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휴가는 ‘영성+쉼’ 있는 성지순례로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추천 베스트 10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노희경 기자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
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 지라도”(합 3:17).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는 건 ‘…할 지라도’라는 강한 믿음 때문이다. 가진 것이 없을 지라도, 건강하지 못할 지라도, 돈이 없을 지라도, 명예가 없을 지라도…. 비록 여건과 환경은 막막할 지라도 감사하는 삶을 사는 것, 요즘 당신에게 꼭 필요한 ‘지라도 신앙’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아직 휴가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 ‘지라도 신앙’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한국기독교성지순례선교회 회장 박경진 장로는 성도들이 ‘쉼’과 ‘영성’을 함께 체험할 수 있는 안식처를 추천했다. <표 참조>

‘지라도 섬’으로 불리는 소록도. 그곳에는 세상의 편견 속에서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믿음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일본 총독부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한센병 환자들을 강제 격리시키기 위해 온화한 기후와 풍부한 물, 육지와의 인접성 등을 따져 소록도를 선택했다. 1916년 도립 자혜의원(현 국립소록도병원)을 개원하고 100여명의 한센병자를 강제 수용했다.

그러나 인간은 버렸을 지언정 하나님은 그들을 찾아왔다. 제2대 하나이 젠기스 원장이 취임하면서 이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선물했다. 1922년 첫 예배를 드린 게 소록도 교회의 출발이다. ‘두 손이 없을 지라도’ ‘발이 없을 지라도’ 환자들은 기뻐하고 찬송을 불렀다. 말씀이 들어가자 고통의 땅은 감사와 찬송이 흐르는 기도동산으로 변했다. 소록도에는 중앙교회 신성교회 동성교회 남성교회 북성교회가 믿음의 뿌리를 이어오고 있다.

인근의 신안군 증도에서는 섬마을 선교의 어머니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증도는 전체 주민의 90%가 크리스천이다. 이 땅이 믿음의 터전을 이룬 데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문 전도사는 신안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을 걸어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1년에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아 없어질 정도였다. 무속 신앙이 강하게 뿌리 내린 곳이지만 사랑의 나눔을 통한 문 전도사의 열정에 모두들 회개했다. 문 전도사가 가는 곳이면 언제나 교회가 들어섰다. 하지만 6·25 전쟁과 함께 마을에 공산군이 들이닥쳤고 문 전도사는 증도면 해안가에서 순교했다. 문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증도에 개관을 앞두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철원제일교회를 둘러보자. 1920년 강원도 철원권 관전리에 붉은 색 벽돌로 지어진 이 교회는 한때 강원 북부의 선교와 교육, 사회봉사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다. 교인수가 500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부흥했다. 1937년 지하1층, 지상3층의 멋진 돌 예배당도 새로 지었다. 그러나 지금 그 모습은 없다.

해방이 되면서 공산권의 점령으로 교회는 모진 수난을 당했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 병영으로 사용됐고 기도처였던 지하에서는 많은 반공주민과 기독인들이 학살됐다. 공산당의 아지트였던 이곳은 십자가가 걸린 교회였음에도 미군에 의해 폭격됐다. 지금은 전면 출입구 등 일부 잔해만 남아 있다. 근대 기독교정신의 뿌리가 살아있는 이곳은 현재 복원건축이 한창 진행 중이다.

홍천군 한서교회는 무궁화를 이 땅에 심어준 남궁억 선생의 정신을 그대로 모아놓은 곳이다. 남궁억 기념관, 옛 교회당, 넓은 무궁화 묘목장 등은 한국교회 민족운동의 현장을 보여주는 교육관이다.

‘섬안의 섬’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서는 초기 한국 기독교 역사를 만날 수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순수한 신앙과 전도 열정을 볼 수 있다. 1899년 복음을 접하고 교동도의 첫 교회인 교동교회가 세워졌다. 초가 한 채로 시작한 교회는 1970년대에 푸른색 양철 지붕으로 바꾼 것 외에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예배당 앞에 있는 종탑도 옛 모습 그대로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2.07.14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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