과부들과 고아들을 위한 공동체를 설립하였는데 1901년 여기에 약 2천명의 부녀와 소녀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1901년 9월 이 공동체에 성령의 역사가 강림하도록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해 12월과 1902년 1월에 공동체에 기거하는 1200명의 소녀들이 세례를 받았으며, 그해 7월에 그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3주 동안 계속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1903년부터 호주, 웨일즈, 인도 북부 아삼주 카시 세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부흥의 소식은 묵티의 영적각성을 더욱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라마바이는 1903년 호주에 토레이-알렉산더 전도운동을 통해 그곳에 부흥운동이 임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딸을 그곳으로 보내 새로 형성된 호주의 수백 개의 기도모임에 인도의 부흥운동을 위해 기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1904년 12월에는 웨일즈에서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리고 얼마 후 인도의 동북부 아삼(Assam)주 카시(Khasi) 구릉지대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호주, 웨일즈, 인도 동북부 아삼에서의 영적각성의 소식은 묵티 부흥을 사모하는 라마바이에게는 대단한 도전과 자극이었다.


특히 인도 북부 아삼 주 카시아 부흥의 소식을 들은 라마바이는 묵티의 소녀 중 30여명의 자원자를 뽑아 성령의 능력을 덧입기 위해 매일 모여 기도를 했고, 1905년 6월 29일 이들 소녀들 위에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다. 30명의 자원자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임하였을 때 한 소녀가 불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 다른 소녀들의 눈에 보였다. 그래서 한 소녀가 물통을 갖고 와서 불을 끄려고 물을 부으려고 보니 실제 불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오순절의 성령의 불이었다. 1905년 6월 30일 라마바이가 소녀들에게 요한복음 8장을 가르칠 때 성령께서 그들 가운데 강하게 임재하셔서 “그곳에 있던 부인들과 소녀들이 모두 흐느끼며 죄를 자백하고 성령을 덧입기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공부하고 있던 소녀들, 직업반에 들어가 실습하고 있던 소녀들, 일하고 있던 소녀들이 모두 죄를 깨닫고 쓰러지는 역사가 일어났다. 이렇게 되자 학교 수업이 모두 중단되고 묵티에 있던 사람이 다 하나님을 구하기 시작했다.” 성령 충만과 거룩한 불세례의 은혜를 경험한 소녀들이 많았으나 그들의 얼굴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고 있었다.


묵티 부흥에서 두드러진 것은 온 청중들이 하나되어 드려지는 합심기도였다. 기도의 영이 놀랍게 회중들 가운데 임해 집회마다 천둥을 치듯 기도의 함성과 물결이 넘쳐났다. 때로는 10분내지 20분 정도 기도 소리가 조용해지고 겨우 한 두 사람이 기도하는 소리만 들리다 기도 소리가 다시 커지면서 나중에는 아주 큰 소리로 변하기도 했다. 이렇게 몇 시간이고 계속 기도할 때도 있었다. 죄에 대한 통회가 강력하게 나타났고, 마치 백보좌 앞에서 선 죄인들이 두려워 떠는 모습처럼 죄의 공포로 인해 절규했고 그들 안에서는 성령과 사탄과의 긴박한 투쟁이 일기도 했다. 다이어(Dyer)는 라마바이의 전기에서 이렇게 증언 한다:


묵티 부흥 중 가장 분명했던 것은 기도의 영이 놀랍게 역사했다는 점이다. ...이런 때는 사람들이 보통 죄를 자백하는데 죄를 자백하며 슬피우는 목소리가 어찌나 애처로운지 듣는 사람의 마음이 아플 정도다. 이때 그들 안에서 일어난 성령과 사탄간의 싸움이 아주 극렬하여 그들은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복음서에서 우리 주님께서 악한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는 장면을 연상하게 되는데 또 실제로 그들 안에서 악한 귀신들이 내어 쫓김을 당하기도 한다. ...사탄은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다 위조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망쳐 놓는다. 그러나 사탄은 이미 주님께 정복당한 적이다!


거룩한 부흥이 자신들 가운데 임한 것을 확인한 라마바이는 묵티 수련생 몇 명을 데리고 푼에서의 첫 집회를 시작으로 여러 곳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그들 가운데 여전히 강력한 성령이 임하셨다. 한 라마바이 전기 작가는 이들 가운데 임한 성령의 역사를 이렇게 생생하게 기술하였다: “어린 소녀들이 몇 시간 동안 정신없이 기뻐 뛰며 예수님을 사랑하고 찬양했다.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생전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시간 계속해서 중보 기도해주는 것을 특권으로 여기고 있었다. ...


한 집회는 17시간이 지나서야 해산되었었다. 그다음 날에도 15시간 이상이 지나서야 집회가 간신히 해산되었는데 해산 될 때 모두 다 큰 기쁨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목이 쉬어 더 이상 소리를 낼 수 없을 때까지 찬양하였다. 찬양의 열기는 계속되었다. 부흥의 축복이 시작된 지 벌써 열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묵티에서는 그 축복을 구하고 발견하여 마침내 충만하게 받아 누리는 영혼들이 매일 발견되고 있다. 그들은 더 받을 수 없을 만큼 그렇게 충만한 축복을 받아 연신 웃으며 기쁨에 찬 삶을 살고 있다.” 더 이상 찬양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그 영광의 주님을 찬양한 것이다.


그 후 묵티 공동체에 구령의 열정이 강하게 나타났다. 소망 없이 살아가던 묵티 원생들 가운데 700명이 매일 60명씩 한 조가 되어 근처 마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 12일이면 700명 모두가 전도에 동참할 수 있었다. 전도 나가지 않은 남은 소녀와 부녀들은 전도를 나간 사람들을 위해 계속 기도했다. 이들 가운데 어떤 삶의 변화가 나타났는지, 개인의 영적각성이 어떤 형태의 사회각성으로 이어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찾을 길 없다. 그러나 니콜 맥니콜(Nicol MacNicol)에 의하면 은혜를 받은 이들이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믿음에 굳게 서서 경건한 삶”을 살고 있다.

  

1905년 6월에 발흥한 묵티 소녀 기도단을 통한 부흥의 불은 8월에 들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이 불길은 중앙인도의 요트말에 있는 자유감리교 선교부(Free Methodist Mission)와 산하 미션스쿨들, 봄베이 여러 감리교회, 그리고 봄베이의 다른 교회들로 확산되었다. 이 불길은 다시 인도 중부 호생가바드에 있는 영국프랜드선교회(English Friends Mission)로, 1906년 1월에는 영국프랜드선교회 다른 지부들의 교회들로 옮겨졌다. 이어 쿠다반푸르(Khudawanpur) 마하라티(Maharati)의 한 고아원도 성령의 불길로 휩싸였다. 부흥의 불길은 죄의 고백, 영적인 깨달음, 다른 사람의 신앙의 간증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예기치 않게 주변지역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마하라티 지역의 한 소년 고아원에서는 눈먼 한 소년 원생이 회심하자 다른 원생들이 비웃는 것을 보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선교사가 다른 원생들의 회심을 위해 밤을 지새우며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의 역사는 바로 그 다음날 찾아왔다. 다음날 선교사가 이사야 28장 14절 “너희 경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지어다”를 가지고 능력의 메시지를 선포했을 때 모인 학생들 가운데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비웃던 학생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5, 6일 동안 선교사들과 원생들 가운데 깊은 통회의 역사가 계속되었고, 마하라티 고아원에서의 회개의 역사는 인근의 바이스데이와 치칼다 고아원으로 확산되었다. 


묵티 소녀 기도단이 가는 곳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1905년 11월 이들 일행 중 일부가 인도 중서부 마하리슈트라(Maharashtra) 해안의 라트니지리(Ratnigiri)에 도착하여 이 지역의 부흥을 위해 여러 주(週)를 기도하였다. 하나 둘씩 사람들이 기도에 합류하면서 부흥을 사모하는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간절히 사모하는 곳에 부흥의 역사를 베풀어주신다는 교회사의 진리가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에게 회개의 영이 임한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신자들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였다. 이처럼 소녀 기도단이 인도 중부 지역의 도시와 마을을 방문 복음을 전하자 신자들 가운데 회개와 사죄, 변상과 화해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났다. 은혜를 경험한 자들 가운데 전도열이 놀랍게 일어났다. 

 

묵티 소녀 기도단을 통한 부흥의 불길이 전역으로 확산되자 여러 곳에서 묵티 소녀 기도단을 초청하여 집회를 갖기를 원했다. 아우랑가바드에 있는 영국성공회 선교부에서는 이들을 초청했고 그 지역의 교회들과 또한 열 한 교회에서 온 50명의 설교자들이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다. 봄베이에서 온 한 소녀가 아우랑가바드에서 큰 은혜를 받고 그 부흥의 불길을 봄베이의 자신의 학교로 가지고 갔다. 부흥의 불은 끊이지 않고 주변지역으로 타올랐다. 1906년에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Gujarat)의 기독교 선교 연맹(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의 한 고아원에 성령이 임하여 소년들이 밤낮으로 기도하고 회개하며 죄를 고백하고, 실제로 빚진 것을 변상하는 역사가 나타났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24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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