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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개혁과 부흥 종교개혁에 길을 묻다
종교개혁 500주년 전야
2016년 11월 30일 (수) 16:29:26 박용규

 

  머리말


저는 제 자신이 가장 먼저 개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이것이 제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 시대마다 개혁과 부흥이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개혁과 부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종교개혁 500주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종교개혁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신앙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개인 마틴 루터의 복음의 진리의 재발견에서 출발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자신이 갖고 있는 근본 구원 문제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루터는 자신이 재발견한 복음의 진리를 자신 안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루터는 말로만의 개혁을 외치지 않고 자신이 깨달은 그 진리를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면서 그 진리를 외치고 전하고 가르치고 그리고 글로 옮겨 교회 지도자들과 민중들에게 전달했습니다. 그 결과 종교개혁운동은 루터의 한 개인을 넘어 교회와 사회와 국가의 전반적인 개혁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종교개혁은 몇 가지 면에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나 자신과 우리 공동체와 한국교회, 사회, 국가, 그리고 민족을 볼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틴 루터가 보여주듯 진정한 종교개혁은 나 자신의 개혁에서 출발했습니다. 루터 자신이 먼저 복음을 재발견하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은 요원했을 것입니다. 


둘째, 성경을 통한 루터의 진리의 재발견과 복음의 능력의 회복은 루터 한 개인의 개혁을 넘어 곧 교회개혁, 사회개혁, 국가개혁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셋째, 따라서 우리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와 현실을 목도하면서 좌절하거나 절망하기보다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 자신은 물론 오늘날의 교회, 사회, 국가를 진단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종교, 사회, 국가 혼돈의 시대를 맞은 적은 없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에 이어 최근 최태민, 최순실 사건으로 온 국민은 망연자실하고 사회와 국가는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지난 30여년 더 좁게는 최근 몇 년간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한국교회에 주시는 경고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주시는 회개의 기회를 우리가 망각한다면 우리는 무서운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오늘의 현실 앞에 우리는 성경과 역사에 길을 물으며 역사를 이끄시는 전능하신 그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평양대부흥운동 110주년을 앞에 둔 이 시점에 왜 이와 같은 사건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지 성경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깊이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의 눈으로 냉정하게 자문해 봐야 할 것입니다. 혼탁한 영적 혼돈 앞에 먼저 우리는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을 온전히 회복해 나가야 합니다. 성경이 신앙과 행위의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사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칭의론, 그리고 대제사상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해 누구든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갈 수 있다는 만인제사장원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일련의 경종은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민족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경종 앞에 우리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회개하며 개혁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역대하 7:14)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경고를 무시한다면 우리는 진노의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과 평양대부흥운동 110주년이 우리 개인과 교회와 사회와 국가를 개혁하고 갱신시키는 귀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종교개혁 499주년을 맞는 
2016년 10월 31일
박용규
 
목차 
들어가면서    
1. 극에 달한 종교개혁 전야의 교회 타락  
2. 중세의 부패와 타락을 극복한 종교개혁  
3. 더 나은 개혁을 진행해 나간 개혁자들   
4.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을 통해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  
맺는 말  
 
참고문헌  

 
들어가면서   

지금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역사적 시점에 와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진지한 반성을 요합니다. 저는 왜 한국교회가 개혁과 반성을 필요로 하는지 대해서 긴 시간을 말씀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로 논하지 않아도 피부로 느끼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가스 총, 칼부림 사건, S신학대학교 신학교수의 딸 살해사건은 우리 모두를 깊은 충격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오랫동안 구약학을 교수하시던 벵게메론 박사가 2015년 가을 총신대 신대원 채플에 와서 한국교회는 돈, 성, 명예, 권력에 너무도 깊이 물들어 버렸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과 청중석에서 그 설교를 들으면서 어떻게 외국 교수가 저렇게 한국교회의 실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 같은 지적에 전혀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쩌면 외부자의 시각에서 너무도 예리하고 정확하게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평가한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얼마나 부패했는지, 얼마나 타락의 가도를 달리고 있는지, 얼마나 양적 질적 침체기를 맞고 있는지 우리가 보고 느끼고 체험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천주교는 경제적인 용어를 빌린다면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교황 방문을 계기로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일반 언론 매체를 통해 천주교를 마음껏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교황이 한번 방문할 때마다 100만 명의 천주교인이 늘어난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저의 주관적인 시각인지 몰라도 한국 천주교는 정권과 언론을 등에 업고 한국 천주교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어디 이 뿐입니까? 오늘날 이단들은 한국기독교 역사상 보기 드문 전성시대를 맞았으며, 이슬람은 이제 한국의 가장 급성장하는 종교로 굳게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교회는 영향력은 고사하고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 교수 앨리스터 맥그레이스를 비롯한 일련의 연구가들은 개신교도가 미국에서 다수를 차지하던 시대는 앞으로 수년 내에 끝날 것이라고 예견했습니다. 저는 만약 이대로 간다면 사실 똑같은 현상이 우리 한국교회에도 일어날 것 같은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래의 교회 기둥인 유년주일학교 중고등부 청년대학부 학생들이 급속하게 줄어든 것은 오래 전의 일이고 기성교회는 급속하게 노쇠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것처럼 한국교회는 양적 질적으로 심각한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현재 일부 교회를 제외하고 모두가 다운 사이즈되고 있다고 보면 정확할 것입니다. 앞으로 얼마나 버티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러다 일이십년 아니 수년 내에 한국개신교는 소수의 종교로 전락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이런 중요한 기로에서 길을 잃은 한국교회가 어디에 길을 물어야 할까요. 첫째,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길을 물어야 합니다. 둘째, 성경에 길을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 앞에 길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시는 분이라고 믿는다면, 또한 그분은 구하는 자에게 오늘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우리는 그분께 길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우리가 나갈 길을 제시해주셨다고 믿는다면 결국 우리는 성경과 역사 앞에 길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은 정확무오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며, 인류 구원을 위한 계시의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친히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또한 역사에 귀를 기울어야 합니다.


필자는 평소 목회자는 변하지 않는 말씀을 변하는 세상에 전하는 자라고 확신합니다. 변하지 않는 말씀을 변하는 세상에 제대로 전하기 위해 목회자는 변하지 않는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변하는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풍부한 안목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보수주의자들은 변하지 않는 말씀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쌓았지만 변하는 세상을 읽어내는 안목이 너무도 부족하기 때문에 말씀이 능력 있고 감동적으로 청중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청중과 단절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변하는 세상을 읽어내는 안목은 뛰어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청중들에게 생명력 있게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하지 않는 말씀의 전문가라고 하더라도 변하는 세상을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 메시지는 사람을 변화시킬 수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 반대의 현상도 힘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더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보수주의 목회자들은 세상을 읽어갈 수 있는 안목을 더욱 더 키워야 하고 진보주의 목회자들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 가까이 다가 가야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주창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신앙과 행위의 절대적 표준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평신도 지도자들로부터 오늘날 한국교회 청중들의 수준은 나날이 높아가고 있고 상당한 식견을 갖추고 있는데 정작 목회자들이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그렇다면 변하는 세상을 읽어내는 소양을 함양시키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무엇인가요? 필자는 가장 먼저 선행될 것이 목회자들의 역사의식 함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나간 기독교 역사는 우리에게 나갈 길을 제시해줍니다. 역사에는 사람들의 시행착오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고 인간의 실수와 실패의 역사가 담겨 있으며, 그 실패 속에 어떻게 교회가 회복과 갱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는지도 잘 담고 있습니다. 오래전 저의 동료 교수였던 한 분이 역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만약 어느 동리에 그 동리 역사를 잘 알고 있는 1,000살이 되신 분이 살아계신다면 동리에 문제가 생겼을 때 사람들은 그분께 자문을 구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과거에 그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를 안다면 그와 유사한 문제들은 쉽게 풀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하는 세상을 읽어갈 수 있는 또 다른 가장 확실한 도구는 문학과 신문(양서와 건강한 정보 매체)입니다. 


위기를 만나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과 성경과 역사 앞에 우리의 길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교회사나 역사학은 미래를 예견하는 미래학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고 예견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게 됩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 어떻게 살 것인지를 결단하게 되고 자연히 행동을 낳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심각한 양적 침체 도덕적 위기 속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눈앞에 둔 오늘날 한국교회는 지난 종교개혁 전야에서 어떻게 중세의 암흑에서 종교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종교개혁이 진정한 개혁으로 이어졌는지를 진지하게 고찰해야 할 것입니다. 대체 마틴 루터가 생명을 무릅쓰고 종교개혁의 포문을 열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시대적 환경이 무엇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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