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만난 조선의 마게도니아 사람, 이수정

일본에서 만난 조선의 마게도니아 사람, 이수정

미국 장로교 선교본부는 1884년 7월 28일 언더우드를 한국을 위한 최초의 선교사로 임명하는데 합의하고 그를 한국으로 파송하였다. 언더우드는 바로 한국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본에 도착해 헵번 선교사의 집에서 한국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국 선교를 위한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때 일본에서 만난 조선 사람이 이수정이다.

이 만남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발견하게 된다. 일본에 도착한 언더우드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준 것도 이수정이지만, 언더우드가 선교사로 올 수 있었던 것도 이수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수정은 1842년 전남 곡성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처음에는 민영익의 서생을 하다가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무사히 피신시킨 공로로 왕실의 두터운 신임을 받게 되었다. 그는 1881년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다녀온 친구 안종수로부터 발전된 일본의 모습과 농학자이자, 일본 기독교 지도자인 쯔다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일본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다. 때마침 동경 외국어 대학의 한국어 교사 제의가 들어오게 되자, 그는 고종에게 요청하여 일본 수신사로 가는 박영효 일행의 비공식 수행원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배가 요코하마 항에 다다르자, 한 눈에 펼쳐진 개화된 일본은 그에게는 신세계와 같은 곳이었다. 이수정은 쯔다젠을 만나 선진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 자리는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로 바뀌게 되었다. 쯔다젠은 조선에서 온 이수정에게 한문으로 된 신약성경 한권을 건네주었다. 워낙 호기심이 많은 그였기에 처음에는 학자적 관심으로 성경을 읽기 시작했으나, 곧 말씀의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그는 마태복음을 좋아했는데, 예수의 족보를 보고 기독교를 뿌리 있는 종교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882년 12월 25일 쯔다젠의 인도로 동경 축지교회 성탄예배에 참석했을 때 이수정은 특별한 영적체험을 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다음 해 4월 29일 동경 노월정교회(현, 시바교회)에서 야스카와 목사로부터 세례를 받게 되었다.

동경시내에 위치한 시바교회(당시 노월정교회)

최근에 언더우드와 이수정의 발자취를 찾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였다. 그리고 요코하마로부터 동경까지 그의 행적을 샅샅이 찾아 다녔다. 마침내 이수정이 세례를 받았다는 노월정교회에서 이수정의 자료를 구체적으로 찾을 수 있었다. 교회의 역사 자료집을 보던 중 1883년 4월 29일 세례자 명단에서 이수정이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수정 한 사람 뿐이었다. 시바교회에서는 당시 이수정과 일본 지도자들과 찍은 사진도 잘 보관하고 있었다. 자랑스러운 기록이 아닐 수 없다.

이수정의 복음영접은 당시 일본에 머무르고 있던 선교사들에게 큰 격려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이수정이 일본에서는 제법 이름이 나 있었고, 한국 사회에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전해 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로는 요코하마의 한 상인이 이수정 과자를 만들어 팔았는데, 요코하마와 공경에서 꽤 인기 있었다고 하니, 이수정의 인기를 새삼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언어능력에 탁월한 실력을 보였던 이수정은 재일 미국 성서공회의 총무 루미스로부터 성경번역을 제안 받게 되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성경번역에 최선을 다하게 되고, 이윽고 1885년에 순 한글 성경인 마가복음이 출판되었다.

현 요코하마 중국상가가 위치한 이곳에서 이수정의 마가복음이 인쇄되었다.
이수정은 한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성경번역만으로는 이 일이 역부족임을 깨닫고 한국에 선교사가 보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이수정은 사도행전을 읽던 중 바울을 부르는 마게도니아인을 보고 감동을 받아 자신이 조선의 마게도니아인이 되기를 서원하였다. 그는 조국을 향한 선교적 열망으로 미국에 한국 선교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내게 되고, 이 편지는 1883년 12월 13일 미국 선교지인 [The Missionary Review]에 실리게 되었다. 기사를 읽은 미국인들은 감동을 받게 되었고, 이로부터 시작된 조선선교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되면서 선교본부 내에 선교정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언더우드가 한국선교사로 지명된 것이다.

이수정의 하나님에 대한 열심은 한국선교의 디딤돌이 되었을 뿐 아니라, 일본에 온 언더우드가 그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그가 번역한 성경을 가지고 한국선교를 하게 되었으니 이는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자료출처: 박귀용 목사의 "믿음으로 떠나는 여행", 누가성지교육원 출판사].

  • 기자명 관리자
  • 입력 2006.10.1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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