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즈업 코리아― 박용규교수의 부흥현장을 가다] (15) 북아일랜드 아호힐·켈스

기사입력 2006.07.26. 오후 3:14

 

1859년 북아일랜드에서 세기적인 놀라운 부흥이 임했다. 북아일랜드 부흥이 일어났던 1859년은 윌리엄 깁슨이 ‘은혜의 해’(the Year of Grace)로 명명했을 만큼 전설적이다. 북아일랜드 얼스터의 작은 마을 켈스에서 시작된 이 부흥은 1859년 6월29일 4만명이 참석한 가운데 벨파스트 보타니 가든에서 열린 집회에서 절정에 달했다. 부흥의 불길은 놀랍게 곧 스코틀랜드와 웨일스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859년 부흥의 역사적 현장을 찾아 북아일랜드로 향했다. 부흥이 가장 활발하게 시작된 북아일랜드 얼스터 지역. 이 중에서도 얼스터 부흥의 진원지 볼리메나의 아호힐과 켈스에서 직접 1859년 북아일랜드 부흥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 세기를 대변하는 부흥의 현장을 찾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이지젯 항공기에 오른 것은 지난 1월 중순이었다. 역사적 현장을 찾아가는 나의 마음은 무척 설렜다. 

우리 일행이 단숨에 달려간 곳은 1859년 북아일랜드 부흥의 진원지 얼스터의 켈스였다. 미국 전역에서 기도회 운동을 통해 부흥이 일고 있던 1857년 9월 이에 자극 받은 4명의 아일랜드 청년들이 얼스터 엔크림 카운티,코너의 켈스라는 작은 시골 학교에서 매주 기도회를 가졌다. 이들은 아일랜드 교회에 놀라운 성령의 부으심이 임하도록 간절히 기도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북아일랜드 얼스터 지역과 벨파스트 전역을 불태운 놀라운 부흥이 임했다. 

우리 일행이 그곳을 찾아갔을 때 아일랜드 부흥의 불씨가 된 학교 건물에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놀랍게도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그 건물에 살고 있는 60대 여인은 우리에게 1859년 북아일랜드 부흥 이야기를 담은 비디오 테이프를 보여주며 4명의 젊은이 기도가 아일랜드 부흥을 위해 어떻게 쓰임 받았는지를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비록 한 세기 반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일랜드 부흥을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하던 젊은이들의 기도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리는 듯했다. 나의 심장은 박동하기 시작했다.

시골 학교에서 시작된 이들 젊은이들의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기도의 불길은 곧 얼스터의 켈스와 아호힐 장로교회로 옮겨붙었고 아일랜드 부흥을 사모하는 기도는 놀라운 속도로 주변으로 확산되어 1858년 말엽에 이르러 교회 수가 100개에 달했다. 놀라운 부흥이 시작된 것이다. 

놀라운 부흥의 현장,얼스터 지역 켈스 장로교회와 아호힐 제일교회는 150년이 지난 지금도 옛날 모습 그대로였다. 켈스 장로교회 보이드(W B Boyd) 담임목사는 주일에 세 번 모임을 가지며 수요일에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 정기적으로 성경공부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어투는 확신에 차 있었다. 북아일랜드 얼스터 지역 교회는 영국의 다른 지역과 달리 신앙이 살아숨쉬고 있었다. 

아호힐 제일교회 커크(A L Kirk) 담임목사의 안내로 현장을 둘러보면서 1859년 북아일랜드 부흥이 얼마나 강력한 성령의 역사였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집회 기간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모여 2층을 받치던 교회 기둥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약간 내려앉았다. 기둥이 바닥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는 자신의 교회에 일어난 부흥을 설명하는 동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교회는 영적으로 살아 있었다. 아호힐 제일교회에는 지금도 400명의 교인이 모였다. 우리 관점에서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를 통틀어 이만한 규모의 교회는 찾아보기 어렵다. 별로 크지 않은 북아일랜드 시골 도시에 이만한 규모의 교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더구나 주변에 이 같은 규모의 교회가 세 곳이 더 있었다. 현재 이들 세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만 합쳐도 1200명을 넘었다. 도시 인구 절대 다수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일 오전예배와 오후예배,수요기도회가 있었고 주중에는 성경공부도 진행되었다. 영적으로 쓰러져 가는 유럽에서 아직도 살아 있는 교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나는 왜 1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지역의 교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다. 커크 목사가 들려준 답은 예상 외로 간단했다. 이곳에서는 예배가 살아 있고,복음이 생명력 있게 외쳐지고 있으며,신학적 입장이 분명하다는 것.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그대로 견지되고 있었고 지금도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가르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교회와의 관계를 묻자 커크 목사는 “너무 자유주의로 흐르고 말았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나는 아직도 서구에 이 같은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솔직히 깜짝 놀랐다. 

그로부터 며칠 후 존 스타트가 일생 동안 사역했던 교회(All Soul’s Church) 근처 런던 시내 한복판을 막 지나는데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천국과 지옥이 반드시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확인해보니 영적으로 죽어가는 런던을 가슴에 품고 복음을 전하는 얼스터 지역 교회에서 온 목회자였다. 나는 어둠 가운데 한 줄기 빛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오 주님! 1859년 얼스터에 임하신 그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영국 전역을 다시 뒤흔드는 날이 속히 오게 하옵소서!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03 22:44
  • 수정 2021.03.2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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