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 사역자 토마스 찰스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3)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


토마스 찰스의 회심

토마스 찰스 (Thomas Charles, 1755-1814)는 1755년 10월 14일 남 웨일즈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에도 찰스는 신앙적으로 자랐지만 1773년이 되어서야 다니엘 로우랜드(Daniel Rowland) 의 설교를 들으면서 회심하였다. 그의 가슴 가운데 복음이 확실히 새겨진 후 그는 영국 국교회에서 사역을 하기 위한 첫 발걸음으로 대학의 길을 선택하였다. 찰스는 1775년부터 177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 지저스(Jesus) 칼리지에서 공부하였다. 이 시기에 그는 지적 능력을 연마하였으며 존 뉴톤 (John Newton) 과 윌리엄 로메인 (William Romaine) 같이 당시 영국의 복음주의 지도자들과 인연을 쌓게 되었다.

발라 (Bala) 에서의 사역과 열매

대학을 졸업한 후 토마스 찰스는 남 잉글랜드 서머세트 (Somerset) 에 있는 두 교회에서 5년을 사역하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5년 동안 수많은 고난과 훈련의 시간을 겪게 하였다. 인정이 없는 담임목사, 마을 사람들의 적대감, 충분하지 않은 사례비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은 그로 하여금 고난과 연단만이 주의 종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인내와 기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이 훈련의 과정은 나중 그의 사역에 큰 도움이 되었다.

1788년 28세의 찰스는 젊고, 경건한 삶을 살고 있는 사라 존스 (Sarah Jones) 와 결혼하면서 잉글랜드를 떠나 발라 (Bala) 에 정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북 웨일즈 발라는 사탄이 오랫동안 진치고 있는 거칠고 가망이 없는 강팍한 땅이며 많은 부분 여전히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찰스는 영국 국교회에서 순회하며 설교를 얼마 동안 하였지만 그의 복음적인 설교는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그는 결국 감리교 교회로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순회 목사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세워가는 웨일즈 감리교에서 토마스 찰스는 계속 순회 설교를 다니기 시작하였고 1784년 가을 그의 설교 사역 가운데 곧 많은 열매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1785년 4월에 "나는 북 웨일즈 에서 3주 동안 순회 설교를 하고 돌아왔다. 이 곳은 모든 밭들이 추수를 기다리는 곳과 같다. 새로운 열매들이 매일 매일 추수되어지고 있다. 말씀이 거부되어진 곳곳에서 복음을 향한 열망이 생기고 있다. 수 천명이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이고 있다."라고 고백하였다.

순회 성경학교와 어린이 사역

토마스 찰스의 설교를 통하여 복음의 확장이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졌지만 아직도 영적으로 무감각하며 굳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심각하게 복음을 거부하였다. 또한 더욱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지 못하여 성경을 읽지 못하였던 것이다. 찰스는 설교만 해서 북 웨일즈의 영적인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찰스는 해결책으로 1785년 '순회 성경학교'를 시작하였는데 1794년에는 20개의 학교로 늘어났다. 학문적, 지적 능력을 겸비한 그는 한 지역에서 약 6개월에서 9개월까지 머물면서 성경을 각 사람이 갖게 하고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하도록 하고 특히 교리를 많이 가르쳤다. 이렇게 하여 '순회 성경학교'들은 두루 두루 많은 지역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성경 교육을 통해 많은 영향력을 끼침

이렇게 시작된 순회 성경학교 사역은 1789년 어린이 사역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사실 찰스는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가장 뛰어나고 성공적인 어린이 사역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설교자이지만 교육가로서 성경 교육을 통해 많은 영향력을 끼쳤으며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웨일즈 부흥을 계속 지속하게 하였다. 또한 성경 학교에서 공부를 한 학생가운데 처음으로 웨일즈 선교사가 나왔다.

어느 한 유명한 사례가 있다. 그 당시 영국의 알려진 무신론자 윌리엄 호네 (William Hone) 는 웨일즈를 여행하면서 한 여자 어린이가 집문 앞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어린아이에게 다가가 "오 성경이네. 이것은 아마 너의 하루 임무 중 하나겠지? 너희 어머니께서 몇 장의 성경을 읽으라고 시켰지?" 라고 물어보았다. 어린아이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임무요? 전혀 아니에요. 저는 하루 종일 성경만 읽었으면 좋겠어요. 일이 다 끝난 후에 몇 분 동안 이 귀한 책을 읽는 것은 저의 즐거움과 기쁨이에요" 이런 어린아이의 간증은 그 후 윌리엄 호네가 회심하는데 중요한 원동력 중 하나가 되었다.

발라 부흥 - “성경, 복음의 진리, 종교개혁자들의 교리, 대, 소요리 문답”

북 웨일즈 감리교들의 본부가 된 발라에서 토마스 찰스는 감리교들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하는 목사들 중 하나로 사역을 계속 하였다. 웨일즈인 들에게 감동을 주는 찬송으로 부흥을 일으킨 윌리암 윌리암스 (William Williams) 는 죽기 전 토마스 찰스를 불러 그를 후계자로 인정한 듯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형제여, 이 사실을 기억하라. 사도들의 시대 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라네. 이단과 거짓, 잘못된 가르침은 항상 있다네. 우리 감리교들은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셔서 그런 위험들로부터 안전하였다. 형제여 우리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실 것을 기도하네. 젊은 사역자들에게 제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경 다음으로 종교개혁자들의 교리와 가르침을 지키고 연구하세! 그들은 그곳에서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깊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네. 대요리, 소요리 문답 등도 늘 깊은 존경심으로 간직하세."

토마스 찰스는 이 유언과 같은 부탁을 신실하게 지켰고 1791년 하나님께서는 발라 땅 가운데 잊지 못할 정도로 놀라운 은혜를 부어주었다. 런던에서 발라로 돌아오는 길에 토마스 찰스는 길 가에서 자신의 영혼 때문에 울부짖는 한 여인을 만났다.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게 되었다. 이 사건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았지만 10월 첫 주와 둘째 주에 놀랍게 나타났다. 예배가 끝날 때 쯤 성령께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강하게 역사하기 시작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통곡과 애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며 울부 짖기 시작하였다. 밤 9시 10시가 되어도 마을에서는 울부짖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런 회개 운동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을 찾지 않은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들이 있었다. 이런 성령의 부으심이 있고 난 후 다음 3년 동안 자주 이런 성령의 강한 역사와 부흥의 사건들이 여러 지역에서 일어났다.

성경 보급에 대한 눈물겨운 이야기들

토마스 찰스의 후반기 사역의 초점은 순회 설교 보다 교회와 성도들을 더욱 견고히 하는데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는 크게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웨일즈 사람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된 성경을 보급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그들을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토마스 찰스가 어떤 헌신과 열정, 에너지를 쏟아 부으면서 웨일즈 언어로 된 성경을 보급했는지는 참으로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많다.

1792년 토마스 찰스는 S.P.C.K 출판사에 의뢰하여 10,000개의 성경을 출판하여 보급하였으며, 1806년에는 웨일즈어로 개정된 신약 성경을 다시 출판하였는데 순식간에 다 팔려 버렸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성경을 길거리에서나 어디서나 성경을 읽는 모습이 보였으며 노동자들은 일터로 성경을 가져가 기회가 날 때마다 성경을 꺼내서 읽었다.

5년 후인 1811년 토마스 찰스는 다음과 같은 고백하였다. "온 나라가 야만인적인 무식함과 무관심 속에서 벗어서 성경을 끊임 없이 읽고 외우고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성경을 많이 사고 있다." 헛된 즐거움들인 춤, 카드게임 등은 이제 기도모임으로 변화되었다. 토마스 찰스는 성경만 보급했을 뿐 아니라 성경을 더욱 잘 이해 할 수 있도록 1789년에 웨일즈어로 된 교리 문답서를 출판하였고 1803년에는 성경 사전(Scriptural Dictionary) 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이 성경 사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토마스 찰스가 쓰임 받은 이유

첫째, 그는 학문적인 지식과 여러 가지 다양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다니엘 로우랜드나 하웰 해리스 처럼 뛰어난 웅변술은 없었지만 지적능력과 집필능력은 참으로 뛰어났다. 그는 웨일즈 감리교들 중 거의 처음으로 대학까지 공부를 하였다. 영국과 웨일즈 감리교에서 토마스 찰스 만한 신학자 또한 없었다. 또한 이러한 지식을 일반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그의 지혜 또한 놀라울 따름이다. 만약 찰스가 이런 지적인 교육을 하지 않았다면 웨일즈에 일어난 부흥은 그저 감정주의로 빠져 들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둘째, 하지만 이런 재능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연히 그의 삶 속에서 나타난 영적인 생활과 능력이다.
그는 늘 하나님과 가까이 살았으며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도록 하는 것 외에는 그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늘 거룩 하는데 힘을 썼다. 그의 전기를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움에 의존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가 고백하기를 성령께서는 사람이 100시간 안에 배울 수 있는 것을 15분 만에 알려 주실 수 있다. 그는 맹목적인, 미지근한 크리스챤들을 경고하며 늘 주님의 사랑에 불탈 것을 강조 하였다.

셋째, 토마스 찰스의 칼빈주의 가르침이다.
웨일즈 감리교의 움직임은 처음부터 교리적으로 칼빈주의이다. 1세대부터 칼빈주의 교리를 가르쳤다. 칼빈주의 가르침이 계속하여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찰스의 공로가 크다. 윌리암스가 죽으면서 토마스 찰스 에게 유언을 남겼던 것처럼 당시 여러 가지 교리적으로 잘못된 가르침이 난무하였으며 특히 보편속죄 (universal redemption) 가 많이 강조되는 시기였다. 토마스 찰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건히 성경의 진리들을 붙잡았으며 개혁자들의 가르침에 충실하였다.

토마스 찰스의 죽음 -
“주여, 15년만 토마스 찰스 형제를 저희 곁에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토마스 찰스 목사의 끊임 없는 사역, 많은 학교와 교회들을 관리하며 운영, 감리교 목회자들 모임에서의 리더십, 여행, 순회 설교 등은 그의 몸을 많이 상하게 하였으며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1799년 그는 한 겨울날 웨일즈 산을 넘으면서 손에 동상이 걸려 왼쪽 엄지를 절단해야 했다. 엄지는 절단하여도 여전히 그는 위독한 상황이었으며 목숨까지도 위태로웠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기도하였는데 발라에서 한 기도 모임에서 어떤 늙은 노인의 기도가 오랫동안 기억 되어지고 있다. "주여. 15년만 토마스 찰스 형제를 저희 곁에 두시면 안 되겠습니까? 15년만! 저희와 저희 형제들을 위하여 15년만 그의 생명을 연장하여 주소서!" 이 기도는 놀랍게 응답되어 정확히 1814년 가을에 토마스 찰스는 하늘나라로 부름을 받았다.

토마스 찰스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1) 성경의 중요성이다.

토마스 찰스를 통한 발라 부흥의 특징은 성경이다. 그는 무지한 웨일즈 사람들에게 성경을 보급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성경을 읽고 쓰고 암송시키고 성경 교리를 가르쳤다. 그 결과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게 되었다. 발라 부흥은 성경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교육에서 성경 교육이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강조해야 한다. 다른 어떤 프로그램 보다도 성경을 가르치고 교리를 가르쳐야 한다. 성경을 읽게 하고 쓰게 하고 암송시키고 교리를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2) 신실한 목회자와 설교자가 다음 세대에서 계속 배출되어야 한다.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은 신실한 목회자와 설교자가 다음 세대에서 계속 배출되어야 하며 그것을 1세대가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18세기 부흥의 역사는 사뭇 다르다. 웨일즈는 잉글랜드보다 더 많은 부흥의 사건을 경험하였으며 부흥의 시대와 시기가 훨씬 더 길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웨일즈에서는 1735년 다니엘 로우랜드와 하웰 해리스가 회심한 후 사역을 시작하면서 100년 동안 계속하여 영적으로 깨어있고 위대한 지도자들과 설교자들이 많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예를들면 토마스 찰스, 크리스마스 에반스, 존 엘리아스 등인데 이처럼 웨일즈에서는 놀라운 주의 종들이 다음 세대에서 계속 배출되었다. 토마스 찰스는 다음 세대를 이끈 주역 중 한 사람이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사실 요한 웨슬리, 조지 휫필드 이후 그를 이어갈만한 영적 거장이 없었다. 즉 그들의 대를 잇는 다음세대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19세기에는 부흥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또 다른 부흥을 소망하며

오늘날 토마스 찰스의 삶과 가르침의 교훈이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한 영적 세대에서 다음세대로 복음의 불길을 전해주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지금 유럽 교회 안에는 다음세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1세대들이 2세대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럽 교회의 미래는 다음세대에 달려 있다. 다음 세대가 없으면 우리의 미래도 없고 교회도 없고 선교도 없고 부흥도 없을 것이다. 다음 세대는 가정과 교회, 민족, 유럽 그리고 세계의 기둥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럽의 1세대는 유럽 부흥과 유럽 선교를 감당할 2세대의 신실한 목회자와 설교자, 선교사들을 계속 배출해야 한다. 유럽 목회, 교육, 선교에서 토마스 찰스처럼 2세대를 이끌 주역들이 많이 나오기를 소망한다. 그들을 통해 유럽은 부흥의 땅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다음세대에 달려 있다. 한국 교회 안에 주일학교 수가 줄어 들고 청소년, 청년들의 수가 줄어 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유럽 교회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 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토마스 찰스와 같은 2세대를 책임지는 사역자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다음 세대들을 통해 부흥을 기대해 본다.

*김현배 목사/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4.2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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