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업 코리아― 박용규교수의 부흥현장을 가다] (6) 존 낙스는

기사입력 2006.05.24. 오후 3:21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인물이었다. 그는 1514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한창 성경 연구에 몰두하고 있을 때 출생해 피의 여왕이라 불린 메리가 수많은 개신교 지도자들을 처형하며 개신교를 탄압하고 있을 때 거룩한 부르심을 받았다. 명문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을 졸업한 낙스는 개혁신앙의 선구자 조지 위샤트의 보디가드로 활동을 시작하며 스코틀랜드를 위해 자신을 불태웠다.

1540년 뚜렷한 회심을 경험한 낙스는 루터적이고 반 교황적인 차원의 신앙에서 좀더 적극적인 개혁신앙으로 돌아섰다. 초기 낙스의 활동무대는 세인트 앤드루스였고, 그 가운데 교구 교회와 세인트 앤드루스 성은 중심무대였다.

1547년 4월 낙스는 앤드루스 성에 들어가 교구 교회와 이곳을 자유스럽게 오가며 설교했다. 불꽃튀는 심장에서 우러나는 그의 설교가 사람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했다. 1548년 위샤트가 순교한 후 세인트 앤드루스 수비대에서 행한 낙스의 첫 설교는 그가 얼마나 선명한 개혁신앙을 갖고 있었는가를 잘 말해준다.

스승 존 메이저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지성인들,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 교수들과 일반대중들이 참석한 가운데 낙스는 다니엘 7장 24, 25절에 근거해 성경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사실, 예배의 근간이 성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선포에 있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전했다. 심장이 찢어질 듯 놀라운 파괴력을 지닌 그의 설교는 가톨릭의 문제점을 선명하게 제시, 민중들 가슴에 개혁과 부흥의 불을 지폈다.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8.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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