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디는 부흥을 성령세례로 보았다"

감신대, 로버트 하디 원산 대부흥 110주년 기념 학술대회 열어

뉴스파워 정순주 기자  


'하디 1903 성령한국 준비위원회'가 후원하고 감리교신학대학교(이하 감신대)에서 주최한 신학공개강좌가 21일 오후 감리교신학대학교 웨슬리 채플실에서 열렸다.

공개강좌에서는 “로버트 하디 그는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로버트 하디의 선교사역에 대한 선교학적 평가와 저술활동, 신학 사상에 대해 협성대학교 이후천 교수, 남부연회 금산지방 추정교회 김칠성 교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덕주 교수가 발제를 했다.

발제 후에는 인천 내리교회 담임 김흥규 목사, 서울 한양제일교회 담임 서동원 목사, 춘천 성암교회 허태수 목사가 논찬을 했다.

1부는 웨슬리회심 275주년 기념예배로 드려졌으며 선교국위원장 김영헌 감독이 요한복음 20장 18절~23절 말씀으로 설교했다. 설교에 앞서 김 감독은 먼저 “온 감리교 사역자들이 모인 가운데 지난 10월 31일 110준 기념 성회를 만장일치로 동의했다“고 밝히며,”학술대회를 먼저 갖고 성령운동을 전개해야겠다는 생각했다“며 공개강좌의 취지를 밝혔다.

김 감독은 “왜 성령운동을 다시 재현해야 하는가?”라고 질문하며, “성령이 감리교 안에 역사해야 감리교에 미래가 있고, 이것이 교회를 살리는 일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원복음은 자꾸 사라지고 리더십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의 믿음이 신앙의 원론이 되고 말았다. 믿음의 시대를 접고 성령의 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오늘날 우리는 이성주의가 너무 발달된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인간이 만들어 놓은 하나님으로 잘못 우상화되어진 까닭에, 우리가 성령운동을 다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오순절 성령사건을 통해 교회가 탄생했다”며, “우리가 성령 받음으로 말미암아 그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을 살리고 복음 전하는 일에 바쁘길 축원한다”고 전했다.

이어진 2부 공개강좌에서 이후천 박사가 하디의 선교보고서를 토대로 “하디의 전인적 선교사역에 대한 선교학적 평가”라는 제목으로 선교사로서의 로버트 하디를 조명했다.

이 박사는 1893년 1월~ 1896년 10월까지의 하디가 작성한 선교 보고서를 중심으로 분석, 평가를 했고, 하디가 안식년을 맞이해 본국 캐나다로 떠나 그의 선교사역을 보고한 영어자료를 조사한 내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박사는 “하디는 선교사의 핵심인 복음 전도를 직접 했다. 하디의 의료 기술은 단지 복음사역의 수단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하디의 문화우월주의를 지적하며 “하디의 이런 태도는 회심 이후에도 계속된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결론적으로 하디의 선교사역은 “개인영혼의 구원과 교회성장을 중요한 목적으로 뒀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하디는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을 중요한 것으로 여겼으며, 전인적 선교활동에 힘썼다고 말했다.

이어 김칠성 교수가 “1903 원산 대부흥과 로버트 알렉산더 하디”라는 제목으로 부흥가로서의 하디에 관한 강연을 펼쳤다.

김 교수는 “하디가 부흥의 도구로 쓰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직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며 발표를 시작했는데, “하디의 안식년 동안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점을 부각했다. 김 교수는 “이는 하디의 방법으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한 “하디는 부흥을 성령세례로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디가 기존 신자들에게 성령이 다시 부어짐으로 성령 세례로 보았다”고 설명하고 “회개를 통한 회복은 성경적 개념이지만 회개를 통한 부흥은 성경적 개념으로 보기 어렵다”고 피력했다.

그는 그러나 “하디가 높은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진정한 회심자를 얻고자 엄격하게 교육한 점”을 언급했다. 김 교수는 “감리교는 미운오리새끼라는 자아 인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20세기 초반 한국에서 첫 번째 부흥이 시작됐는데 대부흥은 원산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그러나 “삶과 사역의 동기가 과연 예수그리스도인지 사역의 순수성을 되돌아보아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덕주 교수는 “하디의 저술활동과 신학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신학자로서의 로버트 하디를 조명했다. 그는 “하디는 선교사 혹은 부흥 운동가로 많이 조명돼 왔지만 사실 하디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신학자로서 할애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디가 활동한 역사적 기록이 담긴 사진 자료를 토대로 설명했다.

이덕주 교수는 “하디가 28년간 감리교 신학 목회자 양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강조하며, “하디가 교장으로 있으면서 창간했던 신학책이 감리교 신학의 모태가 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하디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이 67권”이라고 밝혔다. 이 교수는 “35년 동안 67권을 냈다는 것은 1년에 2권을 냈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신학교육을 하면서 이렇게 많은 책을 쓰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하디는 “성경과 신학을 같은 비중으로 가르치겠다”는 견해로 이와 함께 저술사역을 펴 온 것이다. 그는 하디의 이러한 자세는 “굉장히 성경 중심적이다”고 강조하며 “하디는 감신대 교수로 부임하면서 동시에 신학 공부를 하는 배움과 가르침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강연 후 이어진 논찬에서 김흥규 목사는 “세 분의 논문을 읽으면 결론은 ‘하디는 웨슬리형 목회자’로 나타난다. 하디가 편협한 교파주의를 벗어나 교파 일치주의를 추구했다는 사실도 웨슬리의 신학과 일치한다”고 피력했다.

김 목사는 특히 김칠성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대해 비판했는데 “회개는 인간의 자의로 되는 일은 아니다. 물론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필수적인데 성령세례 받은 이후 그 결과만으로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동원 목사도 김칠성 교수의 논문에 대해 “전통적인 견해에 맞서 도전적이고 과감하게 몇 가지 신학적 논쟁점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 있는 논문”이라고 판단했으나, “원산부흥을 대부흥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죄에 대한 탄식과 배상과 회복을 통한 진정한 회개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이 한반도 전체로 뻗어 나갔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 목사는 이후천 교수의 논문에 대해서는 “복음을 듣는 자들의 회심보다는 복음을 전하는 지도자들의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뼈저린 동감을 느끼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허태수 목사는 이후천 교수의 논문에 대해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 팽배한 ‘이기주의적 구원론’을 합리화하므로 사회로부터 게토(Getto)화 하는 것은 아닌가?”라며 반문했다.

이에 김칠성 교수는 ‘1903 하디 성령운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 대해 “부흥역사에 대한 재정립의 필요와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기다릴 것, 또한 갱신을 위한 운동은 한국 감리교가 고쳐야할 것을 고치는 의지적인 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작년 10월 31일 감리교 사역자들이 만장일치로 결의한 하디 선교사 회심 110주년 기념성회는 오는 8월 18일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리며 성령부흥운동을 전개할 전망이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5.23 0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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