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대부흥운동 모체, 원산부흥운동


역사속의 모든 신앙운동이 그렇듯이 평양대부흥운동도 불씨 혹은 모체가 있었다. 평양대부흥운동은 하루아침에 태동된 것이 아니라 이전의 크고 작은 영적 지류들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영적강줄기를 형성한 것이다. 그 중에서도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 사이에 열린 원산선교사기도회 때 카나다 출신 로버츠 하디를 통해 발흥한 원산부흥운동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중요한 영적 모체였다.


1. 하디와 원산부흥운동의 발흥


토론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입국한 하디 선교사는 원산 지역 여선교사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는지 기도에 대해 3회에 걸쳐 강의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강의를 준비하다 큰 은혜를 경험했다. 하디는 선교실패의 원인과 영적으로 침체된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지, 또 원인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믿음의 결핍과 성령 충만을 위해 말씀(눅 11: 13)을 붙들고 간절히 기도했다. 성령께서 그의 교만을 꺾으시고 그의 은밀한 죄악들을 통회케 하셨다. 무엇보다 그는 성령의 충만을 경험했다. 성령충만을 경험한 하디는 1903년 8월 요한복음 14장 12절과 14절, 15장 7절, 16장 23절을 가지고 행한 세 번의 강의,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Faith in Christ), "그리스도 안에 굳게 섬"(Abiding in Christ), 그리고 "오순절의 경험“을 통해 참석한 선교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성령이 하디에게 찾아 오셨을 때 그의 첫 요구는 하디로 하여금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함께 보냈던 선교사들 앞에서 자신의 실패와 그 실패의 원인을 시인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하디가 자신의 교만과 죄를 솔직하게 고백하자 그곳에 모인 선교사들 가운데 회개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디 자신이 고백한 것처럼 “그것은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경험 이었다.”


하디의 고백은 다시 한국인들의 회개로 이어졌다. 하디가 성령의 충만을 깨달은 후 그 첫 주일 아침 자신이 맡고 있던 “원산 감리교회 회중 앞에 서서 부끄럽고 당황한 얼굴로 심령의 강퍅함과 믿음의 결핍 또한 이것들이 가져다주는 많은 결과들을 고백하면서 한국인들은 처음으로 죄의 확신과 회개가 실제적인 경험 속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하디의 회개로 한국 사람들이 죄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2. 원산부흥운동의 확산


하디로 인해 촉발된 원산부흥운동은 1903년 여름 이후 중단되지 않고 점점 더 확산되었다. 하디가 가는 곳마다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이어졌다. 원산을 방문한 스칸디나비아 선교회 소속 부흥사 프란손(F. Franson)을 강사로 열린 원산창전교회 연합사경회 때, 1904년 2월 그에게 그토록 실패감을 안겨주었던 강원도 금화군 지경대에서의 집회, 이어 열린 송도와 서울 집회, 그리고 1904년 10월 서울, 제물포, 평양에서의 일련의 부흥사경회 때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디로 인해 촉발된 부흥의 역사는 1905년 신년에 들어서도 계속되었다. 이 같은 영적 움직임을 목도한 선교사들은 그 해 가을 모임을 갖고 영적각성만이 이민족과 교회를 살리는 원동력이며, 기성신자들이 먼저 성령충만을 경험해야 한국교회가 참된 부흥을 경험할 수 있다는 확신 속에 1906년 신년부흥회를 전국 주요도시에서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것은 참으로 시의 적절한 결정이었다.


3. 평양에 부흥의 불씨를 가지고 간 하디


1906년 신년부흥회를 통해 부흥운동의 열기가 더욱 더 저변 확대된 가운데 1907년 하반기에 접어들어 그 강도를 더해준 세 가지 사건이 있었다. 1906년 8월 평양선교사 사경회, 곧이어 9월에 열린 존스톤의 서울선교사사경회, 그리고 그해 10월에 있었던 놀라운 목포부흥운동이 그것이다.

1906년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평양지역 선교사들은 원산부흥운동의 주역 하디를 강사로 사경회를 열었다. 하디는 요한 1서를 가지고 평양지역 선교사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자신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게 되었는지, 또 어떻게 성령께서 자신을 도구로 사용하셨는지 진솔하게 고백했다. 이날 하디는 이렇게 설교했다:


인간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잘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체력이 날마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것 같이 우리의 영적인 강건함도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이 때 우리의 목적은 인간의 영광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초점이 바뀌어 질 것입니다.


그 현장에 있었던 선교사 번하이젤 선교사의 증언대로 장대현 교회 담임목사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를 비롯한 참석자 “모두 커다란 축복을 받았다.” 1906년 8월 하디의 평양선교사사경회는 한국의 선교사들을 먼저 영적으로 무장시켜 한국교회부흥운동을 예비하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였다.


이어 1906년 9월에 열린 서울선교사 사경회 때 존스턴(Howard Agnew Johnston)이 전해준 웨일즈와 인도에서의 부흥운동 소식은 한국의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에게 대단한 도전을 주었다. 존스톤을 통해 길선주가 큰 은혜를 경험했고 길선주를 통해 다시 김익두가 큰 은혜를 경험했다.


이런 가운데 1906년 10월 목포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운동 소식은 1907년 1월 2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평안남도도사경회를 준비하는 평양지역 선교사들과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었다. 한국인들은 물론 선교사들은 크리스마스 휴가도 반납하고 매일 정오에 모여 이 땅에 놀라운 영적각성운동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고, 그 기도는 곧 응답되었다.


돌이켜 볼 때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다. 하나님께서 하디를 통해 부흥의 불길을 지피시더니 평양대부흥운동에 앞서 장대현 교회 담임 목사 이길함, 장대현 교회 수석 장로 길선주,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한국교회 영적각성운동을 이끌어 갈 김익두를 준비해 두신 것이다. 



목회와 신학 칼럼-2005년 4월.hwp[C:My Documents]-한글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8.01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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