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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한선교사 / B099 / Robbins, Henrietta P. (로빈스) 3학년 5반 2017210335 황축복
 작성자 : 황축복  2019-12-02 09:29:32   조회: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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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라빈스 선교사 소개

이름 : Robbins, Henrietta P. (로빈스)
한국명: 羅彬秀(나빈수)
국적 : 미국 (뉴욕 출신)
소속 : 미국 감리회
학력 : 확인 안됨
가족사항 : 확인 안됨
직책 : 여선교사, 교육자
내용 : 미국 뉴욕 출신으로 1902년 내한하여 평양지방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평양 남산현교회 협동회원으로 복음을 전하며 특히 교육선교에 힘을 기울여 평양여자성경학교를 비롯하여 평양 맹아학교에서 수고하였고 평남지방에 학교를 설립 운영하였다. 1930년 당시 그가 교장으로 일하던 학교는 평양의 정진여학교, 정진여자소학교, 신영여학교, 진남포의 삼신여학교, 중화의 보영학교, 증산의 사달여학교, 사광여학교, 영성여학교, 사창여학교 등이다. 특히 강서지방 초대교인인 전삼덕 부인과 함께 교육과 전도사업에 전력을 기울였다. 초기 한국 여성교육에 많은 공을 남기고 1936년 은퇴하여 귀국하였다.


Ⅱ. 선교사 관련조사

1. 선교사 사역 당시 시대적 배경
선교사들은 서울지역에서 어느정도 인심을 얻게 되자 지방 여행을 시도하였는데 1887년 4월, 아펜젤러가 미국 공사관 직원 헌트와 함께 고양→파주→장단→통천→평산→서홍→황주→평양을 왕복하는 1개월간의 여행이 처음이었다. 이후에도 1888년 4월과 10월에 평양,의주에 이르는 여행을 시도했고, 1888년 11월에는 본처 전도인 한 명을 평양에 상주시켜 그곳 교인들을 지도하게 했다.
청일전쟁 중에 교회가 피난민들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주고 전쟁 직후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홀을 비롯해 교인들이 헌신적으로 구제활동을 벌이는 모습을 통해서도 재확인되었다. 홀은 평양 주민들의 병을 치료하다가 그 자신이 병에 감염되어 1894년 11월 24일 별세하였으니 그 사실이 평양 주민들의 마음을 감동시켜 교회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으니 1893년 21명이던 교인이 1895년에 263명, 1896년에 525명으로 증가한 것이 그 점을 밝혀준다.
청일전쟁 이후 전염병으로 병세한 홀 대신 평양 선교를 맡게 된 선교사가 노블(W.A.Noble) 부부였다. 이들은 1892년부터 홀을 도와 평양 선교 개척에 참여했다. 그리고 홀이 시작한 병원 사업은 폴웰(E.D.Follwell)이 밭아 하였고 홀 부인도 본국에 갔다가 1898년 평양으로 귀환하여 여자 병원인 ‘광혜여원’과 한국 최초의 맹인학교인 ‘평양맹아학교’를 설립하였다. 따라서 초기 평양의 여성 선교는 노블 부인, 폴웰 부인, 홀 부인 3인에 의해 주도되었다. 독신여성으로는 1900년에 부임한 에스티(E.M.Estey)가 처음이며 이어 라빈스(H.P.Robbins), 헤인즈(E. I. Haynes), 베네딕트(R.E.Benedict), 새먼(B. C. Salmon), 잉글리쉬(M.G.English) 등이 정주하며 평양을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1905년 미 감리회와 북장로회 선교부 사이에 선교구역분할협정이 맺어질 때, 의주지역이 북장로회 구역으로 확정됨에 따라 의주에 있던 감리교회는 장로교로 흡수되었다.

2. 복음 선교 사역
미감리회 내외국여선교회와 남감리회 여선교회는 각각 다른 역사적 과정을 거쳐 1920년대 초반에 전국 조직을 갖추었으나 두 여선교회의우호적 협력 관계는 태화여자사회관, 협성여자신학교 등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 외에도 3.1운동 때 두 교회 여성들이 함께 투쟁과 수난을 체험했으며 여자기독교청년회(YMCA), 여자기독교절제회 같은 교회 여성연합단체 활동을 통해서도 함께 만나고 있었다. 이같은 연합운동 분위기 속에서 1930년 12월 두 감리교회가 합동을 이룩함에 따라 두 여선교회도 합동을 추진하게 된 것도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남북감리교 합동이 기정 사실화된 1930년 9월에 제7회 미감리회 내외국여선교회 총회가 정동교회에서 열렸을 때 대표들은 “남북감리교가 연합함에 따라 본 선교회도 남감리 선교회와 피차 타협적 양해를 얻어서 본 회와 합하게 하기로 가결하고 교섭할 위원을 택할 새 본 회 실행위원에게 위임” 하기로 결의함으로 합동운동을 본격화시켰다. 그 무렵 남감리회 여선교회 대회에서도 교섭위원을 내두 여선교회 합동을 본격 추진하게 되었다. 남감리회에서는 쿠퍼, 장귀련, 양매륜이, 미감리회에서는 최활란, 홍에스더가 합동 실무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두 여선교회의 합동은 감리교 합동이 이루어진 후 미루어졌다. 대신 1930년 12월의 기독교조선감리회 총회 때 두 여선교회 대표들도 총대로 참석해서 총회 창립에 일조하였다. 총회에 참석한 여선교회 대표들은 다음과 같았다.

표1

자격
미감리회
남감리회
총회특선위원
채핀, 김폴린
장귀련
총회전권위원
와그너
평신도총대
홍에스더, 손메레, 김함라, 박화숙, 황현숙, 조영애, 마커, 라빈스, 밀러
쿠퍼, 양매륜, 최나오미, 어윤희, 에드워즈
후보 총대
이매련, 박현숙, 민원숙, 이배세
홍은경, 전형옥, 홍성선


전체 총회 대표가 130명이었으니 여성대표가 25명으로 20%에 못미치는 여성비율을 보였다. 그러나 이만한 숫자라도 여성 참여율을 보였다는 것은 한국 감리교회 안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아졌음을 반증하는 예다. 아직도 국내 유수한 종로교 총회에 여성들이 총대로 참석치 못하고 있는 점에 비한다면 감리교 여성들의 교회 정치 참여는 선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창립총회에서 여선교회에 관련해 특기할 만한 결정이나 결의한 것이 없다. 여선교회가 여성들의 자치적 선교단체였기에 총회가 정치적으로 규제하거나 간섭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고 여선교회의 조직이나 규칙도 여선교회 회원들에게 맡겨야 할 사항이었기에 총회 차원에서 여선교회에 관련한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다. 다만 <교리와 장전>을 통해 총리원 기구를 확정하면서 전도국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맺도록 규정하였다. 1931년판 <교리와 장전>의 제201~203단에 기록된 ‘선교회’규정은 다음과 같다.

3. 교육 선교 사역
선교사들과 한국인 지도자들이 볼 때 자녀 교육은 이 민족을 향한 시대적인 사명이었다. 그들은 자녀 교육의 필요성을 권면하여 듣지 않으면, 외국처럼 부모들에게 벌금을 물리게 해서라도 교육시키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부모들에게 자녀를 교육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었다.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실제로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태도도 이전과 달라졌다. 부흥운동을 통해 교육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책임의식이 증대되면서 각종 학교의 설립 움직임이 자연히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 1907년 현재 평양에는 사립학교에 1,500명 이상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고, 로빈스(Robbins) 여선교사가 운영하는 여학교에만 300명 이상이 등록하고 있었으며, 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4,000명의 소학교 학생이 재학하고 있었다.
당시 교육의 기회가 남성들에게만 제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개신교 선교 초기부터 한국 교회는 남녀 모두에게 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과거 남성 위주의 사회 구조 속에서 교육의 기회가 주어져 여성들의 지위를 한층 높여 주었다. 교육이 여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선교사들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를 구별하지 않고 균등하게 교육의 기회와 복음의 기회를 제공했고, 한국 여성들도 자신들에게 그와 같은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기를 열망했다. 여성들이 교육의 기회를 사모하는 분위기는 부흥운동을 지나면서 더욱 증대되었다. 북감리교 선교사 스위러가 맡고 있던 공주에서만 6,00명의 여자들이 교육의 기회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로빈스 여선교사가 운영하는 평양의 여학교에만 300명 이상이 등록하였다는 사실이 당시 여성의 변화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1907년 6월 북감리교 연회에 노블이 보고한 대로, 당시 한국의 “부모들이 자기 딸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혁명이었다.” 이와 같은 혁명이 가능했던 것은 복음 앞에서 남녀가 결코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교육에 있어서도 남녀의 차별이 존재할 수 없다는 분명한 확신이 처음부터 선교 현장에서 실천에 옮겨져 온 결과였다.

Ⅲ. 마무리

로빈스 선교사는 미감리회 소속의 여선교사로써 독신여성으로 평양을 중심으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선교사가 내한한 1902년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들어와서 서울 등에서 성과를 얻어 2차로 확장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시대적으로는 청일전쟁이 발발하는 시대를 끼고 있으며, 전염병으로 큰 지역적 어려움이 있었고, 선교적으로는 교파별로 구역을 나누어 가고 있었다.
평양의 여성 선교는 노블 부인, 폴웰 부인, 홀 부인 3인에 의해 주도되었지만, 그 외에도 많은 동역자가 있었는데 로빈스 선교사도 그 동역자 중의 하나이다. 주도적이라고 하면 조직이나 단체 등의 시작을 한 주도적 선교사가 아니라서 자료가 명확하게 많은 자료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라빈스 선교사가 많은 사역을 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크게 두 가지로 첫째로 여성의 참여 향상에 기여하였고, 둘째로 여성 교육에 기여하였다. 당시 한국의 시대적인 상황은 남자 중심이고, 여성에 지위가 낮고 교육수준도 낮았다. 하지만 여선교사들과 라빈스, 여성 지도자들의 리더쉽으로 총회에 참석한 여성이 25%나 되는 것을 볼 때, 당시 시대적으로 매우 놀랄만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전도 사업을 상당부분 감당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여성들이 당시 시대에 비춰서 주도적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선교사들의 영향으로 볼 수 있고, 그 영향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된다. 특히 여성 교육은 여선교사들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된다. 남자 선교사였다면 할 수 없는 부분으로, 여선교사들의 교육이 한국의 여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라빈스 선교사가 활동했던 학교들 출신의 여학생들의 한국기독교와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많은 일들을 하였다.
2019-12-02 09: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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