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기도에만 전념한 에반 로버츠 

영국교회 부흥의 주역과 현장의 역사 (20)  

뉴스파워  김현배 목사  

 

에반 로버츠의 부흥에 대한 목마름

에반 로버츠 (Evan Roberts, 1878-1951)는 1878년 남웨일즈 러퍼 (Loughor) 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성경과 주일학교와 가정 예배의 영향을 받으며 자라났다. 그는 11살 때 그의 아버지를 돕기 위해 탄광에서 20대 초반까지 일하였다. 로버츠는 어린 나이부터 영적인 일들에 대한 갈망과 목마름이 있었다. 그는 탄광에서 일하면서도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성경을 읽었다. 성경 외에도 자신의 영적 성숙을 위해 토머스 찰스의 ‘기독교 지침’,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 찬송집’, 존 번연의 ‘천로역정’, 하지의 ‘신학개요’와 그 시대의 중요한 신학 서적들을 읽었다.

13세에 회심한 후 그는 교회 일원이 되었는데 그 후 한 번도 교회 모임에 빠지지 않았다. 그는 주일학교에서 교사로도 봉사하였으며, 자신이 재정을 마련하여 교회 울타리를 세웠다. 지역교회에 대한 그의 헌신은 철저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부흥과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하심을 위하여 11년 넘게 기도하고 있었다. 1891년 13세 소년으로 에반 로버츠는 두 가지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첫째, 그를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실 것. 둘째, 웨일즈에 부흥을 보내주실 것이 바로 기도제목이었다. 로버츠는 하늘에서 주어지는 부흥에 대한 목마름이 강했다. 그는 부흥을 위하여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였다.

1904 부흥 전 당시 영적 상황

1904-5년 부흥이 있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웨일즈 땅에 여러 번 부흥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마지막 부흥이었던 1859년 부흥 이후 웨일즈의 영적인 상황은 새로운 도전들로 가득하였다. 성경 고등비평과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력 그리고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책 출판은 교회를 무너뜨리기 시작하였다.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았고 더 이상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과학적 지식에서 모든 인생의 답을 찾을 려고 하였다. 종교적 무관심과 무신론과 불신앙이 팽배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신학생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지기 시작하였고 성경의 권위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기독교의 주요 교리는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 세상에서의 세속주의와 인본주의 철학이 교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러한 신학적 쇠퇴의 결과는 곧 바로 주일 예배 및 교제, 기도회에 참석 수가 현저하게 줄어 들었다. 영적인 상태는 정말 지극히 저하 되었으며 나라 구석구석에 온갖 죄가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은 긍휼과 자비 가운데 다시 한 번 웨일즈 땅에 부흥과 성령의 역사들을 일으키셨다.

로버츠의 웨일즈에 대한 비전 - “10만 명의 영혼을 주옵소서”

그는 오랜 기간에 걸쳐 설교자로서의 소명에 대해 눈떴다. 25세 나이에 목사 후보생으로 헌신하여 뉴캐슬 엠린에 있는 문법학교에 들어갔다. 1904년 9월 로버츠는 조셉 젠키스와 시켄스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블라이내너흐 교회로 갔다. 이곳에 도착한 로버츠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성령을 주려 하신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오전 집회에서 ‘오 주님, 나를 굴복시켜 주옵소서! 나를 굴복시켜 주옵소서!’ 하면서 소리쳐 울었다. 그때 하나님의 영광이 넘쳐났다. 로버츠는 큰 권능과 성령충만을 받았다. 이 체험 후 로버츠는 웨일즈를 복음화하려는 열정으로 불타 올랐다. 그는 시간과 열정과 에너지를 온통 부흥을 위한 갈망에만 쏟았다.

로버츠의 마음에는 웨일즈 전체를 그리스도께 바쳐야 한다는 인식으로 가득 찼다. 그는 “10만 명의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비전을 가졌다. 그리고 늘 이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열정적으로 기도했다. 로버츠가 기도할 때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강력하게 임하셨다. 그는 시대적인 환상을 보고 성령을 강하게 체험했다. 하나님께서는 로버츠 안에 역사하시기 시작하였다. 그는 계속 새벽 1시에 일어나서 5시까지 하나님과 기도 가운데 교제 하며 부흥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영혼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소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규 훈련과정을 포기하였다. 그는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를 하였고, 개인 성경공부와 기도, 찬양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에반 로버츠의 메시지 핵심과 부흥   

웨일즈 부흥을 위해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였던 에반 로버츠를 통하여 웨일즈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로버츠는 부흥의 불길을 퍼뜨리면서 어디에나 가서 집회를 인도하였다. 로버츠의 설교주제는 그리스도의 사랑, 믿음, 회개, 용서, 정직, 영적 체험의 요소, 하나님의 무한성과 위대하심, 최후심판 등이었다. 로버츠가 인도한 공적인 부흥 전도사역은 1904년 10월 31일 월요일 모리아 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첫 집회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모두 17명이 모여 기도회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들에게 성령세례를 받을 준비를 할 것을 권면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한 로버츠의 메시지 핵심은 다음 네 가지로 꼽을 수 있다: (1) 모든 죄악들은 하나님께 고백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얻으라. (2) 삶에서 모든 경건치 못하고 불의한 습관들을 버리라. (3)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순종하여라. (4)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개적으로 고백하라. 이것들은 약속된 축복으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이다. 그날 모임은 새벽 3시까지 진행되었다.

그 결과 모리아 교회에 마가의 다락방과 같은 강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어 부흥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로버츠의 첫 집회 후 30일 만에 3만 7천명이 주께 나아가 회개하였다. 부흥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모임들은 계속 진행되었으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뜨거운 찬양과 기도모임들이 전국적으로 불붙기 시작하였다. 1905년 말까지 교회는 쉬지 않고 날마다 기도회를 계속했었으며 기도회 참석 인원 수는 갈수록 늘어났다. 집회는 아침 열 시에 시작하여 밤 열두 시까지 계속되었다. 매일 3회씩 예배를 드렸다. 에반 로버츠가 인간 도구였는데 설교는 별로 하지 않았다. 찬송, 기도, 간증이 집회의 주요 성격이었다. 동원이나 광고도 없었다. 찬송가도 없었다. 성가대도 없이 모두가 노래를 불렀다. 그때 하나님께서 불 같은 성령을 쏟아 부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갈망하는 마음을 풀어주시고 전 세계에 미칠 만큼 놀라운 부흥을 부어 주셨다.

1904-5년 부흥 결과 및 영향

드디어 웨일즈에 부흥의 불길이 불어왔다. 죄를 깨닫는 사람들의 억제할 수 없는 흐느낌과 통곡, 통회하는 사람들의 참회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말할 수 없는 기쁨의 환호들로 가득했다. 교회는 밤낮으로 가득 찼으며, 충성되고 헌신된 사역자들을 얻게 되었다. 이 때 부흥은 모든 계층과 연령대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별히 젊은 층과 여성들에게 많은 은혜를 부어주셨다. 부흥 시기에 웨일즈 신문에서는 매일 회심자 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Tonypandy 600명, Cardiff 2,753명, Loughor 1,756명, Aberman 510명, Aberavon 325명, Abertillery 3,457명, Blaenavon 1,200명, Blaina 1,069명, Carmarthen 312명 등. 1904-5년 사이에 칼빈주의 감리교회에서는 2만 4천명이, 회중교회에서는 2만 6천 5백명이, 웨슬리 교회에서는 4천명 이상의 교인이 증가했다. 로버츠의 비전대로 웨일즈에서 10만명의 개종자가 교회로 오게 된 것이었다. 1904-5년에 기록된 100,000명의 회심자들은 사실 6개월의 시간 안에 다 회심한 놀라운 기록이다.

부흥으로 인해 범죄, 술집, 도박도 크게 줄어 들었고, 극장가와 축구장도 숫자가 크게 감소했다. 해묵은 빚도 갚았다. 수천 개의 웨일즈 성경들이 팔렸다. 또한 광부들이 회심했다. 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들의 언행이 정결하게 되어 그전에 사용하던 모든 더러운 말과 욕설 등을 그쳤다.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실제로 탄광에서 일하는 조랑말들은 언어생활이 변한 광부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을 정도였다. 광부들은 지하 갱도에서 기도모임을 가졌다.

또한 어린아이들이 자기들의 기도모임을 가정과 헛간에서 가졌다. 이처럼 이전 부흥의 현장들 처럼 성령의 강한 임재하심으로 인한 열매로 그 시대 가장 큰 불의한 죄였던 술취함과 방탕함이 급격히 적어지는 역사들이 있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도덕적, 윤리적 회복이 있었다. 부흥은 크리스챤들의 영적 무감각과 무관심을 치료하며 세상 사람들의 어둡고 더욱 더 강팍하고 굳어져 가는 마음을 녹이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웨일즈 부흥은 영국 전역과 유럽, 인도, 한국, 호주, 아프리카, 미국 등 전 세계의 부흥 운동에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1904년 웨일즈 부흥의 문제점

1. 말씀 사역의 부재

1904년 부흥이 처음에는 많은 열매를 맺었지만 지속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고 성도들이 깊은 영적 생활로 나아가지 못한 데에는 말씀의 부재를 가장 큰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전 부흥 시대에는 늘 말씀에 탁월한 설교자들을 통하여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리를 배우고 그 진리 안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면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04년 부흥에는 에반 로버츠가 설교를 거의 하지 않았고 대부분 찬양과 기도, 간증으로 기도회를 인도하였기 때문에 깊은 말씀 사역이 이루어 지지 못하였다. 그 결과로 많은 성도들이 회심은 하였어도 진리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고 혼돈 속에서 신앙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건전한 교리와 성경에 기초한 설교 사역을 등한시 했으며 신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다소 미흡하였다.

2. 신학부재

1859년 웨일즈 부흥을 주도했던 험프리 존스는 성령의 직접 계시를 주장했는데 1904년 에반 로버츠도 성령께로부터 오는 직접 계시에 대해 더욱 깊은 관심을 쏟았다. 그의 사역은 신학적이라기 보다는 다분히 체험적이었다. 그는 신학교 교육을 다 받지 못했지만 그가 부흥집회를 인도하는 곳마다 많은 회심자를 얻게 되었다. 이전 영국 부흥은 교리와 신학에 있어서 정통 개혁주의요, 칼빈주의였지만, 로버츠에게서는 이러한 신학을 거의 찾아 보기 힘들었다. 그는 회심자들을 교회의 신앙고백이나 기독교의 진리 안에 굳게 서는 방향으로 이끌지 못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의 수가 감소하고 복음이 변질된 것이다. 이안머리 (Iain H.Murray)는 ‘부흥과 부흥주의’ (Revival & Revivalism) 책에서 로버츠는 거의 신학이 없었으며 과거에 부흥을 경험해 보지도 못했던 인물이었다고 말했으며, 회중교회 피터 프라이스 목사는 ‘참된 부흥을 참람하게 흉내 낸 모조품 같은 부흥’이라고 폄하하였다. 

3. 찰스 피니의 영향

1859년 부흥 때 찰스 피니가 가르친 부흥론의 악영향들을 살펴보았다. 이번 1904년 부흥에는 그 부작용이 더욱 더 크게 나타났다. 에반 로버츠는 슬프게도 찰스 피니의 가르침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여 기도모임 가운데 적용하였다. 말씀 보다 기도와 찬양, 간증 중심으로 매우 감정적으로 기도모임을 인도하였으며 어떠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회심하고자 하는 자들에게 강단으로 나오라던가 등 구원을 인간의 선택이라고 믿게 할 만한 요소들이 기도모임 가운데 들어나게 되었다. 기도모임은 성령의 인도하심 보다 사람의 방법론이 더 앞서게 되었다.

에반 로버츠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 - “기도가 부흥의 비결이다”

1. 중보기도의 중요성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부흥에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갈망과 함께 말씀에 충만한 그리고 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르치고 외치는 설교 메시지다. 또한 겸손함 가운데서 인간의 모든 방법론과 이론들을 내려놓고 온전히 성령님을 사모하고 신뢰하는 모습들이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4년 부흥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긍정적인 모습은 부흥을 위해 오랜 시간동안 간절히 기도했다는 부분이다. 에반 로버츠는 10년을 넘는 시간을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인한 부흥을 위해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였다.

그 결과로 하나님의 영이 불같이 임하여 1904-5년 웨일즈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게 되었다. 웨일즈 부흥의 특징은 “기도가 능력의 비결이요 부흥의 비결이다”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에반 로버츠는 설교보다는 기도를 더 강조하였다. 즉 부흥은 반드시 설교에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

2.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을 사용하신다.

부흥 당시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셨던 사람은 에반 로버츠인데 그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딱 한 사람, 그 사람을 사용하셨다. 로버츠는 “나를 깨트려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깨트린 한 사람을 통해서 그 능한 역사를 교회 속에 보내셨던 것이다. 사람의 차원에서 부흥을 설명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부흥에는 그 부흥을 이루는 특별한 방식들이라는 것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또 다른 부흥을 소망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으로 가득했던 독일과 유럽이 이제는 선교지가 되어 버렸다. 무슬림 수는 갈수록 증가추세이지만 개신교는 점점 영적으로 침체하고 있다.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이 절망에 빠진 유럽을 다시 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 밖에 없는데, 그것은 기도이다. 오늘날의 유럽 상황은 또 다른 부흥을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들의 사명은 이제 모여서 부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비상한 부어주심만이 교회를 다시 살리게 된다. 그것이 부흥이다. 부흥은 언제나 그러한 일을 한다. 

1904-5년 웨일즈 부흥은 그 위대한 부흥이 임하기 전의 오랜 기간 동안에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중보기도를 드렸던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조국이나 유럽 그리고 온 열방의 부흥은 에반 로버츠처럼 “오 주님, 나를 깨트려 주소옵서 나를 깨트려 주소옵서!” 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이제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에반 로버츠처럼 부흥을 위해 오직 기도에 전념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조국과 유럽과 온 열방에 부흥을 보내실 때 까지 중보기도의 불이 타오르게 해야 한다. 기도에 열정과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웨일즈 부흥이 이 땅에 다시 일어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김현배 목사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영국에서 영국 부흥운동사를 공부했다. 현재 독일 함부르크 한인선교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 유럽성시화운동본부 상임회장 겸 독일 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을 맡아 유럽 재복음화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뉴스파워 유럽 본부장도 맡고 있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08.29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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