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 목사 칼럼(인천제2교회 담임)

2014년 1월 26일

 

‘당장’이 아니라, ‘결국’입니다.

처음부터 말 안 듣는 자녀는 없을 것입니다. 어느 날부터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말 잘 안 듣는 아이는 너무나 흔합니다. 말 듣지 않으면 점점 목소리가 커지다가 손이 올라갑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그 이유는 말 잘 듣지 않는 아이들의 반응도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처하는 방법도 다양할 것이나 대체로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그 아이를 변화 시키겠다는 마음 전에 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자녀들은 이론적, 합리적으로 이해되는 사람보다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둘째, 멀리서 소리치지 말고 가까이 가서 자녀의 눈을 보며 그의 신체 그 어느 부분이든지 손을 대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킨십은 더 깊은 정을 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 무슨 권면, 지시이든지 두세 번이면 족합니다. 그리고 이 지시를 받지 않을 때 불이익을 분명하게 말하고 진짜 시행해야 합니다. “만일 그 스마트폰 끄지 않으면 이틀 동안 그 폰 쓰지 못할 것이야!”했으면 꼭 그렇게 시행 하는 것이 효과가 분명합니다.

넷째, 체벌이 필요할 때는 흥분을 가라앉힌 후 왜 이 벌을 받아야 하는가를 알려주고 그 자녀가 어느 정도 인정한 후에 적당히 해야 합니다. 체벌이 강하고 엄하다고 효과가 더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며칠이 지나면 그렇게 맞았는데도 또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적당히 한 후 그 날은 더 이상 잔소리와 훈계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체벌은 절대로 자신의 손이나 발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것으로 신체적 아픔을 당한 것은 회초리로 당한 것보다 마음의 상처가 길게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당한 체벌 후 기독부모이거든 반드시 손을 잡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자녀의 마음에 위로 및 회복을 기대하는 의미도 있으나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하나님께 고하고 그 분의 특별한 섭리와 손길을 기대하는 경건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당장’ 바꾸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간을 가지고 성령님과 함께 ‘결국’ 바꾸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다, 기쁨과 기적을 간증할 수 있는 여유와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절대 자신은 그 자녀 나이에 교과부장관 혹은 국무총리 또는 교육감 상을 받았던 학생처럼 자녀를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혹 성도님은 그 자녀를 통해 자신의 지난 날 누리지 못했던 것을 대리만족 해보려는 의도는 없으신지요? 또는 교회 및 동네, 직장 혹은 친척들 사이에서 비교의식을 가지고 은근히 자녀를 통하여 높아지거나 자랑하려는 의도는 없으신지요? 자녀는 내 자식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자녀가 하나님과 복음을 위해 직, 간접적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에 양육의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동시에 혹 그렇게 사용 받는 자녀이거든 좀 다른 것이 부족하고 뒤처지더라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부모,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으면 합니다.

  • 기자명 평양대부흥
  • 입력 2014.01.2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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