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08월 30일/양주삼 순교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적지 않은 피해를 가져다주었다. 수많은 인명 피해는 물론 교계 지도자들이 납북되거나 순교를 당했다. 1950년 8월 23일에는 남궁혁 박사를 비롯 한국 교계를 이끌어 오던 기독교 인사들이 납북 당했고, 4일 후인 27일에는 복음교회 백남웅 목사가, 그리고 30일에는 감리교의 양주삼 목사가 순교 당했다. 일주일 동안 한국교회는 너무도 많은 인사들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남궁혁 박사가 한국 장로교를 대변하는 인물이었다면, 양주삼 목사는 감리교를 대변할 수 있는 지도적 인물이었다. 때문에 이들의 납북과 순교는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손실을 가져다주었다. 양주삼은 1928년 예루살렘 선교대회 때 신흥우, 정인과, 김활란, 노블, 마펫과 함께 한국교회 대표로 참석했고, 한국 감리교가 선교 50주년을 맞던 1934년, 감리교 총리사였던 양주삼은 기념 사업위원회장이 되어 선교 50주년 기념노래 제정, 기행렬, 기념예배 등의 다양한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다.

비록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가 절정에 달하던 1938년에는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지 신사참배가 교회에 위반이나 신앙에 구애됨이 추호도 없"으며, "우리가 기독교회의 신자인 동시에 신민인 것을 망각해서는 아니된다"며 일본의 한국지배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지만, 양주삼 목사는 이 민족의 어두운 시대에 자신의 몫을 충실히 감당했던 보기 드문 지도자였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8.0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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