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확신과 구원의 능력으로 임재

해주 곤미교회에 임한 놀라운 성령의 역사(1907년 4-5월)

 

1907년 6월 크리체트(Carl Critchett)가 북감리교 연회에 보고한 대로 해주에서도 영적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평양에 갔던 사람들이 놀라운 은혜를 받고 돌아와 자신들의 고향 교회와 이웃 마을에 부흥의 불을 전한 것이다.” 평양에서 열린 감리교 사역자들을 위한 신학회(theological class)에 참석했던 이들은 구령의 열정과 부흥의 불길이 자신들의 고향 교회에도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돌아왔다. 당시 해주는 북부 지역이기는 했지만 영적 상태가 그리 높지 않았다. 따라서 부흥운동에 대한 반응이 처음에는 별로 신통치 않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 그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곤미교회 담임 목회자였다. 곤미교회를 맡은 목회자가 평양에서 성령의 불을 경험한 후 고향 교회에 돌아와 먼저 자신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는 일곱 명의 자기 교회 교인을 데리고 마을의 높은 산에 올라가 그들과 함께 교회를 대신하여 몸부림치며 간절히 기도한 것이다. 그 다음날 수요예배 때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죄의 고백이 나타났다. 집회에 참석한 남녀가 큰 은혜를 경험한 것이다:

“이삼 일 설교 후 회개의 역사가 사람들에게 임하여 남자, 여자, 어린아이 모두 자신들의 죄로 인해 애통하는 심령으로 부르짖으며 공개적으로 그것들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였다. 그러한 죄로 인한 애타는 투쟁과 몸부림과 절규를 나는 전에는 결코 보지 못했다. 성령이 확신과 구원의 능력으로 임재한 것이다.”

성령의 역사는 그날로 그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곤미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더 강하고 더 놀랍게 임하기 시작했다. “집회가 진행되는 동안, 갑자기 마치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영이 예배드리는 이들 위에 임재하는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압도되었다. 그 교회의 한 권사는 가장 은혜를 받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 권사는 자기 죄를 고백하는 동안 마치 일격을 받은 것처럼 갑자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일로 사람들이 대단한 경종을 받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 죄용서와 구원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박용규, 평양대부흥운동(서울:생명의 말씀사, 2007)

  • 기자명 박용규
  • 입력 2007.03.29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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