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민족운동 ‘대들보’ 전덕기 목사 삶 재조명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경택 기자

독립운동가 전덕기 목사(1875∼1914)가 일제의 고문으로 세상을 뜬 지 100주기가 되는 내년 3월을 앞두고 그가 시무했던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추모 열기가 뜨겁다.

4일 낮 12시 서울 남창동 상동교회(서철 목사)에서는 전덕기목사추모사업회의 창립예배가 열린다. 추모사업회는 내년 3월 중순 ‘왜 전덕기인가’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고 그의 생애를 담은 특집다큐멘터리 제작도 추진한다. 추모사업회는 장동일 협성대 총장, 전용재 기독교대한감리회 전 감독회장,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 등 교계 안팎의 인사 150여명으로 구성됐다. 서영석 추모사업회 운영위원장은 3일 “단순히 구국운동에 나선 감리교회 목회자가 아니라 한국 민족운동사의 중심이 됐던 전 목사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전 목사의 100주기인 2014년 3월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그를 선정했다. 또 3월 한 달간 충남 천안의 독립기념관과 서울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그의 생전 활동을 다룬 기획전시전을 연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독립운동에 헌신한 공로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점 등을 감안해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전 목사는 일제강점기에 상동청년회와 국민교육회 활동을 통해 민족운동에 나섰다. 1907년 상동교회 담임목사를 맡은 뒤 안창호 윤치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창립해 항일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독립운동뿐 아니라 남대문시장 상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그는 1911년 일본총독부가 105명의 독립운동가를 감옥에 가둔 ‘105인 사건’으로 투옥돼 심한 고문을 받다가 석방됐으나 고문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에도 상동교회는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다.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최석모 오화영 이필주 신석구 등 4명이 상동교회 출신이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3.12.0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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