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지남 제80권 제2집 (2013.6): 228-259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과 그것이 남긴 교훈
박용규(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신학지남 제80권 제2집 (2013.6): 228-259
 
목차
1.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 직후 파장
2. 10월 28일 재림론에 동조한 기성 교회들
3. 한국교회의 반성과 성찰
4. 92년 휴거설의 문제점: 거짓계시
5. 92년 10월 휴거설의 문제점: 재림시기
6. 기성교회의 대처 방안들
맺는 말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작금의 종말론은 엉터리일뿐 아니라 사회 병리 현상에 편승한 종교사기극이다. 그것도 ‘고등’ 사기가 아니라 ‘단순’ 사기에 불과하다. 희한한 것은 이러한 단순사기극에 놀아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있다.”
“사설: 극단적 종말론자들의 최후,” 기독교연합신문 1992. 8. 2.
 
“이번 휴거의 불발로 해서 시한부 종말론이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요, 기독교교리의 왜곡임이 실증된 셈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이러한 왜곡된 신앙이 초래하는 사회적 영향은 실로 막심하다. 비록 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긴 하지만 수천 명의 신도가 가산과 생업을 정리하고 가정을 버렸으며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 또한 고의적이던 혹은 스스로가 오류에 빠졌건 간에 이들 무고한 신도들을 신앙적으로 오도하고 혹세무민한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시대착오적인 呪術[주술]신앙이나 기도신앙의 극복을 위해서는 기성정통교단이 이들에게 종교적갈망을 충족시키고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설: 휴거 소동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1992년 10월 29일
 
1949년 진주에서 출생한 이답게(본명 李長林, 1947-)는 1967년 3월 감신에 입학했다가 중도에 학교를 중퇴했다.1) 그 후 생명의말씀사에서 근무하면서 1975년 3월 모 성결신학교 2학년에 편입해 졸업 후 성결교 계통의 군소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2) 어니스트 앵글리(Earnest W. Angley)의 <휴거>(Raptured: A Novel on the Second Coming of the Lord)를 번역하고 종말론과 관련된 책들을 출간하다 생명의말씀사를 나와 1989년 4월 19일 다미선교회를 조직하고 본격적인 포교활동에 나섰다. 점차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고 동조하는 목회자들이 늘어나고 그들이 소속 교단 노회에서 면직을 당하거나 제명을 당하자 그는 전국종말론목회자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정통교회에서 제명당한 목회자들을 규합해 나갔다.
92년 10월 휴거설은 이장림의 표현을 빌린다면 “열풍”이었다. 점차 수많은 사람들이 92년 휴거설에 빠져 들어가면서 그 파장과 피해가 심각했다.3) 1992년 8월 10일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진 아내문제로 비관하던 31살의 남편이 부모의 묘 앞에서 극약을 마시고 자살했다. 남편이 죽자 아내는 아예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데리고 산속 기도원에 들어가 집단생활을 했다.4) 어린 학생들 중에는 반에서 1, 2등을 하던 학생이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져 성적이 뚝 떨어지고 가출하는 일도 있었다.5)
가출, 학업중단, 직장포기가 비일 비재하게 일어났다. 피해는 이것만 아니었다. 대검찰청은 1992년 8월 12일 “시한부 종말론이 확산되면서 일부 신자들이 생업을 포기하고 가산을 교회에 헌납하거나 일부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학업을 중단한 채 가출하는 등 이른바 종말론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비화함에 따라 이에 대해 본격수사를 벌일 것을 전국일선검찰에 지시했다.”6) 검찰은 이장림에 대한 조사도 착수해 1992년 8월 그동안의 수사를 발표했다.7) 검찰은 이장림이 88년 8월부터 종말론을 설파하면서 “신도들로부터 지금까지 33억을 개인적으로 받아 관리해 왔음을 밝혀냈다.”8) 신자들이 휴거설을 믿고 바친 것이다.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이 불발로 끝난 그 다음날 10월 29일 다미선교회 총본부 본부장 이장림과 다미선교회 성도 일동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문에는 “기독교계와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었다. 사과문에는 “솔직히 시인” “머리 숙여 정중히 사과” “진정으로 용서를 빈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내용은 전혀 없다. 시인한다는 말도 했지만 자신들의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시인한다는 것이 아니라 물의를 일으키게 되었다는 것에 대한 시인이었다.9)
이장림는 1992년 11월 6일 첫 공판에서 이렇게 항변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지만 휴거가 있으리라는 저의 확신에는 변함없습니다. 더구나 신앙생활을 충실히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 법정에 서서 처벌을 받아야한다는 현실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습니다.”10) 그날 그는 또 이런 항변도 했다. “선교회를 설립한 이후 단 한 번도 신도들에게 헌금을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한 신도가 아파트를 팔아 헌금을 낼 때 무작정 사양하는 것은 그의 독실한 믿음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 임시로 보관만 했을 뿐입니다.”11) 재판장 서상규 판사가 “하나님으로부터 휴거계시를 받은 경험이 있습니까?”라고 질문하자 이렇게 답변했다.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종말론을 전파한 뒤부터 세계 각국에서 휴거계시를 받았다는 소식이 쇄도해 더욱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12) 종말론을 퍼트리지 않았다면 집단 가출 가정파탄으로 선량한 이웃이 피해를 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사의 질문에 대해서도 이렇게 항변했다. “설교를 하면서 직장을 포기하거나 가출을 하도록 강요한 적이 없습니다. 다미선교회는 그래도 다른 종말론교회에 비해서는 훨씬 온건하다는 점을 아셔야 합니다.”13)
그날 법정에 참석한 한 여신도는 “아무 죄도 없는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박해를 받다니 너무 억울합니다. 여러분 휴거는 반드시 옵니다.”14) 이 사건은 종교문제를 사법적으로 처리하는 공론화된 첫 사건이었기 때문에 한국사법사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언론이 보도한 대로 종교계의 반발을 우려해서인지 검찰은 “물욕물증(物慾物證)잡아 종교 안 다치고 사법처리”하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15) 이장림을 변호하는 변호인은 “신앙영역에 실정법 잣대로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고 검찰은 “여론호응 증거충분 공소유지 자신”을 확신했다.16)
그로부터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이 사건이 한국교회에 미친 여파는 너무도 지대했다. 지금도 한국교회는 그 후유증으로 깊은 상처를 입고 있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직통계시를 주장하고, 신유와 투시와 예언이 난무하고 있으며 천국과 지옥을 직접 보고 체험했다고 외치며 순진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다. 본고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과 그것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데 목적이 있다.
 
1.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 직후 파장
 
휴거설 바로 전날인 1992년 10월 27일 서울의 다미선교회 선교부총무라고 신분을 밝힌 한 남자는 “국내에서는 11만 6천여 명이 휴거할 것이며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들의 무덤 3백 70만개가 갈라질 것”17)이라고 주장했다. 확신에 찬 외침이었다. 92년 10월 28일 휴거설에 빠져든 이들 가운데는 반신반의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중독환자였다. 1992년 10월 28일 밤 12시 예수님의 공중 재림을 예고한 그 시간 사람들이 지역의 장소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남 광주에서도 그랬다. 10월 28일 휴거설을 믿는 신자들이 8시가 되자 서구 봉선동 다성교회(趙南浩목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회 안에는 휴거 축원을 담은 프랭카드가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그곳에 모인 2천여명은 저녁 9시부터 기도하며 휴거준비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 목사는 ‘휴거 몇 분전, 몇 분전’ 목청을 높이며 기도의 열기를 돋우었다. 10월 28일 24:00가 지나자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고 일부 신자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으며 조 목사 역시 4-5분이 지나자 단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일부 초신자들이 단상에 올라 강하게 항의했고, 집회 현장은 피해자들의 고함과 욕설이 난무하는 아수라장으로 돌변했다. 휴거불발 후 아수라장으로 변한 집단 휴거를 고대하던 집회 장소에는 신발 책가방 성경 찬송 온갖 옷가지 풀어진 손목시계가 흩어져 있었다. 그 중에는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어느 학생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었다:
 
“D-12 꾸준한 신앙, 끊임없는 기도가 중요. 남은 12일 동안 최선을 다해 공력을 쌓자. … 10월 28일 주님은 꼭 오신다.”
“D-1. 내일이면 휴거한다. 야호!! … 우리 휴거 믿는자들은 동시적으로 휴거. 10월 28일 11시 59분까지는 이단 취급. 10월 28일 12시에는 영광의 휴거.”18)
 
어린이 같은 순순한 학생의 휴거신앙을 읽을 수 있다. 입시지옥의 상황에서 학생들에게 휴거는 대단한 축복이었을 것이다. 공부에서 해방되어 지옥 같은 대학진학을 위한 관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이날 휴거 불발 후 잠시 자취를 감췄던 조 목사는 항의에 이끌려 탈진한 모습으로 단상에 나타나 이렇게 자신의 심경을 토로했다. “참으로 착잡합니다. 목회를 계속할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시한부 종말론은 다시 등장하지 못할 것입니다.”19) 하지만 그는 취재진에 이렇게 자신을 변호했다. “28일 24시 주님의 재림에 대해 확신을 갖고 기다렸는데 주님이 오시질 않아 죄송할 뿐이다. …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성도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주어 죄송할 따름이고 휴거의 약속은 기독교의 약속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꼭 오실 것으로 믿는다.”20)
그는 이미 이 문제로 예장통합 전남노회에서 목사면직을 당한 상태였다. 그래도 그 현장에 목사가 지키고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다. 광주 학동 새소망교회 주종호 목사는 10월 28일 24시가 지난 후 곧바로 자취를 감추었다. 참으로 무책임하기 이를 데 없다. 휴거 불발로 교회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는데도 질서를 책임져야 할 목회자가 보이지 않아 피해는 더욱 심했다. 그 외에도 기장 측에 소속된 초대교회, 통합 측에 소속된 다성교회 모두 1992년 10월 휴거설에 동참했던 교회들이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광주의 한 교계 신문이 표현한 대로 당시의 상황은 “광란·허탈·대립·끝”으로 집약할 수 있다.
1992년 10월 28일 24시 휴거설은 너무도 많은 파장을 일으켰다. 휴거는 거짓으로 판명되었고, 휴거설이 불발로 끝난 후 다미선교회는 선교회를 해체하고 휴거헌금을 반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34억 3천 9백여 만원의 헌금을 자신의 명의로 은행 등에 보관해온 이장림은 검찰에 “휴거가 불발로 끝남에 따라 신도들로부터 받은 헌금을 되돌려 주겠다”고 밝혔고, 장만호 목사를 비롯한 교회 간부들이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장림을 찾아가 논의 끝에 다미선교회를 해체하기로 결정했다.21) 이어 일부 신도들이 휴거헌금 반환소송을 제기했고,22) 이장림 목사를 사기죄로 고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2. 10월 28일 재림론에 동조한 기성교회들
 
이들이 받았다는 계시와 계시의 답지자들은 처음부터 문제가 심각했다. 성령의 하나됨의 역사, 거룩한 주님의 재림을 맞는 성숙한 모습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다미선교회가 시작한지 1년 6개월 후인 1990년 11월 다미선교회 안에는 내분이 일기 시작했다. 하방익이 인침을 받아야 될 것을 주장하면서였다. 이장림과 뜻이 맞지 않은 하방익 부모는 그를 데리고 서울 송파구석촌동에 다베라선교교회를 세우고 다미선교회와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얼마 후 하방익은 “계시가 틀리다”며 “다미선교회와 전혀 상관없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창하는 데는 동일했다. 다만 휴거일이 서로 약간 달랐을 뿐이다. 이어 권미나 부모 역시 신림동에 성화교회를 세워 독립했고 진군으로 알려진 김원진도 다미선교회 태동 1년 만에 사임했다.
결국 다미선교회는 계시의 주체들이 각자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고, 자신들이 정통임을 주창하고 나섰다. 이후에 생겨난 아류들 역시 자신들만이 참된 구원의 반열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탈퇴 후 서로 자기들만의 모임이 정말 구원의 모임이라는 자가당착현상을 보이고 있으며 또한 이후 여기저기서 예수님이 92년 10월에 온다는 집단의 아류가 자생했는데 그들 역시 모두가 자기들만이 구원의 방주에 탄 것이며 다른 92년을 외치는 집단은 악령이 씌여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23)
이런 상황에서 기성교회가 어떻게 반응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0월 28일 휴거설이 절정에 달하고 있을 때 기성교회가 침묵만 지키고 있지 않았다. 1992년 9월 22일 토요일 열리는 교회 (조성래 목사)는 서울역 광장에다 “시한부 종말론자들에게 속지 말자”는 프랭카드를 설치해 놓고 “이단들에게 속지 말라”는 전단지를 배포하며 각성을 촉구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교회들이 안온하게 대처했고, 기존교회들이 이들 시한부 종말론자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부흥회를 열기도 했다. 심지어 정통신학을 공부했다는 목회자들 중에서도 1992년 10월 재림론에 동조하는 목회자들이 적지 않았다. 총신대 신학원을 졸업했다는 동작구 사당동 샬롬선교회 최병권 목사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입신에 들어가 계시를 받았다며 1992년 10월 10일 이전에 예수가 공중에 재림하신다고 주장했다.24) 총신에서 받은 교육이 무색하게 된 셈이다.
이미 1990년 하반기에 접어들어 서울화신교회, 승천교회, 인천반석교회, 온누리교회, 부산정금교회, 성화선교교회, COC(Come On the Cross)선교회. 한국중앙교회, 포항중앙교회 등도 1992년 10월 휴거설을 설파했다. 당시 시대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아도 1992년 10월 재림론의 문제점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었다. 퍼시콜레의 비서였던 J씨는 퍼시콜레가 교회에도 나가지 않는 거짓 목사라고 폭로하는 등 이장림이 그렇게 자주 인용하며 자신의 휴거설의 결정적인 근거로 삼았던 퍼시콜레의 진실성이 심각한 의심을 받은 상태에서도 휴거설은 시들지 않았다.25) 1992년 5월 6일 북한에 가서 8월 26일 순교한다는 진군의 계시도 완전히 빚나갔고, 심지어 1992년 10월 9일 자정 휴거설을 주창했던 다베라선교회 휴거 계시가 불발로 끝나 하방익의 계시가 거짓계시라는 사실이 명백하게 밝혀진 상태였는데도26) 그렇게 많은 기성교회가 이장림의 1992년 10월 28일 24시 휴거설에 동조했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신학부재가 낳은 결과였다. 한 교계언론이 지적한 대로 휴거설을 주창하거나 동조하는 이들이 신학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이 소속되어 있는 교단적인 문제는 탈퇴 또는 제명이나 불충실한 노회에 소속되어 있고 신학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고 목사가 된 이도 있어서 교계의 교파간의 바른 정비도 요청되기도 한다.”27)
실제로 당시 중 3학생이던 부산성화선교교회 권미나는 1990년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서울 YMCA에서 요한계시록 및 종말론을 강의하며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창했다. 그녀의 계시는 이장림이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창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3. 한국교회의 반성과 성찰
 
92년 10월 휴거설이 불발로 끝난 후 많은 일간지들은 하나 같이 다행히 큰 불상사 없이 지나갔다고 안도했다. 그러나 분명히 한 것이 있다. 여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또 종말론에 대한 바른 성경적 가르침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의견도 개진했다. 뿐만 아니라 종교의 사회적 책임도 제기했다. 중앙일보는 1992년 10월 29일 “휴거소동이 남긴 교훈”이라는 사설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휴거를 기대했던 신도들에게는 실망이 컷겠지만 이 기회에 터무니 없는 교리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무모하고 허망한 것인가를 깨달았다면 좋은 교훈이 됐으리라 믿는다.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말하는 종말이란 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최후의 심판이다. 현세의 믿음과 선악에 상응하고 사후의 화복을 약속하는 것은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는 일반적인 종교교리의 공통된 내용이다. 그러나 그것은 신의 섭리에 의해 역사하는 것일 뿐 인간의 힘이나 지혜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 언제 일어날지는 하느님만 아실뿐 인간이 인위적으로 그 시기를 예측한다는 것은 이단적인 행동으로 정통교단은 보고 있다. 이번 휴거의 불발로 해서 시한부 종말론이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요, 기독교교리의 왜곡임이 실증된 셈이다.
특정 종교집단의 이러한 왜곡된 신앙이 초래하는 사회적 영향은 실로 막심하다. 비록 극히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긴 하지만 수천 명의 신도가 가산과 생업을 정리하고 가정을 버렸으며 재산을 교회에 헌납하는 등 부작용이 잇따랐다. 치안당국의 면밀한 대처로‘휴거’당일에 예상되던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히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이 여기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생업을 잃었거나 가산이 결딴나고 가정이 파괴된 신도들에 대해서는 이들이 정상적인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급하다. 또한 고의적이던 혹은 스스로가 오류에 빠졌건 간에 이들 무고한 신도들을 신앙적으로 오도하고 혹세무민한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문책도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이 시대에 우리에게 종교란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해 본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건 광신적인 呪術[주술]신앙이나 기도신앙 집단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첨단과학문명이 지배하는 후기산업사회에서의 종교란 각자가 스스로 선택한 신을 믿음으로써 현세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선을 실천하여 현세의 화평과 내세의 구원및 영생을 추구하는데 그 의의와 존재가지를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종교는개인의 행복은 물론 사회의 평화와 안녕에 기여하게 된다. 내세의 복락만을 위해 현세의 일체를 포기하거나 사회안정을 해치는 신앙은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이기주의적 광신일 뿐이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呪術[주술]신앙이나 기도신앙의 극복을 위해서는 기성정통교단이 이들에게 종교적 갈망을 충족시키고 안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사회정의가 실현되고 올바른 가치관이 확립돼 국민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28)
 
비록 톤은 점잖았지만 기성교회에 깊은 자성을 촉구하는 비판적 글이다. 이단에 대해 기성교회가 제대로 대처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사회적 책임을 구현하지 못하는 종교는 민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할 것이라는 강한 경고가 이면에 함축되어 있다. 휴거를 외치다 아니면 말고 라는 식의 무책임한 모습은 없어야 했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집단생활을 하며 재림을 준비하는 것은 정상이 아니다. 이장림은 자신이 가출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지만 주님이 재림하셔서 휴거를 받아야 한다는데 어떻게 가만있겠는가.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 학생들에게 왜곡된 종말신앙을 심어주어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면 그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이미 1992년 10월 28일 이전에 이에 대한 우려와 경고가 있었다. 많은 언론들과 신학자들이 92년 10월 휴거설의 허구를 지적했다. 시한부 재림론이 최고 정점에 달하던 1992년 10월 1일 지방의 한 일간지는 “아무 일도 없을 10월 28일과 그 후유증”이라는 제목으로 휴거불발과 그것이 미칠 사회적 파장을 깊이 우려했다.
 
그동안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온 10월 28일의 비밀 휴거설은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날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나타날 후유증이다. 오지도 않은 늑대가 왔다고 외쳐 동네 사람을 불러 모으는 장난을 거듭하다가 정작 늑대가 왔을 때는 아무도 달려오지 않아 결국 피해를 입은 이야기 속의 양치는 소년 격이 되기가 십상이다.29)
 
92년 10월 종말론이 사회적 관심을 더 끌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국제종교문제연구소 탁명환 소장이 종말집회 비난 유인물을 배포하고 귀가 중 휴거 예정일 바로 그 시간 즈음인 1992년 10월 29일 이른 새벽에 잠복한 30대 2명의 흉기에 찔려 중상을 입은 사건이었다.30)
 
4. 92년 휴거설의 문제점: 거짓계시
 
가장 심각한 문제는 92년 10월 휴거설이 근거로 삼고 있는 계시문제이다.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하늘의 비밀이라는 직통계시에 대한 언급이다. 종말론과 관련된 지금까지의 국내외 이단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성경의 충족성(Sufficiency of Scripture)을 믿지 않고 특별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했다는 사실이다. 2세기 몬타누스와 그를 따르는 막시밀라(Maximilla)와 프리스킬라(Priscilla)가 페푸자(Pepuza) 마을에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수많은 이들을 미혹한 후31) 수많은 이단들이 새계시(New Revelation) 곧 거짓계시를 빙자해 사람들을 현혹시켜 왔다. 거짓계시는 종말론에 집중되었고 그 중심은 주님이 재림하실 “그날과 그 때”였다. 지난 2천년 동안 그날과 그 때를 산정하려는 노력들이 끊임없이 있어왔다. 이장림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교회사에 나타난 이단운동처럼 이장림의 92년 10월 휴거설도 그 근본적 발단이 계시문제였다. 1989년 6월호 다미선교회 뉴스레터는 “공개되고 있는 하늘의 비밀”이라는 소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마지막 때 하나님은 아이들에게 마지막 비밀을 공개하고 계신다. 이 아이들을 통한 성령의 일하심이 실제로 드러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떤 한 사람에게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여러 계층, 다양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말씀을 하고 계신다. 현재 다미선교회에 보고 되고 있는 사역자는 국내외 400여명이 된다. 국민학생, 중·고·대학생, 대학교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그들 중 여러 아이들은 순교의 계시(사명)를 받아 놓고 있다. 이미 이들중 많은 아이들에게 보내진 메시지가 <다가오는 미래 시리즈>를 통해 알려져 있으며 그들은 성경말씀과 기도와 증거를 통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32)
 
아직 공개되지 않은 광주남국민학교에 다니는 4학년 부경이 6학년의 미선이 자매를 소개하고 있다. 미선이가 예수님과 나눈 다음과 같은 대화가 실려 있다.
 
“네가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너를 데리러 가겠다.”
“저 생명수 강을 보라”
“생명강이 다 차면 네 가족을 데리러 간다.”
“때가 급하다. 전도하라, 때를 알리라.”
 
이장림은 아이들이 받은 계시가 신뢰할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1988년 올림픽 전에 <현대종교>와의 인터뷰에서 그 주변 사람들이 받은 계시내용을 그대로 반복했다. 1992년 5월에 북한의 문이 열리고 남북한 상호교환이 시작되다 8월부터 북한문이 닫히고 박해가 시작되고 순교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1992년 휴거가 있을 것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바로 아이들이 받은 계시라고 밝혔다.
 
하나님께서 계시를 통해 직접 가르쳐 주신다. 계시는 본인에게 직접 내릴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어린아이들을 통해 전해 듣는다. 어린아이들은 영적으로 순수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수시로 듣고 그 계시를 절대적으로 믿는다.33)
 
이장림은 아이들의 계시와 천국과 지옥에 대한 간증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장림이 이들 아이들의 계시에 근거해서 1992년 10월 휴거설을 주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또 퍼시 콜레의 간증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퍼시콜레의 천국 간증을 믿는가라는 질문에 이장림은 이렇게 답했다.
 
그렇다. 나는 아직 천국에 가보지 않았지만 그가 다녀왔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다. … 만일 ‘콜레 박사의 그 엄청난 보고가 예수님에게 받은 계시가 아니고 그가 교인들을 우롱하려고 지어낸 상상물이라고,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그만한 것을 상상해 낼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고 싶다.34)
 
우리가 퍼시 콜레와 관련된 이장림의 위 평에서 주목하는 것은 그가 콜레의 <내가 본 천국> 내용을 계시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자신이 계속해서 간행하는 다미시리즈도 계시적 기록임을 밝히고 시작한다. 1권 <다가올미래를 대비하라> 1장 “마지막 시대를 위해 예비된 젊은이”는 진군의 계시스토리를 담고 있다. 이글 서두는 계시로 시작한다.
 
오늘날 이 땅에 하늘의 메시지를 계속 받고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당신은 믿으시겠는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계시(啓示)라고 한다. 비밀에 속한 것을 펼쳐 보이는 것(revelation)을 말한다. … 계시는 자기 암시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만 미래를 알게 되는 경우이다. 그 방법은 환상을 통해 보여준다든지 하늘의 음성을 직접 들려준다든지 하늘의 사자(天使)를 보내 지시 내지 명령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 경우엔 기도나 묵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언제나 하늘의 창이 열려 있음을 의식하게 되고 신비스러운 영적 파동을 느끼면서 초월적 존재(超越的存在)와 접하게 된다. …
계속 하늘의 메시지를 받고 있는 청년 … 그가 환상을 보고 계시를 받기 시작한 것은 금년[1988] 2월 27일부터이다. 그에게 있어서 계시는 하나님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 두 천사는 매일 그와 대화를 하고 질문에 답변을 해주기도 하며 때로는 책망과 훈계도 하고 계시도 주고 어떤 지시를 내리는 때도 있다.35)
 
이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그 다음 장 “계시와 예언의 신빙성”도 계시스토리로 이어졌다.
 
나는 어제도 진군이를 만났다. … 그가 매일 받고 있는 계시가 엄청나서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이 불가능하다. … 그에게는 인류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역사적 계시가 주어져 있었다. … 36)
 
이 책 전체의 핵심은 진군이가 받았다는 계시다. 그는 후기에서 이런 고백도 한다. “진군이의 계시 스토리를 좀더 많이 소개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의 계시 사역(啓示使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콜렛 박사처럼 그의 계시도 단순보고(simple report)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계시 스토리에 대한 신빙성을 의심할 수가 없다.”37) 심지어 이장림은 이런 말도 했다. “진군이의 이 계시에서 나는 또 한번 놀라운 것을 발견하였다 … 그 때 그 때 받은 것만 적어 두는데 내가 그것을 분석해 보면 추호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종말론 프로그램에 맞아 들어간다. 정말 놀랍고 신비스러울 정도이다. 이것은 그에게 하늘의 마지막 메시지를 주고 계시는 분이 우주 역사를 다스리시는 정확무오(正確無誤)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다.”38) 한 마디로 진군의 계시가 신뢰할 수 있는 계시라는 주장이다.
이장림은 계시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주변의 사람들의 계시가 하나님이 주신 비밀의 계시라며 이렇게 항변했다: “사도시대로서 하나님의 이적과 계시는 끝났다고 말하며 계시는 무조건 마귀가 준 계시라고 부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말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 구약시대와 사도시대에 계시를 주신 하나님께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때에 사랑하는 신부들에게 깨어 준비하도록 계시해 주시는 것이 뭐가 잘못되었다는 말입니까?”39)
이장림은 자신의 저술 역시 묵시적 동기에서 펜을 들었다고 주장한다: “잠시 하늘이 쥐어 준 펜을 아쉬운 마음으로 놓는다. … 어느날 갑자기 묵시적 동기(默示的動機)가 있어서 펜을 들었으나 이렇게 빨리 책이 나올 줄은 몰랐다.”40)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전 이장림은 이런 이야기도 했다. “하나님께서는 계시를 통해 서울올림픽이 성공적으로 치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41) 그는 또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계시를 통해 알았다고 주장한다.
 
“콜레 박사에 의하면 아담 이전에 인간 창조가 있었다는데?”라는 질문에 이장림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사실이다. 나도 계시를 받았는데 아담 이전의 인간을 보여주셨다. 아담 이전의 인간의 모습은 현대인보다 두 배나 큰 키에 배가 불쑥 튀어나오고 턱은 삐죽 나왔으며 등이 엉거주춤하게 굽어 있는 유인원 같은 것이었다.”42)
 
여기서도 이장림은 자신의 주장이 계시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한다.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가인이 아담의 곁을 떠나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할 때 그곳 여자와 결혼했다는 것으로 증명된다고 주장한다.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이중창조론의 핵심 가르침 중 하나다. 이것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오리겐이다. 그 후 수많은 이단들이 이중 창조론을 받아들였다. 한국의 김기동은 대표적인 케이스다. 적지 않은 교역자들과 평신도들이 김기동의 베뢰아 아카데미를 이수한 후 그의 영향을 깊이 받아 이중창조론을 주장했다. 이장림이 직통계시를 주장하며 자신의 휴거설을 주창하기 시작할 때인 1987년에는 김기동의 베뢰아 사상이 한국교회에 범람하고 있을 때였다.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기독교 신학은 물론 성경의 가르침과도 배치된다.
우리는 이장림의 글을 통해 그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계시는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둘째, 순진한 젊은이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종말에 대한 비밀의 계시를 계속해서 내려주시고 있다. 셋째, 그 계시는 이성적으로 판단해도 정확하게 맞는 것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이다. 넷째, 따라서 자신의 저술에서 밝히는 계시의 내용들은 현실로 이루어질 것이다. 다섯째, 그러므로 계시 스토리를 기록한 이 책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92년 10월 휴거계시를 역사적 기독교가 말하는 계시관에 비추어 평가할 필요가 있다. 계시는 무한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에게 인간이 하나님을 알고 그와 사귈수 있도록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의미한다.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밀라드 에릭슨(Millard J. Erickson)의 말대로 “일반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시대의 모든 장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전달하는 것”43)이다. 일반계시는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을 전달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장림이 말하는 계시가 일반계시를 지칭한다고 할 수 없다.
이장림이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계시란 마지막 종말에 대한 구원사역과 관련된 특별계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이장림 자신도 성경으로 계시가 종결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항변한 것이다. 우리는 그의 계시관이 정통교회에서 말하는 계시관과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역사적 기독교는 특별계시에 근거한다. “특별계시는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드러내심으로써 사람들이 그와 구속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헨리 디이슨(Henry C. Thiessen)의 말대로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구체적 표현이다.”44) “성경은 그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계시일 뿐만 아니라 그 계시의 무오한 기록이라고 주장한다.”45) 성경 외에 하나님의 영감에 의한 기록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존재할 필요도 없다. 찰스 핫지(Charles Hodge)가 지적한 대로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 외에 그와 같은 권위를 갖거나 그것을 능가하는 하나님에 의한 영감된 성경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46)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에서는 특별계시의 기록으로서 성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1. 자연의 빛과 창조와 섭리의 일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지혜와 능력을 사람들이 핑계할 수 없을 정도로 나타내 보여 주지만, 그것들이 구원에 필요한 지식, 즉 하난미과 그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여러 모양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자기의 뜻을 자기교회에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는 사람들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사악함에 대비하여 진리를 더 잘 보전하고 전파하며 교회를 더 호가고히 하게 하고 위로하시기 위하여 보이신 진리를 기록하도록 하셨으니, 그럼으로써 성경이 지극히 중요한 책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해 주시던 옛날 방법들은 중지되었다.
4. 우리가 마땅이 믿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는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진리 자체이시고, 그 저자이신 하나님께 근거한다. 이와 같이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성경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5. 우리는 교회의 증언을 듣고 감동을 받아 성경을 높이 보고 존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성경은 말씀의 거룩함관 능력 있는 가르침, 장엄한 문체, 모든 부분이 서로 서로 호응하는 일체성을 보여주고, 성경 전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인간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을 충분히 제시하고 있는 것뿐 아니라, 그 밖에도 유례가 없는 탁월함과 완전함은 성경이 그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임을 입증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더욱이 성경이 오류가 없는 진리이며 신적 권위를 가졌음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확신하는 것은, 우리 마음속에 말씀에 의하여 말씀을 가지고 증언하시는 성령의 내적 역사로 말미암는다.
6.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구원, 그리고 믿음과 삶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온 경륜은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거나 혹은 성경으로부터 추론함으로써 필요한 좋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성경에는 영의 새로운 계시든, 사람들의 유전이든, 어느 때나 아무 것도 첨가될 수 없다.47)
 
성경은 신앙과 행위에 있어서 정확무오한 법칙이며 따라서 최종적인 권위를 지닌다. 다시 말해 성경은 신앙의 절대적 기준이요, 표준이라는 의미다. 역사적 기독교는 지난 2천년 동안 성경이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장림은 이상한 주장을 반복 한다. 성경을 “기록된 계시”로 축소시키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소위 자신들이 받았다는 계시를 성경의 권위와 동격 혹은 그 이상으로 두고 있다. 성경이 밝히지 않는 비밀의 계시를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 주변의 수많은 계시 답지자들을 통해 드러내고 계시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금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지 않고 기록된 말씀에만 국한 시키는 행위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문자화된 성경 말씀만 믿겠다며 이런 계시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예언과 계시는 이미 1세기로 끝났다며 이런 책을 쓰거나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을 오히려 우습게 여기고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계시 시대(啓示時代)가 끝났다며 강단에서 치는 설교를 하기가 일쑤다. 그러나 무엇인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 … 만일 계시가 1세기로 끝나 버려서 오늘날에는 기록된 말씀 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혀 말씀하실 수 없다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하다. 하나님을 기록된 말씀에만 국한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죽은 신이 아니다. 옛날처럼 여전히 살아계셔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이런 하나님을 부정하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직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없다고 해야 좋을 것이다.48)
 
이장림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오늘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성경은 기록된 말씀이 죽은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혼과 영과 관절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갠다고 말씀하신다.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이 지음을 받았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고 말이다. 그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살아 역사하신다. 살아계신 그분은 성령으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개혁주의 신학 원리 가운데 하나는 성령은 독자적으로 역사하시지 않고 성경을 통해 성경과 더불어 역사하신다는 사실이다. 성경을 신뢰하는 것처럼 하면서 실제로는 성경을 떠나 혹은 성경 외에 다른 계시를 주장하는 것은 성경의 완전성, 충족성, 최종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이단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5. 92년 10월 휴거설의 문제점: 재림시기
 
또 하나 넘어갈 수 없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재림 시기이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여기서 인자도 과연 그날과 그 때를 모르셨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은 전혀 없다. 주님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의 권한에 두셨다고 승천하시기 전 다시 강조하셨다. 그런데 이장림은 주님이 그날과 그 때를 모르실리 없으며 인간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그 때를 알 수 있다는 성경구절도 많이 있다며 제시했다.49) 이장림은 그날과 그 때를 언급하면서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후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인간의 지혜와 지식으로 주님이 오실 때를 누구도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또한 억지로 알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여 그 때를 말했다가 빗나간 예는 많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면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려주시며 알 수 있다는 구절이 많이 있습니다. …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노아홍수가 나기전에 노아에게 계시하셨고 소돔성이 멸망하기 전에 롯에게 알려주셨듯이 인류역사상 가장 충격적이고 장엄한 사건이 될 휴거를 앞두고 휴거 될 사랑하는 신부들에게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휴거의 때를 알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 지금도 기도하는 수많은 하나님의 종과 성도들에게 92년 10월 28일 24시에 휴거가 있음을 계시로, 환상으로, 꿈으로, 음성으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알려주시고 계십니다.50)
 
이처럼 이장림은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했다. 과연 인간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는가? 초대교회 교부들, 종교개혁자들, 19세기와 20세기 정통신학자들은 하나 같이 그날과 그 때를 인간이 알 수 없다고 단언한다. 마태복음 24장 36절을 인간이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해석하는 신학자는 단 한명도 없다. 이상근은 그의 마태복음 주석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했다. “재림의 시기의 작정은 성부의 직무에 속하고 성자는 그 날에 재림하셔서 심판하시는 것이다. 신자의 직무는 성자를 믿고 그 날의 구원을 대망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요지는 신자들이 그 시기를 알려하지 말라는 것이다.”51) 개혁파 복음주의 신학자 헨리 디이슨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를 언급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는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셨다.(막 13: 32) 그리고 그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라고도 말씀하셨다(행 1:7) … 만약 재림사건의 시간이 아예 처음부터 명백하게 선언되었더라면 교회는 깨어 주의(注意)하는 자극제를 잃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시간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항상 깨어 있게 되었던 것이다.52)
 
칼빈은 마태복음 주석에서 주님의 재림 시기를 예상하거나 추측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우리가 감히 주님이 임할 그날이 언제인지 물어서는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종말과 관련하여 우리 인간들의 영역은 그날과 그 때를 준비하는데 있지 그날과 그 때를 아는 것에 있지 않다. 그런데도 이장림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그날과 그 때에 집착했다. 심지어 정통교회에 속한 이들까지 그 미혹에 빠져들어 갔다. 앞으로도 그 미혹은 계속될 것이다.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려 했던 루시퍼의 교만이 타락한 인간 속에 남아 있는 한 사탄은 계속해서 거짓계시를 빙자해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사람들을 부추길 것이다. 역사가 너무도 분명하게 교훈을 주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고 또 그런 미혹에 넘어갈 것이다. 그래서 헤겔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고 목청을 높였는지 모른다.
이단들과 사이비 집단의 거짓 미혹의 향연은 마약보다 무섭다. 중독성이 강하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사탄의 장난이기 때문이다. 교주들이 문제가 생기면 자신들의 가르침을 포기하겠다고 표면적으로는 말하지만 실제로 이단교주들이 정통신앙으로 돌아온 사례는 거의 없다. 여전히 거짓 영에 사로잡혀 자신들의 주장이 성경적이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조론과 종말론은 이단배출의 창구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가장 많은 이단들을 배출하는 교리가 창조론과 종말론에서 시작되었다. 그 중에서도 재림론은 이단들이 자신들의 거짓계시를 정당화시키는 창구역할을 했다. 승천하신 주님이 다시 재림하신다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정통신앙이다. 가장 성경적인 교리를 가장 왜곡시킨 역사가 기독교 2천년의 역사였다.
기독교 2천년의 역사 속에 재림과 휴거를 주장했던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지만 한 번도 맞은 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처음은 아니었다. 1930년대부터 한국교회 안에 있었고 195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만 4차례, 70년대에 3차례, 80년대에 2차례, 90년에 접어들어 1차례, 그리고 92년에만 다섯 차례나 있었지만 모두 빗나갔다. 게다가 92년 10월 휴거설은 처음부터 미심적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휴거 날자가 서로 달랐다. 92년 9월 28일, 10월 10일, 10월 28일 다양했다. 하방익이 인침을 받아야 휴거할 수 있다며 천국티켓을 발부할 때 이미 계시를 빙자한 종교 사기극은 예견되었다. 100개중 99개만 맞아도 안될 휴거 계시가 맞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장림의 <하늘문이 열린다>의 결정적인 근거였던 진군의 순교 계시도 빚나갔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해야 구원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92년 10월 휴거설자들은 자신들의 집단에서 휴거를 준비해야 들림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휴거를 위한 공적을 쌓기 위해 재산을 마치는 현상까지 등장했다. 그리스도의 재림이라는 아주 성경적인 가르침을 성경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왜곡시킨 것이다.
92년 10월 휴거설의 심각한 문제는 수많은 이단들을 배양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10월 재림론이 불발로 끝난 후 한 신문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썼다.
 
한번 시한부종말론같은 이단이론에 맛들인 사이비목회자들은 결코 정통교단으로 되돌아오지 못합니다. 이들은 한동안 잠적했다가 사회에서 잊혀질 만하면 또 다른 사이비교단을 만들어 파고들기 시작합니다.53)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져든 목회자들은 그렇다 치고 그 가르침에 빠졌던 일반 신도들의 경우는 또 어떤가. 과연 기성교회로 그들이 돌아올 수 있는가? 돌아왔는가? 사실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여러 가지 정황을 고려할 때 부정적이다. 당시 10월 휴거설에 빠졌다 헤어 나왔다는 사람들의 고백과 간증이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우려적 기록도 상당하다. 10월 휴거설이 불발로 끝난 뒤 이렇게 고백한 이도 있다. “올해에는 꼭 오실 거랍니다. 제게 몇 차례나 체험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날짜가 하루 이틀 틀린 게 무슨 상관입니까.”54) 이단 사상에 한번 물든 사람은 정상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다. 광신자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기성교회로 돌아와도 정착하는 비율이 극히 낮다.
 
많은 종말론 신자들은 지난 몇 년간의 휴거 준비예배와 집단훈련을 통해 나름대로 휴거를 확신하는 영적 체험(?)을 했다고 믿는 중증환자들이다. 그들이 영적계시라고 주장한즌 이런 환상 환청을 심리학자들은 집단체면효과라고 분석하고 있고, 정통교단에서는 성령이 아닌 마귀의 사악한 영이 보여준 ‘거짓 계시’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휴거 소동이 있던 날도 이들 광신도들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보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이들은 사악한 마귀가 천사들의 해진을 방해했다고 주장하거나 날짜가 틀려도 상관없다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시한부종말론에 빠졌던 신자들의 30-40%는 자신들이 속했던 정통교단으로 복귀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악한 영에 오염됐던 이들의 영혼은 좀 체로 이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또 기성교단 측에서도 다른 신자들의 믿음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지 못한채 결국 건전한 신앙인으로 복귀하는 비율은 5%도 채 안될 것으로 보고 있다. … 나머지 50-60% 신자들은 정통교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무신론자가 되거나 허탈감으로 인한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심한 자기 혐오증과 사회부적응으로 정신이상 현상을 보이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복귀가 된다해도 수년의 세월이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55)
 
위 기록을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는 좀 더 검토해야 하겠지만 일단 받아들인다면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졌다 기성교회로 다시 돌아와 정착하는 이들이 극소수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교회를 등지게 되었다고 평가 할 수 있다.56)
평신도들만 아니라 목회자들 중에 92년 10월 휴거설에 깊이 물들어 버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심지어 소속 교단에서 목사면직을 당하면서도 잘못된 가르침을 고수했다. 다미 시리즈를 읽거나 그들이 개최된 집회에 참석했다 영향을 받은 정통교회 목회자들이 드러나지 않지만 너무도 많았다.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이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한번 거짓 계시에 물든 이들은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고, 숨어 있다 제2, 제3의 휴거설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오늘날 92년 10월 재림론과 유사한 형태의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이단 사상들이 난무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비록 과거 이장림처럼 노골적으로 드러내 놓고 포교하지 않더라도 정통교회 강단에서 직통계시를 빙자한 예언이 난무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92년 10월 휴거가 남긴 후유증이 생각보다 심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6. 기성교회의 대처 방안들
 
그렇다면 어떻게 기성교회가 92년 10월 휴거설이나 유사한 사상을 미연에 대처하거나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가? 더 심도 있는 연구를 통해 차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기회를 갖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제시하려고 한다.
첫째, 바른 신앙교리를 가르치는 일이다. 역사적 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는 기독교 교리 교육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오늘날 기독교 교리 교육이 사라지고 있다. 옥한흠의 제자훈련 교재의 3분의 1이 기독교 교리다. 바른 교리를 가르쳐 신앙의 분명한 골격을 세워주는 것이야 말로 교인들 스스로 이단에 대처할 능력을 배양해 주는 첩경이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완수해야 할 매우 시급한 과제다. 원죄는 아담의 타락에서 시작되었고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십자가에서 출발한다. 인류의 첫 조상이 아담임을 부인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미 이장림은 1988년에 아담 이전에 인간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하였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다시 살리는 길은 교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다. 만약 별도의 시간을 내서 가르칠 수 없다면 설교 시간을 이용해서라도 성경적 바른 교리를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단에 쉽게 빠져들 것이다.
둘째, 바른 계시관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 이상규 교수가 지적한 대로 은사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오늘날의 은사를 계시 혹은 계시의 보충적 증거로 받아들인다.57) 적지 않은 이단들이 오늘날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믿고 새 계시 혹은 새 예언을 주장한다. 이들은 새 예언이 “‘보다 높은 영적 은사’(a higher gifts)이며 이것은 종말의 때를 위한 보다 발전된 계시로서 성경이 침묵하는 부분에 대한 해명과 성경계시에 대한 보충적 증거(supplementary evidence)라고 생각한다.”58) 그러나 새계시가 정경적 위치를 점할 수 있다는 개방적 정경관은 역사적 기독교 신앙과 배치된다: “성경만이 유일한 규범(Regulae Fidei)이며 정경이다. 이런 점에서 사적 계시는 그것이 꿈(Dreams)이든 환상(Visions)이든 예언적 신탁(Prophetic oracles)이든 상관없이 기록된 성경의 권위를 우선하거나 대신할 수 없다.”59)
거짓계시는 가장 성경을 사랑하는 것처럼 가장하지만, 마치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하는 것처럼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왜곡시켰던 것처럼 거짓계시는 성경권위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가르침을 역사적 기독교가 받아들일 수 없는 다른 복음이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장림만 아니라 근래 범람하고 있는 무분별한 예언적 환상과 계시, 신사도운동, 천국과 지옥 체험 신드롬 등 유사한 신앙운동이 위험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나님은 기록된 성경계시의 가감을 분명히 금하셨다.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60)
 
오늘날 직통계시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 존재할 필요도 없다. 성경이 기록된 후 더 이상 특별계시는 계속되지 않는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여러 모양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고 자기의 뜻을 자기교회에 선포하시기를 기뻐하셨다. 그리고 그 후에는 사람들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사악함에 대비하여 보이신 진리를 기록하도록 하셨으니, 그럼으로써 성경이 지극히 중요한 책이 되게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의 뜻을 자기 백성에게 계시해 주시던 옛날 방법들은 중지되었다.61)
 
여기 계시가 중단되었다는 말은 일반계시가 중단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구약 시대 하나님께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던 이전의 방법들을 중단하셨다는 의미로 “성경(정경)의 완성과 더불어 객관적 계시(objective propositional revelation)가 중단”62)되었다는 의미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성경의 충족성, 완전성, 최종성을 분명히 천명한 것이다. 만약 성경계시의 연속성을 주장하거나 종말에 대한 직통계시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역사적 기독교가 받아 줄 수 없는 거짓계시에 불과하다. 오늘날 계시를 빙자한 예언이 난무하고 있지만 모두가 사기극이다. 계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지만 미래적인 일을 함부로 남발하는 사례도 오늘날 한국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완성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은 개인에게 성경 외에 특별계시를 개별적으로 주시지 않는다. 성령의 조명과 계시는 다르다. 성령께서는 은혜의 수단 하나님의 말씀, 기도, 성례를 통해 지금도 역사하시지만 그 성령의 역사를 계시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깨달음과 감동은 계시와 다르다. 오늘날의 환상, 꿈을 계시라고 해석해서도 안 되고 계시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그 꿈과 환상은 맞을 수도 있지만 틀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만약 하나님의 계시라면 100개 중 하나라도 틀려서는 안 된다. 정확무오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가 틀린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별계시는 성경으로 종결되었다. 평신도는 물론 목회자들 중에서라도 성경 외에 어떤 특별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이단이다.
셋째, 주님의 재림 일자,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새계시”(New Revelation) 즉 거짓계시를 주장하는 이들은 요한복음 16장 12-13절 “성령이 오시면 …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를 인용하며 그날과 그 때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주님은 그날과 그 때를 언급하면서 인자도 천사도 모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만 아신다(마 24: 36)고 말씀하셨고,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라고 다시 확인시켜주셨다.
그날과 그 때는 하나님의 영역이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날 혹은 성도들의 휴거일을 계산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존재했지만 모두 거짓으로 드러나고 말았다. 미혹의 영은 92년 10월 휴거설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부추겨 주님의 재림날을 지정하며 성도들을 미혹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절대 빠져서는 안된다. 만약 누가 계시를 빙자하거나 성경의 예언기록 해석을 통해 휴거일을 주창한다면 그것은 이단이다. 지금까지 계산이 맞은 적이 없다. 세대주의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세대주의를 따르면서도 건전하고 건강한 신앙을 가진 이들이 참으로 많다. 세대주의가 휴거일이나 재림날자를 지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시한부 재림론자들이 세대주의를 왜곡시켜 시한부재림론으로 만들어 간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날과 그 때가 아버지의 권한에 있음을 인정하고 그 날과 그 때를 준비하는 일이다. 주님의 때가 가까웠다고 해서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제자들은 이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 것이라.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63)
 
넷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92년 10월 재림론을 연구하면서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재림날 혹은 휴거일을 지정하면서 직통계시, 노스트라다무스, 무화과비유 성취 등 많은 것들을 근거로 인용하면서도 성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고 계시를 말하면서도 삼위일체에 대한 이해도 초보적인 단계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섯째, 가장 근본적인 성경적 구원관을 바르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교회는 구원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교육시켜야 한다. 정통신학자들 중 휴거를 믿는 이들은 성경에서 휴거를 거론할 때 그것은 성도들의 휴거이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휴거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다시 말해 구원이 전제된 휴거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휴거설이 난무했다. 92년 10월 종말론에 빠져든 이들 가운데는 교회에 한 번도 가본적도 없고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적도 없고 그저 종말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합류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구원은 한탕주의가 아니다.
여섯째, 신앙생활의 기준은 환상, 계시, 예언, 투시 같은 신비적 체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한다.
일곱째, 평신도들은 건강한 교단에 소속된 교회, 정통교단으로 인정받는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목회자 섬기는 교회를 찾아야 한다. 이단 교주 가운데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있다면 단 한 사람 짐 존스 뿐이다. 그도 자유주의 감리교 신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적인 신학교육을 받으면 이단에 쉽게 빠질 수 없다. 무자격 목회자가 오늘날 한국교회를 망쳐놓고 있다. 무인가 신학교 무자격 신학교에서 무자격 목사를 배출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92년 10월 재림론에 빠져들어 이장림 휴거 프로그램에 동조했던 이들 가운데 전국에 수많은 ‘교회’를 설립해 전도사로 목사로 행사한 이들이 참으로 많았다. 너무도 많은 무자격 목사를 배출한 셈이다.
 
맺는 말
 
글을 마무리하면서 한 가지 제기되는 질문이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쉽게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져들어 갔을까 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분명히 밝혀주지 않거나 침묵하고 있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다는 비밀의 공개에 많은 사람들이 현혹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다. 묵시적 종말론이 불신자들에게도 상당히 지배적이었던 한국적인 상황에서 성장한 사람들에게는 천당과 지옥을 믿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스도인이던 아니던 마찬가지다. 죽음을 보지 않고 에녹처럼 엘리야처럼 들림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죽음의 공포를 피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는 최대의 소망이다. 그런데 죽음을 보지 않고 휴거할 수 있다고 하니 이 보다 더 좋은 희소식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92년 10월 휴거설에 빠져든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표적과 체험을 중시하는 신앙성향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가장 큰 문제는 표적을 구하는 이적의 신앙이다. 표적 신앙인들은 가장 심도 있는 신앙인들처럼 보이지만 가장 초보적인 이들에게 찾을 수 있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가장 복음을 왜곡시키기 쉬운 이들이 바로 그런류의 신앙의 사람들이다. 바울은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고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나 우리는 십자가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고백했다. 기독교 2천년의 역사는 기독교를 지식의 종교로 혹은 표적의 종교로 믿고 추구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다. 특별히 한국교회는 선민의식이 강하고 스스로 믿는 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들을 은근히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면에서 유대민족과 유사한 민족성과 역사를 지니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유독 표적을 너무도 구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한다. 환상을 보거나 방언을 하거나 예언을 하거나 계시를 받았다거나 병을 고치거나 어떤 기적을 체험하는 일에 쉽게 미혹하는 경향이 강하다. 박태선이 성령이 임한 모습이라고 조작한 성령사진에 사람들이 쉽게 넘어갔고, 예언과 투시, 신유나 방언을 차원 높은 신앙의 경지로 해석하고 받아들였다. 92년 10월 휴거설에 조잡하기 이들 데 없는 성령사진들, 인침표, 천국과 지옥 간증에 너무도 쉽게 기성교회 교인들과 목회자들마저 빠져들어 갔던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주님은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을 향해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경고하셨고, 손에 못자국을 만져봐야 믿겠다는 도마를 향해서는 네가 보고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자는 복되도다고 말씀하셨다.
신앙의 중요한 열매는 성령의 역사에 의한 성품의 변화와 변화된 신앙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삶의 열매이다. 성령의 은사를 강조하는 한국교회는 성령의 열매가 없는 성령의 은사는 온전한 성령의 결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동시에 강조해야 할 것이다. 부흥의 주역으로 쓰임 받은 많은 인물들은 성령의 충만을 받고 그들의 성품과 가치관과 세계관이 달라지는 인격적 변화를 경험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이 그들의 성품의 변화를 보고 감동을 받고 더욱 더 부흥과 성령충만을 사모하게 되었다.
주님을 닮아가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살아가면서 도적 같이 임하실 주님의 재림을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바른 재림신앙이다. 주님은 분명 재림하실 것이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며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날과 그 때가 언제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주님은 약속하신 대로 재림하실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깨어 주님의 때를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들이나 경건하게 살았던 이 땅의 믿음의 선배들처럼 우리 생전에 주님이 재림하실 것이라는 재림신앙을 가지고 믿음의 삶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주님이 여기에 오신다, 저기에 오신다고 해도 미혹되지 말라고 경고하셨고, “혹 영으로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64)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오늘날 수많은 이단들이 홍수처럼 난무하고 있는 이 때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성경적 기독교를 회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후주]
1) 본고에서는 편의상 널리 알려진 이장림으로 통일한다.
2) 성결신학교 2학년에 편입하면서 그가 써낸 신앙간증서에 자신의 과거 행적이 담겨있다. “다미 이장림씨 불량배였다,” 시사토픽 1992. 11. 11. 이 학교는 1992년 당시 없어졌다.
3) “공부도 먹고살 걱정도 없다” 중앙일보 1992년 10월 30일.
4) “종말론 아내 비관 가장 자살,” 국민일보 1992. 8. 29.
5) “10월 28일 휴거일 떠도는 부산,” 동아일보 1992년 6월 13일.
6) “‘시한부 종말론’ 본격수사, 동아일보 1992. 8. 13, 23.
7) “‘신앙’빙자 반사회행태 제동,” 국민일보 1992년 9월 24일.
8) “종말론 이장림씨 영장,” 국민일보 1992. 9. 24.
9) “사과문 기독교계와 국민께 드리는 글” 동아일보 1992. 10. 29.
10) “휴거 계시 없었지만 확신” 동아일보 11월 7일.
11) Ibid.
12) Ibid.
13) Ibid.
14) Ibid.
15) “수갑찬 휴거의 허구,” 국민일보 1992. 9. 25.
16) “휴거헌금 사기최적용 쟁점,” 동아일보 1992. 11. 5.
17) “오늘밤 철야 휴거예배” 국민일보 1992. 10. 28.
18) “10.28 휴거설 교회 이모 저모,” 기독교광주저널 1992. 11. 1.
19) “29일 0시 15분” 국민일보 1992. 10. 29.
20) “10.28 휴거설 교회 이모저모,” 기독교광주저널 1992. 11. 1.
21) 동아일보 1992. 11. 2.
22) “휴거헌금 첫 반환소” 동아일보 1992. 11. 7.
23) “휴거 … 그 허구의 실상을 해부해 본다,” 기독선교신문 1992년 6월 29일.
24) 기독교연합신문 1990. 11. 4.
25) Ibid.
26) “오늘 휴거 집회 긴장,” 국민일보 1992. 10. 9; “아무 일도 없었다,” 국민일보 1992년 10월 10일; “18세 소년에 농락당한 ‘거짓휴거’” 국민일보 1992. 10. 12.
27) 기독교연합신문 1990. 11. 11.
28) “사설: 휴거 소동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1992년 10월 29일.
29) “[1992] 10월 28일 휴거설 무엇이 어떻게 왜 잘못 되었는가?” 영남일보 1992년 10월 1일.
30) “휴거비판 탁명환씨 피습,” 1992년 10월 29일 국민일보 ;“탁명환씨 심야 피습 중,” 중앙일보 1992년 10월 29일.
31) 박용규, <초대교회사>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4), 202-26을 참고하라.
32)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 뉴스레터 1호 (1989년 6월), 4면.
33) 월간 현대종교 편집부 편, <이초석 이장림의 정체> (서울: 국종출판사, 1992), 17. 이 책의 내용은 이미 <현대종교>에 실렸던 글들을 정리 편집하여 출간한 것이라 내용은 시기적으로 출판일보다 앞선다.
34) Ibid., 18. 퍼시 콜레 천국과 지옥 간증이후 1987년 경 이장수 박영문 박현 성경애 이경순 옥화 등 천국간증이 범람하고 있었다.1) 홍의봉의 천국 시리즈 <내가본 천국>, <천국의 비밀>, <천국의 증언>이 발간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모든 것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퍼시 콜레의 <내가 본 천국>이다. 이장림의 다미 시리즈에는 콜레의 <내가 본 천국>이 마치 텍스트처럼 인용되고 있다. 이장림은 콜레의 <100가지 천국비밀>도 번역했을 정도로 콜레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다음을 참고하라. “범람하는 천국간증” <현대종교> 1987년 9월, 30-41.
35) 이장림, <다가 올 미래를 대비하라>, 12-13.
36) Ibid., 17.
37) Ibid., 245-246.
38) Ibid., 247.
39) <당신은 도적 같이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계십니까?>(서울: 다미선교회, 1992), 62.
40) 이장림, <다가올미래를 대비하라>, 244-45.
41) 월간 현대종교 편집부 편, <이초석 이장림의 정체>, 18.
42) Ibid.
43) 밀라데 J. 에릭슨, <복음주의 조직신학 서론·신론> 신경수 옮김 (일산: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5), 175.
44) Henry C. Thiessen, Lectures in Systematic Theology, 組織神學講論 권혁봉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3), 127.
45) Ibid., 134.
46)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Vol. I, reprinted (Grand Rapids: Eerdmans, 1989), 157.
47) “제 1장 성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김영재, <기독교신앙고백>(수원: 영음사, 2011), 617-718.
48) 이장림, <하늘문이 열린다> (서울: 다미선교회출판부, 1988), 118-119.
49) 이장림이 자주 인용하는 성경구절은 다음과 같다: 욜 2: 28, 암 3: 7, 렘 33: 3, 마 13: 11, 마 16: 3, 눅 10: 21, 21: 34, 요 16: 13, 살전 5: 4, 계 3: 3 등이다. 이들 성구 중에 어떤 성구들도 주님의 재림날을 알려주시겠다고 하신 구절은 없다. 이장림은 심지어 마귀도 알고 있는 때를 신앙을 기다리는 신부들 성도들에게 알리시지 않고 도적 같이 임하셔서 신부를 당황하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그 때를 알 수 없는가?” <당신은 도적 같이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38-39.
50) <당신은 도적같이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서울: 다미선교회, 1992), 38-39.
51) 이상근, <신약주해 마태복음> (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교육부, 1980), 343.
52) Henry C. Thiessen, <조직신학강론> 권혁봉 역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3), 739.
53) “다미 이장림씨 불량배였다,” 시사토픽 1992년 11월 11일.
54) Ibid.
55) Ibid.
56) 92년 재림론에 빠졌던 사람들의 수는 보통 2만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중 5%가 기성교회로 돌아오고 10%가 그대로 남았다고 가정할 때 85%가 교회를 떠나거나 등진 것이다. 그 수자는 무려 17,000명이나 되는 셈이다. 공교롭게도 이 숫자는 1995년부터 2005년 사이 개신교의 교세 감소 숫자 144,000명과 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
57) B. Yocum, Prophecy: Exercising the Prophetic Gifts of the Spirit in the Church Today(Ann Arbor: Word of Life, 1976); I. C. Stanton, Has God Said? A Record of Prophetic Promptings to our Generation(L. A.: International Church of the Foursquare Gospel, 1980); D. Gee, Concerning Spiritual Gifts(Radiant Books, 1980)을 참고하라. 이상규,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거짓 계시운동,” 119.
58) 이상규,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거짓 계시운동,” <현대종교>, 119.
59) Ibid., 121.
60) 요한계시록 22: 18-19.
61) “제 1장 성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김영재, <기독교신앙고백> (수원: 영음사, 2011), 617-718...
62) 이상규, “한국교회사에 나타난 거짓 계시운동,” <현대종교>, 120.
63) 데살로니가후서 2:1-4.
64) 살후 2장 2절.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7.12.14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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