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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의 영성
2012년 01월 30일 (월) 23:01:31 평양대부흥

하나님을 대면하는 영성(7)

어거스틴 (354~430년) 의 영성

조대준 목사 (필라델피아 WTS, Ph. D. )

   
  사진출처 위키백과
어거스틴은 서양 문화권에 사는 사람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잘 알려진 위인이다. 그는 기독교 최고의 신학자이며 세계적인 철학자이며 성인이다. 가톨릭 교회의 신학과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신학이 다 어거스틴의 신학에 기초를 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의 신학은 기독교 신학을 지배하고 있다. 또한 그는 세속 사회에도 위대한 사상가와 철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최고의 저서인 「참회록」은 모든 대학생이 꼭 읽어야 하는 세기의 100대 명작에 항상 꼽힌다. 나 역시 현대인들이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읽기 전에는 기독교는 물론이고 서구의 문화와 사상을 바로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그의 저서 「철학탐구」에서 어거스틴의 「참회록」을 인용하면서 20세기 최고의 철학 책 첫 장을 시작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그의 심오한 신학과 철학 사상 못지않게 깊은 영성을 추구하고 체험한 신비신학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는 북아프리카의 수도원 사상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어거스틴은 지금의 알제리아의 타가스테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불신자였으나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였다. 어머니 모니카는 어거스틴을 경건한 기독교 신앙으로 교육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 신앙에서 멀어져 갔고 세속 학문과 문화에 깊이 빠져 들었다. 어거스틴은 카타지에 가서 수사학을 공부하여 이 분야의 학자가 되었다. 그의 특출난 두뇌와 함께 그의 정욕도 세상이 가져다 주는 달콤함에 깊이 빠져 들었다. 그러다가 어거스틴은 젊은 여자와 동거 생활을 시작하고 아들까지 낳게 되었다. 이런 문란한 관계는 15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는 밀란에서 수사학 교수 생활을 하던 중 밀라노의 주교인 암브로스의 설교를 듣는 기회가 있었다. 암브로스의 설교를 들으면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어거스틴의 마음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결국 로마서 13장 13~14절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다.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는 응답을 받았고, 모든 것에 자신만만 하였던 33세의 젊은 천재 교수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는 이때부터 지난날의 삶을 다 청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았다. 구원을 받은 다음, 그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믿음의 친구들과 조용히 수도사의 삶을 살려고 하였으나, 히포의 주교인 발레리우스의 강권으로 히포의 부주교가 되었고, 발레리우스가 죽은 6년 후에는 히포의 주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의 사상과 가르침은 전 로마 제국에 퍼져나갔다. 100권이 넘는 어거스틴의 저서와 수많은 설교문과 서신들은 서양 문화와 사상을 바꾸어 놓았다.

어거스틴은 인간은 육신과 영혼으로 만들어졌다고 가르친다.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인간의 영혼은 명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명상은 인간의 언어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으로 충만한 천국의 맛을 볼 수 있게 한다. 어거스틴은 모세와 사도 바울이 신비로운 환희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다고 말한다. 그는 신자가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청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어거스틴은 "오직 청결한 마음을 가진 신자만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마음을 청결하게 하기 위해서는 귀신과 싸워야 하고, 열정을 조정해야 하고, 덕을 쌓아야 하고, 죄와 악을 뿌리뽑아 없애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어거스틴은 신자가 하나님을 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보이는 세상에 계신 것도 아니고 인간 안에 계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 안에 계신 것도 아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세상과 인간의 영혼을 초월하여 계신다.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나는 보이는 물질 세계에서 하나님을 찾았으나 하나님을 찾지 못하였다. 그런 다음 나의 몸 안에서 하나님을 찾고자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또한 나는 나의 영혼 안에서 하나님을 찾아보았으나 하나님은 거기에도 계시지 않았다. 나는 나의 영혼을 바쳐서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나의 영혼 위에 올라가서야 하나님을 볼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영혼 위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하나님은 나를 주목하고 계시고, 나를 지배하시고, 나에게 공급해 주시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우주와 인간의 영혼을 초월하여 계시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은 인간이 인간 자신을 체험하는 것보다도 더 내적이라고 가르친다.

어거스틴의 이런 가르침은 고도의 이성적 신학과 철학 사상으로 후세의 교회를 지배하였던 어거스틴의 다른 면을 보여 준다. 어거스틴은 인간은 그의 영혼 속에 깊이 들어가는 명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성경 말씀을 가지고 인간의 영혼 속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이 보시는 것같이 보아야 한다. 그럴 때에 인간은 영혼을 초월하여 다른 차원에 들어갈 수 있고, 영혼을 초월하여 영혼 위에 다다를 때에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의 헐리우드 배우 못지않게 문란하고 정욕적인 삶을 살았던 어거스틴이 이런 것을 하루 아침에 다 버리고 평생을 하나님과 살면서 후세에 성자로 불리는 위인이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얼마나 신비로운 체험이 있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어거스틴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야말로 신부와 신랑의 사랑 같았다. 그는 그의 과거의 삶을 말해주는 성경 구절들을 방에 붙여 놓고 잠을 잘 때와 아침에 일어날 때에 그 성경 구절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의 예리한 머리는 이런 사랑도 하나씩 분석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님, 당신은 말씀으로 나의 마음을 깊이 찔렀습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면 내가 당신을 사랑할 때 나는 무엇을 사랑합니까? 나는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어떤 빛과, 어떤 목소리와, 어떤 향기와, 어떤 음식과, 어떤 포옹을 사랑합니다. 나의 속사람의 빛과 목소리와 향기와 음식과 포옹입니다. 나의 영혼에 비치는 공간 세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빛, 시간에 의해 사라지지 않는 목소리, 바람에 의하여 퍼지지 않는 향기, 먹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달콤한 맛, 아무리 가까이 껴안아도 싫증나지 않는 포옹. 주님, 나는 이것들을 사랑합니다. 내가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는.

그러므로 어거스틴에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이 세상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과 뜨거운 사랑의 관계를 체험하는 것을 말한다.

어거스틴은 여기서 신비한 체험을 말하나 이것은 교회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회를 떠나서, 성경을 떠나서, 교리에 위배되는 신비한 체험은 없다. 평생을 도나투스, 노바투스, 펠라기우스의 이단들과 교리 논쟁을 벌이며 교회를 방어해 온 어거스틴의 교회 중심의 신앙과 체험을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신비한 체험도 교회를 강건히 세우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심오하고 신비한 체험이라도 교회에 물의를 일으켜서 지금까지 내려온 길에서 교회를 이탈하게 한다거나, 이런 체험을 추종하는 일부 신자들을 우월하게 하여 교회의 분리를 조성하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체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을 성경이 가르치는 삼위일체 교리에 근거를 두고 가르친다. 그는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삼위일체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영혼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 인간의 영혼은 삼위일체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해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체험을 하면서 점점 완전하게 된다. 이렇게 어거스틴은 우주와 영혼을 초월하는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도 성경이 가르치는 교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없는 신비한 체험을 하였다고 주장하는 신자들은 그 체험이 참으로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심각하게 살펴봐야 할 것이다.

신자가 하나님을 만나는 신비한 체험의 목적은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이라고 어거스틴은 가르친다. 신자는 지혜를 통하여 육적인 사람에서 영적인 사람이 되며 그 모습은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해간다. 어거스틴은 지혜를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는 곳인 영혼에 하나님의 자국이 깊이 박히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이런 지혜는 신자로 하여금 더 깊은 명상의 삶을 살도록 한다. 참명상은 언제나 기도가 되며 영혼 속을 깊이 바라보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어거스틴은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바르게 기도해도 우리의 기도는 항상 육신과 감각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항상 실패라고 말한다. 어거스틴은 그의 괴로움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영혼을 무겁게 누르는 나의 육신을 거두어 가시옵소서. 나의 마음을 누르고 있는 이 땅의 장막을 거두어 가시옵소서." 어거스틴은 우리가 영원한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우리의 기도는 완전하여질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나를 칭찬하는 것에 성공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칭송하는 것에 실패하는 것이 더 낫다." 어거스틴은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생기기 1천여 년 전에 이미 인간의 영혼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사상가이며 영성가이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을 만날 때에 인간의 영혼에 일어나는 신비로운 현상을 인간의 말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고대 교부들의 신비신학은 어거스틴 때 와서 인간의 영혼을 파고드는 내적 연구가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신비한 체험이라도 교회 안에 속하고 성경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신비한 체험이 극단의 주관주의로 흐르는 것을 막았다. 어거스틴은 위대한 신학자이며 철학자이나, 그의 깊은 영성은 어떤 사상보다 하나님을 향한 식지 않는 불 같은 첫사랑에 뿌리를 두었다.

아, 이 위대한 신학자가 하나님과 가졌던 불꽃 튀는 사랑의 관계를 보라! 우리도 깊은 영성을 추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이 식지 않았나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깊은 영성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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