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지금, 그리고 부흥을 위한 개혁-2

   - 이 스데반

복음주의 신학자이면서도 개혁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들로부터 비난을 받기도 했던 James I. Packer의 모습

지난 번에 우리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churchanity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 되지 않은 가운데 교회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세속적인 사고와 가르침과 활동을 Christianity 에 빗댄 용어)의 팽배함에 대하여 고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개혁하는 일에 있어서의 오류들 즉, 기도의 기초가 없는 것, 개혁의 실제적 필요성에 대한 무지, 기도 만능주의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개혁에 도움이 될만한 보다 실제적인 지침과 진행중인 일로서, 사영리 수정을 통한 새로운 전도지 개발, 그리고 옛길 찾기의 안내자로서 한 인물, 그러나 사람 자체 보다는 그의 책 몇 가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아래의 인용문을 읽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합당할 듯 합니다.

전문 신학가이든 관심을 갖고 있는 평신도이든, 열심히 신학 작업을 하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혹과 싸워야 한다. 첫째는 다른 사람보다 좀더 안다는 이유로 자신을 우월한 그리스도인으로 보려는 것이며, 둘째는 전문 지식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일반 규칙이 적용되지 않는 치외법권적 계층에 속하며,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지워진 의무에서 면제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락했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교만에 빠지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교만이야말로 우리가 유산으로 물려받은 원죄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학생 지망생, 성직자와 평신도, 학자와 목회자 모두 반복적으로 그런 시험을 만난다. (제임스 패커, 하나님의 계획, 두란노, 2002, p. 20-21)

겸비함과 순종함이 없다면, 아래에 전개해 나가는 글들은 쓰는 자나 읽는 자나, 모두에게 죽은 지식의 쌓음이 될 뿐임을 인식합니다.


사영리 수정을 시작함

어떻게 청교도의 신학을 성도에게 전달할 것인가? 그들의 신학은 철저하게 개혁주의 적이었다. 그들은 종교 개혁자들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배운 것을 사회와 가정에 적용하려 노력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적용에 대해 마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복음 전도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철저하게 복음 전도자들이었다. 그들이 사용했던 전도지와 오늘날의 전도지의 차이점은 오늘 날의 전도지는 1분 내외의 전도지이지만 그들의 전도지는 약 200여 페이지에 달하였다. 이들의 전도지를 통해 수 많은 자들이 회심하게 하셨다. 청교도들은 설교야 말로 복음 전도에 가장 중요한 요소라 하였다. 모든 설교자는 복음 전도자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말씀을 준비하게 할 때 쏟는 에너지의 모든 것은 그것에서부터 복음전도가 시작 된다는 것이었다. 주일에 설교를 들으러 오는 사람은 모두가 다 복음을 받은 자들이 아니었으며 설교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였음을 생각하였고 그들에게 죄책감과 예수그리스도의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출처 불분명)

생존하는 유명한 미국의 청교도 신학자 죠엘 비키가 쓴 위의 글을 본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설교자들이 설교를 통해서 주어진 가장 큰 복음전도의 기회를 얼마나 자주 놓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교는 단순히 성경의 일부를 택해서 약간의 설명을 붙여서 전달하는 것이고, 복음전도는 교회 밖으로 나가서, 뭔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인식하는 깊은 오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영리는 전도용 소책자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4가지 원리로 요약한 일종의 쪽복음 같은 것이며, 흔히 국내에서 사용되는 전도지의 대다수가 이것을 모방하거나, 이것을 다시 축소하거나, 일부를 발췌하거나, 변형/수정 시킨 것임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형태의 쪽복음지를 사용하여 전도를 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고, 또한 사영리를 사용하여 전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의 기쁨을 맛본, 그래서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하기 위한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즉,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는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한가지 질문을 제시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단들을 사용하여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까? 대답은 ‘예’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악한 사람들도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십니까? 대답은 ‘예’입니다. 우리 신앙의 옛 선배들 중에는 이단과 잘못된 교리에 빠져서 깊은 타락을 경험한 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위대한 신학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가 부지불식간 잘못된 방법과 오류안에 있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자신의 뜻을 따라 일하시며, 다스리시며,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와 지식과 활동을 넘어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일을 행하십니다. 그렇다면, 두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뜻을 이루시며 행하시므로, 우리가 비성경적 오류들을 깨닫고도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그 오류들을 계속 사용해도 좋습니까?

위의 두 질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답을 가지고 있다면 아래에 전개되는 내용을 읽어도 좋을 것입니다.

사영리와 유사한 쪽지를 통한 전도법은 꽤 잘 짜여진 형태로 요약하여, 복음의 내용을 전달하는 일에 중점을 둡니다. 그러나, 그 과정은 마지막 단계, 즉 ‘영접기도를 통한 영접시키기’에 사실상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사영리를 전달하고, 몇 천명을 결신시켰다는 비성경적 보고를 듣고 있습니다. 성경전체의 맥을 꿰뚫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잘 인식하는 훈련된 전도자들도 이런 전달방법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예외는 아니라는 점에 놀라움이 있습니다. 이 ‘영접론’은 그야말로 현대적 복음전도운동에 있어서 최고의 이슈입니다.

일단 영접기도문을 읽게 하고 영접시킨 후에야, 회개와 구원과 뭔가 다른 더 깊은 단계로 인도해 나간다는 생각이 전도자들에게는 팽배합니다. 그것은 구원의 교리들에 대해 각각은 이해하지만 그것이 서로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있는 구원의 기본 교리들에 대한 통합적이고 온전한 가르침의 부실함이 여기에서도 증명되는 것입니다. 사영리에서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회개’는 사실상 믿음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개가 없는 믿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순차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지만, 회개는 믿음과 함께 시작해서, 믿음의 여정이 마칠 때까지 함께 가며, 믿음이 깊어 질수록 더 깊어 지는 것입니다.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며, 그것은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 이심이 믿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은혜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며, 영접기도문 자판기에 의해 하나님께서 떨어뜨리시도록 만들어지고 조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고유하고, 영광스러운 성령님의 일하심에 인간이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없으며, 따라서 인위적 영접기도문 자판기를 통과한 후에 전도의 성공여부를 가늠하는 것은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쪽복음지를 통한 전도가, 순간적인 영접기도문 읽기를 통한 구원자판기의 기능이 아니라, 복음이 가르쳐지는 교회로 사람들을 인도해서, 말씀을 듣고 읽고 기도하는 가운데,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새로운 형태로 만들어 질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머지않아 성경적 기준에 부합한 형태의 새로운 전도지를 서점에서 입수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가르치며, 적용하고 있는지에 있어서, 우리를 돌아볼 수 있게 할 것이며, 따라서 오늘날 온갖 잡다한 서적과 교회적 문화와 온갖 교회적 활동들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을 풀어내어, 진리의 말씀, 성경 앞으로 우리를 다시 이끌어 낼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전체적으로 읽고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할 때, 그것이 한국교회 전체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할 때, 부흥은 시작된 것입니다. 아래에 새롭게 만들어질 쪽복음지에 들어갈 전도자를 위한 지침을 이번 호에서 소개합니다.


전도자를 위한 지침

1.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심을 믿으라.

2. 전도는 진리 즉, 거룩하신 하나님과,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과,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로 영원한 사망에 처해질 것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심과,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주어지는 은혜를 통하여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과 다시오심을 믿는 자들은 값없이 구원하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3. 전도는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믿는 자에게는 생명을, 거부하는 자에게는 사망을 선포하는 엄숙한 일이다. 은혜를 부여하셔서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하는 것은 초자연적이며, 영광스럽고, 가장 기적적인 일로써, 오직 하나님께 속한, 오직 하나님만이 가능하게 하시는 일이며, 따라서, 전도자가 진리를 전하는 것을 넘어서, 피전도자를 술수 (예수 믿으면 성공하고, 병고치고, 부자된다는 식의 현세 기복적인 말)로 꾀거나, 어떤 형식 (진지한 기도문 읽기 등)으로 인도해서 믿게 하거나, 예수님을 영접시킬 수 없으며, 이는 비성경적이며, 따라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복음을 전한 후 피전도자가 전달한 내용을 이해하고 믿음을 구한다면, 함께 기도하고, 가까운 복음적 교회를 소개하여 성경을 읽고 지속적으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지만, 어떠한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거나, 구원받았음을 피전도자에게 말할 수 없으며, 말해서도 안 된다.

4.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라는 말씀은, 복음을 듣고, 진지하게 어떠한 영접기도문을 읽어서 영접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성령님의 일하심으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오직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구원받음 (거듭남,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는 말씀은 불신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해서 영접하라는 구절이 절대로 아니다. 계시록 3장 20절의 전후 문맥을 잠간만 살펴보면, 미적지근한 신자들을 향하여 회개하고 열심을 내라는 촉구임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를 초청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불가능 한 것이다.

5. 이 책자는 복음의 핵심 요소들을 요약하여, 짧은 시간에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제작된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성령님께서 이 작은 책자를 통하여서 영광스럽게 일하셔서 피전도자에게 은혜로 믿음을 주실 수 있지만, 성령님께서 일하시지 않는다면 단순히 이 책을 읽거나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전한다고 해서 피전도자에게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책자를 전도의 유일한 도구라거나,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오로지 전도자는 전할 수 있는 기회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믿음이 피전도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인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하며, 따라서 복음을 전하기 전과 후에 피전도자를 위해 기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옛길 찾기의 창 – 제임스 패커

제임스 패커 (James I. Packer)는 생존하는 최고의 복음주의 신학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험한 인물 혹은 경계대상 인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가 경계인물 분류된 것은 1994년도에 발표된 ECT (Evangelicals and Catholics Together)라고 불리는 문서에 서명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작되었고, 많은 개혁적 복음주의 신학자와 목회자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아왔습니다. 제임스 패커가 카톨릭의 오류에 대해서 잘 알면서도 이러한 카톨릭과의 연합을 추구하는 행보는 이해하기 힘들 뿐만 아니라, 수용할 수도 없지만, 그의 이러한 연합추구의 행보는 3차적인, 즉 복음의 핵심과 직접적으로 부딪치지 않거나 카톨릭이 가지고 있는 사회/도덕적 가치관과 부합하는 부분 (즉, 낙태반대와 같은류의 공유 가능한 차원의 것)들에 있어서, 연합할 때 얻어질 수 있는 상승효과를 기대함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그는 정통 기독교 교리를 버리면서 연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라는 전제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기는 하지만, 이 중요한 그의 전제는 사실상 연합의 과정 안에서 현실적으로 철저하게 이해되고 적용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든 것 처럼 보입니다. 이 위대한 신학자는 비록 그가 청교도적 가르침과 성경적 신앙원리들을 꿰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가진 영국 국교회적 전통에 의한 영향으로 말미암아, 다른 많은 개혁적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카톨릭의 실체에 대하여 극복할 수 없는 시각의 차이를 가지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가 쓴 그의 전기가 한글로도 나와 있는데, 관심있는 분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패커의 카톨릭과의 보편적 이슈에 대한 연합추구 (패커의 입장에서 볼 때, 통 크고 대범한 연합일 것 같은)로 말미암아, 이러한 방법을 통해 카톨릭진영의 교묘한 술수가 스며들어오는 것 (그러나 패커 자신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것 같은)을 익히 파악하고 있는 보다 젊은 신학자들에게는, 패커가 복음주의 진영에 끼쳐온 지대한 선한 영향력들이 훼손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지금껏 유지해 온 개혁적 복음주의 신앙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주었을 런지도 모릅니다.

그가 가진 이러한 카톨릭에 대한 이해의 불분명함과 시각의 차이로 말미암아 (아마도 치명적인 그의 약점일수도 있겠지만), 위험인물 혹은 경계인물로 종종 분류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명민한 신학자의 삶과 신학을 종합적으로 볼 때, 그에 대한 이러한 형태의 분류는 음모론에 유사한 것이 되고 말며, 또한 이런 부분을 먼저 접하게 된 사람들은 이 훌륭한 신학자를 통해 흘러나온 탁월한 가르침들을 쉽게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R. C. 스프라울 (R. C. Sproul)과 같은 신학자도 제임스 패커의 ECT 서명에 대하여 분노에 가까운 혹평을 하였지만, 패커가 성경적 복음주의를 형성하는 일에 기여해 온 모든 선한 영향력까지 부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패커를 알고 그의 신학을 아는 사람들은 그의 연합형태에 합당한 비판을 하면서도, 그의 변함없는 성경적 가르침과 신학에 대한 찬사는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끼친 선한 것들을 감사히 누리고, 반면 그렇지 않은 요소들은 버림으로써, 신앙의 옛길을 발견하는 일에 안내자 (그 자신이 옛 신앙의 자취를 끊임없이 이어왔으므로)로 그를 인정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이제 그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었다면, 여기에서 그가 쓴 옛길 찾기의 훌륭한 안내서 세 권을 언급하고자 합니다.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그 한 권은 단연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정옥배가 번역한 이 책은 IVP를 통해서 2008년 판이 나와 있습니다. 여러 신학자들의 다양한 찬사들 가운데, R. C. 스프라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최고의 신학자가 쓴 최고의 작품이다. 하나님의 위엄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는 이들을 깨우는 자명종이다.’ 이 책을 옛길 찾기의 추천도서로 삼는 이유는, 오늘날 교회에서 듣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따라서 교회를 수년 다녀도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그러나, 우리 옛 설교자들에 의해서는 항상 가르쳐져 왔던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정리된 형태로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다른 설명보다도 패커 자신의 언급이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은 기초적인 내용을 다룬 것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어떻게 행동하시며, 그분을 믿는 자들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고, 행하시고, 행하실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사랑하고, 예배드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사고와 삶의 전 영역을 채우시게 할 것인지를, 단순하면서도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보여 준다. 이 중대한 각각의 주제에 대해서는 이 책의 내용 외에도 훨씬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롭게도, 이 책을 거듭 사용하여 사람들이 하나님 중심적이고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삶을 시작하도록 도우셨다. 이에 경외감을 느끼며 감사드린다. (2008년 한국어판 서문 중)

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역시 정옥배의 번역으로 두란노를 통해서 출판된 책인데,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습니다. 이책은 두껍지 않지만, 우리 신앙의 지침서 혹은 적용서 혹은 실천서와 같은 형태의 것으로, 우리가 신앙의 여정에서 겪는 여러 상황들에 대한 성경적인 고찰을 하나님 중심적으로 풀어놓았습다. 제목만 본다면 기독교라는 이름을 붙인 서적들이 추구하는 형태의 ‘축복’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제임스 패커가 저자임을 확인하는 순간, 이 책이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금방 알아차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책은 실제적인 적용의 측면에 보다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삶에서 겪는 문제들로 고민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보다 더 열렬히 하나님을 추구할 수 있도록 안내해 줄 것입니다. 패커는, 예상되는 것 처럼, 이 책의 개요를 간단히 설명한 후에, 곧장 성경을 읽으라는 권유로 이 책을 전개해 나갑니다. 따라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성경읽기의 빈약함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그의 이야기들에 대하여 우리가 더 이상 고개를 끄덕이지 않게 된다면, 즉 성경을 전체적으로 자주 읽고 끊임없이 성경의 하나님을 묵상하게 된다면, 이 책이 소임을 다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세 번째는 그의 책 ‘성령을 아는 지식’으로써 홍종락이 번역하여 홍성사에서 간행된 것입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모든 기독교를 둘러싼 현상들에 대한 진지하고 종합적인 답을 얻도록, 어렵지 않으면서도,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입장에서 고찰한 내용들을 제시합니다. 특별히 방언을 포함한 영적 은사들과 성화에 대한 입체적이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시각을 제시함으로써, 성령의 주요사역이 예수 그리스도로를 드러내는 (밤에 건물을 돋보이게 하는 형태의 투광조명사역) 것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영적인 현상들을, 그 현상들의 원인규명을 하지 않더라도, 성경과 역사적 지식을 통해서 분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줄 것입니다. 내용이 다소간 딱딱할 수도 있는데, 내용전개가 자연스럽기 때문에, 영적 현상들과 오늘날 거의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 성화에 대한 성경적, 역사적 고찰에 조그만 관심이 있다면, 꽤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제임스 패커를 부흥을 사모하는 신학자로 깊이 인식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이 책(7장 오소서 성령이여)과 위에서 소개한 두번째 책 (15장 교회개혁)에는 교회의 갱신과 부흥에 대한 매우 타당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또한, 제임스 패커를 찬양을 잘하는 신학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그 자신이 신학은 하나님을 찬미하기 위한 것임을 늘 강조하듯이, 그가 쓴 대부분의 책에서는 찬송시가 군데군데 인용되어 있습니다. 다시 이 책을 짧게 평한다면, ‘성령과 은사 그리고 성결에 대하여 성경을 기반으로 교회사의 흐름을 통해 실제적인 가르침을 주는 놀랍도록 잘 쓰여진 책이다’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글을 맺기 전에,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러한 옛길 찾기의 모범이 될만한 책들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성경의 하나님을 발견하고자 하는데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열망이 생기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담당 목회자들에게 어떻게 성경을 읽고, 배울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한다면, 목회자들이 먼저 성경을 어떻게 읽을 지, 다시 고찰하고 연구할 것이며, 이렇게 하여, 온갖 잡다한 활동들과 세속적인 방법론을 버리고, 진정한 설교와 진지한 성경읽기를 통해 하나님을 발견하기 시작할 때, 부흥은 올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부흥을 주시기 위해 준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대감과 성경을 대하는 태도에서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이러한 옛길 찾기의 도구들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 됨을 알아야 겠습니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0.08.1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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