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3월 남산현감리교회를 넘어 다시 감리교 신학반으로 확산

 감리교 신학생들 가운데 임한 부흥

 평양대부흥운동의 불길은 장대현교회를 넘어 남산현감리교회로, 다시 감리교 신학반으로 확산되었다. 2월 22일부터 3월 22일까지 평양 남산현 감리교회에서는 당시 신학월보가 일명 “신학회”라고 불렀던 감리교 사역자들을 위한 신학회(the Methodist Mission’s Class for Preachers and Christian Workers)가 열렸다. 감리교 선교회에서는 한인 감리교 지도자 가운데 가장 탁월하다고 평가받는 97명이 모여 노블, 모리스, 존 무어, 포렐(R. D. Follell) 선교사의 지도 아래 25일 동안 신학 공부를 한 것이다.

평양 남산현교회에서의 성령의 역사는 마치 “셩신셔 신학회를 미리 예비야” 두시려는 “무궁하신 경륜”의 역사처럼 그곳에 모인 97명의 신학생들에게는 이전에 찾아볼 수 없었던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분위기가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나타났다. “여기서 또한 성령의 축복이 임했고, 이전 집회에서와 똑같은 죄에 대한 통회가 있었다. 이 사람들은 새로운 심령, 새로운 목적을 가지고 사경회를 마치고 돌아갔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소유하였다.”

부흥운동 기간 평양에서 열린 이 신학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새 삶을 시작하였다.” 당시 그 현장에 있던 한 선교사의 말대로 부흥운동을 거치면서 당시 “신학교는 그들이 매일 수시간씩 참석하는 기도실이 되었고, 그들의 교사는 하나님이었다.” 부흥운동의 현장에서 이와 같은 영적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있던 당시의 선교사들은 하나님이 직접 목자가 되셔서 백성들을 목양하고 계시며 장차 그의 나라를 위해 사용하실 목자들을 친히 양육하고 계시다고 느끼고 있었다. 이 때문에 “바야흐로 전 한국이 하나님 나라”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했다. 감리교 선교사 웰스가 “지금 감리교회는 회개와 개혁의 때를 맞고 있다”라고 보고한 것처럼 감리교회는 전에 없는 영적 각성을 경험하고 있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장로교에 이어 감리교에서도 그대로 재연되면서 평양의 교회들은 대변화를 맞고 있었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서울: 생명의말씀사, 2007)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20 14:43
  • 댓글 0
저작권자 © 평양대부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