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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휘튼대학 1995년의 부흥
2007년 03월 03일 (토) 23:23:39 박용규
박용규교수의 부흥현장을 가다] (4) 휘튼대학 1995년의 부흥

[2006.05.10 21:46]


휘튼대학(Wheaton College)은 20세기 캠퍼스 부흥을 이끈 주역이었다. 1936년부터 여러 차례 부흥을 경험한 휘튼대학은 1995년 또다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였다. 이 부흥의 불길은 미 전역의 대학으로 확산되어 잠자고 있던 수많은 학생들을 깨웠다.

시카고에서 자동차로 서쪽을 향해 1시간 가량 달리다보면 아담하면서도 깨끗한 도시 휘튼을 만난다. 이곳은 세계적인 기독교 대학 가운데 하나인 휘튼대학이 위치하고 있어 도시명보다 대학으로 더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은 유학시절부터 필자에게 매우 낮익은 곳이다. 자료수집차 여러 차례 방문했고 같은 신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상당수의 휘튼대학 졸업생들을 통해 이 대학의 영적 분위기가 어떤지 알고 있었다. 게다가 필자의 지도교수 우드브리지 박사를 비롯하여 상당수의 신학교 교수들이 이 학교 출신이었다.

휘튼대학은 지난 반세기가 넘게 미국 캠퍼스 부흥의 진원지였다. 휘튼대학이 처음으로 놀라운 성령의 역사를 경험한 것은 1936년이다.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불이 학생과 교수는 물론 온 캠퍼스를 휩쓸었다. 그 강권적인 역사 앞에 누구도 피할 수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 후 1943년과 1948년 휘튼대학에 다시 놀라운 영적 각성 운동이 일어났다. 그 영적 각성은 수업을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했다. 캠퍼스에는 말씀과 기도와 회개와 간증이 2주간 계속됐다.

이 부흥으로 졸업생 3분의 1 이상이 자신의 생을 주께 바치기로 다짐했다. 에콰도르 순교자로 널리 알려진 짐 엘리어트를 비롯한 수많은 졸업생들이 복음을 들고 전 세계로 흩어진 것은 이때였다. 휘튼대학은 1950년과 1970년에도 부흥을 경험했다.

1995년 봄 놀라운 부흥이 또다시 휘튼 캠퍼스에 임했다. 최근 다시 놀라운 부흥을 경험한 휘튼을 향하는 나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벅차올랐다. 실제로 휘튼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영적 분위기는 특별했다. 그 강도는 영적으로 둔감한 사람도 인식될 만큼 강력했다. 우리 일행이 도시에 들어섰을 때 성령이 온 거리를 압도하고 계시는 느낌을 받았다. 거리를 지나면서 유난히 교회가 자주 눈에 띄었고 계속된 부흥의 영향으로 도시에서 술집을 찾아볼 수 없었다.

휘튼대학 캠퍼스 구석구석까지 영적 냄새가 깊숙히 배어 있었다. 휘튼대학 캠퍼스 한가운데는 이 학교의 교훈인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하여’(for Christ and His Kingdom)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나는 한동안 발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그 순간 주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리는 듯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얼마나 많은 20대 젊은이들이 이 꿈을 먹으며 거룩한 비전을 가슴에 품고 세계를 향해 달려갔던가! 지난 20세기 휘튼대학은 수많은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 교계지도자,그리고 사회 각층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배출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이 대학 출신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휘튼대학은 현대 각성 운동의 보루였다.

우리 일행은 캠퍼스 구석구석을 누비며 부흥의 흔적과 역사를 추적해 나갔다. 빌리 그레이엄 센터와 휘튼대학 도서관에서 휘튼대학 공동체가 경험한 놀라운 부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 센터에 걸려 있는 수많은 부흥 관련 사진들이 휘튼의 역사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대학 채플에 들어서자 10년 전 그곳을 가득 메운 1000여명의 휘튼대학생들이 부르짖은 기도의 함성이 쟁쟁하게 귓전에 들리는 듯했다.

1995년 부흥집회 녹화 테이프를 보면서 휘튼에 임한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강력했는지 생생하게 접할 수 있었다. 도서관에서 발견한 당시 휘튼대학 학보(學報)는 온통 휘튼에 임한 부흥의 소식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주님은 가는 곳마다 필요한 자료를 만나게 하셨고 증언자들을 예비해두셨다. 전혀 예기치 않게 도서관에서 당시 휘튼대학 4학년 학생으로 1995년 부흥을 직접 경험한 한 미국 젊은이를 만났다. 지금은 이 대학 박사과정에 재학중이었다.

그는 10년이 지났는 데도 너무도 생생하게 그 순간을 전해주었다. 마치 불과 며칠 전에 경험한 일처럼…. 그는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모습에서 부흥의 역사적 현장에 서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그를 감격스럽고 자랑스럽게 만들고 있는지 잘 읽을 수 있었다.

강력한 회개,성령의 비상한 임재,부흥에 대한 목마름,공개적인 죄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그가 전하는 휘튼부흥은 100년전 우리가 경험한 평양 대부흥과 너무도 유사했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그가 들려주는 증언을 들으면서 얼마나 강력하고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휘튼에 임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1995년 3월19일부터 23일까지 열린 저녁집회에 임한 성령의 역사는 5월7일까지 6주 동안 휘튼대학 캠퍼스를 휩쓸었다. 그 불을 가지고 온 사람은 텍사스주 브라운우드의 하워드 페인 대학교에서 온 브랜디 맥과이어와 제임스 한이었다. 이 두 학생의 간증은 수백 명의 휘튼 대학생들을 깊은 감동으로 몰아넣었다.

한 여학생이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자 마치 뇌관이 폭발하듯 죄의 고백과 회개를 동반한 무서운 영적 폭풍우가 휘튼대학에 몰아쳤다. 그곳에는 일부러 감정을 자극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없었다. 그런데도 수십 명의 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간증 순서를 기다리며 서있었다. 이튿날 아침 6시가 되어도 집회가 끝날 줄 몰랐다.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휘튼에 임한 것이다. 이같은 성령의 역사는 집회 기간 내내 이어졌다. 그 현장에 참여했던 한 학생의 고백대로 그들은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알지 못했으며 이전에 전혀 경험하지 못한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다. 죄에 대한 철저한 고백과 회개,그리스도 안에서의 용서,하나님과의 화목,삶의 변화가 휘튼대학 공동체에 임했다. 휘튼대학 공동체는 “의심할 바 없이 영적 각성의 한 시대 가운데 서있었다.”

성령께서 휘튼대학에 임하면서 공동체에는 뚜렷한 변화가 찾아들었다. 이웃에 대한 사랑,불신 영혼을 향한 간절한 중보기도,인종간의 화해가 캠퍼스를 지배했다. 또한 캠퍼스에 지속적인 기도 모임,말씀 읽기와 연구에 대한 사모함,해외 선교에 대한 관심,기도 열기가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학생들은 캠퍼스 밖과 벤치,잔디,복도와 수업 전후 빈 강의실에서 삼삼오오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부흥을 경험한 휘튼대학생 가운데 200∼300명이 강단으로 나와 자신의 생애를 해외 선교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부흥을 경험한 휘튼대학생들이 미국내 대학 캠퍼스로 흩어지면서 부흥은 요원의 불길처럼 미 전역으로 놀랍게 확산되었다. 1995년 3월19일에서 23일까지 티오른 휘튼대학 부흥의 불길은 얼마 후 애즈베리와 무디,예일을 비롯한 수많은 대학으로 옮겨 붙었다.

부흥은 이들 미국 대학만의 전유물이나 특권일 수 없다. 부흥은 결코 지나간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지금 지구 한쪽에서 임재하고 있고 현재 이 땅의 교회가 경험하고 있으며 또 경험할 수 있는 축복이다.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물이지만 아무 곳에나 임하지 않고 사모하는 곳에 임했다.

이제 머지않아 한국의 수많은 대학도 휘튼대학에서 일어난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공유하는 날이 올 것을 소망한다. 2005년 11월15일 대전 카이스트 캠퍼스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임하여 전에 없는 변화가 캠퍼스에 일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영적 각성에 가장 민감한 젊은 세대들이 일어날 때 한국 교회와 민족의 미래에 소망이 있다. 오 주님,이 땅의 젊은이들이 잠에서 깨어나 캠퍼스마다 놀라운 부흥을 경험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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