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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Allen, Arthur W.(1876-1932, AP)

닉네임
한정종
등록일
2017-06-21 16:51:29
조회수
2060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228_2015222031_한정종.hwp (32768 Byte)
I. 내한 선교사 총란
출처: Allen, Arthur W. (알렌 /安蘭/AP)
1. 생몰(生卒) 년대(1876-1932)
2. 출생연도: 1876년 5월 9일 호주 빅토리아(Victoria)주에서 출생하였다.
2. 학력: * 피아노를 전공하였다.
* 장로회신학교 신학을 공부했다.
* 목사가 된 해외 선교사로 헌신했다.
3. 경력: 1913년 4월 호주장로회 교육선교사(音樂士)로 내한하였다.
1915년 9월부터 1927년 11월까지 진주교회 당회장으로 시무하면서
1925년 건물이 신축되었고 - 1929년 폐교
1926 마산선교부로 전임하여 호신학교 초대 교장으로 부임
1932.7월 호신학교 교장 알렌이 사망했다.

II. 진주․마산에서 13년간 활동한 A. W. 알렌(Allen)선교사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원리 산 8번지에는 호주장로회 선교사로 한국에 파송(1913-1925)되어 진주 광림학교장과 마산 창신학교장 등으로 교육선교에 헌신한 A. W. 알렌선교사의 묘(墓)가 있다. 마산시 합성2동 1번지(창신 대학)에도 알렌의 순직 기념비가 건립(2005. 10. 15)되어 있다.

광림학교장과 진주 교회를 섬긴 교육선교사 알렌
아더 윌리엄 알렌(Arthur William Allen, 한국명: 安蘭藹, 1876-1932)은 1876년 5월 9일 호주 빅토리아(Victoria)주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질과 소양이 깊었던 그는 교회에서 음악을 통해 봉사하였다. 멜본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전공하였는데, 목회자로 봉직하기로 결심하고 빅토리아 장로회신학교 교육기관인 오르몬드 대학에서 3년간 신학을 공부했다. 대학을 마치고 목사가 된 그는 호주에서 목회자로 사역하는 것 보다 해외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작정하고 1913년 4월 호주장로회 교육선교사(音樂士)로 내한(來韓)하였다.
한국에 부임한 알렌은 경상남도 진주선교구로 배속되어 1925년까지 전도와 교육선교에 힘썼다. 선교 활동 초기에 그는 어학공부에 열중하였으며 전도와 교육의 영역으로 범위를 점차 확대하였다.
이에 앞서 H. 커를(한국명: 巨烈烋) 선교사 부부가 내한(1902. 5. 19)하여 진주지방 최초 선교사로 1905년 10월 20일 부임하여 진주(大安面 二洞)에 상주(常住)하면서 복음의 씨앗을 뿌리며 학교를 설립하였다. 커를 부인은 시원여학교(The Nellie R. Scholes Memorial School)를 시작하고, 남편(커를)은 진주군 성내면 사동에 안동학교를 설립(1907. 4. 15)하였다. 부인은 대안면 이동예배당에 정숙여학교도 설립(1907. 8)하였다. 그 후 안동학교와 정숙여학교는 1909년 8월 31일 광립학교로 통합 개칭하여 남자부와 여자부로 인가 받아 운영되었다.
1912년 조선기독교회부속학교(在朝鮮基督敎會附屬學校)에서 자료에 의하면 광림학교 위치는 진주군 성내 4동에 있었으며, 수업연한은 6년이고, 설립자와 교장은 거열휴(巨烈烋, Currell, Hugh)였다. 이때 알렌 선교사는 진주 옥봉리(玉峰里 750번지)에 거주하였으며 교사로 봉직하였다.
A. W. 알렌은 진주 동․남쪽 구역과 사천, 남해, 하동 등지의 지교회(支敎會)를 책임 맡아 순회 선교사로 봉직하면서 지역교회도 섬겼다. 1915년 9월부터 1927년 11월까지 진주교회 당회장으로 시무하면서 청년들에게 신앙생활에 좋은 영향을 끼치기도 하였다. 그리고 광림학교(私立) 교장으로 학교 운영 전반의 책임을 맡으면서 그의 선교 사역은 교육이 중심이 되었다.
광림학교는 진주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오랫동안 독립 교사(校舍)를 갖지 못하고 진주교회당을 교실로 사용했다. 그 후 1925년 호주 선교부의 후원으로 200여명의 학생을 수용 할 수 있는 건물이 신축되었다. 호주선교부가 설립, 운영하는 학교는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는 한국교회에 위임한다는 정책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광림학교만은 호주 선교부의 예산으로 유지해 왔다. 당시로서는 진주교회가 광림학교를 운영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호주 선교부는 세계 대공황(大恐慌)의 여파로 광림학교 운영에 필요한 선교비 충당에 어려움이 있어 1929년 폐교하기로 결정하였다.
광림학교의 폐교는 매우 불행한 결정이었으나 1913년 11월 4일 설립된 진주 배돈 병원의 운영이 이보다 시급하고 중요했기 때문에 호주선교부로서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알렌은 1924년 7월 6일 진주 중성 동에 남성교회를 설립하여 복음 전도에도 힘썼다는 기록도 있다.

마산 창신학교 교장․악대(樂隊) 창설자 알렌
A. W. 알렌 선교사는 진주선교구 소속으로 활동하다가 1925년 마산선교구로 전임(轉任)하였다. 이때 마산의 창신학교는 일제의 탄압과 경영난으로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었는데 호주 선교부가 1925년 4월 1일 창신학교를 인수하여 중등학교 과정으로 호신학교로 수업을 시작하였다. 호신(濠信)학교는 호주의 호(濠)와 창신의 신(信)자에서 유래하였다. 이때 신학자이며 교육자인 알렌을 초대 교장으로 파견하여 교육에 전무(專務)하게 하였다.
알렌은 창신학교에 영남지방 최초의 7인조 악대(樂隊)를 창설하여 한국에 서양음악 보급의 선도적 역할도 담당하였다. 이 악대는 각종 운동경기의 응원과 지방 행사 때 초청되었으며,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전도 연주는 그 인기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그 후 호신학교는 알렌 교장이 1932년 순직(殉職) 한 뒤 1933년 4월 5회 졸업생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결국 알렌은 호주에서 파송되어 한국선교사로 13년간 진주와 마산에서 복음전도와 교육선교에 헌신하다가 교육(음악)선교사로서 1932년 7월 26일 56세를 일기로 순직하였다.
그의 묘는 진주 수정동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평거동 298-2번지로 옮겼으며, 진주시 도시계획에 따라 1992년 6월 9일 산청군 시천면 원리 덕산교회 묘지로 이장되었다. 이장(移葬) 예배는 1992년 10월 2일 호주선교회 대표 존 브라운(John Brawn) 목사 집례로 진행되었다. 이 행사를 주관 했던 이호준(덕산교회) 목사는 유골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고 증언했다.
묘비에는 생졸(生卒) 년대(1876-1932)와 In Loving Memory of Arthur William Allen 이라 쓰고 “너희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라(엡 2:8), For by grace are ye saved through faith; and that not of yourselves: it is the gift of God”이라 기록되었다. 경남지역 선교사 유적 답사(踏査)에 도움을 주신 강병도(창신대) 학장, 이호준(덕산교회), 최임경(진주교회) 목사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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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7반 한정종
내한선교사 기말보고서 입니다
작성일:2017-06-21 16:51:29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