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부활주일을 맞아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더빛교회와 한국기독교사연구소가주기철 목사님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며 한국교회 가운데 나누기위해함께 제작한 영상입니다.
2021년 부활주일을 맞아 경기도 용인 소재 더빛교회와 한국기독교사연구소가이 땅을 위해 목숨을 바친 루비 켄드릭 선교사의 섬김과 수고를 한국교회 가운데나누기 위해 함께 제작한 영상입니다.
삼일독립운동의 기획과 실행에 참여하였지만 독립선언서에 서명하지 않은 민족대표 17인은 다음과 같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은 다음과 같다.
국권침탈 과정과 삼일독립운동 상황을 연대기적으로 흐름을 살펴 볼 수 있다.
삼일독립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삼일독립운동에 대한 읽은 거리를 제공합니다.
삼일독립운동에는 ‘독립선언서‘와 이에 서명한 민족 대표 33인, 이들의 후속부대인 16인, 그리고 삼천리 방방 곳곳에서 독립 만세 운동을 한 이천만 한민족이 있었다. 삼일독립운동은 종파에 관계없이 오직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한마음이 되어 ’독립선언서‘ 말미에 민족 대표 33인으로 서명하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여 온 천하에 ’한민족의 독립‘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 독립선언은 모든 이천만 한민족의 가슴에서 울려 퍼져 삼천리 방방 곳곳에서 만세 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삼일독립운동을 일으킬 때의 시대적 상황은 일제의 압정으로 인하여 한민족이 고난과 침탈을 당하고 일제의 헌병 경찰에 의한 감시로 독립운동을 하기가 힘든 때였다.
“예수교인만이 참혹한 식민정책에서 소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부류의 한국민(韓國民)이다.”1919, The Korean Situation 목 차 가. 3·1운동에서의 기독교 역할 나. 평양기독교와 3·1독립운동 다. 일제의 3·1운동 탄압과 한국장로교회 라. 장로교 선교사들과 3·1운동 맺는 말 한국교회는 겨레와 함께하는 교회였다. 처음부터 민족의 독립은 한국교회가 가장 열망했던 주제였다. 105인 사건이 일어나기 전 적지 않은 선교사들이 비정치화 노선을 걸었지만 민족의 미래를 염려하는 의식 있는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가르침과는
일본(日本)이 한국을 합병한 다음해에 일세(一世)를 격동시킨 큰 의옥사건(疑獄事件)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온 세상이 다 아는 百五人 사건이라는 것이다. - 1946, 鮮于燻 목 차1. 105인 사건과 서북기독교2. 105인 사건과 선천신성중학교3. 법정에서 드러난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 1910년 일제는 한국을 강제로 합병한 이후 한국의 영구적인 식민화를 위해 국내 반일세력을 제거하기를 원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11년 105인 사건으로 알려진 ‘데라우치 총독 모살 미수사건’이다. 1911년 일제는 전혀 존재하지도 않은 데라우치
개혁주의 신앙이란 무엇인가1 내가 1961년 학생으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처음 왔을 때 학생들은 대체로 개혁주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학생들 중 많은 수가 칼빈주의2 계통의 학교나 대학에서 훈련을 받은 이들이었고, 심지어 더 많은 학생들이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개혁주의 요리문답과 신앙고백을 공부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런 경우가 드물다.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비개혁주의 배경에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왔고, 심지어 최근에서야 회심을 경험하고 신학교에 들어왔다. 개혁주의 배경 출신의 학생들도 항상 자신들의 요리문답을 아주 잘 알
Billy Graham(1918-2018)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전도자,근대한국교회부흥의 초석을 놓다 “오늘밤 저는 아주 중요한 주제에 관하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이 세상에서 살았던 사람 중 가장 위대한 사람 이야기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이 세상의 문제와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1973년 5월 30일 빌리 그래함이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 앞에서 행한 설교 서두다. 4박 5일 동안 열린 빌리 그래함 서울전도대회 동안 무려 10만 명이 회심했다. 빌리 그래함만큼 한국교회에 지대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1902-1950)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모델한국교회의 영원한 사표“나는 이와 같은 사랑을 전에는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은 내 상상을 초월한다.”손양원 목사가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용서하겠다고 했을 때 계엄 사령관이 한 말이다. 1948년 10월 21일 여순반란 사건 때 손양원은 첫째 동인
일사각오, 순교자 주기철 목사한국교회사에 영원히 빛날 순교자지극히 평범한 인간 주기철1935년 12월 19일 목요일 주기철은 평양장로회신학교에서 피를 토하며 설교했다. 손양원, 한상동, 방지일, 김양선을 비롯한 120여명의 신학생들은 숨을 죽이며 그의 설교를 들었다. 그 설교가 그 유명한 ‘일사각오’였다. 평안남도 도지사 야스다케가 평
미국 정치 문화 문학의 프론티어 광장미국 민주주의 요람 프랭클린 마샬대학, 아펜젤러가 그 이상을 한국에 심다.걸출한 영성의 거장들의 발자취는 남달랐다. 때로는 도전으로 때로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알렌을 추적할 때도 그랬고 언더우드를 추적할 때도 그랬다. 한국 감리교의 아버지 아펜젤러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복음에 불타는 열정을 소유했을 뿐만 아니라 대학에
Horace G. Underwood(1859-1916)한국의 윌리엄 케리거룩한 소명을 따라 산 비전의 사람언더우드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제물포에 도착했다. 바로 그날 그를 파송한 뉴욕 브룩클린의 라파엣 애브뉴장로교회는 담임목사 카일러(T. L. Cuyler)의 위임 25주년 기념예배를 드렸다. 교회 개척 25년 만에 출석교인 2,000명이 모이는
알렌(Horace N. Allen, 1858-1932)한국에 온 첫 개신교 의료 선교사, 서양의술 도입과 미국과의 외교적 가교 ...큰 족적알렌(Horace N. Allen, 1858-1932)은 한국 근대사의 주역이었다. 그가 살았던 시대가 그랬고, 그가 활동했던 사역이 그랬으며, 그가 남긴 발자취가 그랬다. 그가 한국에 입국한 1884년부터 미국으로 소
드와이트 무디(Dwight Lyman Moody, 1837-1899)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전도자, 근대 대중전도와 선교운동의 주역1888년 11월 12일 제임스 게일은 뱅쿠버에서 디 엘 무디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한국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다. 무디는 게일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격려했다.“젊은이, 한국으로 떠나는 거지? 당당하게. 내
31. “가슴의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1703 –1758), 미국이 낳은 가장 “탁월한 부흥운동 변증� � “제게 있어서 그는 언제나 사도바울을 가장 빼닮은 사람인 것 같습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야 말로 사람들 중에서 아주 빼어났습니다.” 근대 영성의 아버지 로이드 존스가 한 말이다. 에드워즈는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부흥설교가, 철학자,
오늘날처럼 종교적·사회적·국가적 혼돈의 시대를 맞은 적은 없다. 2014년 세월호 사건과 2015년 메르스 사태에 이어 최근에 드러난 최순실의 게이트로 인하여 국민은 실망과 충격에 빠졌고 사회와 국가는 새롭게 도약해야 할 비전과 동력을 잃어버렸다. 여기에 무려 1300조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계속되는 경제성장률의 하향세, 그리고 끊임없이 도발을 일삼는 북한으로 인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혼란한 국제정세와 불안한 국내정세 속에서 더욱 더 미궁으로 몰아넣고 있다. 매일 매일 예측할 수 없이 발생하는 거대한 사건들이 쉴새없이 대한민국에 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