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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개혁과 부흥 종교개혁에 길을 묻다 3
종교개혁 500주년 전야
2016년 12월 01일 (목) 11:32:09 박용규

 2. 중세의 부패와 타락을 극복한 종교개혁
이처럼 당시 교회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간파하고 종교개혁의 물고를 튼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 일을 수행했는지를 당시 종교개혁 상황에서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루터는 슈타우피츠의 부름을 받고 1512년부터 비텐베르그 대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성경을 통해 당시 교회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이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동안 루터를 사로잡는 근본 질문은 2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핵심 사상에 도달하는 방도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루터는 두 가지 질문에 답을 결국 얻습니다.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루터는 4년 동안의 성경연구와 고전연구를 통해 1516년 기독교 핵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당시에 만연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도, 스콜라 철학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초대교회 교부들 특히 어거스틴이 해석한 성경은 루터에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너무도 소중한 길잡이였습니다. 그는 어거스틴에 의해 해석된 성경을 통해서 기독교 핵심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를 발견했습니다. 특별히 로마서는 그에게 너무도 중요한 깨달음의 원천이었습니다. 루터는 기독교 핵심 사상에 도달할 수 있는 방도는 성경이라는 결론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루터의 시각은 서서히 활짝 열렸고 그 시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질문, 곧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루터는 1513년부터 1516년까지 성경본문과 씨름했습니다. 루터가 하루아침에 심오한 진리를 깨달은 것은 아닙니다.
1514년 가을, 루터는 시편을 강의하다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주시며”(in justitia tua libera me, 불가타 역, 시편 71:2)에서 하나님의 의를 새롭게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공의”의 뜻과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이 의가 하나님의 본래적인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속성으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나 하나님의 구원 역시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구원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발견하였습니다.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묵상하다 드디어 1516년에 이르러 성경과 어거스틴의 사상을 통해 복음서에서 가르치는 구원의 길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과 17절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본문 그대로 루터는 복음은 모든 믿는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면서 루터는 바울이 재발견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곧 그 하나님의 의가 믿음을 통해서 구약의 성도들이나 신약의 성도들에게 아무런 공로 없이 주어졌다는 성경의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발견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의가 우리의 변화를 전제 조건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우리가 변화를 받은 후에야 그리스도의 의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의롭게 됨으로 변화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자들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자들이며 이 의는 내주하시는 주님의 의를 가리키며, 이 의가 의로운 삶을 살도록 만든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먼저 죄인인 우리를 받아주신 뒤에야 비로소 인간에게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죄인이 무엇을 행함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우리를 받아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성경연구를 통해서 어거스틴이 강조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에 대한 놀라운 재발견이자 영적, 교리적 혁명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의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보다 더 루터에게 급진적인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신자는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instus et peccator)이라는 사실입니다. 루터는 의가 인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 있으며 우리에게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전가된 것이라고 이해했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주님의 의가 죄인인 우리에게 전가되어 의롭게 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본래적인 의가 있고, 성육신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십자가에서 이루신 의가 있습니다. 그 의가 믿는 사람들에게 전가되어 죄인이지만 의인이라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고 의가 전가된 후에도 여전히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가 없어졌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내 공로와 노력은 0.000%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일뿐이라는 고백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장 8절)

아무런 조건 없이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깨달음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린 사람은 바로 루터 자신이었습니다. 루터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죄의 본성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으로 인해 수 없이 절망에 빠졌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랬던 그가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감격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근간이 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칭의 교리입니다. 사람의 변화와 거듭남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 죄인의 용서가 하나님의 값없으신 사랑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앨리스터 맥그래이스가 지적한 대로 이 칭의교리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귐에 대한 놀라운 이해로 발전합니다.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지만 값없이 먼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에게 전가된 의를 통해 하나님과 사귐의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그 사귐을 가능케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이며 이 사귐의 길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해 직접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에 중재자가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어 우리가 의인이 되었기 때문에 의롭게 되기 위해 정화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으며 따라서 이 세상에 연옥이라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가르침이 아니라는 확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연히 루터가 볼 때 돈을 주고 연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주장하는 면죄부 판매는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개념과 근본적으로 맞지 않았습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연옥에서 고통당하는 시간을 줄여준다며 면죄부를 팔아 군사작전과 대성당 건설 자금을 마련하려고 했습니다. 면죄부의 신학적 근거는 성경의 가르침과 너무나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로마 천주교에서 교황 비오 5세가 1567년 면죄부 판매를 철폐한 것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다.
루터는 믿음을 통한 구원을 확신하고는 1517년 10월 31일 진정한 “회개”를 통한 구원과 면죄부의 부당성을 핵심으로 한 95개 조항을 비텐베르그 성당문에 내건 것입니다.

1. 우리의 주님이시며 스승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는 신자들의 삶 전체가 참회(penetence)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을 요구하셨다.
2. 이 ‘회개하라’는 말씀은 고해성사, 즉 사제에 의해 수행되는 고해와 보속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21. 따라서 면죄부를 설교하는 자들이 교황의 면죄부에 의해 인간은 모든 형벌로부터 사면되며 구원받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오류에 빠져 있는 것이다.
32. 면죄부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모든 사람은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6. 진정으로 회개하는 그리스도인은 그 누구든지 형벌과 죄로부터 완전한 사함을 누리게 되는데, 이는 면죄부 없이 그에게 주어진다.

필자가 볼 때 위의 다섯 가지는 전 95개 조의 핵심이었습니다. 필립 샤프의 말대로 루터의 95개 조항은 “그 시대의 외침”이었고 “종교개혁의 트럼펫”이었습니다. 라틴어로 내건 95개 조항은 요원의 불길처럼 프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루터는 중단하지 않고 개혁의 불길을 계속 확산시켜 나갔습니다. 독일어로 책을 출간하여 민중들에게 종교개혁의 사상을 전하기로 결정하고 1520년 3권의 저서를 저술했습니다.

1)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고함
(An den christlichen Adel deutscher Nation)
2) 교회의 바벨론 유수
(De captivitate Babylonica ecciesiae praeiudium)
3)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
(Von der Freiheit eines Christenmenschen)

첫 번째 책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고함에서 루터는 만인 제사상 원리를 제시하였습니다.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백성”(벧전 2: 9)과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계 5:10)에 근거하여 우리 모두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보혈로 거룩한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제를 통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로마 천주교의 가르침을 벗어나 누구나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있다는 사상은 평신도와 신부 사이의 중간의 벽을 허물었습니다. 모든 신자가 바로 제사장이라는 교리를 심어준 것입니다.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 있는 권리를 날 때부터 부여받았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교황에게 성경해석 독점권을 주셨다고 주장하며 성경해석을 교황의 독점물로 삼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이것은 일종의 혁명이었습니다. 루터는 교황 외에는 공의회를 소집할 수 없다는 로마 가톨릭 교회 입장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했습니다. 맥그레이스의 표현을 빌린다면 루터가 신앙의 민주화를 주창한 것입니다. 이 책은 4천부가 발행되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며, 그리고도 또 다시 재판되어 이 책은 라이프치히와 슈트라스부르크까지 널리 퍼져 나갔습니다. 훗날 이 만인제사장원리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미국독립선언서의 기본원칙이 되었습니다.
두 번째 책, 학자와 성직자를 대상으로 한 라틴어로 기술된 교회의 바벨론 유수에서 루터는 평신도들도 떡과 포도주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오직 사제들만 떡과 포도주를 받았고 평신도들에게는 단지 떡만 허용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당시 잘못된 성만찬에 대한 개혁의 외침이었습니다. 루터는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인정했으며, 신품성사, 견진성사, 혼배성사, 종부성사가 성경에 근거가 없으며 주님이 명하신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로마 가톨릭의 미사를 어떤 다른 교리보다 더 사악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세 번째 책,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하여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은 자유가 있으며,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으며,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루터는 이 책에서 진정한 자유가 어디에 있는지를 피력했습니다. 그 자유는 그리스도 안(in)의 자유이지 그리스도로부터(from) 자유가 아니라고 주장합니 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모든 것의 주인이 되며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랑으로 모든 것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되며, 그 믿음은 사랑과 모든 선행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야 하며, 이 선행은 선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독일어와 라틴어로 된 루터의 책들을 통해 종교개혁은 요원의 불길처럼 민중들 가운데 확산되었습니다. 1520년 10월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에게 파문예고장을 던졌고 보름스 회의에 출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그 파문예고장을 1520년 12월 10일 학생과 시민이 보는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불태우고, 그 이듬해 1521년 4월 루터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름스로 향했습니다. 필립 샤프의 말을 빌린다면 “루터는 황제로부터 호출통지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그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간주했고 병으로 들것에 실려 가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설령 죽음의 위협이 기다리더라도 보름스로 가겠다는 자신의 뜻을 밝혔습니다. 자신의 야망을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진실을 증거하려 함이 그의 동기였습니다. … 슈팔라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은 두렵지 않으며 더욱이 철회는 절대 있을 수 없으므로 모든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주 예수께서 자신에게 힘을 주실 것을 기도하였습니다.” 루터는 두려워하는 동료들에게 ‘비록 후스는 화형되었지만 진실은 타버리지 않았고 그리스도는 여전히 살아계신다’고 위로하며 보름스로 향했습니다. 루터는 보름스로 향하는 여정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신앙생활을 했던 아이스레벤의 교회에서 두 번에 걸쳐 설교를 합니다. 루터가 보름스에 도착해 마차에서 내리며 말한 첫 마디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였습니다. 4월 18일 보름스 회의에서 자신의 사상을 취소하고 교회의 권위에 순복하라는 트리어의 대주교 요한 폰 에크(Johann von Eck)의 질문에 하루의 여유를 달라고 하고는 그 이튿날 루터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성경의 증언에 의해 그리고 명백한 논증에 의해 논박되거나 정죄되지 않는 한-나는 교황이나 공의회의 권위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오류를 범하고 서로 모순되기 때문입니다-내 양심은 내가 인용한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정복당해 있고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박당해 있습니다. 나는 어떤 것도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양심에 어긋나는 이런 일을 행한다는 것은 옳지도 않고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 서 있는 나는 달리 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아멘

보름스 회의에서 루터는 진리 편에 선 한 사람이 얼마나 담대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오류를 범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얼마나 담대하고 용기 있게 맞설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죽음 앞에 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루터의 신앙양심 고백은 인류 문명사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귀로에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납치해 1521년 5월 4일부터 1522년 2월까지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겨둡니다. 루터는 이곳에서 융커 외르그(Junker Jörg)라는 가명으로 수도생활을 했습니다. 그는 이 기회를 하나님이 주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당시 로마 가톨릭이 사용하는 라틴 벌게이트 성경이 아닌 1519년에 발행된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 2판(1516년 초판)을 모본으로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기 시작했습니다. 루터는 누구나 쉽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당시 민중들이 사용하는 현대 독일어를 사용해서 불과 11주 만에 신약성경전체를 완역했습니다. 1522년 9월 루터는 멜랑톤과 스팔라틴의 도움으로 셉템버 테스타먼트라 불리는 신약성경을 출간하였습니다. 루터는 부겐하겐 (Johannes Bugenhagen), 요나스 (Justus Jonas), 크레우지게르 (Caspar Creuziger), 멜랑톤 (Philipp Melanchthon), 아우로갈루스(Matthäus Aurogallus), 그리고 뤼레르(Georg Rörer) 등의 도움을 받아 독일어로 구약전체를 완역해서 1534년에 신구약 전체를 간행했습니다. 루카스 크라나흐가 그린 생생한 삽화가 대중들의 심령에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루터 역 독일어 성경은 종교개혁의 불길을 프러시아를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촉매가 되었습니다.
루터 역 성경은 천재성과 학문성과 경건이 어우러진 걸작이었으며 필립 샤프의 표현을 빌린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열정으로 이루어진 역작이었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며 종교개혁의 가장 강력한 도구가 되었습니다. 라토렛의 표현을 빌린다면 루터의 독일어 성경은 킹 제임스 역본이 영국에 미친 것보다 더 강력한 영향을 독일에 미쳤습니다. 작센의 공작 게오르크, 바이에른 공작 빌헬름, 오스트리아의 대공 페르디난트가 자신들의 영지에서 루터의 독일어 성경을 판매하지 못하게 금했지만 성경에 대한 민중들의 갈증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루터가 성경을 교황과 사제의 손에서 민중의 손으로 옮겨주자 개혁의 불길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을 진정으로 가능하게 한 것은 루터가 번역한 성경이었습니다. 루터 역 이전에도 독일어 성경은 여러 역본이 출판되었지만 그 모두가 독일어 고어여서 대중들이 읽기 힘들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루터가 처음으로 현대 독일어(Early New High German)로 신약성경을 완역한 것입니다. 민중의 언어로 번역된 독일어 성경은 민중의 심령 깊숙이 파고 들었습니다. 루터의 독일어 성경이 출판되지 않았다면 종교개혁은 미완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성경 번역 후 1522년부터 1526년까지 루터는 중단하지 않고 종교개혁 관련 서적을 출판하며 종교개혁의 이상을 더욱 더 정교하게 다듬었습니다. 보름스에서의 황제의 칙령에도 불구하고 일단 시작된 루터의 종교개혁운동은 루터의 저술과 그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심지어 보름스 회의를 통해 큰 저항 없이 널리 확산되어 나갔습니다. 개혁운동은 1522-1523년 사이에 독일 전역, 작센, 튀링겐, 남독일, 티롤, 잘쯔부르크와 오스트리아의 인접지역, 모라비아와 헝가리, 프로이센, 네덜란드까지 번져 나갔습니다. 1524년과 1525년에는 슈트라스부르크, 뉘른베르크, 콘스탄쯔, 울름, 에스링겐, 마그네부르크, 슈트랄순트, 브레멘이 종교개혁 진영으로 바뀌었습니다. 얼마 후 루터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며 구약성경 번역도 완성해 1534년 신구약 독일어 성경을 출간했습니다.
이토록 강력한 개혁운동의 힘이 된 것은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사상이었습니다. 그 핵심 내용은 결국 크게 세 가지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성경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과 행위의 궁극적 기초이다.
둘째, 구원은 인간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셋째, 성직자와 평신도 사이에는 본래부터 구분이 없다.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은 ‘성경으로 돌아가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 만인 제사장 원리’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루터가 종교개혁의 원리를 어디에서 찾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해 나갔는지를 선명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루터가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표준으로 삼고 그것을 번역하고 그것을 설교하는 것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결국 종교개혁의 포문을 연 것은 바로 성경이었습니다. 루터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일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이 모든 것을 다 했습니다. … 나는 입을 다물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온 세계에 자유롭게 울려 퍼지도록 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하여 듣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루터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하나님의 항상 살아 있는 말씀은 종교개혁을 가능케 만든 두 개의 기둥이었습니다.
루터는 개혁의 기준을 성경에서 찾았고, 초대교회 교부 어거스틴에게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루터는 왜 중세교회가 타락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도 성경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루터는 당시 로마 천주교가 부패한 것은 천주교 교리가 성경에서 떠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교회 개혁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는 중세교회가 보여주듯 교리적 왜곡이 교리적 왜곡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오늘날 이단들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짐 존스의 인민사원의 자살사건과 구원파의 오대양 사건과 세월호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교리적 왜곡은 반드시 삶의 왜곡과 가치관의 왜곡을 낳게 마련입니다. 교리적 왜곡은 가치관과 삶의 왜곡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기독교 역사는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개혁 전야만큼 종교적인 시대도 드물었지만 그 때만큼 교회가 타락하고 부패한 시대도 없었습니다. 성경을 떠나자 종교적인 일을 하면서도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교권의 도구로 교회와 교인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면죄부로 구원을 사려고 했습니다. 성직 매매를 통해 자신들의 사익을 챙기며 종교를 자신의 이권의 도구로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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