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의 영광을 보여준 청교도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5)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 

17세기 영국 청교도들은 어떠한 사람들인가 ?

청교도 운동의 전신은 종교개혁자들과 순교자들이었다. 교회사에 영광스러운 증인들이었던 그들의 믿음과 신앙적 절개와 불굴의 용기는 청교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청교도 (Puritan)란 1550년에서 1700년 사이에 성숙된 경건함과 무서운 핍박에도 올곧은 삶을 살았던 영적인 사람들을 지칭한다. 청교도들의 강조점은 성경말씀에 충실하기, 강해설교, 목회적 돌봄, 개인 경건과 생활 전반에 걸친 실제적인 거룩이었다. 그들은 성경에서 배우고 깨달은 모든 것을 실제 생활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면서 성경적인 개혁, 즉 실로 교회의 청결을 추구하였다.

또한 청교도들은 교리적으로 칼빈주의다. 그들은 ‘오직 성경으로’ 그리고 ‘오직 믿음으로’ 라는 종교개혁의 깃발과 더불어 새롭게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끊임없는 개선을 추구한 신앙인들이었다. 그들은 교회를 개혁하고 정화했으며 개혁주의 은혜 교리와 성경적이고도 경건한 삶으로 백성들을 인도하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은 국가교회에서 이탈한 국교 반대자 (Dissenter)인 비국교도 (Nonconformist)로서 순수한 교회를 추구하였다. 그들은 주교들이 강요한 영국 국교회의 예배 모범, 교회 정치, 교리 문제 등을 반대하고, 또한 모자나 성의 사용, 성호에 절하기, 세례시의 십자가 사용 등 예배 의식의 불필요한 형식 절차들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들은 국교회를 순화시키기를 원하고, 비성경적이고 부패한 형태로 부터의 차원 높은 순결과 개혁을 외쳐댔다. 그들은 세속사회와 육체적인 향락과 어려운 영적 싸움에서 맹렬하고 용감하게 싸웠던 십자가 군병들이었다.

결국 청교도들은 잉글랜드 국교회의 의식과 절차들을 따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국교회 자들로부터 극심한 모욕과 경멸과 처벌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1662년 통일령이 공포되면서 영국 국교회로부터 추방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교회를 혁신시키려고 최선을 다 기울였다. 이처럼 수 많은 핍박 가운데서도 철저히 성경에 근거한 건전한 신학과 바른 교회의 모습을 되찾고 시민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한 새로운 움직임이 곧 청교도 운동이다.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깊은 신학적 이해와 비전을 가졌던 사람들로서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합 2:14)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 채워지기 (시 72편, 사 64장)를 꿈꾸었던 사람들이다.

17세기 영국교회 영적 상태

종교개혁 이전에 잉글랜드는 로마 카톨릭이었다. 하지만 영국 교회와 로마의 교회를 분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던 영국의 헨리 8세 (Henry VIII)는 결국 로마와 결별하고 교황의 권위가 미치지 못하는 영국 국교회를 설립하였다. 1534년 헨리 8세는 새로운 교회인 영국 성공회 (The Church of England)를 만들어 본질적으로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신학을 따랐으며, 노골적으로 자신이 영국교회의 최고 우두머리는 왕 자신이라는 수장령 (Act of Supremacy)을 선포했다.

교황권의 횡포로부터 벗어나게 했던 종교개혁 이후에 교회는 이제 왕권의 폭력과 부딪히게 된다. 국가는 교회를 지배하려고 하는데 이것이 왕권신수설이다. 왕권신수설은 군주 (왕)가 국가뿐 아니라 교회까지 다스리는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 받았다는 것이다. 헨리 이후 1553년 개신교를 지지했던 에드워드 6세가 사망하고 로마 카톨릭주의 자였던 메리가 즉위했다. 피의 여왕 메리 (Bloody Mary)는 자신의 치세 기간 (1553-1558) 동안 로마 카톨릭 미사를 다시 시행하고 영국에서 전례가 없던 잔혹한 박해를 행함으로써 수 백명의 개신교 지도자들을 죽였다. 메리가 화형시킨 사람들의 수가 계산에 따라 다양하지만 약 283명이 순교를 당했다.

메리 이후 엘리자베스 여왕도 ‘교회의 머리가 왕’이라는 주장을 반포하면서 모든 세속적인 일이나, 영적인 문제 및 교회 문제까지도 최고 통치자가 바로 여왕 자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로써 잉글랜드 국교회 (The Church of England)는 1640년 까지 왕권 정부의 통제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1662년에 잉글랜드 국교회를 엄격하게 따르게 하는 법령이 통과되었다. 그 당시 잉글랜드는 단일사회로서 백성은 누구나 잉글랜드 국교회 (성공회)에 다녀야 했고 목사는 누구나 국교회 법에 순종할 것을 서약해야 했다. 당시 국교회에 나가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벌금형이 부과되었지만 청교도들은 신앙 양심상 정부의 요구에 응할 수 없었다. 1604년과 1609년 사이에 결국 국교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는 목회자 80여명이 파직되었다. 청교도들은 쉼 없는 박해와 방해를 당하였다. 왕권 복귀와 찰스 2세의 등극 이후로 상황은 여러 면에서 더 악화되었고 무서운 박해가 1688년 혁명기에 이를 때 까지 계속됐다.

청교도들은 국교의 방침에 따르지 않아 나라에서 쫓겨난 상황이었지만 잉글랜드가 국교회에서 개혁주의 개신교 국가로 옮겨 가도록 끝까지 싸웠다. 이 과정에서 역사상 엄청난 핍박과 박해가 일어났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휴 래티머 (Hugh Latimer),니콜라스 리들리 (Nicholas Ridley) 토마스 크래머 (Thomas Cranmer)가 옥스포드에서 화형 당하였다. 하지만 순교자들의 피가 영국 개신교 운동의 씨앗이 되었다.

청교도들의 회심이야기

청교도들이 핍박 가운데서도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원인은 회심에 기인한다. 회심이 그러한 열적적인 삶을 살게 하였다. 청교도들은 회심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시는 영적 체험에 큰 강조점을 두었다. 수 많은 청교도들의 회심 야기기가 있지만 그 가운데 몇 사람만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윌리엄 퍼킨스는 (William Perkins)는 학생일 때 강력한 회심을 체험하였다. 그후 그의 강력한 설교 사역을 통하여 위대한 청교도 설교자들이 많이 나왔다. 천로역정의 저자 존 번연 (John Bunyan)은 거짓말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모독하면서 젊은 시절을 보내었다. 그는 아내가 결혼 지참금으로 가져온 두 권의 책 “신앙훈련과 하늘에 이르는 쉬운 길”을 읽으면서 갑자기 자신의 죄와 종교적 각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6장 37절의 말씀을 읽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회심 후 번연은 하루에 두 번 이상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생활을 하였다. 존 오웬 (John Owen)은 “왜 두려워 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라고 하는 어느 설교자의 설교 말씀을 듣고 믿음의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토마스 굳윈 (Thomas Goodwin)은 20세 때 토머스 베인브리지 (의 개인 회개의 필요성에 대한 설교를 듣고서 회심하였다. 회심 후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다. 리처드 십스 (Richard Sibbes)는 복음 안에서 아버지라고 불렀던 폴 베인스 (Paul Baynes)의 설교를 통해 회심하였으며, 존 코튼 (John Cotton)은 십스의 설교를 통해 회심하게 되었다. 토머스 후커 (Thomas Hooker)는 성경의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다가 전적으로 회심하게 되었다. 회심한 이후, 후커는 설교와 교리문답 교육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특별히 후커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던 존 엘리엇 (John Eliot)은 목회 사역에 자신을 드릴 것을 결심했고 후에 북미 인디언들의 영혼 구원을 위해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엘리엇의 사역을 통해 14곳의 기도하는 인디안 마을이 새워졌고, 그 중 천명 백명 정도가 회심했다. 또한 탁월한 설교자 존 플라벨 (John Flavel)의 목회와 설교를 통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게 된다. 성령님이 플라벨의 설교에 복을 주었다.

이처럼 회심을 체험했던 청교도들은 복음을 설교하는데 탁월하였으며, 죄인을 일깨우며, 그로 하여금 회개와 믿음에 이르도록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해 애썼다. 그리고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대로 교육하는 일에 전력했다.

설교의 영광을 보여준 청교도 - “강단에서 진리의 불을 토해낸 불꽃같은 설교자”

청교도 목사들은 설교가 그들의 일차적인 소명이라고 믿고 설교 사역의 우위성을 견지하였다. 그들은 설교가 성례나 어떠한 의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며 교회 성패를 말씀사역에 달린 것으로 보았다. 청교도의 설교 방법은 먼저 본문을 정확히 해석하고 본문의 정확한 의미를 찾은 다음에는 그 본문 속에서 교리를 찾아내어 가르치고 마지막은 적용으로 나가고 그런 다음에 해답을 제시한다. 청교도들의 설교의 주제와 핵심 내용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고 강단의 영광은 그리스도를 굳게 붙드는 특권에 놓여 있다고 말한다. 청교도들은 설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여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설교라는 박스를 열어 재칠 때 성도들이 그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도록 하였다.

리차드 십스는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설교해서는 안된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들어야만 하고 목사는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것을 설교해야만 한다.”라고 말했다. 윌리엄 퍼킨스는 모든 설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 그분을 설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교도들은 새 시대의 기사나 이적이나 표적을 구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하기를 원했다.

또한 청교도 목사들은 모두 내일 다시 설교하리라고는 확실치 않으므로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설교했다. 그들의 설교의 특징은 강단에서의 복음 선포와 열정과 능력과 감동적인 표현인데 그것은 청교도 설교의 정수이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면서 복음에 대한 관점을 드러내고 성경의 진리를 밝히는데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목숨 걸고 설교한다. 항상 성령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선포하였다. 그래서 강단에서 설교할 때 익살스러운 말, 재미있는 이야기, 웃기는 말, 지적인 말들은 피하였고 대신에 시급성, 긴박성, 직선적으로 설교하였다. 왜냐하면 지금 청중들은 삶과 죽음,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청교도들의 가장 큰 소망은 죄인들을 그리스도께로 회심시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청교도들의 설교를 통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고 양육을 받았다. 청교도들은 설교의 영광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청교도 시대에 말씀으로 인한 부흥 (revival)

청교도들은 설교자 또는 목회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힘껏 강해하고 적용하는 것을 믿은 자들이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에 생기를 불어 넣고 죽은 영혼들에게 새 생명을 일으키는 역사를 하셨다. 청교도들은 교회의 성패를 말씀 사역에 달린 것으로 보았고 기본적으로 메마른 땅을 기경하는 것을 믿었다. 청교도들은 설교와 교리 교육에 뛰어났다. 그들은 영국에 있는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기를 간절히 원하였으며 모든 강력한 각성 사역을 통해 많은 영혼을 수확하게 되었다.

성경적인 교리로 잘못된 로마교회를 비판하는 청교도들의 설교는 런던에 활력을 불어 넣어 주었다. 1580년대와 90년대에 헨리 스미스의 설교사역을 통하여 성 클래멘트 단스 교회에서 일어난 현상이다. ‘그의 교회는 청중들로 가득 찼다. 학식있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의자를 들고 와 통로에 서서 설교를 들었다. 그들의 귀는 그의 입술을 주시하였고, 그들의 심령은 그들의 귀를 바싹 기울이게 만들었다.’ 이때 수 많은 사람들이 말씀 듣고 회개하게 되었다.

또한 대드함 (Dedham)의 존 로저스 (John Rogers)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회심하였다. 당시에 로저스는 영혼을 일깨우는 가장 영적인 설교자의 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로저스는 어느 날 자신의 설교를 들으러 온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당신들에게 유익할 것이 없소. 그렇다면 지금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라고 설교하였다. 이때 자일스 퍼민 (Giles Firmin)은 로저스 설교의 첫 마디 메시지에 마음이 붙잡혀 회심하였는데 나중에 유명한 청교도 목사가 되었다.

또한 존 로저스 (John Rogers)는 청중들에게 성경을 소홀히 하는 것에 질타했다. 그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입장으로 말했다. “그래 나는 너희에게 오랫동안 나의 성경을 맡겼다. 그런데 그 성경이 아무아무 집들에서 먼지와 거미줄에 완전히 덮혀 있다. 너희는 성경을 듣는 것에 관심이 없다. 너희가 내 성경을 그렇게 사용하느냐? 좋다. 너는 내 성경을 더 이상 소유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의자에서 성경을 집어 들고 마치 그것을 그들에게서 가져가 버리는 것 같이 보이게 했다. 그러나 곧 그는 역을 바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역할을 취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극히 진지하게 소리 지르며 간청했다. “주여, 우리에게 무엇을 행하셔도 좋지만 당신의 성경을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지 마소서. 우리 자녀를 죽이시고 우리 집을 불태우시고 우리 재산을 멸하소서. 그러나 우리에게서 당신의 성경만은 남겨두시고 당신의 성경은 가져가지 마소서.” 이 설교로 인해서 토마스 굿윈과 존 하우이가 크게 감동을 받았으며, 그날 교회에 가득한 사람들이 눈물에 젖었고 굿윈 자신도 눈물을 흘렸으며, 많은 사람들이 비범한 영감을 받았으며 성경에 대한 태만을 고치는 변화가 일어났다. 청교도들은 인간의 변화, 새사람이 되는 길은 그리스도의 말씀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믿었다.

짐 패커 (Jim Packer)는 18세기 조지 휫필드 스타일의 극적인 부흥은 아니었지만 청교도를 하나의 부흥운동으로 보았다. 청교도들은 말씀과 성경 교리로 백성들의 심령을 일깨웠다. 이것이 영적 부흥이다.

청교도들의 강단 목회

청교도들의 강단 목회는 상한 심령을 치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청교도는 성경에 기초한 상담자였다. 그들은 최고의 상담은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고 해석되고 적용될 때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하였다. 청교도들은 성경이 강단에서 설교되어지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강단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의 심령 속에 새겨져서 그들의 가정과 삶의 현장에서 적용되어지기를 원했다. 청교도들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명한 설교자들이 아니다. 우리의 절실한 필요는 더욱 경건하고, 잘 교육 받고 회중들과 함께 주둔하여 양무리들을 돌보고 치는 목회자들이다” 라고 말한다.

설교자는 자기 백성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설교가 성도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남아있게 해서는 아니 된다. 성도들은 굶주린 백성들이다. 존 플라벨 목사는 ‘목회의 수고는 뼈를 말리는 작업이다. 빨리 늙게 하고 죽음에 이르는 일이다’ 라고 탄식하였다. 얼마나 많은 진리를 연구해야 하는지! 청교도 목사들은 자신의 성경을 샅샅이 뒤졌다.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상처받은 심령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상한 갈대의 저자 리차드 십스 목사는 ‘사람을 죄로 부터 은혜로 인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심령을 소유한 것이 인간인데 그들을 죄로부터 은혜로, 은혜에서 영광으로 인도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라고 말했다.

청교도들은 상한 심령을 치유하시는 그리스도를 항상 생각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신 것처럼 강단에서 사랑으로 양들을 돌아보아 상한 심령을 치유하려고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였다. 이것이 청교도들의 강단 목회이다.

청교도들의 신학과 주요 교리

청교도들은 기독교 주요 교리인 칭의, 원죄, 동정녀 탄생, 대속의 죽음과 부활 등을 붙잡고 있었으며, 인간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은혜와 신자의 삶 속에 작용하는 성령의 역사를 크게 강조하였다. 또한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균형 잡힌 교리를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알미니우스주의 (Arminiannism)의 오류를 막고, 또 다른 편으로는 초 칼빈주의 (Hyper-Calvinism)의 오류를 막았다. 청교도들의 칼빈주의는 균형이 잡힌 복음주의이며, 구원에 있어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균형 잡힌 교리를 붙잡고 있다. 청교도들은 교리와 경험과 실천에 있어 진리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임으로써 성경의 진리들을 매우 균형있게 제시한다. 청교도들에게 신학과 교리는 생명이었다.

청교도 예배와 주일성수

청교도들은 가톨릭과 성공회 예배에서 발견되는 허례 허식에 질린 나머지, 예배에서 여러 가지 잡다함을 제거하고 거룩한 교훈으로 줄여 말할 수 있는 예배의 본질에 초점을 두었다. 청교도 예배는 의식들과 요란한 제의 (祭衣)를 과감히 없애 버림으로써 소박하다는 인상을 주었으며, 가톨릭과 성공회의 예배와 비교할 때, 한마디로 반(反)의식적이라고 평할 수 있다. 성공회 대주교인 밴크로프트는 “의식이 없는 곳에 종교가 없다”고 말했으나, 청교도 목사인 리처드 그린햄 (Richard Greenham)은 “의식이 극성을 부릴수록 진리는 줄어 든다”고 말하였다. 청교도들은 단순 반복으로 말미암아 예배가 신선함을 잃고 일상사로 전락하지 않도록 노력하였으며, 방만하고 위선적인 예배는 질색이었다.

또한 청교도들은 주일 공적 예배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했다. 그들은 주일에는 오락이나 장사, 자신을 위한 그 어떤 행위도 배격하고 주일 전체를 예배와 교제 및 선행하는 일에 아낌없이 바친 엄격한 주일성수 사상을 고집하였다. 그 당시 영국교회는 예배 후에는 음탕한 연극과 주사위 놀음, 카드놀이, 노래, 춤, 볼링, 테니스, 매 사냥, 여우 사냥, 온갖 오락 등을 즐겼으며 주일에도 장이 섰다. 이 같은 현실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청교도들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것이었다. 청교도들은 주일예배에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강하게 나타나며 주일은 모든 신앙생활의 활력을 얻는 날이라고 믿었다. 데이비드 클락슨은 “주님께서 공적 예배에 의해 더 많은 영광을 받으신다.” “공적예배에는 주님의 임재가 더 많다.” 라고 주장했다. 청교도들은 특별히 주의 날을 아주 기뻐하였다.

청교도들의 타협하지 않는 순수한 영성과 거룩한 삶

영성의 핵심 부분은 복음이다. 복음은 영성의 뿌리요 핵심이다. 청교도들의 영성의 핵심은 복음, 설교, 예수 그리스도, 지속적인 기도생활, 말씀, 성령, 보혈의 능력, 피 묻은 십자가 자랑, 거룩함,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 교회를 영광스럽게 하는 삶이었다. 또한 그들은 영적 지탱과 삶의 개혁을 위한 인도의 최고의 원천으로서 성경을 의지하였고, 인간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은혜와 신자의 삶 속에 작용하는 성령의 역사를 크게 강조하였으며, 영국 국교회 안에서 조장된 전례 중심의 카톨릭 영성을 크게 기피했다.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애썼다. 그들은 성경을 읽었고, 설교하였고 성경대로 살았다.

또한 청교도의 가치와 신앙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며 사는 것이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경험하는데 강조점을 두었다. 그들은 양심과 가족과 일터에서와 그들의 전체 삶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목적을 추구하며 살았다.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경건과 거룩한 삶에 있어서 남달랐다. 어떤 은사나 특별한 체험보다는 항상 마음과 삶의 청결 (purity)을 추구하였으며 성화 곧 거룩함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내재하는 죄를 크게 부각시켰다.

또한 그들은 고난을 견뎠으며 신앙의 자유를 찾아 숱한 난관의 길을 걸었고 영원을 향해 살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락보다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옳지 않은 것을 거부하고 바른 것을 찾아 살고자 하는 면에서 타협을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더 귀중하고 큰 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훌륭하게 누릴 수 있었던 사회적 지위나 재산, 안정된 생활, 심지어 가족까지도 다 포기했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는 삶을 살았다.

청교도들은 세상의 것들에 매여서 무릎 꿇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의 자세로 꿋꿋이 서서 죽기를 원했다. 17세기 영국교회가 어려운 위기에 처해있을 때 영국의 교회에서 혜성처럼 빛을 발하던 진리의 투사였던 청교도들의 삶은 매우 감동적이다. 순수하고 거룩한 신앙인의 길을 걸으면서 타협 없는 순수한 영성을 지닌 청교도들은 우리들의 영적 모델이요 영적 멘토가 되기에 충분하다.

영적 거인들인 청교도들의 인물과 그의 저서들

청교도들은 탁월한 설교자요, 영혼들을 사랑하는 참 목회자들이다. 그리고 치유와 상담에 뛰어난 자요, 성경교사요, 교리문답자요, 복음전도자요, 진리에 대한 거룩한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동적이었으며, 전인격적이며, 실제적이며, 성경적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진리의 영적 거인들이다. 피터 루이스는 ‘청교도는 신 구약 성경 밖에서 찾아질 수 있는 유일한 성경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필자 역시 사도들 다음으로 위대한 사람들이 청교도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역사상 가장 거룩하고 위대한 모범된 신앙의 삶을 보여 주었던 청교도들은 이 세상의 성자들이요, 하나님의 영적 거인들이다.

또한 청교도들은 핍박 중에서도 위대한 작품들을 많이 저술하였는데 지면 관계상 번역도서 중 일부만 소개한다. 윌리암 퍼킨스 (설교의 기술과 목사의 소명), 존 번연(천로역정, 경외함의 진수, 상한 심령으로 서라, 내게로 오라 ), 토마스 왓슨(신학의 체계, 경건을 열망하라, 회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제임스 뷰캐넌 (칭의 교리의 진수, 성령의 사역), 존 프레스톤 (황금홀), 스티븐 차녹 (당신의 거듭남, 확실합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 1,2), 윌리엄 에임스 (신학의 정수),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영적 사고 방식, 참된 믿음의 특성과 능력), 토마스 굿윈 (어둠 속을 걷는 빛의 자녀들, 그리스도인의 성장), 리차드 십스 (꺼져가는 심지와 상한 갈대의 회복, 돌아오는 배역자, 영광의 부르심), 리처드 박스터 (참 목자상, 천국을 준비했는가, 회개했는가), 존 플라벨 (마음, 참된 성도의 마음 ; 섭리의 신비), 메튜헨리 (메튜헨리의 기도), 토마스 부룩스 (확신, 지상에서 누리는 천국), 매튜 미드(유사 그리스도인), 오바댜 세즈윅 (은밀한 죄와 거룩), 제레미야 버러스 (예배의 타겟을 복음에 맞추어라, 세속주의를 경계하라), 데이비드 클락슨 (살아 역사하는 믿음, 구원얻는 믿음), 토마스 맨턴 (시험당하신 그리스도), 토마스 후커 (그리스도께로 이끌린 사람들), 조셉 얼라인 (돌이켜 회개하라), 아이작 암브로스 (예수를 바라보라 1,2) 등 이외에도 많은 청교도 인물들과 작품이 있다.

주님 때문에 잔인한 박해를 받았던 청교도들 - “1662년 대추방 (The Great Ejection)”

청교도들은 어느 때 어떤 시기를 막론하고 학대와 핍박의 대상이었다. 청교도 지도자들은 감옥에 들랑거리기를 밥 먹듯이 하였고, 재산 압류 처분을 받았으며, 목사 직위를 박탈 당하고 귀를 베거나 처형당하기도 하였다.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재위 기간에 청교도들은 더 이상 영국에 남아 있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결국 102명의 청교도들은 1620년 9월 신앙의 자유를 찾아 메이 플라워 호 (Mayflower)를 타고 플리머스를 떠나 미국 신대륙을 향해 출항하였다.

그 후 모든 교회는 잉글랜드의 국교회에 맞추어야 한다는 ‘기도방식 통일법령’이 통과되었다. 영국의 우상인 기도서에 반대한 청교도들 약 2,000명이 1662년에 국교회에서 추방되었다. 이것이 1662년 대추방 사건이다. 추방된 사람들은 설교를 할 수 없었고 여러 가지 가혹하고 교묘한 형벌이 뒤따랐다. 국왕은 약 25년 동안 청교도들에게 많은 핍박을 행하였다. 국교회 반대자들에 대한 핍박은 무자비하게 철저한 것이었다. 1662년부터 잉글랜드의 청교도들이 쇠퇴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그들의 영향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는 격언은 청교도들에게 맞는 말이다. 청교도들은 세상의 것들에 매여서 무릎 꿇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바른 믿음의 자세로 꿋꿋이 서서 죽기를 원했다. 17세기 영국교회가 어려운 위기에 처해있을 때 영국의 교회에서 혜성처럼 빛을 발하던 진리의 투사였던 청교도들의 삶은 매우 감동적이다. 순수한 청교도들은 우리들의 영적 모델이요 영적 멘토가 되기에 충분하다. 타협을 용납할 수 없었던 청교도들의 순수한 신앙이다.

청교도들의 영향력

결국 1689년 영광스러운 명예혁명으로 청교도들이 승리를 획득한다. 대략 1550-1700년 사이에 영국에서 번성했던 이 청교도 운동은 교회 개혁 운동으로서만이 아니라 문학적 (존 번연, 존 밀턴 등), 정치적 (올리버 크롬웰 등), 지리적, 교역적, 사회적 분야들에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엘리자베스 시대에 그들은 왕국의 모든 조직과 부서의 신하들과 거리에 있던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청교도들의 영향력으로 인해 18세기 영국과 미국에서 칼빈주의적 영적부흥 운동이 일어나 청교도주의가 크게 활기를 띠게 되었다. 청교도 영향력은 적어도 2세기를 이어주고 있다. 청교도들이 개신교에 끼친 영향력은 크고, 청교도 신학과 헌신의 유산은 비범한 설교자들과 지도자들을 낳았다. 스펄전과 로이드존스는 청교도들의 후계자로 불리운다.

청교도들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 “설교의 영광과 개혁주의 영성 회복”

1. 청교도들은 설교의 권위와 강단의 영광을 붙잡았던 위대한 설교자이다.

청교도들은 설교의 권위와 강단의 영광을 붙잡고 있었고 강단에서 목숨을 다해 외쳤던 열정적이고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다. 청교도의 중요성은 우리에게 교회의 회복을 위해서 강단 사역의 회복이 절심함을 가르쳐 준다는 사실이다. 청교도들은 설교의 권위와 강단의 영광을 붙잡고 있었고 강단에서 목숨을 다해 외쳤던 열정적이고 위대한 설교자들이다. 청교도들의 능력있는 성경적 설교는 강력한 영향을 미쳤고, 청교도가 죽은 이후에도 수 많은 설교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부흥은 성령충만한 설교자들을 통하여 임하는 것이다.

존 라일은 “교회의 전성기는 언제나 설교가 귀중히 여김을 받았던 때이다. 교회의 암흑 시대에는 설교가 경시되었다”라고 말했다. 청교도들은 살아서 죽어가고 있는 교회들을 향하여 여전히 생명의 빛을 비추이고 있는 위대한 설교자이다. 그들은 시대를 이끄는 진리의 설교자들이요 영혼의 갈등을 말씀으로 풀어주면서 심령을 치유하는 영적 의사였다.

2. 청교도들은 항상 예수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청교도들은 그리스도를 사랑했고,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었고, 그리스도만을 굳게 붙들었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전하기를 원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글을 남겼다. 그들에게 성경 66권의 장과 절은 어린 예수의 강보와 같은 것이다. 청교도 신학자인 토마스 굿윈은 “만일 그리스도가 없다면 천국은 내게 지옥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를 더 알고 그분을 더욱 깊이 알기를 원한다면 청교도들의 작품을 읽어야 할 것이다. 청교도들은 회심 이후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모든 삶으로 보여준 것이다.

3. 청교도들은 성경에 마음을 흠뻑 적시었고 성경적인 삶을 살았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심장이자 핵인 성경에 최고의 권위를 두었던 살아있는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며 성경의 확실성에 관하여 전혀 의심하지 않았고, 성경의 영감과 권위와 무오성에 대하여 확고하였다. 이처럼 성경의 권위를 확실하게 붙잡았던 청교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였고, 성경을 읽었고, 성경 말씀을 묵상했고, 성경으로 호흡했고, 성경대로 살았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66권의 성경 말씀과 함께 성령님의 능력을 맛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려고 애썼다. 뿐만 아니라 청교도들은 설교의 우위성을 철저히 견지하면서 설교의 효과적인 기반이 되는 기도와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성경을 자신들의 영적 지탱과 삶의 개혁을 위한 최고의 원천으로 삼았다.

4. 청교도들의 참된 영성은 신학과 교리, 신앙과 실천적인 삶과의 균형이다.

청교도들의 영성은 예수 그리스도, 성경의 권위, 말씀 묵상, 거룩, 회심의 중요성, 칭의, 내재하는 죄에 대한 영적투쟁, 성경적 복음 전도, 예배와 주일성수, 순수한 교회 개혁, 하나님 갈망, 천국을 향한 영광의 소망 등을 강조했다. 시대가 변해도 결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신학과 교리와 신앙이다. 청교도들은 이 신학과 교리와 신앙을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실천적인 삶을 살면서 완벽히 균형을 이루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학과 교리가 부재하는 그 자리에 비성경적이고 신비한 영성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있다. 또한 신앙고백에 따른 실천적인 삶의 불균형으로 인해 교회는 갈수록 침체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러한 때에 청교도들의 참된 영성, 즉 개혁주의 영성의 길을 우리들도 시급히 따라야 할 것이다.

5. 청교도들은 시련과 박해를 통해 이 세상보다는 천국을 더욱 사모하였다.

청교도들은 많은 고만과 박해를 잘 견디었다. 그들은 주님의 시련의 막대기가 그들 자신을 겸손케 하고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게 하는 수단이 되었다. 더 나아가 청교도들은 고난을 통해 순례자로서 이 세상을 굳게 붙들지 않고 저 영원한 천국을 향해 믿음으로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그래서 숱한 시련들을 경험했던 청교도들의 작품들은 우리로 하여금 죄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고, 우리를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께 나아오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목회자들에게 있어 고난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교인들의 모습이 곧 나의 모습임을 깨닫게 해 주며, 이 전에 내가 좀처럼 깨닫지 못했던 은밀한 죄까지 깨닫게 한다. 그리고 저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모하게 해 준다.

또 다른 부흥을 갈망하며

오늘날 영국이나 유럽교회들은 모두 다 영적 침체기를 맞이하면서 깊은 영적인 잠에 빠져 멸망되어 가는 것처럼 보여 지고 있다. 지난 세기 청교도의 신학과 신앙의 영향을 받아 건강하게 성장하였던 한국교회 역시 영적 쇠퇴기를 맞아 점점 침체해져 가고 있다. 이처럼 교회가 쇠퇴한 이유 중에는 강단의 영광이 쇠퇴하고 설교의 권위가 하락되었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말씀과 성령이 약화되고, 개혁주의 영성이 쇠퇴하고 비성경적이며 신비한 영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이때에 슬프게도 한국교회는 모든 면에서 개혁과 참된 부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참된 부흥을 갈망한다면 청교도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먼저 설교의 영광과 권위가 회복되어야 하고, 더 나아가 청교도의 신학과 교리, 신앙과 개혁주의 영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 혼탁한 시대를 생각할 때 마다 청교도들 처럼 강단에서 목숨을 다해 복음을 선포하는 열정적인 설교자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왜 오늘날 청교도들처럼 하늘로부터 진리의 불을 당겨와 생명력있게 전하는 설교자를 찾기가 힘든가? 왜 청교도들이 그렇게 목숨 걸고 강조했던 주일성수가 회복되지 않고 있는가? 왜 오늘날 설교자들은 강단에서의 설교의 영광을 보여주지 못하는가? 왜 설교의 권위와 강단의 영광보다는 프로그램이나 다른 무엇에 더 많은 권위를 두고 있는가? 왜 강력한 청교도 설교가 리바이벌되지 않는가? 왜 오늘날 청교도들의 탁월한 신앙과 참된 영성이 리바이벌되지 않는가?

잊혀져가는 17세기 하나님의 영적 거인 청교도들을 재강조함으로써 조국교회 부흥과 유럽교회 부흥 그리고 유럽 성시화를 꿈꾸어 본다.


*김현배 목사/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1.28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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