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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인도 남동 해안 안드라 프라데시 부흥운동
2006년 07월 24일 (월) 11:31:46 관리자
 인도 남동 해안 안드라 프라데시 부흥운동


1905년 인도 남부 타밀라드, 켈랄라, 카르나타카에서 부흥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인도 남동부에서도 부흥운동이 일고 있었다. 인도 남부 지역 부흥이 웨일즈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소식에 강한 자극을 받았던 것처럼 1906년 인도남동부에서 일어난 큰 부흥 역시 웨일즈에서 들려온 부흥운동 소식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그 부흥운동은 인도 남동 해안 안드라 프라데시의 침례교회에서 부흥사 모로우(S. E. Morrow)를 통해 시작되었다. 1905년 10월 경 그가 인도하는 부흥회를 통해 이곳의 세 마을에서 죄의 각성이 일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1906년 8월 11일 아키두와 엘라만칠리(Yellamanchili)에서 열린 주일 집회에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에드윈 오가 증언한 것처럼 이곳에서는 특정한 설교나 인도자 없이 부흥의 역사가 나타났다. “어떤 집회에서든 예배순서나 예배 인도자 혹은 설교가 없었다. 오직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순서만 있을 뿐이었다.”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기도회가 계속된 가운데 영적각성이 나타났다. 넬로르의 텔레구 교회에서도 기도회 동안에 똑 같은 역사가 임했다. 부흥운동이 임할 때까지 저녁에 모여 기도회를 갖기로 하고 10일 동안 기도회를 갖다 강한 회개의 역사가 회중들 가운데 임한 것이다. “동시에 전회중이 통곡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났다.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었고 소리를 지르며 마구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 죄를 자백하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기도는 밤중까지 계속되었다.” 부흥은 기숙학교로, 마을의 교회들로 확산되어 미션스쿨 학생들이 진정한 회개를 체험하였다. 부흥으로 소녀들이 더 이상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고 불의한 일과 훔친 물건에 대한 변상이 있었다.


온골레 지역에서 40년간 활동해온 제임스 베이커(James A. Baker)의 증언대로 온골레(Ongole)에서도 부흥이 일어났는데 이곳의 부흥운동 역시 웨일즈 부흥운동의 소식에 적지 않은 도전과 영향을 받았다. 온골레의 미션스쿨 고등학생 저녁 예배 때 성령이 11명의 학생들 가운데 임하더니 이를 계기로 매주 수요일마다 열린 수요 저녁 기도회 때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었다. 1906년 4월에는 월요일 아침에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모인 회중들 가운데 “온골레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여 그의 백성들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셨다.”


온골레에 있는 미션스쿨 여러 곳에서 밤늦도록 집회가 열렸고, 예배실마다 기도하는 학생들로 붐볐다. 4월과 5월 부흥이 여러 곳에서 임했으며, 온골레에서 7월 어느 주일 저녁에 웨일즈 출신 선교사가 간단한 텔레구어로 웨일즈 부흥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그곳에 모인 1000여명의 회중들 가운데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그곳에 모인이들은 주변의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였다. 성령이 임하자 사람들은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통회하기 시작했다. 이곳의 부흥은 1년 반이나 지속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은 봉사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엘루루(Eluru)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를 직접 목도한 어떤 사람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나는 하나님의 성령이 이처럼 강하게 역사하는 것을 처음으로 목도했다. 지금까지 이런 역사는 이 땅에서나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 부흥은 정결케 하는 불이요 분발케 하는 영으로 찾아왔다.” 지금까지 그와 같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를 처음 목도한 것이다. 또 다른 목격자는 이렇게 고백했다. “성령께서 마치 홍수처럼 임하시어 우리는 석 주 동안 영광스러운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그것은 평생을 들여 할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체험이었다.”

 

이 지역의 놀라운 부흥은 인도의 기독교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 성령이 임하였을 때 철저한 죄의 각성과 회개 그리고 변상과 청산과 화해가 이어졌다. 냉랭했던 사람들의 심령이 주를 향한 간절한 소망과 사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선교사와 평신도들을 하나로 묶어주었으며 각성을 체험한 이들의 삶이 거룩한 삶으로 바꾸어졌다. 처음 인도인들 가운데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선교사들의 공동체 가운데서도 강하게 임하였다. 넬로르와 온골레의 부흥의 불은 인도의 미 침례교로 이어졌고, 1906년 8월 14일에는 카카나다 여학교를 시작으로 캐나다 침례교회로, 그리고 다시 사말코트(Samalkot)의 신학교로 옮겨졌다. 캐나다인 침례교회 미션스쿨에서는 교사, 학생이 수업, 숙제, 식사, 휴식도 거의 잊은 채 7주나 학교와 교회에서 하루 몇 시간씩 밤낮으로 집회를 열었다.

 

인도부흥운동은 교세의 급신장을 가져왔다. 군투르(Guntur)의 미국 루터교는 부흥운동으로 18,964명의 교세가 40,198명으로 급증했고, 하이데라바드(Hyderabad)의 도르나칼 구(Dornakal District)에서는 아자리아(Azariah) 주교가 일년에 3천 명씩 30년간 세례를 베풀만큼 지속적으로 교회가 성장했다. 특히 부흥운동을 통해 인도의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이 부흥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인도 부흥운동에서 세 가지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첫째 인도부흥운동이 외부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의 소식에 적지 않은 도전과 자극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인도의 북부 카시아, 묵티, 그리고 인도의 남부와 동남부에서 1905년과 1906년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인도의 부흥운동은 웨일즈 부흥운동, 호주 부흥운동, 케직사경회에 영향을 크게 받았다. 둘째 부흥의 소식을 듣거나 혹은 선교사들을 통해 부흥운동의 필요성을 접하거나 아니면 외국의 케직사경회에 참석했다 인도의 복음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인도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이 부흥운동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회를 가지며 준비 작업을 했다는 사실이다. 기도회를 통해 부흥을 간절히 사모하는 가운데 외국에서 들려오는 부흥운동의 소식은 선교사들과 인도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맡고 있는 교회, 고아원, 미션스쿨 가운데서도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셋째는 부흥운동이 진행될 때 이들 가운데 회개운동, 죄에 대한 고백이 강하게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신유의 역사, 입신이 때로 나타났지만 주로 죄에 대한 통회와 회개가 두드러졌다. 예언, 방언과 같은 현상은 인도부흥운동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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