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회심과 견줄 수 있는 길선주 회심

길선주의 회심은 바울의 회심만큼이나 극적이었다. 바울이 기독교로 개종하기 전 유대인의 전통종교 유대교에 깊이 빠져 있었던 것처럼 길선주 역시 한국의 전통종교에 깊이 물들어 있었다. 돌이켜 볼 때 길선주의 부르심과 회심은 특별히 부흥의 지도자로 쓰시기 위한 섭리였다.

 독실한 유교 가정에서 출생

길선주는 1869년 3월 15일 평안남도 안주의 한 독실한 유교 가정에서 출생했다. “그 家庭은 그러케 富하지는 아니하엿으나 裕福한 家庭이엇다.” 당시의 대부분의 한국 가정이 그렇듯이 길선주의 가정도 한학을 존중하며 그 전통 속에서 자녀들을 교육하는 평범한 가정이었다. 자연히 길선주도 어린 시절부터 한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7세부터 16세까지 한학자 정(鄭) 모씨로부터 엄격한 한학 교육을 받은 길선주는 잠시 지방 관청의 말단 서기로 관직을 시작했다.

청렴 결백한 성격의 길선주는 당시 부정 부패가 만연된 관청의 모습에 깊은 실망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十七歲, 十八歲 어간에 平壤에서 商業을 經營하여 보앗으나 天作에 宗敎人으로 태여난 先生의계 商業이 마즐니가 없어 商業은 畢竟 失敗하고” 말았다. 상업 역시 일생을 투자할 천직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길선주는 도교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점점 더 도교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깊은 도를 연마하기 위해 그는 한적한 산속에서 수도에 전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잠을 쫓기 위해 찬물에 몸을 담그며 수도에 몰두하기도 했다. 이런 종교적인 열정은 후에 기독교로 회심한 후 기독교에 전심으로 헌신하도록 만들어 주는 간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장님으로 알려진 길선주 장로가 시력을 잃어버린 것은, 사실은 젊은 시절 그를 미치게 사로잡았던 종교적인 열정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진리를 찾는 길이라면 어떤 대가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었다. 진리를 찾기 위해 40주야를 명상과 수도로 보낸 적도 있었고, 심지어 잠을 자지 않고 수도에 전념하기도 했다. 그것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고행이었다. 길선주는 잠을 물리치기 위해 가까운 산 약수터에서 얼음물을 길어다 눈에 부었다. 이렇게 하기를 여러 날, 급기야는 그의 각막이 파괴되고 말았다. 길선주는 책을 읽을 수 없었고, 심지어 가까이 있는 사람의 모습도 식별할 수 없게 되었다. 종교적 순수함을 추구한 길선주의 노력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는 자신의 시력 상실로 인해 심한 좌절과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길선주의 습관 가운데 하나는 한 가지 일에 헌신적으로 몰두하는 것이었다. 그는 도교에 몰두하는 동안 한의학 연구도 착수해 드디어는 한약방을 열어 평생의 직업으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가 10대 후반이었다. 평양으로 거처를 옮긴 길선주는 그곳에 한약방을 여는 데 성공했다. 그가 평양에 정착할 즈음은 한국에 파송된 선교사들이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하던 시기였다.

 

천로역정을 읽고 주님을 만나

그가 한약방을 평양에 개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가까운 친구 중 한 명인 김종섭(金鍾燮)이 길선주를 찾아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것을 권했다. 그 즈음 길선주는 도교의 가르침에 회의를 느끼고 좀더 영원한 진리를 가르치는 종교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종교적인 심성이 누구보다도 깊고 예민했던 길선주는 그리 어렵지 않게 기독교 진리를 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침 그 즈음에 길선주는 게일 선교사가 번역한 천로역정을 접할 수 있었다. 길선주는 천로역정을 아내에게 읽어 달라고 부탁했다. 아내가 읽어 주는 천로역정을 들으면서 말씀이 그의 영혼 안에 깊이 침투되는 것을 느꼈다.

그 후 수주 동안 길선주는 마치 지옥에서 사는 듯했다. 스스로 자신의 종교적인 노력을 순례의 경험과 동일시한 그는 만약 그 책이 옳다면 고행과 시력 상실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노력이 완전히 헛되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는 아내에게 그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어 달라고 부탁했고, 자신의 생의 문제, 의심할 바 없는 사실, 즉 자신이 무거운 죄의 짐을 짊어지고 절망 가운데 허덕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길선주는 주께 완전히 굴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히 헌신하기로 다짐했다. 그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 영적 평안함과 새로운 평화가 그의 마음에 넘쳤고, 환희가 그의 삶에 찾아왔다. 그는 잃어버린 육신의 시력보다 훨씬 더 소중한 영적 시력을 얻은 셈이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서울: 생명의말씀사, 2007)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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