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9년 08월 24일 /월버포스 출생 

노예무역 폐지와 노예해방의 법적인 틀을 마련해 실질적인 노예해방을 앞당겼던 윌리암 윌버포스가 1759년 8월 24일 출생했다. 16세기 이래 유럽의 해상 무역국가들이 서아프리카 추장들로부터 사들인 노예를 매매하면서 시작된 노예무역이 17세기에는 유럽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하다 18세기 중엽에 이르러서는 그 절정에 달했다.

"남자들과 여자들이 보통 하루 한 번의 운동 외에는 벌거벗고 쇠사슬에 채워져 갑판 밑 선창에 누운채로 대서양을 가로질러 운송되었다." 이렇게 운송된 노예들은 주로 서인도 제도나 북아메리카 대륙에 내려져서 팔렸고 그곳에서 그들은 짐승과 같은 대접을 받으며 일생을 마쳤다.  노예를 싣고 온 선박들은 설탕, 면화를 싣고 원출항지로 돌아오면서 같은 일을 반복했다.

전 유럽, 북아메리카인들, 영국인들은 노예무역이 "애처롭기는 하지만 경제적으로 필요하고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명예로운 일이라고 믿었다." 프랑스 출신 앤토니 베니제트가 미국에서, 부흥운동가 요한 웨슬리와 서인도에서 온 의사며 목사인 제임스 램세이가 영국에서 노예에 반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인 차원에 그쳤고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노예문제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전개할 것이 아니라 의회적인 차원에서 입법화를 통해 명문화시켜야 된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윌버포스였다. 드디어 그의 노력에 의해 1807년 2월 23일 영국 의회는 267표로 노예무역 폐지를 통과시켰고, 그 영향으로 미국도 같은 해 노예무역을 폐지하기에 이르렀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8.0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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