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8.22 화 09:03
 
> 뉴스 > 부흥을 꿈꾸는 이들 > 칼럼 | 박용규교수
     
“가슴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1703 –1758)
미국이 낳은 가장 “탁월한 부흥운동 변증가”
2017년 02월 22일 (수) 12:25:52 박용규 교수
   
 
  ▲ 조나단 에드워즈  
 

 “가슴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1703 –1758),
미국이 낳은 가장 “탁월한 부흥운동 변증가”

 

“제게 있어서 그는 언제나 사도바울을 가장 빼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야 말로 사람들 중에서 아주 빼어났습니다.” 근대 영성의 아버지 로이드 존스가 한 말이다. 에드워즈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부흥설교가, 철학자, 신학자, 사상가였다. 그의 가장 큰 공헌은 미국 제 1차대각성운동이다. 학자들은 언제나 그에게 “가슴의 신학자,” “탁월한 부흥운동 변증가”라는 두 개의 별칭을 붙여주었다.


사후 2세기 반이 지났는데도 그는 여전히 수많은 영혼들을 사로잡고 있고, 기독교 계통의 단일 인물로는 가장 많은 연구논문이 출간되었다. 무엇이 시공을 넘어 에드워즈를 그렇게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말씀에 토대를 둔 탁월한 지성과 실천적 영성 때문이다. 지성과 영성이 그의 삶 전체를 지배했고, 주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더 나아가 미국의 문화, 정치, 사회, 그리고 종교사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1. 준비된 지도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1703년 10월 5일 커네티컷 이스트 윈저에서 11명 중 5번째로 출생했다. 그는 11명 중에서 유일한 아들이었다. 하바드 대학을 졸업한 그의 부친 디모디 에드워즈(1668-1759)는 윈저에 교회를 개척해 죽을 때까지 64년을 목회했다. 아들의 명성에 가리어 제대로 빛을 보지 못했지만 그도 대단한 인물이었다. 어머니 에스더 스토다드도 명문가 솔로몬 스토다드의 딸이다. 윈저에는 아버지가 시무하던 교회와 무덤, 자신의 출생지가 남아 있고, 디모디 에드워즈의 11대 외손 로버트 스타 3세가 고향을 지키고 있다. 윈저의 에드워즈 출생지 표지판에는 이렇게 씌여있다. “그는 미국의 첫 신학자요 철학자로 1703년 디모디 에드워즈의 아들로 출생했다. 17살에 예일대를 졸업하고 목사, 예일대 강사, 스톡브리지 선교사, 그리고 1758년 프린스턴대학 학장이 되었으며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외손자 아론 버(Aaron Burr)는 미국의 3대 부통령이 되었다.”


에드워즈는 1716년 13세로 예일대에 입학할 때 이미 헬라어, 히브리어, 라틴어를 마스터했다. 17세에 수석으로 예일을 졸업한 그는 석사를 마친 후 잠시 모교에서 강사를 하다 1727년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트가 시무하는 노댐프턴 교회 부목사가 되었다. 2년 후 스토다드가 세상을 떠나고 담임이 되었다. 노댐프턴 시내 중심가에 들어서면 눈에 띠는 우뚝 세워진 교회가 바로 그가 시무했던 교회였다. 그곳에는 그가 사용하던 의자가 남아 있고, 교회 벽에는 그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 조너선 에드워즈가 24년간 목회했던 미국 매사추세츠 주 노스햄프턴교회 전경. 노스햄프턴교회 예배당 내부 모습. 교회에서 에드워즈가 사용했던 의자(왼쪽부터 시계방향).

 

 

2. 하나님과 대면한 사람

에드워즈는 종종 하나님을 대면하는 특별한 영적 체험을 했다. 1737년 어느 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되신 성자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놀라운 은혜와 사랑, 그리고 온화하고 부드러우신 겸손을 보았다. 그 경험은 약 한 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에드워즈는 홍수 같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 높여 울었다. 이날 에드워즈가 하나님과 대면했던 특별한 영적 체험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체험이었다. 그날 그가 만난 “그리스도의 인격은 모든 사상과 지각을 삼켜버릴 만큼 대단했다.”에드워즈는 몇 차례 동일한 체험을 했고 그것이 가져다준 결과는 대단했다. 그리스도 그분만으로 충만하고, 거룩하며 순수한 사랑으로 그를 사랑하고 신뢰하며, 천상의 순수함으로 순결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에드워즈는 성령 하나님과 교통하는 체험도 했다. 이런 깊은 영적 체험을 통해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영광을 이해하는 지각을 갖게 되었다.

 

   
▲ 대표작 ‘신앙감정론’ 원본으로 사진은 국내엔 첫 공개다(왼쪽). 의자에 앉은 사람이 조너선 에드워즈의 부친 티모시 에드워즈의 11대 외손 로버트 스타 3세로, 지금껏 티모시 에드워즈가 설립한 교회를 돌보고 있다.

 

3. 제 1차대각성운동의 주역, 탁월한 부흥 변증가

에드워즈의 영적 체험을 더 한층 깊게 만들어 준 것이 제 1차대각성운동이었다. 1734-1736년, 1740-1742년 노댐프턴 교회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영원에 대해 무관심한 채로 남아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온 마을이 하나님의 임재로 가득찼고,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했고 거의 모든 가정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났다. ‘부모들은 자녀들이 거듭난 것으로 인하여 기뻐했고 남편은 아내가, 아내는 남편이 거듭난 것으로 인하여 기뻐했다.’ 많은 부흥운동 지도자들 중 단연 주역은 에드워즈였다. 뉴잉글랜드에서 그와 필적할만한 사람은 없었다. 에드워즈가 커네티컷 엔필드에서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이라는 유명한 설교를 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보수적인 회중교회 목회자들이 부흥을 반대하자 에드워즈는 부흥을 변호하는 변증서를 차례로 저술했다. 그는 <성령 사역의 두드러진 특징들, 1741>을 통해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사탄의 왕국에 맞서며, 성경의 권위를 높이고 진리와 사랑의 영으로 역사한다면 그 영은 확실히 성령이라고 변증했다. <뉴잉글랜드 부흥론, 1742>과 <신앙감정론, 1742>에서는 참된 부흥이 인간의 감성을 결코 무시하지 않으며 도덕적 증진을 가져다준다는 사실을 변호했다. 에드워즈만큼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의 부으심을 놓고 간절히 기도한 사람도 없다.

<비상한 기도를 촉진하는 겸손한 시도, 1747>에서 그는 성령이 모든 축복 가운데 최고의 축복으로 ‘모든 신령한 축복의 총화’이고, ‘참되고 영원한 행복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교회가 ‘영광스러운 성령의 부으심을 위해 열심을 다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이들 변증서는 당시 부흥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저술들이다. 놀랍게도 노댐프턴의 포브스 도서관에는 에드워즈가 시무했던 당시 처치 레코드와 이 모든 작품들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4. 대가를 지불하며 목회적 소신을 지킨 사람

에드워즈는 목회적 소신 때문에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오랫동안 관행으로 여겨온 느슨한 중도언약을 거부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는 성도들을 성찬에 금지시키자 강력한 반대가 이어졌다. 남자 성도 230명 가운데 207명이 그의 시무를 반대하는 바람에 그는 1750년 24년 섬긴 교회를 떠나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에드워즈와 가족들이 거주할 사택마저 빼앗았다. 에드워즈는 고별 설교에서 머지않은 장래에 목사인 자신과 교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설 날이 올 것을 환기시켜주었다. 엄격한 옛 ‘뉴잉글랜드 방식’이 포기되고 좀 더 개방적인 시대가 도래했다.


노댐프턴 교회에서 쫓겨난 에드워즈는 1751년 매세추세츠 스톡브리지에서 목회하면서 존 서진트가 하던 인디언 선교사역을 물려받았다. <의지의 자유>(1754), <참된 덕성의 본질>(1755), <원죄>(1758)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이 기간에 출간되었다. 1758년 2월 16일 뉴저지 대학(프린스턴 대학 전신) 학장에 취임한 에드워즈는 천연두 백신을 자원했다가 천연두 감염으로 그해 3월 22일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발전시키려고 한 “신구약의 조화”와 “구속사역의 역사”는 완성하지 못했지만 사후 그의 영향력은 시공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그가 생전에 남긴 저술과 미출간 원고들이 지금도 예일대 에드워즈 센터를 통해 계속 출판되고 있다.(*)

 

ⓒ 평양대부흥(http://www.1907revival.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오늘 : 1,973 / 전체 : 12,224,406
 

한국기독교사연구소 | 우) 121-884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76-32 | TEL 02)3141-1964 | FAX 02)3141-1984
Copyright by 한국기독교사연구소 기사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ㆍ복사ㆍ배포를 금합니다 | 문의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