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7월 30일 / 고종의 선교 윤허

돌이켜 보면 한국선교는 마치 "아다리"가 딱 맞아 떨어지듯이 국내외적으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국내에서 개화파가 개항을 통해 과감히 서구 문물과 기독교를 수용해야 한다고 외치는 동안 만주에서는 존 로스와 매킨타이어 선교사가 성서를 번역하며 조용히 한국 선교의 초석을 놓고 있었고, 일본에서는 이수정이 성서를 번역하고 세계적인 선교지 I<nternational Review of the World>지에 기고해 한국선교를 호소하고 있었고, 그리고 미국에서는 감리교의 가우쳐 목사와 장로교의 엘링우드가 한국선교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한국 선교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가우쳐는 재 일본감리교 선교회 책임자이자 로버트 매클레이 선교사에게 한국의 선교 가능성을 타진하는 서신을 보냈고, 이 서신을 받은 매클레이가 1884년 6월 은둔의 나라 한국을 방문했다.

일본에서부터 오랫동안 친분관계가 있던 당시 한국정부 교섭통상사무처 고관 김옥균의 도움으로 한국에서의 학교사업과 의료사업을 타진하는 서한을 고종황제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 김옥균에게 서신을 전달한지 4일째되는 1884년 7월 3일, 매클레이는 김옥균으로부터 고종황제가 드디어 한국에서의 교육 및 의료선교를 윤허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6.1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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