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09월 01일/장로교 총회조직

1912년 9월 1일 한국장로교 총회가 조직되었다. 한국장로교회의 총회설립은 몇 가지 역사적인 의미를 강하게 담고 있다.

첫째, 미국에서는 장로교회가 설립된지 1세기가 훨씬 지난 1788년에 설립된 것에 비해 한국장로교 총회는 상당히 빠른 시기에 설립되었다. 한국에서의 총회설립은 1884년 한국 개신교 선교가 공식적으로 시작된지 28년만에, 그리고 독노회가 조직된지 불과 5년만에 이룩한 한국장로교회의 자랑이었다.

둘째, 미국 장로교회가 노회, 대회, 총회라는 단계를 거쳤으나 한국장로교는 노회가 설립되고 5년만에 대회를 거치지 않고 바로 총회를 설립하였다. 이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미국과 같이 넓은 지역을 가지고 있는 곳에서는 대회제를 도입해 지역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지역이 좁은 한국에서는 대회제를 거치지 않고 총회를 바로 설립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셋째, 총회설립이 한국장로교회의 조직과 성숙을 가져와 민족교회로 성장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주었다. 길선주, 김익두, 주기철 같은 기독교의 민족지도자들을 배출함으로써 기독교 민족주의를 형성하고 서양의 고등교육, 한글사용, 삼일운동, 백만인구령운동, 물산장려운동 등을 통해 직간접으로 한국의 민족문화 형성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도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지역과 신학적 배경과 교단이 다른 네 개의 장로교 선교회가 하나의 장로교회를 이 땅에 설립했다는 사실이다.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07.08.01 12:18
  • 댓글 0
저작권자 © 평양대부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