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주역 길선주 장로(1907년 2-4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의 성령의 불씨를 평양에서 전국으로 가지고 간 사람은 바로 길선주 장로였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평양대부흥운동이 전국적인 현상으로 발흥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알렌이 길선주를 부흥운동의 기폭제로 이해할 만큼 길선주는 1907년 대부흥운동의 저변 확대에 지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돌이켜 볼 때 그는 한국 교회의 대부흥운동을 위해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인물이었다. 길선주는 이미 1903년에 “능력 있는 설교자요, 깊은 사고의 소유자요, 매우 뛰어난 판단력을 지닌 사람이요, 영적 지각의 소유자”라고 평가받을 만큼 세인의 인정을 받고 있었다.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부흥운동이 평양 시내를 넘어 전국 교회로 확산될 수 있었던 이면에는 길선주의 역할이 컸다. 그가 가는 곳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회개와 영적 각성운동이 일어났다. 곧 성령의 불길이 전국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하디 선교사가 평양부흥운동의 발화자였다면, 그 부흥운동을 하나의 운동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포문을 연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길선주였다. 막힘없이 줄줄 암송하는 성경구절, 선교사들에 대한 가차 없는 비판, 무엇보다도 주권상실의 울분을 신앙으로 스스럼없이 승화시키는 탁월한 영적 리더십, 이 모두는 길선주를 명실상부한 한국 교회의 지도자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했다.

역사 속의 한 인물이 그 시대와 그 후대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 준 전형적인 예가 바로 길선주였다. 마치 1730년대의 미국의 제 1차 대각성운동 때 성령께서 조나단 에드워즈를 통해 강하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거의 2세기가 지난 20세기 초 그 성령께서 길선주 장로를 통해 미약한 은둔의 나라 조선에서 살아 계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전국에서 사경회 인도 요청이 쇄도했고, 길선주는 가능한 전국 어디에나 가서 말씀을 선포했다. 그만큼 한국 교회의 부흥운동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소명의식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복음의 열정으로 불타는 한국 교회의 가장 촉망받는 38세의 젊은 부흥사 길선주 장로는 2월 서울의 교회들에 와서 특별 부흥회를 인도하였고, 2월 중순에 서울에서 열린 겨울 남자 사경회를 인도하였다. 그는 “열심 있는 성경 연구자”였고, “본토 장로교회에서 가장 재능 있는 설교자”였으며, “한국 교회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며 전도자”였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7)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21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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