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 앨런 목사가 아니라 의사였다. 그는 정부의 도움으로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을 세웠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자 이 병원에 대한 정부의 간섭과 병원을 주관하는 관리들의 부패가 심해져서 원성이 컸다. 결국 선교사들은 재산권과 운영권을 자신들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오랜 협상 끝에 정부는 선교사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당시 병원 책임자는 캐나다인 에비슨 박사였다. 1893년 우리나라 온 그는 병원 발전을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그는 병원의 수준을 높이려고 애썼다. 에비슨이 처음 도착했을 때 병원은 한국식 단층건물로 12.5평 크기였다. 그는 설계사에게 부탁하여 40명의 환자를 수용할 수 있는 현대식 병원을 설계토록 했다. 비용은 1만달러 정도가 소용될 예정이었다.


1900년 봄 에비슨은 뉴욕 카네기홀에서 열린 초교파 해외선교대회에 참석, 병원에 대해서 연설을 하게 되었는데 청중이 너무 많아서 겁을 먹었다. 그래서 두번째 발코니 맨 뒤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키면서 ‘저 사람이 들을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사람이 바로 스탠더드 석유회사의 지배인이던 세브란스였다. 연설이 끝나자 세브란스는 에비슨을 찾아와서 계획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에비슨은 이미 설계도까지 만들었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는 다시 한 번 감명을 받았다. 얼마 후 세브란스는 1만달러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해서 선교부에서는 논란이 많았다. 병원을 짓는데 너무 큰 돈을 허비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작은 병원 여러 개를 짓는 것이 낫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에비슨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렸다. 결국 선교부는 이 계획에 동의했다. 1902년 세브란스의 기부금과 기존 병원 판매 대금을 합쳐서 서울역 맞은편에 병원을 짓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1904년 11월 세브란스병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하였다. 한국 최고의 병원 세브란스는 한 의료선교사의 비전과 헌신적인 기독인 사업가의 헌금으로 이뤄졌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7.31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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