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2월 감리교회로 퍼져나간 성령의 불길

평양남산현감리교회에 임한 부흥의 불길

 장대현교회의 계속된 성령의 역사는 평양 시내 감리교회들에게 적지 않은 도전을 주었다. 노블을 비롯한 감리교 선교사들은 평안남도와 황해도 각 교회에 사도행전의 성령의 역사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도록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허락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심 같이”, “마치 주의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돌아와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함과 같이”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그 결과 1907년 2월 10일, 곧 주일에 성령께서 평양 남산현교회에 놀랍게 임하셨다. 

간단한 설교 후 교회 일에 열심인 한 젊은이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는 마룻바닥에 엎어져서는 하나님의 자비를 부르짖는 것이었다. “그런 후 형언할 수 없는 장면이 잇 따랐다.” 교회의 모든 남자들이 마치 벼락을 맞은 것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존스가 기록한 대로, “이 같은 종류의 회개 장면이 매일 밤반복되었다.” 그 현장에서 성령의 역사를 목도한 리은승 목사는 <신학월보>에 보고하면서 그날이야말로 마땅이 평양 교회사기 머리에 기록할  중요한 날이며 “우리 감리회의 션진이” 되는 날이라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회개와 통회 후에 그들 모두는 그 이전에 가졌던 용서의 감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감격과 환희를 체험했다. 부흥운동은 확실히 교회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이번 부흥의 역사 가운데는 “셩신께서 이적을” 행하셔서 사도행전 2장 17절의 말씀처럼 말세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물붓듯이 부어 주셔서 꿈과 환상을 볼 것이라고 한 것처럼 어떤 이는 “과연 이상한 꿈"을 꾸었고, 신령한 이적이 그곳에 상당히 나타났다. 리은승 목사가 평양 교회사 머리에 기록해야 할 사건이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할 만했다. 사도행전의 역사를 그대로 사모하는 이들에게는 평양대부흥운동의 역사가 곧 평양에 임하신 오순절의 사건이었다. 방위량이 그것을 “한국의 오순절”이라고 불렀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서울: 생명의 말씀사,2007)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2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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