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한국교회 성장은 1992년부터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하락세가 더욱 눈에 띠었고, 젊은이들과 중고등부와 유년주일학교 학생들도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주요 교단을 제외하고는 신학생 지원자들이 놀랍게 감소했고 신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도 줄어들었다. 외형적인 성장의 둔화, 신학생 지원 감소, 유학감소는 한국교회가 침체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들이었다. 일각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적인 현상은 아니었다. 한국교회가 위기를 만나고 있다는 의식이 팽배했다.
1970년 전후 한국에는 다시 한 번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이 부흥운동은 세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첫째 조용기 목사로 대변되는 오순절부흥운동이고, 둘째는 한경직, 김준곤으로 대변되는 대중전도운동이고 셋째 복음주의 부흥운동입니다. 1950년대 혜성처럼 등장한 조용기 목사는 오순절의 성령의 은사에 대한 강조와 "삼박자 축복"을 모토로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는 민중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습니다. 성령세례, 방언, 재림, 신유를 강조하는 그의 부흥회는 최자실 목사의 오산리 순복음금식기도원과 더불어 한국교회에 새로운
역설적이지만 전쟁은 영적인 측면에서 우리 민족에게 특별한 기회로 작용했습니다. 전쟁이 남긴 엄청난 상처, 대체 이와 같은 비극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깊은 자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 민중의 심령을 옥토로 만들었습니다. 전쟁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1950년대 초반 부흥에 대한 염원이 이 민족 가운데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일기 시작했습니다. 세기의 전환기에 찾아온 거대한 두 전쟁,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 년의 러일전쟁을 통해 서북 지역의 백성들이 주님을 간절히 찾았던 것처럼 이 나라를 "덮친 처참한 비극 속에서도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교회에 맥을 달리하는 두 개의 부흥운동이 발흥하였습니다. 성결교부흥운동과 이용도의 신비주의부흥운동이 그것 입니다. 성결교부흥운동은 강력한 회개를 동반한 전통적인 영적각성운동이었고, 이용도의 신비주의부흥운동은 지금까지의 부흥회의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스타일의 기법이 도입된 부흥운동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교회의 부흥운동이 변천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성결교 부흥운동 1932년부터 1935년까지 3년 동안 성결교회 안에 놀라운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1932년 신년들어 몇몇 교회에서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1910년 이후에도 한국에는 크고 작은 부흥운동이 꾸준하게 계속 되었습니다. 1910년대 후반 강화지역에서 일어난 부흥을 제외하고라도 1920년대 김익두 부흥운동, 1930년대 성결교 부흥운동과 이용도 신비주의 부흥운동, 1950년대 부흥운동, 1970년대 대중전도운동은 그 대표적인 사례 들입니다. 물론 이들 외에도 여러 부흥운동이 한국에서 일어났지만 그것들은 여기서 언급된 부흥운동의 한 지류 혹은 그 영향 하에 발흥한 부흥 운동으로 범주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부흥운동은 물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지만 한국교회에 생명
맺는 말이제 종교개혁 500주년을 눈앞에 둔 한국교회는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루터의 개혁을 이어야 하고 칼빈의 개혁 사상을 그대로 본을 받아야 합니다. 한국교회 타락과 부패 앞에 망연자실하지 말고 이제 우리 모두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니다. 바울과 루터가 한 것처럼 복음의 능력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우리의 지난 모습을 깊이 반성하면서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을 온전히 회복해 제 2의 종교개혁의 불을 당겨야 할 것입니다.중세 말 타락과 비견할
4. 한국교회가 종교개혁을 통해 배워야 할 역사적 교훈오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불과 1년 앞두고 있습니다. 한국교계에 중세 말엽의 타락과 윤리실종이 만연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제 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외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교회를 다시 종교개혁의 정신에 비추어 보며 교계에 만연된 잘못된 종교적 관행과 전통 그리고 왜곡된 가르침을 개혁해 나가는 귀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종교개혁은 한국교회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교훈해줍니다.첫째, 오늘날 한국교회는 타락과 부패가 만연한 종교개혁
3. 더 나은 개혁을 진행해 나간 개혁자들지금까지 종교개혁의 긍정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만 종교개혁은 중세의 부패를 개혁한 위대한 개혁운동이었지만 결코 후대인들이 평가하는 것처럼 완벽한 운동은 아니었습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개인주의 발흥으로 인한 전체 공동체 의식의 부족을 들 수 있습니다. 성경의 해석권이 교회에 있다는 중세에 대항하여 성경을 사제의 손에서 평신도의 손으로 옮겼지만 성경해석이 종교개혁 지도자들마다 달랐습니다. 게다가 어느 특정 분야에서는 서로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않아 심각한 갈등이 발생했습니다.성경해
2. 중세의 부패와 타락을 극복한 종교개혁이처럼 당시 교회의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간파하고 종교개혁의 물고를 튼 사람이 바로 마틴 루터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 일을 수행했는지를 당시 종교개혁 상황에서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루터는 슈타우피츠의 부름을 받고 1512년부터 비텐베르그 대학교에서 성경을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성경을 통해 당시 교회가 무엇이 문제인가를 발견했습니다. 이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동안 루터를 사로잡는 근본 질문은 2가지였습니다. 그것은 기독교 핵심 사상에 도달하는 방도는 과연 무엇인가 하는 질문
1. 극에 달한 종교개혁 전야 교회 타락중세 말엽처럼 종교적인 시대는 없었습니다. 종교는 일상이었고 종교는 삶이었고 종교는 그들의 삶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랬던 그 시대 교회에 수많은 악폐와 타락이 범람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교황으로부터 가장 말단에 있는 성직자에 이르기까지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교황은 교회 재정을 유용하고 착복하고 사회적 지위와 정치권력에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교황 알렉산더 6세 (1492-1503)는 몇 명의 정부를 거느렸고 알려진 사생아만도 7명에 이르는 참으로 비루하기 이를 데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랬
머리말저는 제 자신이 가장 먼저 개혁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이것이 제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 시대마다 개혁과 부흥이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개혁과 부흥이 절실하게 요청되는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우리 모두는 지금 종교개혁 500주년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주지하듯이 종교개혁은 인류의 역사를 바꾼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 이후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신앙운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한 개인 마틴 루터의 복음의 진리의 재발견에서 출
1920년대 일제 찬탈과 착취로 우리 민족이 내일에 대한 희망을 상실할 때 젊은 지성인들의 영적 불을 지핀 이화 전도대! 대학 캠퍼스여 다시 일어나라! 이대 그대들이 앞장서라! 출처: Alice Appezeller, Ewha Hakdang, Woman's College in Korea 글 사진 제공: 박용규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아프리카 어느 부족의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요긴하게 쓰고자 했던 나무가 쓸모없는 것이 될 때 그 부족은 톱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온 마을 사람들이 그 나무 앞에 모여 각종 저주와 증오의 말을 퍼붓습니다.
조요셉(61·사진) 서울 물댄동산교회 목사는 지난 20일 “북한 사람이나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 우리 식대로 선교하는 게 가장 문제”라고 말했다. 조 목사에 따르면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과 생각 자체가 다르다. 탈북자들은 공산주의와 주체사상 속에 자랐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아래의 인간형이
‘북한의 종교박해 실태 그림 전시회’가 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 개막했다. 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북한인권법의 2월 임시국회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북한정의연대와 북한인권개선모임 등이 마련했다. 탈북민들이 직접 그린 30여 점의 그림이 전시되며 5일 오후에는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 앞으로 옮겨서 개최된다.
처음부터 말 안 듣는 자녀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 잘 안 듣는 아이는 너무나 흔합니다. 말 듣지 않으면 점점 목소리가 커지다가 손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그 이유는 말 잘 듣지 않는...
옛날 백령도 주민들이 사용하던 사투리를어느 정도 아시는지요? “호기보다”는 '계산하다'라는 뜻입니다. 백령도 남편과 결혼한 젊은 아내가 시어머님께서 “깨덮으라!” 말씀하시기에 마당으로 나갔습니다...
아프리카 케냐 투르카나에서 고아들을 위해 사역하다 지난해 8월 소천한 고(故) 임연심(사진) 선교사의 오랜 염원이 드디어 열매 맺었다. 국제구호개발 NGO 굿피플은 16일(현지시간) 투르카나 나페이카르에서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 준공식’을 가졌다. 약 100만 달러(약 12억원) 규모로 건축된 임연심 굿피플 미션스쿨은 투르카나 지역 아동 200여명이 공부할 수 있는 중·고등학교다. 공사 1년 만에 완공됐다. 50만㎡(15만평)에 연면적 4500㎡, 11개 동으로 건축된
기독교대한감리회(기감)가 척박한 환경에 처한 전국의 농어촌 교회를 돕기 위한 ‘광화문 크리스마스’ 예배를 드리고 모금 운동에 나선다. 오는 23일 오전 10시40분 서울 세종대로 기감 본부 앞 희망광장에서 농어촌 교회 목회자 등을 초대해 예배를 드리고 ‘하루 100원 모으기 1만 성도 운동’도 펼 계획이다. 이 운동은 감리교회 성도 1만명이 하루에 100원씩 모아 농어촌 미자립교회 지원금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초겨울 눈으로 산과 들은 하얀 옷을 입고 있었다. 60년간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곳, 평화로운 자연과 군사적인 긴장감이 공존하는 곳, 비무장지대(DMZ)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한 채 환갑을 맞은 DMZ를 지난 3일 오후 찾았다.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DMZ 남쪽에 위치한 백두산교회에서 출발한 차량은 휴전선 철책으로 향했다. 40분 정도 달려 민간인출입통제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