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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존 엘리아스
2013년 05월 11일 (토) 09:30:37 평양대부흥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존 엘리아스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15)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

   
▲ 존 앨리아스의 초상화 © 김현배 목사 제공
잊혀지고 알려지지 않은 능력있는 설교자 존 엘리아스

존 엘리아스(John Elias, 1774-1841)는 1774년 3월 6일 북웨일즈 프블헤리(Pwllheli)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님은 신실한 크리스챤들은 아니었지만 그는 신앙이 깊은 할아버지의 신앙 교육 안에서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법을 배웠다. 존 엘리아스가 7살이 되었을 때는 이미 창세기부터 예레미아 중반까지 성경을 읽었었다. 몇 년 후 엘리아스는 친구나 어른의 인도 없이 혼자서 10 마일을 걸어서 예배를 참석하였다. 부모님의 불신앙은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되었고 가정 예배를 같이 드리자고 많은 시간을 간청하기도 하였다.

존 엘리아스는 어렸을 때부터 남 웨일즈에서 하웰 해리스와 다니엘 로우랜드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들과 부흥의 소식을 들으며 자라왔다. 존 엘리아스는 웨일즈의 가장 뛰어난 설교자로 지금까지 여겨지고 있다. 그는 많은 교육을 받지 못하였지만 설교자로서의 능력은 매우 위대하고 특별하였다. 복음만이 구원에 이르는 방법이라는 진리는 그의 뼈 속 깊이 파묻혀 있었으며 성경의 무오성을 굳건히 붙잡았다.

사실 동 시대에 존 엘리아스 만큼 하나님께 쓰인 종이 없었으며 북웨일즈에 놀라운 부흥의 불길을 일으킨 사람도 없었다. 또한 약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존 엘리아스의 설교와 함께 한 신적 능력과 권위를 나타낸 사람이 많이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웨일즈의 위대한 설교자 존 엘리아스를 기억하거나 아는 사람을 요즘 목회자나 크리스챤들 가운데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존 엘리아스를 사용하시고 그를 통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나누며 그의 삶과 영성이 현대 크리스챤들에게 도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구원의 확신과 사역으로의 부르심

발라 (Bala) 를 중심으로 한 북 웨일즈에 부흥이 일어났을 당시 존 엘리아스의 나이는 18살 정도였다. 존 엘리아스의 회심에 대해 구체적인 사건이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북 웨일즈에 일어난 부흥을 통해 존 엘리아스도 구원의 확신을 얻고 그의 영혼도 평안을 찾았다. 그에게 구원의 확신과 함께 사역을 향한 거룩한 부담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결국 1794년 성탄절 때 Carnarvonshire에서 열린 장로교 모임에서 존 엘리아스를 목회자로 받아들였다. 그 때 한 늙은 목회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형제들이여, 내가 흙으로 돌아갔을 때 이 젊은이는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일세." 존 엘리아스는 목회를 매우 진지하고 장엄하게 하였다. 목회자로 첫 모임을 인도하였을 때 존 엘리아스의 대표 기도를 통해서 모든 회중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존 엘리아스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는 놀라웠다. 그가 몇 번 설교를 한 후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웨일즈를 떠돌기 시작하였다.

북 웨일즈의 영적 상황과 부흥

발라(Bala)의 영적 상황은 매우 어두웠다. 모든 불경건한 죄들이 난무하였으며 하웰 해리스가 북 웨일즈에서 순회 설교를 할 당시 설교하다가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이곳은 박해가 심했기 때문에 말씀 사역을 시작한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영적으로 죽은 곳이었다. 그런데 1791년 북웨일즈 Bala에서 놀라운 영적 부흥이 일어났다.

엘리아스는 방탕함과 죄와 악행으로 유명했던 한 박람회에서 설교하였는데 그 사람의 설교로 그 유명한 박람회가 다시는 열리지 않게 되었다. 이처럼 부흥이 일어났을 때는 음주나 사람들의 악한 습성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죽어 있던 북 웨일즈 땅에 강하고 능력 있게 성령을 부어주셨으며 많은 사람들이 깨어나며 거듭나게 되었다. 구원의 확신이 그들에게는 분명하였으며 영적인 진리들이 그들의 마음과 생각뿐만 아니라 삶을 주관하였다.

당시 기록들을 살펴보면 설교자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매우 비상한 방식으로 설교 가운데 역사하였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설교자들)을 하나의 타오르는 불꽃 처럼 사용하였다. 또한 거듭나게 하는 성령의 역사는 매우 선명하고 강력했다. 거룩한 영광이 임재하는 시간이었다."

존 엘리아스의 설교 사역과 열매

존 엘리아스의 사역은 주로 순회 설교 사역이었다. 1799년 결혼 후 Llanfechell 에 가정을 차린 후에도 그는 웨일즈 전국을 돌아다니며 죽고 잠든 자들을 깨우는 사역을 계속하였다. 그의 설교를 통해 나타난 효과는 참으로 놀랍고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이다. 많은 자들은 그저 호기심 때문에 그의 설교를 들으러 왔지만 순식간에 그들의 영혼은 위대한 진리들 속으로 동화되었다. 하찮고 세상적인 것들은 사라졌고 진리들이 나타났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보혈은 높임을 받았다. 그의 설교가 끝났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위해 그들의 영혼이 근심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1802년 존 엘리아스는 사탄의 요새 중 하나인 Rhuddan 을 방문하여 설교하였다. 이곳은 주일날 수천명 씩 Sunday-fairs (카니발) 에 참석하여 모든 모양의 불경건과 죄가 행해지던 곳이었다. 사람들의 노는 소리와 춤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존 엘리아스는 몇몇의 신자들을 데리고 Sunday-fair 밖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안식일을 거룩히 여기지 아니하는 그들을 향해 온 힘을 다하여 손을 높이 들고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심판을 설교하였다. 존 엘리아스의 설교는 지진 처럼 사람들을 흔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휩싸였으며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다고 하였다. 존 엘리아스의 설교 사역 중 특별한 사건 중 하나는 Pwllheli 에서 일어났다. 이곳의 영적 상태도 매우 어두웠지만 한 설교를 통해 약 2500명이 회심하며 교회에 등록한 사례도 있다.

존 엘리아스의 영성 - “하나님과 교제 (기도생활), 성령충만, 성경연구, 독서”

존 엘리아스는 그의 힘과 능력, 권위를 하나님과의 매우 깊고 가까운 교제 속에서 얻었다. 엘리아스는 그의 서재에서 무릎 꿇고 하나님과 늘 은밀한 교제를 하였으며 그의 의자 위에는 기도의 흔적으로 눈물이 늘 있었다. 엘리아스가 그의 서재에서 나올 때는 마치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후 빛난 것과 같다고 그의 가족들은 기록한다. 존 엘리아스는 늘 성령의 충만함과 깊은 교제를 강조 하였다.

"주의 종들은 늘 성령을 경험해야 한다. 오! 우리는 더욱더 성령과 교제하며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기 위하여 쉬지 말아라! 더 전진하라! 그의 임재하심이 없다면 쉬지 말고 더욱더 힘써라. 만약 개인의 은밀한 기도가 더 많고 더욱 간절하다면 그의 사역 또한 더욱더 효과적일 것이다".

또한 엘리아스는 끊임없는 성경연구와 독서를 통해 공부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다. 그는 열심 있는 연구와 노력과 능력 있는 설교는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다. 그는 성경의 모든 장의 핵심 주제와 내용을 이해하고 알고 있어서 언제든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엘리아스가 정식적인 교육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영어와 웨일즈어에 능통하였으며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를 배워서 원어를 어느 정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였다. 그는 존 오웬과 조나단 에드워즈와 청교도 책을 많이 읽었으며 청교도 신학을 방대하게 알고 이해하고 있었다.

존 엘리아스의 가정 생활

존 엘리아스의 가정 생활을 잠시 살펴 보는 것도 그의 영성과 삶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4명의 자녀들이 태어났지만 슬프게도 2명의 자녀들은 유아기 때 죽었다. 자녀들이 학교 때문에 집을 비울 때에도 존 엘리아스는 사랑으로 많은 조언과 권고를 하였다. 그의 아들과 딸에게 편지에다가 다음과 같이 썼다.

"아들아, 영혼에 상처를 주는 모든 것들을 조심히 살펴 피하여라. 이것들은 너의 영혼을 죽일 것이다. 너의 곁에 계시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그를 항상 갈망하고 간구하여라. 하루가 지나면 그것을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음을 기억하고 시간을 잘 아껴 사용하여라....".
"사랑하는 딸아, 젊을 때 너무 많은 시간을 허탕한 것에 사용하지 말아라. 죄 가운데 빠지지 말고 너의 의무에 늘 충실하여라. 은밀한 기도 시간을 가볍게 보지 말고 늘 은혜의 보좌 앞에 너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거라." 이 두 명의 자녀들은 커서 복음을 깊이 사랑하며 높였다.

바른 교리를 향한 열정

존 엘리아스의 노년에 들어서는 웨일즈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들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1837년 고백하기를 "설교 속에 나타난 힘, 빛, 권능, 권위는 요즘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존 엘리아스는 교리의 약화 속에서 찾았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끊임 없이 유지 될려면 말씀이 순수해야하며 깨끗해야 한다고 믿었다. 교회를 허물고 무너지게 한 가장 큰 원인을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그는 지적하였다. 특별히 알미니안 주의의 교리가 많은 부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알미니안주의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모두를 위한 것이지만 인간의 의지에 따라서 구원의 효과가 제한 받는다고 가르쳤다.

존 엘리아스는 이러한 가르침을 완전히 부인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 사건과 인간의 의지나 결단이 아닌 오직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가 개인의 구원에 나타난다고 가르쳤다. 또한 인간은 영적으로 완전히 죽고 부패하였기에 절대로 혼자서 구원을 이룰 수도 없으며 그것을 선택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존 엘리아스 만큼 교리가 흔들리는 것을 슬퍼하며 경고한 사람이 없었다.

존 엘리아스가 오늘날 목회자들과 크리스챤들에게 주는 교훈 : “상실된 능력을 회복하라”

1841년 6월 8일 세상을 떠난 존 엘리아스가 이렇게 위대한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이 그를 움직였으며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가 그에게 도전받으며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오늘날에도 존 엘리아스의 삶과 가르침은 크리스찬들과 특별히 목회자들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오늘날 우리 크리스찬들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능력이다. 성경 속에서 크리스찬들에게 약속된 능력은 오늘날 우리들의 삶속이나 강단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존 엘리아스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참으로 우리의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목회자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비슷한 말씀을 외치고 있다. 그들은 같은 말을 사용하지만 같은 능력이나 효과는 나타나지 않는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도회 가운데 간구되어지는 기도제목도 동일하다. 하지만 지금은 기도의 응답이 없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왜 기도 응답이 없는지에 대해 묻지 않으면서 계속 기도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얼마나 정확하게 지적한 것인가?! 이어서 존 엘리아스는 "우리는 신선하고 새로운 하늘의 능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우리의 힘만으로 기도하고 말씀 전파하는데 익숙해져 버렸다. 우리는 성령의 빛과 능력 없이 너무나도 미지근한 상태이다. 우리는 성령의 강한 역사들을 스스로 느끼지도 못하고 다른 곳에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지도 못한다. 목회자들은 설교 가운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고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면서 설교를 하고 회중이 그 설교를 듣는 것에만 만족하고 있다." 라고 말하였다.

부흥을 위한 메시지 - “성령의 빛과 능력으로 설교하라”

오늘 이 시대는 존 엘리아스 처럼 성경에 능통하고 바른 교리를 사수한 설교자가 필요하다. 인간의 부패한 논리가 아닌 성령을 힘입어 말씀을 순수하게 전하는 능력있는 설교자가 필요하다. 강단이 점점 약해져가고 있는 이 때에 목회자들은 설교에 더 많은 능력이 부어지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실된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이 있어야 한다. 성령의 강한 역사들을 스스로 느끼고 있어야 한다. 성령의 빛과 능력으로 설교해야 한다. 선조들 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역사를 갈망하면서 성령의 지도를 받아야 할 것이다. 존 엘리아스의 능력있는 설교 영성이 교회와 사역 현장에 리바이벌 되기를 사모한다.

   
▲ 김현배 목사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국 부흥운동사를 공부했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맡아 유럽 재복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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