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에 불붙은 설교자 하웰 해리스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0)  

뉴스파워 

18세기 웨일즈의 영적상황

18 세기 초반에 있었던 웨일즈의 도덕적, 영적인 상황은 잉글랜드보다도 더 나빴다. 가난한 자들은 삶의 수준이 매우 낮은 무지와 악행 가운데서 살아 갔으며, 평신도와 성직자들은 술취함과 방탕이 만연되어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이 부도덕한 상태에 있었으며 영적으로 무지한 상태로 죽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대체로 웨일즈는 로마 카톨릭주의를 벗어버리는 데 있어서도 잉글랜드보다 100년이 뒤졌다. 웨일즈에는 몰간 뤼드(Morgan Llwyd), 월터 크래덕(Walter Craddock), 베베서 포웰(Vavasor Powell)이나 그밖에 다른 사람들과 같은 위대한 청교도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에 있었다. 또한 비국교도들 즉 독립파 사람들과 침례교도들도 있었으나 수에 있어서 매우 적었다. 그것이 그 당시의 교회 영적 상태였다

성찬식을 통한 해리스의 회심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대인 18세기 초에 갑자기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났는데, 이 부흥에 있어서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하웰 해리스 (1714-1773)이다. 그는 1714년 1월에 트레베카 (Trevecca) 라고 불리우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교육을 아주 조금 밖에 받지 못했으나 학교 선생이 되었다. 당시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이 그런 것처럼 해리스에게도 삶에 극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그가 1735년 3월 탈가트에 있는 교구교회에 참석하였을 때 그 교구 목사는 다음 주일에 거행할 성찬에 대하여 광고하였다. 그는 합당하지 못한 사람은 성찬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만일 여러분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합당치 못하다면 기도하기에도 합당치 못할 것이고, 살기에도 합당치 못할 것이고, 살기에도 합당치 못하다면 죽기에도 합당치 못할 것입니다."

교구목사의 광고가 해리스에 큰 충격을 주었고 그의 잠자는 영혼을 깨웠다. 그는 결코 방탕한 사람은 아니었으나 태만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때 해리스는 교구 목사의 말에 강한 도전을 받았고 그의 나태한 심령을 깨우치는 음성으로 들려지게 되었다.

그는 다음 주일 성찬식 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드리는 중에 죄 의식을 깨닫고 회개의 고뇌에 빠졌다. 이와 같은 죄에 대한 고뇌는 한 달 이상 그를 괴롭혔다. 그런 죄의식은 5월 25일 성령강림주일 성찬식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마귀와 엄청난 싸움을 벌이며 투쟁했다. 마귀는 해리스의 믿음을 흔들어 놓으려고 거세게 달려들었지만 이 투쟁에서 결국 해리스는 자신의 죄 용서의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성찬식 때,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내 눈 앞에 서 계신 것 같았다. 능력이 내게 주어져서 그 피로 말미암아 용서를 받았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나는 나의 짐을 벗었다. 나는 기뻐 뛰면서 집으로 가서 슬퍼하는 내 이웃에게 말했다. 그대는 왜 슬퍼합니까? 내 죄가 용서 받았음을 나는 압니다. 오 복된 날이여! 언제나 그것을 기억하고 더욱 더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하웰 해리스의 놀라운 회심 사건이다. 그는 1735년에 회심하였다.

하웰 해리스의 성령체험

그가 탈가트(Talgarth)에 있는 교회에서 받았던 죄 사함의 체험은 의심할 여지없이 행복했고 기쁨으로 춤을 추게 하였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무언가 더 필요한 것을 원하는 무한한 갈증이 남아 있었다. 그는 랭가스티 교회의 종탑 안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렸다. 그때 그는 이전의 모든 체험들을 무색하게 할 만한 엄청난 체험을 한 것이다. 회심 후 해리스는 또 다른 체험을 했다.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 “청교도 신앙”에서 해리스의 성령체험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갑자기 내 마음이 불 앞의 초같이 녹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내 구주를 주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나는 사랑과 평안을 느꼈을 뿐 아니라 죽어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싶은 간절한 열망을 느꼈다. 그리고 내 영혼 속에서 전에는 전혀 알지 못했던 ‘아바, 아버지’ 라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부르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의 자녀라는 것을 알았으며, 그가 나를 사랑하시고 내 말을 들으신다는 것을 알았다. 내 마음은 만족하여 울부 짖었다. 이제 나는 만족하다고 ! 제게 능력을 주십시오. 그러면 물 불을 가리지 않고 주를 따라 가겠나이다 라고 외쳤다.” 이것이 해리스가 위대한 성령의 나타남을 체험했던 사건이다.

이와 같은 영적인 체험 이후 부터 해리스는 복음에 불타는 전도자가 되기 시작하였고, 능력있는 설교자로 쓰임받게 되었다. 그는 불신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향한 연민의 정을 느끼기 시작했고, 죄 가운데 빠진 모든 사람들에게 대한 슬픔을 느꼈으며, 구령의 열정에 불이 붙었다. 부흥운동의 지도자들인 요한웨슬리, 조지휫필드, 조나단 에드워즈, 하웰 해리스 등은 모두 이와 같은 특별한 영적체험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이 체험 사건은 부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해리스의 능력있는 설교와 웨일즈 부흥

부흥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하심이요, 때와 장소와 인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이다. 웨일즈의 위대한 부흥은 성 바울 대성당이나 런던의 대도시가 아니라 아주 작은 마을 트레베카에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장소와 때이다. 성령체험 후 해리스는 노천에 몰려든 수 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다. 해리스는 하루에 몇 번을 설교할 정도로 바쁘고 열정적으로 순회하며 설교하였다. 그는 본문을 미리 정하지도, 원고를 준비하지도 않았지만 성령이 이끄시는 설교를 사자의 포효처럼 토했다. 해리스의 메시지 방식은 조지휘필드 처럼 철저하게 준비된 설교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감동 속에 영감의 메시지를 전했다. 성령께서 주시는 대로 전한 것이며, 역동적이고 성령 안에서의 자유가 있는 설교였다. 

웨슬리 형제와 휫필드 처럼 하웰 해리스 설교의 중심은 부패한 인간의 마음과 복음이었다. 해리스는 설교 중에 죄를 강력하게 지적하였다. 그 설교는 지금까지 국교회의 판에 박힌 듯한 건성의 설교에 무감각해졌던 수많은 영혼들에게 천국의 생기를 불어넣기에 족했다.

그의 설교를 듣던 어떤 사람은 '하웰 해리스는 마치 지옥에 갔다와 본 것 처럼 설교했다' 라고 한다. 마치 번갯불처럼 청중의 양심에 생생하게 불을 내뿜자 그들은 심판의 날이 닥쳐온 것처럼 두려워했다. 말씀의 영향력이 너무도 강력해서 아무리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도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하웰 해리스 또한 휫필드 처럼 그가 설교 할 때 성령의 강력한 불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가 메시지를 외치는 곳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해리스 자신의 표현을 빌린다면 “주께서 능력으로 임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웅변이나 연설의 재능이 아닌 설교 중에 나타는 권위(authority)이다. 그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기술했다. “이제 너무나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모여서 우리가 모이는 집 들로는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없었다. 말씀을 전할 때 큰 능력이 함께 임하여 그곳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울부짖었다.” 해리스의 설교를 들은 수 많은 청중들이 깊은 죄를 드러내며 각성하고, 회심하게 되었다. 이때 암흑의 땅이었던 웨일즈에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부흥이 일어나면 각 도시마다 성시화가 이루어진다. 웨일즈가 건강한 도시로 변한다. 웨일즈 부흥 이야기는 하웰 해리스의 회심과 설교로부터 시작된다. 18세기에 있었던 영적 부흥은 웨일즈를 변화시켰다. 그는 영국 부흥시기 때 최초로 하나님의 구속을 전한 순회 설교자요, 웨일즈 부흥의 불을 지핀 설교자이다. 그는 39년 동안 설교하였다.

트레페카 대학 (Trifecca a College) 설립

해리스는 선교의 비전이 있는 헌팅돈 백작부인과 함께 다른 이들의 도움을 얻어 트리페카에 설교자들을 훈련시키고 목회자들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을 세우게 된다. 1768년에 그 대학이 설립되어 개교예배 때 조지 휫필드가 설교했고 그 후 존 웨슬리와 다니엘 로우랜드와 다른 사람들이 설교했다. 해리스의 목회 사역으로 인해 신도들의 숫자는 크게 늘어났지만 그는 많은 사역들로 인해 너무 기진하고 지치고 피곤했다. 하웰 해리스 사역의 전성기는 그가 회심 후 젊었을 때 이루어졌고 인생 후반기에는 다소 조용한 사역들을 이어갔다.

하웰 해리스는 천부적으로 매우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뛰어난 기획자였고 순발력이 있었다. 어떤 전공을 택해도 성공했을 사람이다. 그의 독특하고 강한 캐릭터 (character)는 그를 자연스러운 리더로 만들었다. 이 모든 점들은 하웰 해리스로 하여금 교단을 만들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하였는데 결국 그를 통하여 위대한 웨일즈 칼빈주의 메서디스트 교파가 형성되었다. 그의 칼빈주의 메소디스트 운동은 웨슬리 형제의 그것보다 4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그의 착한 성품 때문에 사역 초창기 때 '화평자 (peacemaker)' 의 사역을 하였다. 교리적인 문제로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가 긴장 속에 있을 때 온화한 성품으로 늘 화평자의 역할을 중간에서 하였다. 하웰 해리스는 다니엘 로랜드(Daniel Rowland)나 조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만큼 뛰어난 설교자는 아니었지만 권고하며 격려자로서는 이 둘보다 뛰어났다.

하웰 해리스의 죽음 - “웨일즈 부흥의 새벽별”

전성기 때 쏟은 열정 덕분에 그의 건강은 많이 쇠하게 되었다. 웨일즈의 칠흑 같은 영적 암흑을 깨우라는 소명의 음성을 듣게 되면서 부터 그는 평신도의 신분으로, 죽음이 그를 쉬게 할 때까지 불꽃의 삶을 살게 됩니다. 1773년 7월 21일 59세 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의 장례는 2만 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며 수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뒤범벅이 되었다.

18세기 부흥의 주역을 말할 때 잉글랜드에 3인방인 휫필드와 웨슬리 형제가 있었다면 웨일즈에서는 하웰 해리스, 다니엘 로랜드와 윌리암 윌리암스가 있었다. 해리스의 노천 설교는 조지 휫필드의 그것보다 역시 4년이나 빠른 것이었다. 훗날 교회사가들은 하웰 해리스가 웨슬리 형제와 휫필드의 선구적 모델이었다고 평가한다. 웨일즈에 일어난 영적 부흥은 그 어느 누구보다도 하웰 해리스의 영향 덕분이다. 이 강력한 부흥사는 웨일즈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었다. 그가 죽은 다음에도 부흥의 불은 계속 이어졌다. 한 민족을 살리기 위해 그가 사용되었다.

하웰 해리스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을 웨일즈 부흥 전문가인 에피온 에반스(Eifion Evans) 박사는 다음과 같이 설명 한다: “그를 사로잡아 웨일즈를 쉼 없이 돌아다니며 복음화하게 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이다. 그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불타고 있었다. 이 불이 웨일즈 사람들을 그리스도로 향하게 했다. 하웰 해리스 자신과 그의 삶을 사로잡은 것은 하나님을 향한 열심, 목마름 그리고 거룩한 열정이다.” 그는 위대한 부흥의 ‘새벽별’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회 설교자였다.

또 다른 부흥을 소망하며

지금 우리는 부흥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나약하고 병든 상태에 있으며 영적으로 매우 메마른 상태이다. 이제 부흥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기 위해 우리들에게 겸손함과 하나님을 향한 열정, 부흥에 대한 목마름, 거룩함, 성령으로 불타는 심령이 필요하다. 우리는 초대교회 처럼 모든 교회위에 내려와 부어질 성령을 사모해야 한다. 교회가 기다릴 때에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교회 위에 부어주신다. 성령의 부으심이 없이는 능력있는 설교자가 될 수 없다. 영적 부흥도 기대할 수 없다. 종교개혁과 부흥의 때는 성령으로 충만했던 설교자들이 많았다.

지금 이 시대에 해리스 같은 성령의 불을 체험한 설교자들이 나와야 한다. 우리들은 해리스 같은 성령으로 충만한 설교자, 성령에 불붙은 설교자가 필요하다. 성령을 체험한 불 같은 설교자를 통하여 갈망하는 부흥은 시작될 것이다. 해리스는 부흥의 불을 지핀 열정적인 설교자이다. 해리스와 같은 성령으로 충만한 설교자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성령충만한 설교자를 통하여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서 예수 한국이 되고 예수 유럽이 되고 예수 열방이 되기를 갈망한다.

*김현배 목사/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3.27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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