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 (약 150~215년)

조대준 목사  (필라델피아 WTS,  Ph. D. )

 

 


알렉산드리아 클레멘트는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태어나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와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그는 크리스천이 된 후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신학자로 알려졌다. 클레멘트는 신학을 연구하는 데 철학을 사용함으로써 철학이 신학의 하녀로 쓰일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는 이 당시에 성행하던 영지주의의 잘못된 가르침을 비판하였으나 그 자신도 영지주의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클레멘트는 신앙을 경멸하고 지식만을 중요하게 여기는 영지주의자들에 대하여 신앙은 참 지식의 기초라고 가르쳤다. 그는 "인간은사랑과 명상으로 참 영지주의자가 된다緞�말하였다. 그러므로 클레멘트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논리적 지식 못지않게 하나님에 대한 명상이 필요하다고 가르쳤다.

클레멘트는 영혼이 명상에 들어가면서 정결, 조명, 연합의 3단계 성장 과정을 거친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클레멘트는 그 후 약 1,900년 동안 내려오는 기독교의 신비신학 혹은 영성신학의 기초를 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여기서 말하는 신비신학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클레멘트 후에 살았던 기독교 영성의 거장들은 거의 다 클레멘트의 영혼의 명상 3단계를 받아들여 영성의 삶을 실천하고 영성신학을 발전시켰다.

신자는 기도와 명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간다는 가르침은 그 후에 금욕주의가 발전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클레멘트는 과격한 금욕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세상의 물질을 악으로 보는 영지주의를 반박하지만, 동시에 인간이 자신의 육적 충동을 억제하는 금욕주의를 가르치는 양면을 보여 준다.

클레멘트는 결혼은 악하고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과격한 금욕주의나 이단에 반대하여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시고 축복하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물질 세계를 만드셨다. 우리가 육신 안에 있는 것에 대하여 수치스러워해야 할 것이 하나도 없다. 결혼은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다. 자녀를 낳는 것은 사회에 대한 의무를 행하는 것뿐 아니라 창조주의 역사에 협력하는 것이다.


그는 결혼에 대하여 이렇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였어도 될 수 있으면 남매같이 사는 것이 좋다고 가르친다. 클레멘트는 남자와 여자가 결혼을 하였어도 부부의 성관계는 아이를 낳기 위해서만 하고 그 외에는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남자가 성관계를 가질 때는 피가 머리에서 성기에 몰리게 되므로 머리에 피가 부족하여 덜 지성적으로 되어 인간 이하의 수준으로 내려간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이 갖는 성관계는 깊은 영성의 삶을 사는 데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클레멘트가 주장하는 것이 의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옳은지 가부를 결정하기는 어려우나, 그가 인간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성관계나 남자를 타락하게 할 수 있는 여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신학적 결론을 내리지 못한 마음의 불편함을 엿볼 수 있다. 클레멘트의 영향을 받은 오리겐은 후에 "신자가 침대 위에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이 듣지 않는다. 왜냐하면 침대 위에서 부부관계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라고까지 말했다.

여하간 클레멘트의 이런 견해는 후세의 신자들에게 하나님과 가까운 삶을 살기 위해서 여자를 멀리하고 세상을 등지고 독거하는 수도사로서 사는 길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세상을 등졌어도 수도사들에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성욕과 여자에 대한 생각은 수도사들로 하여금 광야에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을 하게 한다. 교회사를 통해 보면 독거하며 영성을 추구하는 신자에게 성욕과 여자에 대한 생각은 쉽게 승리할 수 없는 강력한 적으로 항상 나타난다. 현재 미국 목사의 약 20퍼센트가 포르노 잡지에 중독되어 있다는 미국 교회의 통계 발표는, 이것이 옛 시대에 살았던 수도사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클레멘트는 신자가 거룩하게 사는 성화에 대하여도 언급한다. 그는 결혼한 남자가 독신으로 사는 남자보다 성화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독신으로 사는 남자는 혼자 편하게 살지만 결혼한 남자는 가정의 가장으로서 매일같이 자녀와 부인에게 부담을 받고 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클레멘트 시대에는 스트레스라는 말이 없어서 그렇지, 그 말을 요새 말로 옮기면 결혼한 남자는 처자에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기 때문에 성화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맞는 것인지 모르지만 결혼한 여자보다는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더 신경질적인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남자의 경우는 잘 모르겠다.

여하간 클레멘트에 의하면 남자가 더 성화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많이 낳아서 할 수 있는 대로 자녀들에게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클레멘트는 남자는 할 수 있는 대로 성관계를 갖지 말라고 가르친 바 있다. 깊은 영성을 갖기 위해서는 성관계를 갖지 말아야 하고, 성화하기 위해서는 아이를 낳기 위한 성관계를 가져야 하고……. 후세의 신자들은 클레멘트의 어떤 가르침에 장단을 맞추어야 할지 고심하게 된다.

클레멘트는 또한 포도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므로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술 취함은 구역질 나는 것이고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간혹 저녁에 포도주 한 잔 정도는 괜찮다. 특별히 피가 좀 차가운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된다"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그는 포도주는 성찬식 할 때 외에는 입에 대지도 말아야 한다는 주장을 반박한다. 클레멘트는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 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셨고,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위병을 고치기 위하여 포도주를 조금 마시라고 권한다는 성경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므로 클레멘트는 절제는 좋지만 과격한 절제로 말미암은 외식주의와 율법주의를 반대한다.

클레멘트의 가르침은 어떤 것은 일관성이 없는 것같이 보이나 양극의 균형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과격한 금욕주의와 향락주의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하고, 과격한 절제와 방종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클레멘트를 자유주의 청교도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의 가르침은 자유주의 같으나 청교도같이 금욕과 절제를 가르친다.

그러면 클레멘트의 삶은 과연 자유주의적이었는가, 청교도적이었는가? 클레멘트는 청교도적 금욕과 절제의 삶을 살았다. 다른 사람에게는 자유를 가르쳤으나 자신은 금욕과 절제의 삶을 살았다. 다시 말해서 클레멘트는 자신에게는 엄격하였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며 사랑으로 대하였다. 현대 신자들이 영성을 추구하면서 제일 먼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자신의 영성이 좀 깊은 것 같으면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절제와 금욕을 요구하는 것이다.

영성의 기본은 자신에게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사랑을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깊은 영성이라고 주장해도 이것이 보이지 않을 때는 그 영성은 올바른 영성이라고 할 수 없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1.12.04 04:54
  • 수정 2020.12.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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