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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B094Daniel B.Ray 와 Frances J. Ray / 3학년 5반 2017210287 민찬홍

닉네임
민찬홍
등록일
2019-12-03 01:21:15
조회수
703
첨부파일
 Daniel Brooks Ray .pdf (463638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 다니엘 레이 Daniel Brooks Ray (한국명 : 이대복)
프란시스 레이Frances Jean Ray (한국명 : 이혜란)
2. 생몰연도 : 이대복 1923년 12월 25일 중국 오주에서 출생
~ 2011년 8월 3일 텍사스에서 소천
이혜란 1930년 10월 10일 텍사스 출생
~ 2018년 2월 6일 텍사스에서 소천
3. 학력 : 이대복 ? 육군제대후 베일러 대학 심리학과 졸업(1950년)
1953년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
4. 한국 선교 기간 : 1953년~1992년
5. 연표 : 이대복

1923.12.25 출생
1930.10.10 출생 (이혜란)
1950년육군제대후 베일러 대학 심리학과 졸업

1953년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

1953년 6월7일 결혼

1954년 침례신학교 영어교수

1955년 전도부장

1968년 지방 협동 선교사 겸 선교부 재단 부장

1971년 기금위원회 위원장

~1992년까지 한국 선교사로 섬김

이 때 국제 선교위원회에서 은퇴

2011년 8월 3일 소천 (이대복)
2018년 2월 6일 소천 (이혜란)
6. 가족 사항
이대복 선교사의 사망당시 기준으로 생존가족은 그의 아내 Frances Deal Ray( 템플에 거주), 딸 레아진 굿손(캘리포니아 레딩), 그리고 네 명의 아들들로는 호주 아델레이드에 거주하는 마크 레이, Temple에 거주하는 벤 레이, 텍사스 새들러에 거주하는 앤드류 레이, 그리고 미네소타 히블링의 렉스 레이가 있었다.
여자 형제로는 노스캐롤라이나 카메론에 거주하는 루이스 맥켄지가 있었고, 그 외에 23명의 손자와 11명의 증손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 이혜란 선교사의 사망기준으로는 22명의 손자와 14명의 증손자가 있었다.

Ⅱ. 선교사 소개 : Daniel Brooks Ray 와 Frances Jean Ray
이대복 선교사는 날마다 3장의 성경을 일고 기도했으며, 주일이면 5장의 성경을 읽으며 경건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마 그 외의 시간도 그의 삶은 봉사와 경건의 삶으로 채워져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바울 서신을 읽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간 바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쫓아가곤 한다. 그 놀라운 선교의 여정을 볼 때마다 피가 뜨거워짐을 느낀다. 그리고 이미 우리나라에는 낯선 이국 땅에서 인생의 황금기를 모두 바치며 섬겼던 많은 삶의 모범들이 있다.
이대복 선교사는 그들 중 하나이다. 그에 대해 자료를 찾으며 그와 그의 부인이 이미 소천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들 마크는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고, 또한 그의 손길이 지나간 한국의 많은 곳에서 새로운 복음의 새싹들이 자라나 큰 열매를 거두었을 것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한 생명을 누구보다도 위대하게 쓰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그의 자취안에 녹아져 있었다.

1. 파송 전까지
그는 1923년 12월 25일 중국의 광시성 오주에서 렉스 레이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2년 고교졸업후 바일로 대학에 입학하였는데, 졸업은 1950년에 심리학을 전공으로 졸업하였다.1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바로 이 해에 (1950년) 그가 텍사스 본헤임 침례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후인 1953년에서야 사우스 웨스턴 침례신학교를 졸업했고, 그 해에 이혜란(레이 프란시스)와 결혼하였다.2 그가 신학교 졸업전인 평신도의 상황에서도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선교에 대한 그의 소명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당시 미국 침례교회의 회중교회적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2. 파송
이대복 선교사는 1953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을 받고 내한했다. 그는 할아버지때부터 3대째3 선교사로 한국에 온 것이다. 이대복 선교사는 미국 남침례회 외국 선교부 한국선교회 소속으로 여러 가지 직책을 맡고 많은 일을 했다. 특히 당시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었던 한국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했는데, 군인전도부를 조직하고 군인 선교를 시작한 것은 그의 주요 업적 중의 하나라고 할 것이다.4

3. 한국에서의 활동
한국에 들어온 이대복 선교사는 1954년에 침례신학대학교에서 영어교수가 되었다. 이후 1955년 전도부장, 1968년 지방협동 선교사 겸 선교부 재단 부장, 1971년 기금위원회 위원장 등을 거치면서 한국에서 주어진 사역을 감당하였다.
그는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이들에게 장학회, 병자들을 위한 의료지원, 개척교회지원들에 힘썼다 전해진다.5
개인과 사회적 구제 활동에 더불어 1957년부터 침례교 선교회는 새로운 선교정책을 입안하고, 그 일환으로 신앙원리와 교회활동을 교회와 교인들에게 진작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하였으며, 우락수 선교사와 말러 선교사와 더불어 이대복 선교사는 여기서 주요 활동을 담당하게 되었다.6

4. 주요 어록
그의 사람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은 “ 나는 중국 사람도 미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똑같이 사랑하고 싶어요.” 라 했던 그의 말에 잘 표현되어 있다.7
그는 그가 태어난 중국,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미국,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황금기를 대부분 보냈던 한국……. 그의 삶은 대부분 가난한 자들을 섬기며, 아픈 자들을 치료하면서, 전쟁의 참상아래 놓여있던 한국인들을 섬기며 살았다.

5. 그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
한국 침례회가 둘로 나뉘어 지려 할 때는 그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고 있는 시기였다.
그는 크게 걱정하여 날마다 기도했고, 마침내 얼마 안되어 갈라졌던 총회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부터 그는 가장 기뻤던 시기는 “총회가 분열되었다가 합해졌을 때” 라고 서슴없이 말했다고 한다.8

6. 그의 신학
남침례교 해외 선교부는 자유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선교사로 파송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선교사들은 매우 보수적인 신앙과 기독교 경건을 추구하는 사람들 이였다.
이는 한국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침례병원을 통해서 보수적인 신앙이 전해지고 있었다.9 이대복 선교사의 일생에 걸쳐 지킨 경건생활은 그의 보수적 신학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아래에는 이대복 이혜란 선교사 부부의 각각의 부고기사들과 그 번역문이다.
낯선 이국 땅에서 복음을 증거하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Ⅲ. 첨부자료 : 레이 부부의 부고기사들.
선교사 부부의 부고기사들과 번역
Daniel Brooks Ray | 1923 - 2011?| Obituary



Memorial Service
Wednesday, Aug 10, 2011
02:00 PM
Daniel Brooks Ray
December 25, 1923 - August 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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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iel Brooks Ray, 87, of Temple died Wednesday at his home. Memorial service will be held at the First Baptist Church of Belton Wednesday August 10, 2011 at 2:00 P.M. with Rev. Andy Davis officiating. Burial will be at the Carson Cemetery in Bonham. Mr. Ray was born December 25, 1923 in Wuchow, China to Rex and Janet Gilman Ray. He was a graduate of Bonham High School in 1942 and served in the U. S. Army during World War II. After the war he graduated from Baylor University in 1950 and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in 1953. He married Frances Jean Deal on June 27, 1953 in Waller, TX. Mr. Ray served as a Foreign Missionary in South Korea from 1953 to 1992, retiring from the International Mission Board to Garland, Texas and being a resident of Temple since 2005. Being an ordained minister he had memberships at First Baptist Church of Bonham, TX, Southern Baptist Missionary to Korea, First Baptist Church of Richardson, TX, and First Baptist Church of Belton, TX. Mr. Ray was Business Manager and treasurer of the Macau, China Baptist Mission and Hong Kong International Board. Survivors include his wife Frances Deal Ray of Temple; one daughter, Leajean Goodson of Redding, CA; four sons, Mark Ray of Adelaide, S. Australia, Ben Ray of Temple, Andrew Ray of Sadler, TX, and Rex Ray of Hibbing, MN; one sister, Lois McKenzie of Cameron, NC; 23 grandchildren; 11 great-grandchildren. Preceded in death by a brother, David F. Ray and a sister, Mary Dee Dobson. Memorials may be made to the International Mission Board of SBC, P.O. Box 6767, Richmond, VA 23230 or Agape Manna, Inc, 2505 Anthem Village Dr., Suite E-155 Henderson, NV 89052 or First Baptist Church of Belton Building Fund Debt, 506 N. Main Street, Belton, TX 76513. Scanio-Harper Funeral Home in charge of arrangements.
SERVICES
Memorial Service
Wednesday, August 10, 2011?
02:00 PM
First Baptist Church?
506 N Main St.++++++++++++++++++++++++?

부고 번역
Temple에 거주했던 87세 다니엘 브룩스 레이는 수요일 그의 자택에서 사망하였습니다.
앤디 데이비스 목사와 함께 2011년 8월10일 수요일 오후 2시에 벨튼 제1침례교회에서 추도예배가 열릴 예정입니다.
매장지는 Bonham의 카슨 묘지에 마련되었습니다.
Ray씨는 1923년 12월25일 중국 梧州 에서 Rex 와 Janet Gilman Ray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1945년 본 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 육군에서 복무했습니다.
전쟁 후 그는 1950년 Baylor대학을 졸업하고, 1953년 South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를
졸업했습니다.
1953년 6월27일 텍사스 주 Waller에서 Frances Jean Deal 과 결혼했습니다.
Ray씨는 1953년부터 1992년까지 한국에서 선교사로서 섬겼으며, 국제 선교위원회에서 은퇴하여 텍사스의 갈랜드로 옮긴 후, 2005년 이래로 Temple에 거주해왔습니다.
그는 목회자로 부름 받은 뒤, 텍사스의 본햄의 제 1침례교회, 한국 남부 침례교 선교사, 텍사스 리처드슨의 침례 교회, 텍사스 벨튼 의 침례 교회에서 섬겼습니다.
Raysms 마카오, 중국 침례교 선교 부 및 홍콩 국제 이사회의 재무 및 운영 이사였습니다.
그의 살아있는 가족으로는 그의 아내 Frances Deal Ray가 템플에 거주하고 있고, 딸 레아진 굿손은 캘리포니아 레딩에, 그리고 네 명의 아들들로는 호주 아델레이드에 거주하는 마크 레이, Temple에 거주하는 벤 레이, 텍사스 새들러에 거주하는 앤드류 레이, 그리고 미네소타 히블링의 렉스 레이가 있다.
여자 형제로는 노스캐롤라이나 카메론에 거주하는 루이스 맥켄지있습니다.
그 외 23명의 손자와 11명의 증손자가 있습니다.
형제인 데이비드 F. 레이와 여자형제인 메리 디 돕슨은 사망하였습니다.
기념비는 SBC 국제 선교위원회에 만들어 질 것입니다. 사서함 6767, 리치몬드,버지니아23230
또는 아가페 만나, Inc, 2505 Anthem Village Dr., Suite E-155 Henderson, NV 89052 or First Baptist Church of Belton Building Fund Debt, 506 N. Main Street, Belton, TX 76513.
장례준비는 스카니오 하퍼 장례식장에서 담당하고 있습니다.
Frances Jean Ray
By Cooper-Sorrells Funeral Home Bonham
Feb 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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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ham, Texas -- Memorial services for Frances Jean Ray,?87, of Sherman, Texas will be at 2:00 p.m. on Friday, February 9, 2018 at First Baptist Church in Sherman, Texas. Bro. Mike Lawson will officiate. Mrs. Ray passed away on Tuesday, February 6, 2018 at Texoma Medical Center in Denison, Texas.
Frances Jean (Deal) Ray was born in Waller, Texas on October 10, 1930 to John and Mary Gladys (Gholson) Deal. She married Daniel B. Ray on June 27, 1953 in Waller, Texas; he preceded her in death on August 3, 2011. Shortly after marriage to Dan they both traveled to war-ravaged South Korea where they spent decades as missionaries for the Foreign Mission Board of the Southern Baptist Convention.
Year after year Frances faithfully loved her family, encouraged her co-workers and dedicated herself to serving the Korean people.? Frances' legacy is a long list of women and men who were touched by her kindness and inspired by her Christian witness.

Frances Ray?is survived by sons, Mark Ray and wife Karen of Arlington, TX; Ben Ray and wife Molly of Temple, TX; and Andrew Ray and wife Marie of Sadler, TX; daughter, Leajean Goodson and husband Scott of Redding, CA; son, Rex Ray and wife Stacey of Hibbing, MN; 22 grandchildren and 14 great grandchildren.
In lieu of flowers donations may be made to the International Mission Board (IMB) Attention: Development PO Box 6767 Richmond, VA 23230 or on line at?www.IMB.org
?
Arrangements are under the direction of Cooper-Sorrells Funeral Home Bonham, Texas.
To convey condolences or sign an online registry, please visit?www.coopersorrells.com
부고 기사 번역
프랜시스 진 레이
본햄 지역의 쿠퍼-소렐 장례식장에서 드림
2018년 2월8일 자

텍사스주 본햄- 텍사스 셔먼의 프랜시느 진 레이(87세)를 위한 추도식이 2018년 2월9일 금요일 오후 2시에 텍사스 셔먼에 있는 제일침례교회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형제, 마이크 로슨의 주도로 진행될 것입니다.
레이 부인은 2018년 2월 6일 화요일 텍사스주 데니슨에 있는 텍소마 메디컬 센터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프랜시스 진 레이는 1930년 10월 10일 텍사스주 월러에서 존과 메리 글래디스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1953년 6월 27일에 텍사스주 월러에서 다니엘 B. 레이와 결혼했습니다.
다니엘과 결혼직후 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으로 파견되었고, 남부 침례교 국제선교위원회 소속 선교사로서 수십년을 섬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프랜시스는 가족을 충실히 사랑했으며, 동료들을 격려하고, 한국인들을 위해 봉사하는데 헌신하였습니다.
프랜시스가 남긴 것들은 그녀의 친절한 봉사로 감동받은 사람들과 그녀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귀감이 된 증인의 삶으로부터 변화된 수 많은 사람들이라고 할 것입니다.
프랜시스 레이는 텍사스 알링톤에 거주하는 아들 마크 레이와 며느리 카렌, 텍사스 템플에 거주하는 아들 벤 레이와 며느리 몰리, 텍사스 새들러에 거주하는 아들 앤드류 레이와 며느리 마리에, 캘리포니아 레딩에 거주하는 딸인 레아진 굿손과 사위 스콧, 그리고 미네소타 히빙에 거주하는 아들 렉스 레이와 며느리 스테이시 등을 비롯해, 22명의 손자와 14명의 증손자를 남겼습니다.
헌화 대신하는 기부는 국제 선교 위원회(IMB: Development PO Box 6767 Richmond, VA 23230 or on line at?www.IMB.org)에 하실 수 있습니다
장례준비는 텍사스 본햄에 위치한 쿠퍼-소렐스 장례식장에서 하며, 애도의 뜻을 전하시거나, 온라인 방명록에 서명하시려면 www.coopersorrells.com을 방문하시면 됩니다.




1 『내한선교사총람』 김흥수,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p431
2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p285
3 그의 아들 마크 레이가 이대복 선교사의 소천당시에 호주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것을 감안하면 이미 4대째 하나님의 선교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복음의 집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의 어머니 소천당시에는 텍사스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호주 사역에서 돌아와 있는 것으로 보인다.
4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p284
5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p286
6 『한국침례교회사』 이정수, (침례회출판사)p476
7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p287
8 『한국침례교인물사』 김갑수, (요단출판사)p287
9 『한국침례교사상사』 김용국, (침례신학대학교 출판부)p207~208
작성일:2019-12-03 01:21:15 211.184.47.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