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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타오르고 있는 인도 부흥의 불길
강력한 성령의 역사, 그 놀라운 부흥의 불길
2007년 01월 06일 (토) 23:11:41 박용규

1905년과 1906년 사이 인도에서 강력한 부흥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 때문에 몸부림치며 괴로워했으며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모두 큰 소리로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했다. 오전 6시에 시작된 주일 집회가 자정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인도 부흥의 진원지는 아삼 주 카시 제인티아 힐(Khasi Jaintia Hills)이었다. 이곳은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와 비슷했다. 전형적인 몽골리안의 외모, 수많은 구릉지대, 구불구불한 시골 도로, 소나무 숲, 그리고 신앙의 정서와 부흥을 사모하는 열정에 이르기까지 한국과 닮은 데가 많았다.


인도 부흥의 진원지 카시아 마이랑(Mairang)까지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 싱가폴에서 델리로, 델리에서 아삼주 수도 구와하티로, 다시 구와하티에서 메갈리아 수도 실롱까지, 그리고 실롱에서 목적지 마이랑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길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참으로 놀라웠다.


성경이 가르치고 기독교 역사가 증언하고 있는 부흥이 그곳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100년 전이 아닌 바로 지금. 인도 부흥 100주년을 맞는 2006년 4월 마이랑 장로교회에서 처음 타오르기 시작하더니 곧 마이랑 교회를 넘어 마이량 전역으로 다시 메갈라야 수도 실롱으로 확산되면서 카시아 전역의 교회들이 부흥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매일 저녁 교회마다 기도회가 열리고 있고, 과거 소수만 모여 기도하던 것이 이제는 교회가 사람들로 가득 넘치고 있다. 신앙을 등지고 교회를 떠난 이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고 있고, 주일 예배에 사람들이 차고 넘치고 있으며, 죄에 대한 깊은 각성과 인격적인 변화가 개인과 교회 공동체 가운데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월 31일 저녁 실롱에 있는 한 장로교회에 도착했을 때 목사와 장로,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장년이 함께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다. 


인도 부흥은 인도장로교 총회 관계자, 그곳의 여러 목사, 장로, 평신도들이 증언하고 있고, 심지어 불신자들도 인지하고 있었다. 세계 30여 곳의 부흥의 현장을 돌아보았지만 인도 카시처럼 부흥이 과거가 아닌 바로 지금 우리 가운데 놀랍게 임하고 있는 것을 목도한 것은 처음이었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 하나님께서 이 땅에 부흥을 주시려는 깊으신 섭리처럼 느껴졌다.


카시에서는 1841년부터 웨일즈 칼빈주의 감리교 선교사들이 입국해 부흥의 불을 지피고 있었다. 1903년 중앙 아삼의 모플랑(Mawphlang)의 한 카시(Khasi) 교회는 카시 지역과 인도 전역에 성령이 임하시도록 매주 월요일 저녁에 기도회를 가졌다. 


이들은 19세기 말부터 인도 부흥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영국, 미국, 호주에 보냈다. 서신을 받은 호주 멜버른 목회자들과 평신도들, 시카고의 무디성경학교와 무디교회, 케직사경회 참석자들은 인도와 전 세계의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다.


1904년에 접어들면서 기도의 열기가 더욱 강해졌고, 카시족 그리스도인들은 웨일즈 모 교회에서 일어난 부흥 소식에 크게 고무되었다. 카시에서도 그와 같은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들은 1905년 초 하나님께서 부흥을 허락하실 때까지 매일 밤 기도회를 가졌다. 기도회는 보통 10시나 되어야 끝날 정도로 그 열기가 대단했다. 특히 남녀 청년들이 열심이었다.


이후 18개월 동안 카시 지역 교인들은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1906년 3월 첫 주 주일예배 때 “성령세례”에 관한 설교가 있을 때 청중들 가운데 통회, 찬양, 성령의 임재가 강하게 나타났다. 같은 날 파리옹(Pariong)에서 열린 노회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놀랍게 임했다.


3월 둘째 주 주일저녁예배 때 “온 회중이 울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두 명의 카시 설교자가 “아주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했음에도 처음에 별 반응이 없던 청중들 가운데 성령의 역사는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예배가 끝난 후 담임목사가 축도하려고 하자 회중 가운데 한명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이렇게 외쳤다. “오 하나님, 지금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소서. 웨일즈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많은 축복을 하시면서 우리를 공수로 돌려보내지 마옵소서!”


이 일 직후 마치 뇌관에 불을 당기 듯 온 회중이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며 큰 소리로 우는 사람도 있었고 개중에는 기절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녁 식사 시간도 잊은 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다. 드디어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카시에서 솟아올랐다. 사모하는 곳에 부흥이 임한다는 사실이 여기서도 그대로 입증되었다.


1905-6년 인도 카시에서 일어난 성령의 역사는 카시 구릉지대, 루시아 구릉지대, 그리고 평야 지역의 마을들로 널리 확산되어 나갔다. 1906년에 접어들어 북부 카시의 영적각성은 나우공(Nowgong), 골라그하트(Golaghat), 십사고르(Sibsagor), 라킴푸르(Lakimpur)를 비롯하여 아삼의 북동부로 확산되어 나갔다. 부흥의 불길은 북부 브라마푸트라 계곡과 브라마푸트라 남쪽 침례교회로 확산되더니 거기서 다시 남쪽 및 남동쪽 나가(Naga) 구릉지대로 옮겨졌다.


부흥의 소식은 남쪽에 살고 있던 루사이(Lushai) 구릉지대에 사는 미조족(Mizos)들에게도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부흥을 사모하는 장로교 7명과 침례교 3인 합 10명이 2주간 정글 속을 걸어 나와 카시아족 총회에 참석하고 돌아가는 도중 작별을 아쉬워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을 때 성령께서 갑작스럽게 그들 가운데 임하셨다. 근처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열기는 더욱 고조되었다. 이후 성령의 역사가 미조족 가운데 놀랍게 확산되었다.


카시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은 아삼과 메갈라야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곧 묵티와 펀잡으로, 다시 인도 동남부와 남동해안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동남부에서는 타밀라드 주 마드라스 시와 타밀라스 전역이, 남동해안에서는 안드라 프라데시(Andhra Pradesh)가 그 중심지였다.


하나님의 영이 온 회중 가운데 눈에 띠게 역사하셨다. 마을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는 바람에 거리가 한산했다. 밀림 지대의 어느 마을에서는 사람들이 옥외 집회에 참석하느라 큰 시장이 텅 비기도 했다.


참된 부흥이 그렇듯이 카시 부흥 역시 개인의 각성이 사회변혁으로 이어졌다. 밀림 속에서 태양빛도 제대로 보지 못한 가운데 술에 취해 살아가던 이들이 주님을 만난 후 새로운 피조물로 바뀌었다. 술을 팔던 여인이, 또 늘 술에 취해 살던 한 노인이 은혜를 경험하고 옛 생활을 청산했다. 어떤 마을에서는 아편에 중독되어 살던 마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일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피부병에 시달려 오던 한 여인이 부흥집회에 참석했다 깨끗하게 치료받는 역사도 나타났다.


부흥 이후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욱 사랑으로 결속되었고, 빚을 지지 않으려 했으며 빚을 진 사람들은 속히 그 빚을 갚았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려는 강한 소원, 헌금에 대한 열의가 이전보다 월등하게 높아졌다. 특히 인도의 카스트 계급의 사람들이 부흥운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무엇보다 교세가 급신장했다. 인도 북부지역의 경우 부흥운동으로 수많은 새 신자들이 교회로 영입되었고, 카시에서만 8천명이 주께로 돌아왔다. 1900년과 1905년 사이 사역자가 2배로 늘어났으며, 1905년과 1910년 사이에 그 수가 다시 배로 성장했다. 군투르(Guntur)의 미국 루터교는 부흥운동으로 18,964명의 교세가 40,198명으로 급증했고, 하이데라바드(Hyderabad)의 도르나칼 지역에서는 일 년에 3천 명씩 30년간 세례를 베풀 만큼 지속적으로 교회가 성장했다. 확실히 1906년 인도부흥은 20세기에 접어들어 나타난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다. 100년이 지난 지금 그 놀라운 부흥의 불길이 그곳에서 또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마치 과거 1906년 9월 한국을 방문한 존스톤에 의해 카시 부흥 소식이 한국에 소개되어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발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처럼 2006년 인도 부흥 소식은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에 부흥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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