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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McCallie, Henry Douglas(1881-1946, SP) / McCallie, Emily Cordell

닉네임
황장원
등록일
2017-06-30 14:45:33
조회수
2792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M0125_2013210138_황장원.hwp (500224 Byte)
I. 기본사항

1. 이름: McCallie, Henry Douglas / 매칼리 / 한국명: 맹현리
2. 생몰연도: 1881-1946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남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1908-1930
5. 연표
1881 미국 텍사스주 출생
1904 버지니아대학교 문학 학사 취득
1903-1904 프린스턴신학교 학사 취득
1905-1907 UTS 석사 취득
1907 프린스턴대학교 문학 석사 취득
1907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1908 광주 선교부, 어학과 섬 전도(Preston과 공동)사역
1909 목포 선교부(이후 목포 선교부), 어학과 섬 전도(Preston과 공동)사역
1910 어학, 섬 전도사역
1911 어학, 섬(4곳) 전도담당, 안식년
1912 목포·지역전도사역(Nisbet 구역 제외)
1913 진도·해남·완도·지도 전도담당
1914 섬 전도사역
1915 섬 전도사역, 안식년
1916 섬 전도사역
1917 섬 전도사역, 책방책임, 남학교 교장(목포 용흥 중학교)
1918 섬 전도사역, 책방책임, 남학교 교장(목포 용흥 중학교)
1919 도서지방, 남부구역 전도사역, 책방책임
1920 도서·남부구역 전도사역, 책방책임, 전남 남자성경학교 목포대표
1921 도서·남부구역 전도사역, 목포성경학교 교장
1922 도서·남부구역 전도사역, 안식년
1923 해남·완도·진도 전도담당, 책방책임, 남자성경학교 책임
1924 해남·완도·진도 전도담당, 책방책임
1925 서부구역 전도사역, 책방책임
1926 남부구역 전도사역
1927 남부구역 전도사역, 안식년
1927 선교사 사임
1928 안식년

6. 가족사항부인: MaCallie, Emily Cordell (1873-1931)
(부인) 매칼리 선교사 / McCallie, Emily Cordell (1873-1931)

I. 기본사항

1. 이름: McCallie, Emily Cordell / 한국명: ?
2. 생몰연도: 1873-1931
3. 출신 및 소속: 미국, 미남장로회
4. 한국선교기간: 1910-1927
5. 연표
??-? 미조리 살레이대학, 시애틀 성경학교
1910 남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목포 선교부(이후 목표 선교부), 어학,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1911 어학, 여성과 어린이 전도사역, 안식년
1912 여학교 공동책임, 기숙사 사감, 순회전도, 성경반 교육
1913 여학교 공동책임, 기숙사 사감, 순회전도, 성경반 교육
1914 섬 전도사역, 여학교 공동책임
1915 섬 전도사역, 안식년
1916 지역전도사역, 주일학교사역
1917 지역전도사역, 주일학교사역, 여학교 기술담당
1918 지역전도사역, 주일학교사역, 여학교 기술담당
1919 지역전도사역, 주일학교사역, 여학교 기술담당
1920 지역전도사역, 여학교 기술담당, 전남 여자성경학교 목포 대표
1921 여학교 기술담당, 전도사역
1922 여학교 기술담당, 전도사역, 안식년
1923 여학교 기술담당, 기숙사 사감, 전도사역
1924 여학교 기술담당, 전도사역, 순회전도
1925 지역전도사역
1926 지역전도사역
1927 지역전도사역, 안식년


II. 선교사 소개: 매칼리 (McCallie, Henry Douglas, 1881-1946)

1. 목포지역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교사
매칼리(McCallie, Henry Douglas, 1881-1946)는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1907년에 내한했다. ‘맹현리’라는 한국 이름으로 1930년, 미국으로 이한할 때까지 목포를 첫 부임지로 삼고 신안 앞바다 도서지방과 해남, 강진, 장흥, 진도, 완도 등지를 순회하며 교회를 개척하였다. 1930년 매칼리는 가족과 함께 선교업무를 마치고 귀국했는데, 23년간 한국선교사업에 헌신한 셈이다. 그가 23년 동안 세운 교회는 해남의 이진, 의야리 교회, 신안의 대척, 장고, 예리, 자라교회, 장흥의 지천교회 등이며 매칼 리가 위임받아 육성시킨 교회로는 해남의 선두리, 우수영, 논송리, 맹진, 고당리, 남창리, 예락, 원진, 연당, 진목리, 삼금리교회, 여수의 우학리교회, 진도읍교회, 비금 덕산교회 등이다.

2. 도서지역의 꽃을 피우다
목포는 도서지역 선교를 오랫동안 자기의 소명으로 생각했던 매칼리 목사의 관심 지역이었다. 그의 선교 현장은 서쪽과 남쪽으로 100마일, 황해까지 150마일로 확대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의 인구를 포함하였다. 목포 군도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에서 가장 미신적이고 뒤진 사람들이어서 결과적으로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1910년에 매칼리는 90개 섬의 500개 마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교회 셋이 세워지고 정규 예배를 드리는 25개 예배처가 만들어졌다고 보고했다. 섬에 각 위해 매칼리는 돛배를 이용했다. 많은 사역의 성공은 매칼리 부인 때문이었는데 그녀는 간호사 훈련을 받고 그의 남편을 따라다니며 그가 어디를 가든 섬사람들을 위한 진료를 했기 때문이다.

(1) 활동 사항 : 해남군 우수영 교회에서 주병완, 이형언, 김인찬 등의 열성을 인하여 예배당을 신건하고 기후에 선교사 하위렴, 맹현리 등과 조사 도정이, 임성옥, 김영진 등이 상계시무하니라. 여수군 우학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당지가 의병난을 경한 후 민심이 불안한 중 민적정리함을 모병으로 오해하고 예수 만난 자는 차등부역을 면한다는 풍설이 유행하여 인민들이 교회설립하기를 결정하고 무만리교회에 대하여 전도인 파송하기를 청구하였더니 전도인 채진영이 당리에 래도하여 전도한 결과 오해와 풍설이 돈식되고 진리에 귀한 자가 많아 예배당 축건을 경영할 새, 본리에 공유건물을 매수하게 되었더니 면장 김철수의 이의로 해약함에 교인 명창순이 자단하여 예배당을 신축하였고, 교회에서는 사숙을 설치하여 아동교육을 실시하니 전도에 유조되니라. 기후에 선교사 맹현리, 변약한과 조사 조의환, 목사 강병담이 상계시무하니라. 장흥군 삭금리교회에서 예배당 6간을 신건하고 기후에 선교사 오기원, 유서백, 맹현리, 조하파, 조사 배경수, 윤식명, 곽우영 등이 계속 시무하니라. 무안군 덕산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본리인 강락언이 믿고 전도하여 신자가 초진함으로 예배당을 신건하고 선교사 맹리와 조사 마서규, 이행언, 김경운, 김봉현 등이 차제시무하니라. 무안군 대척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맹현리가 이장호를 파송하여 전도한 결과 신자 초진하여 예배당을 신건하고 조사 마서규, 김봉천, 김주환 등이 계속 시무하니라. 해남군 초송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원봉수, 원사기, 원명오 등이 믿고 동군 돈다리교회에 왕래하다가 신자가 증가됨에 예배당을 신건하고 선교사 변약한, 맹현리와 조사 마서규, 김달성, 원덕관, 이치도, 이경일, 이경휘 등이 상계시무하니라. 해남읍내교호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하위렴이 조사 김영진을 파송하여 본리에 전도한 결과 김변윤 등 수인이 믿고 남문외교회에 왕래하더니 신자가 증가됨에 대정정에 예배당을 설치하였다가 기후에 본리에 이전하니라. 선교사 맹현리와 조사 마서규, 김달성, 최병호, 원덕관, 조병선 등이 상계시무하니라. 해남군 남창리교회가 성립하다. 선시에 선교사 변약한과 조사 김영진의 전도로 이경일, 김태언 등이 귀주하여 예배당을 신축하고 기후에 선교사 맹현리와 조사 마서규, 김달성, 최병호, 이경일 등이 차제로 시무하니라. 완도군 관산리교회에서 최병호를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기후 선교사 변호한, 맹현리가 조사 노학구, 임성옥, 마서규, 장천오, 최병호, 김영식 등이 성역에 종사하였고, 장로로는 박선래, 김상순 등이 차제로 시무하니라. 무안군 장고리교회가 설립되다. 선시에 선교사 맹현리가 조사 김경운, 마서규 등을 파송하여 전도하므로 신자가 생기하여 박태필 방에서 예배하였고, 조사 최병호, 정관진, 김주환, 박도삼 등과 선교사 민도마가 교회를 인도하니라. 해남군 고당리교회에서 정관빈, 조병선을 장로로 장립하여 당회를 조직하였고, 기후 선교사 변요한, 명핸리와 조사 임성옥, 김영진, 마서규, 김달성, 최병호 등이 상계 시무하니라. 해남군 이진교회가 설립되다. 선시에 본리거 하성원의 처와 박순금이 선교사 맹현리의 전도를 듣고 믿은 후, 인리에 성심전도하여 신자가 증가되매 자택을 예배당으로 매도하였으며 조사인 이경일이 다년간 근무하니라.
(2) 거문도 이야기 : 전남 목포 지역의 초기 선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바로 도서지역 선교이다. 이 지역에는 200개가 넘는 섬이 있었고 20세기초 20만명 정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교통이 좋지 못해 본격적인 선교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곳 선교에 본격적으로 헌신한 사람은 맹현리 선교사였다. 맹 선교사는 돛단배 한 척을 빌려 1전씩 하는 쪽복음과 수천 장의 전도지를 싣고 조수의 흐름에 따라 섬들을 방문, 전도했다. 기간은 2주에서 6주 동안으로 다양했다. 맹 선교사의 복음선은 섬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섬사람들에게 그는 최초의 서양인이었다. 그가 전하는 복음도 역시 난생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그를 보고 도망쳤으나 곧 다시 찾아와 복음을 들었다. 목포로 돌아올 때 배에는 쪽복음은 사라지고 대신 물고기와 달걀, 병아리가 가득 실려 있었다. 1909년 9월 어느 날 맹 선교사가 거문도에 갔을 때 그곳 사람들은 서양 사람을 구경하기 위해서 모두 모였다. 맹 선교사와 다른 사람들이 복음을 전하자 이들은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사실 이곳 사람들은 육지를 방문했을 때 복음을 들은 적이 있었다. 이들은 선교사들이 방문해서 자기 지역에 복음을 전해주기를 바랐다. 맹 선교사의 전도를 받은 후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얼마 후 이들은 사람을 보내서 자신들을 지도할 신자 한 사람을 파송해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해 겨울 그 마을 사람들 9명이 광주에서 열린 10일 사경회에 참석했다. 수백㎞를 걸어온 것이다. 맹 선교사는 다음해 5월에 그곳을 다시 방문하였는데 그곳에서는 200명 이상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맹 선교사는 이때부터 이곳에 정기적으로 조사를 파송, 그들의 신앙생활을 도왔다. 맹 선교사가 거문도를 방문한지 만 2년 후 거문도 신자들은 자신들의 힘으로 교회를 지었고 23명이 세례를 받았다. 전남지역 섬에서도 복음에 대한 갈망은 강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3. 가르침에 대한 열의를 가진 교육자
매칼리는 가난한 농촌 젊은이들 중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목포 영흥학교와 정명여학교에 진학시키고 학비조달을 주선하였으며 사정이 딱한 학생들을 뒷바라지했다. 또한 정명여학교는 매칼리 본가에서 재정지원을 받았고 미국선교본부에서도 매칼리기념학교로 지정한 바 있다. 매칼리 학교는 Miss Hopper의 지도하에 393명의 입학생을 시작으로 초등교육에서부터 중등교육까지 운영되었는데(10학년), 매칼리 학교는 지성 있는 그리스도인 가정을 세우는데 아주 건설적인 역할을 하였다.
작성일:2017-06-30 14:45:33 49.175.45.1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