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업 코리아― 박용규교수의 부흥현장을 가다] (16) 1859년 웨일스 부흥 운동
기사입력 2006.08.02. 오후 3:21
1859년 북아일랜드 얼스터에 이어 웨일스 지역에서도 놀라운 영적 각성 운동이 발흥했다. 18세기 중반부터 줄기차게 영적 각성을 경험한 웨일스에 또다시 놀라운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이보다 더 강력한 부흥은 없었다”고 토머스 필립스는 증언했다.
1859년 웨일스 부흥의 전문가 필립스의 말대로 이 부흥은 1857년 미국에서 일기 시작한 기도운동을 통한 부흥운동과 아일랜드 얼스터 부흥운동에 적지 않은 자극과 영향을 받았다. 1859년 웨일스 부흥운동의 포문을 연 사람은 감리교 목사 험프리 존스와 칼뱅주의 감리교 목사 데이비드 몰간(1814∼83)이었다. 27세의 젊은 목사 존스는 미국에서 영적 각성 운동을 경험한 후 자신의 조국에도 이와 같은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나기를 사모하며 웨일스로 돌아왔다.
존스는 1858년 9월부터 5주 동안 카디건셔(Cardiganshire) 스파티 스트위트에 있는 교회에서 오전·오후·저녁예배 때 설교를 통해 영적 각성을 촉구했다. 그러자 곧 교회가 깨어나고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체 주민이 불과 76명밖에 되지 않는 시골이었지만 존스의 사역을 통해 1858년 10월까지 6개월 동안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칼뱅주의 감리교 목사 몰간이 존스를 초청해 교제하면서 웨일스의 부흥이야말로 가장 긴요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둘은 1858년 10월부터 12월까지 자신들의 교회에서 번갈아가며 2∼3개월 동안 기도회를 열었다. 참석자 중 200명이 회심했다. 첫 6개월 동안 이들의 노력으로 카디건셔에서만 9000명이 주께 돌아왔다. 1859년에 접어들면서 존스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몰간이 부흥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우리는 웨일스의 부흥을 꿈꾸며 기도하는 에드워즈 목사의 안내를 받으며 몰간의 부흥의 흔적을 찾아 그가 사역했던 스파티 스트위트로 향했다. 스파트 스트위트를 찾아가는 길은 마치 한국의 산골을 지나는 것 같았다. 그가 잠들어 있는 무덤,그가 오랫동안 목회하던 첫 교회를 방문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축복이었다. 스파트 스트위트 지역을 알리는 안내판에는 1859년의 부흥이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었다.
“1859년 감리교 대부흥 운동을 점화시킨 데이비드 몰간이 이 마을 교회 뜰에 묻혀 있다. 데블 브리지의 보드콜 밀에서 태어난 몰간은 이 마을 목수였고 건축도급업자였으며 매스글라스(Maesglas) 교회 목사였다. 1858년 그는 영향력 있는 클랜진베린의 감리교 설교자 험프리 존스에 의해 영감을 받고 전도여행에 나서서 웨일스 전역을 누볐다. 그는 3만6000명을 회심시켰다고 한다. 1859년 웨일스 부흥은 그후 몰간의 이름과 긴밀한 관련을 맺어왔다.”
몰간과 1859년 부흥운동의 관계를 선명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몰간을 통해 1859년 8월 남웨일스의 많은 교회가 부흥운동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스파트 스트위트에서 사역했던 조지프 몰간(Joseph Morgan)은 “목사가 설교하는 동안 그 어떤 찬양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다만 조용히 흐느끼는 울음소리와 뜨거운 ‘아멘’ 소리만 회중 여기저기서 들려왔다”고 증언했다. 설교가 진행되는 동안,혹은 기도회나 성찬식이 거행되는 동안 사람들은 기쁨이 충만해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당시 ‘부흥’(Revival)지가 보도한 것처럼 은혜의 역사는 아일랜드에서 나타났던 현상과 유사했다. 어떤 사람은 비명을 지르고 부르짖으면서 땅에 쓰러졌고 어떤 이들은 한두 시간씩 기도에 몰입했다. 1859년 아이니스고(Ynusgau)에서 일어난 부흥의 역사를 목도한 에번스 존스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 땅은 목말라 있었고 하늘은 은혜를 퍼부어주셨다…우리는 그와 같은 것을 예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다.”
1859년 웨일스 부흥을 경험한 이들은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진 인생으로 거듭났다. 부흥이 임하자 술주정꾼 욕쟁이 도박꾼은 물론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기도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 웨일스 교회는 다시 한 번 놀라운 부흥을 경험했다. 1858년 10월에서 1860년 10월까지 불과 2년 사이에 9만명이 새로 교회로 영입됐다. 전체 111만명의 웨일스 인구 중에서 9만명은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다. 부흥의 현장에 서 있었던 한 목회자의 증언처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 가운데 1세기 동안 이루신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지난 2주 동안 이곳에서 이루어주셨던 것이다.
아쉽게도 1세기 반이 지난 오늘날 1859년 부흥의 생명력은 웨일스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도대체 이곳이 그토록 줄기차게 부흥을 경험한 지역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스파트 스트위트를 찾았을 때 1874년에 건축된 제2 매스글라스 예배당은 철거됐고 데이비드 몰간이 사역했던 그 영광스러운 첫 교회마저 개인주택으로 사용하기 위해 수리 중이었다. 오 주님! 웨일스에 1859년의 영광을 다시 허락해주옵소서!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08.09 11:13
- 수정 2021.03.26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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