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겐 (약 185~254년) 의 영성

조대준 목사 (필라델피아 WTS, Ph. D. )


오리겐은 니케아 공의회(325년) 전의 교부들 중 최고의 신학자이다. 오리겐이 가르쳤던 교리 중 어떤 것들은 하늘의 감동을 받은 것같이 심오하고 찬란하며, 또 어떤 것들은 지하에서 올라온 것 같다. 오리겐의 머리와 마음은 항상 하나님과 영의 세계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실로 천재 신학자였으며 그가 저술한 신학 책들은 그 양이 방대하다. 오리겐이 요한복음에 대한 주석을 쓰면서 요한복음 1장 1절만 가지고 책 한 권을 썼다는 것만 보더라도 그가 가진 지식이 얼마나 넓고 깊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머리는 항상 신비한 사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7명의 속기사들이 그를 따라다니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받아 적었다. 또한 속기된 문서들을 정서하기 위하여 7명의 비서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오리겐의 머리는 항상 신학사상이 흘러나온 분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리겐은 약 185년에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소년 시절에 아버지가 순교당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도 순교하기로 결심하고 그 장소로 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의 옷을 숨기고 순교하지 말라고 간절하게 만류하여 그 뜻을 바꾸었다. 오리겐의 어머니는 하루 아침에 남편과 아들을 잃는 아픔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고, 또한 기독교는 천재 신학자를 잃지 않았다.

오리겐은 순교를 당하지 않았지만 이때부터 매일매일 순교하는 순교자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고 세속 철학과 학문도 거의 다 정복하였다. 오리겐은 18세에 신학과 성경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으며, 그의 밑에서 많은 제자들이 사사를 받았다. 오리겐의 학식은 방대하고 그의 명성은 널리 퍼져 세속 철학자들도 책을 쓰면 그 책을 오리겐에게 바친다는 서문을 넣기도 하였다. 그는 생의 말기에는 가이사랴로 옮겨서 사역을 하다가 신앙 때문에 투옥되기도 하였다. 오리겐은 심한 고문에도 주님을 부인하지 아니하였으며, 옥에서 풀려난 후에는 옥에서 당한 고문과 상처 때문에 몇 년 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오리겐은 지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특별한 삶을 살았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을 절제하는 금욕주의의 삶을 살았다. 오리겐은 여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세상에 헛소문이 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거세하기도 하였다. 그는 매일같이 침대 없이 땅바닥 위에서 잤으며 그것도 최소한의 수면을 하였으며 음식은 그가 필요한 최소한의 양을 먹었다. 그러므로 오리겐에게 "아다만티오스"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즉, 철의 인간이라는 뜻이다. 오리겐에게 모든 것은 싸움이며 시험이었다. 그는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선한 것은 하나도 없다" 는 말을 하기도 하였다. 오리겐의 이런 사상은 성찬식을 할 때에 마음에 불편함을 주었을 것이다. 아마 그는 성찬식을 할 때에는 눈을 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오리겐은 인간이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순교와 명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인간은 원래 마음(mind)이었는데 타락하여 영혼(soul)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타락한 영혼에서 원래 상태인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순교와 명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오리겐은 마태복음 16장 24~25절을 인용하여 순교를 강조한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신자가 순교를 하면 영혼에서 마음으로 변화하는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오리겐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 이제 우리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자. 예수님이 우리 안에 살고 계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혼을 잃고서 영혼보다 더 좋은 것을 받기를 원한다면 순교를 함으로 영혼을 잃어버려라.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죽음으로 우리의 영혼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참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리겐은 실제로 순교를 당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실제로 죽는 순교와 함께, 신자가 매일의 삶에서 죽는 은밀한 순교를 강조한다. 그는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우리의 양심을 순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우리의 삶에서 은밀한 순교를 하자"고 가르친다. 오리겐에게 금욕주의와 철저한 절제의 삶은 살아 있는 순교자가 살아야 할 삶이었다. 깊은 영성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성욕과 수면과 식욕을 절제하여 육신을 다스리는 것이 오리겐에게 기본 훈련이었다. 하루에 한 끼 금식기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이상하게 여기는 많은 현대 신자들에게 오리겐의 말이 얼마나 귀에 와 닿을지 모르겠다. 순교란 말은 잃어버린 지 오래이고, 이 땅에 살면서 물질적 복을 추구하면서 사는 현대 신자들에게 오리겐의 말은 다른 세계의 말처럼 들릴 것이다.

오리겐은 또한 인간이 영혼에서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명상을 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는 신비신학의 정결, 조명, 연합이란 명상 3단계를 체계화하였다. 오리겐은 명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또한 하나님께 알려지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명상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하여 인간은 신성화한다. 이 말은 헬라 교부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이었다. 명상을 통하여 인간은 영혼의 최고 정점인 마음을 발견한다. 이것이 인간의 참 본질이다. 그러므로 오리겐의 신비신학과 명상은 인간이 황홀한 상태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교부들은 현재 일부 신자들이 주장하는 무아경에 들어가는 것이 깊은 영성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오리겐에게 깊은 영성은 마음의 본질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오리겐은 명상을 통하여 성경의 깊은 의미를 깨닫게 된다고 가르친다. 명상을 통하여 순간적으로 찾아오는 감동과 조명은 성경에 담겨 있는 숨은 뜻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리겐에게는 그리스도 신비주의와 말씀 신비주의가 성경 신비주의와 떨어질 수 없게 하나로 묶여 있다. 오리겐은 명상이 신자의 신비에 대한 감각(신비감각)을 되살아나게 한다고 말한다. 신비감각은 영혼이 명상을 통하여 성령, 말씀, 성부를 체험하는 깊이와 종류를 보여 준다. 신비감각이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 때 성경은 숨겨진 의미를 드러낸다고 오리겐은 가르친다.

오리겐은 신자의 영성을 연구하는 데 특별히 성경의 아가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그는 아가서는 인간의 영혼과 신랑인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는 것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오리겐의 다음과 같은 고백은 그가 얼마나 그리스도를 사모하며 살았나 하는 것을 보여 준다.

나는 종종 신랑이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나에게 강렬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내가 열심히 찾아도 그를 찾을 수가 없다. 하나님이 여기에 대한 나의 증인이시다. 나는 그가 다시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어떨 때는 그가 다시 오기도 한다. 그가 다시 올 때면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면 그가 다시 사라진다. 신랑이 사라진 후에는 그를 찾는 나의 간절한 소망이 다시 시작된다.

오리겐의 이런 고백은 철의 인간으로 알려진 그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뜨거운 용광로가 불타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오리겐의 가르침과 금욕주의는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를 통하여 동방 교회에 전해졌고, 존 카시안을 통하여 서방교회의 수도사 운동을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현대 신자들이 오리겐처럼 살 수도 없고 또한 그렇게 살 필요도 없지만, 오리겐이 이 땅에서 순례자로서 순교의 삶을 살았던 것은 현대 신자들에게 도전을 줄만하다. 현대 신자들이 순례자라는 찬양을 하고 순교의 말을 가끔가다 하지만, 과연 이들의 삶에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실제로 보여지는가? 물질주의의 달콤함과 편안함에 빠져 있는 우리에게 순례자나 순교라는 말은 구시대의 지나간 말로 들리는 것 같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1.12.14 07:56
  • 수정 2020.12.1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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