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가정이 가장 먼저 변화되었다. 한국 여인에게 가정은 행복한 곳이 아니었다. 처녀가 시집을 간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 아니라 슬픈 일이었다. 한국 속담에 여인은 두 번의 큰 슬픔을 겪게 되는 데 첫번째가 태어날 때이고 두번째가 시집갈 때라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 불순종하였다는 이유로 코가 잘린 여인들을 보았다.


옛날 한국인들은 아내를 무시했다. 선교사들은 이것을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북장로교 선교사 무어였다. 그는 황해도 평산 감바위골 교회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하고 있다. “시골 풍속은 부인들이 밥을 먹을 때는 방에 앉아서 편안히 먹지 못하고 부엌에서 흙상에 놓고 먹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항상 낮춤말을 하고 아내는 항상 남편에게 높임말로 대답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안다. 우리가 믿기 전에는 이렇게 행동하였다 할지라도 지금은 성경의 뜻을 알게 됐으므로 동네 외인들이 흉을 볼지라도 이후부터는 이 두 가지를 버리고 밥 먹을 때에 부인들도 방에 들어와 남편과 같이 편안히 앉아서 먹기로 작정하자고 제안하자 일심이 되어 그대로 결정하였다.”


무어는 이렇게 말한 다음에 참석한 부인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하여 찬성하느냐?”고 물었다. 대답이 없자 무어는 다시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 중의 한 여인이 “너무 기뻐서 대답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였다. 아내가 남편과 대등하게 앉아서 서로 존중하며 대화하는 것은 복음이 들어오면서 생긴 새로운 모습이었다.


무어는 당시 어떤 기독교 가정의 모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 다음에 아내에게 존대말을 쓰기로 작정했으나 어머니가 강력하게 반대하여 이것을 실천할 수 없었다. 그후에 이들은 분가한 뒤에서야 남편이 아내에게 존대말을 사용하였다. 그 부인은 대단히 기뻐했으며 남편에 대한 대접도 놀랄 만큼 좋아졌다. 이 이야기 말미에 무어는 “신자 여러분! 부인에게 존대말을 써보도록 하십시오!”라고 강조했다. 초기 한국교회에서 신자가 된다는 것은 아내를 존중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3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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