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Forsyth, Helen(미상, NP)

닉네임
김성현
등록일
2017-06-30 08:44:39
조회수
2270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144_2015210147_김성현.hwp (898048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 Forsyth, Helen / 포사이드

2. 생몰연도 : 없음

3. 출신 및 소속 : 없음

4. 한국선교기간 : 1911.8.2 - 1915.8

5. 연표
1911.8.2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장으로 봉직, 간호원 양성사업에 주력
1915.8. 일본에서 사업하던 그레이와 결혼, 선교사직 사임

6. 가족사항
Gray, W.(남편)


Ⅱ. 선교사 소개: 포사이드(Forsyth, Helen)
2. 1. 포사이드 헬렌
미국 북장로회 여선교사, 간호원. 1911년 8월 2일 내한하여 세브란스병원 간호부장으로 봉직하면서 간호원 양성사업에 주력하였다.
1915년 8월 일본 요코하마에서 사업하고 있던 그레이와 결혼함으로 선교사직을 사임하였다.


2. 2. 포사이드 헬렌 파송
표1. 한국에 파송된 해외 간호사선교사들(1895-1917)
한국에 간호교육이 정착된 것은 외국 선교사들의 기여에 의한 것이었다. 국내 최초로 1903년 시작된 보구여관 간호원 양성소나 1906년에 시작된 세브란스 간호원양성소 모두 미국북장로회에서 파송된 선교사 Margaret J. Edmunds와 Esther Lucas Shields의 노고에 의하여 시작된 것이다. 특히 1900년초에 개발되지도 않은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오면서 선교사 중에서는 전염병으로 몇 년만에 사망하는 선교사도 있었으며, 병을 얻어 곧 본국에 소환되는 선교사도 있었다. 그 중, 표1에서 3번째 파송받은 Shields, esther Lucas(수일사) 는 세브란스 간호원 양성소를 세우고 안정화 시켰다.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브란스 간호부양성소의 운영이 점차 안정되어 가자 Shields는 간호부양성소 원장직을 미국 북장로회에서 온 포사이드에게 위임하였다.
포사이드는 위에 표1와 같이 7번째 간호사 선교사로 1911년 북장로교에서 파송받았으며, 1915년 일본에서 W. Gray와 결혼함으로 선교사직을 사임하였다.


2. 3. 포사이드 헬렌의 간호사 임명
“간호교육이 정착 된 뒤, 1908 년 6월 3일, 첫 번째 학급인 의과 대학생 7명이 졸업했다. 두 번째 학급에서는 졸업생이 나오지 않았다. 그 시기에 간호사 엘라 버피는 선교사로 임명되지 않은 채, 1908년에 병원과 외국인 공동체에서 일하고 사역하였다. 두 번째 학급의 간호사는 1911년 포사이드 헬렌이 오기 전까지 임명되지 않았다.”

포사이드 헬렌이 오기 전까지 간호사 교육과 간호사 임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 간호사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확실한 점은 포사이드 헬렌이 파송받고 나서 간호사 임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을 통해서, 포사이드 헬렌은 선교와 간호뿐만 아니라 간호사 임명을 행사하는 행정(혹은 인사)도 섬겼음을 알 수 있다.


2. 4. 세브란스 병원
에비슨이 병약으로 임시 병가를 얻어 캐나다와 미국을 방문하였을 때 세브란스병원의 건립이 은연중 추진되었다. 1899년에 떠난 에비슨은 1900년 봄, 뉴욕에서 개최되고 있었던 국제 선교사 대회에 참석해서 한국에 근대식 병원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연설을 하여, 그 연설을 듣고 감명을 받은 클리블랜드의 세브란스가 희사한 기부금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 세브란스병원의 개설은 한국 의료선교 사상 새 출발이었을 뿐만 아니라 의료 발전에 있어서도 새로운 장을 펼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 병원은 빈약한 시설을 가지고 선교부들이 경영하던 시내의 군소 병원들을 통합해서 종합병원을 만들고 또한 연합교육기관을 설립해서 기독교 청년 의사들을 길러냈다.
선교사들은 환자의 치료에 힘쓰면서 아울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선교사업에도 열중하였으며, 몸과 함께 그들의 영혼도 치료하는 고귀한 사업의 모범을 보여주었다. 더구나 여기에서 일하던 의사 선교사들은 의학 연구에도 심혈을 기울여, 1907년에는 우리나라 처음으로 「한국선교의사회」를 조직하고, 의료사업에 관한 의견 교환과 의료사업 실시 방법 등을 함께 연구하면서 이 나라의 의학 발전, 그리고 연구 발표의 학술적 모임 등 새 학풍의 확립에서도 눈부신 공헌을 할 수 있었다. 또 1908년 3월에는 「한국간호학졸업인협회」를 조직 운영해서, 간호사업의 향상 발전과 한국에서의 효율성 있는 최선의 간호방법 연구를 목적으로 여러 뜻 깊은 학술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작성일:2017-06-30 08:44:39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