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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 / M0141 / Charles L. Phillips / 3학년 5반 / 2017210330 / 최장혁

닉네임
최장혁
등록일
2019-12-04 12:22:47
조회수
703
첨부파일
 3학년 5반 2017210330 최장혁 내한선교사 필립스.docx (1325393 Byte)
Ⅰ. 기본사항

1. 이름
Phillips, Charles L. (한국식 이름: 빌립보)

2. 출신 및 소속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3. 한국 선교 기간
1910-41, 1947-50

4. 연표
1910.11.3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평양에 부임
1911 평양 연화동교회 초대목사로 부임, 플럼머드와 결혼
평남 덕천, 강동, 청화 등지에서 목회
숭실대학교 강사, 평양성경학교 교수 역임
일제 말 귀국, 1947 재내한
서울에서 사경회 인도, 조선신학원에서 강의
1950 선교사직 사임하고 귀국

6. 가족관계
아내: Miss Florence Plummer (Mrs. C. L. Phillips)

7. 논저
저서: A wide Awake Station in the land of Chosen (Pyengyang), New York, 1916
논문: Picture of Pyenhyang Mission, Missionary, Review, 1926.5.

Ⅱ. 선교사 소개
2-1. ‘연화동교회’와 관련하여
장대현교회의 손자 교회인 ‘연화동교회’가 있다. 북한의 당창건사적관이나 평양의학대학 부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평양에서 제일 먼저 세워진 ‘장대현교회’에서 최초로 세운 교회가 ‘남문밖〔南門外〕교회’이며 평양에서 두 번째로 세워진 교회라고 해서 ‘제2교회’라는 이름도 갖고 있다. 이 ‘남문밖교회’에 의해서 1911년 봄에 ‘연화동교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에 ‘연화동교회’는 ‘장대현교회’의 ‘손자 교회’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화동교회’가 설립될 당시에 ‘필립스(C. L. Phillips, 弼立甫) 선교사’가 담임했다. 필립스 선교사는 1910년 한국에 와서 일제강점기 말기에 강제추방을 당할 때까지 평양을 중심으로 평안남도 지역에서 일했다. 연화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에 한 해 먼저 한국에 와서 일하고 있던 플럼머(F. Plummer)이라는 여선교사와 결혼했다.
또한 필립스 선교사는 숭실대학교와 평양성경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이 분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강제추방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다가, 해방 뒤에 다시 한국에 와서 집회를 인도하고 조선신학원(현재의 한신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다가 은퇴했다.
필립스 선교사가 연화동교회를 담임하고 있을 때 황준국(黃濬國)이라는 신학생이 조사로 필립스 선교사를 도왔다. 황준국 조사는 1913년에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연화동교회를 떠났다.

2-2. 추수감사절 일화
추수감사절에 필립스 목사는 ‘허울 부인(로제타 홀)’에게 저녁 식사 초대 편지를 보냈다.
그 내용은 추수 감사절 저녁 만찬이 끝난 후에 “한국 상주 25년 최고의 추수 감사절” 이라는 축배에 답례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또한 “사임은 수락할 수 없음. 진심으로”이라는 추신을 덧붙였다. 편지를 살펴보면 영어 문체도 화려하지만 한글도 잘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3. Five Hundred Dollar Whiskers 슈염 오백원 자리
필립스 선교사는 ‘Five Hundred Dollar Whiskers 슈염 오백원 자리’라는 책을 썼다. 책은 김익두 목사를 통해 나타난 은혜로운 일화를 담고 있다.
필립스 선교사는 1930년대 좌각원(House for the Cripples)을 세워 다리를 저는 이들의 복지원을 운영했다. 그래서 병든 자, 아픈 자 가운데 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증거하는 선교사가 되었다.
이후 1935년경 김익두 목사가 부흥회를 인도하던 중 교회 건축 헌금을 할 때, 어떤 콧수염이 멋진 노 신사가 거금 50엔 헌금을 약정하자 모든 교인들이 놀랐다. 그러나 김익두 목사는 강단에서 내려와 그 노인에게 다가가 "어르신의 콧수염은 500엔 가치는 되는 멋진 수염입니다"라고 칭찬하자, 그 노인은 뜻을 알아차리고 웃으며 500엔을 헌금했다는 일화에서 가져왔다. 당시 멋지고 긴 콧수염은 부자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필립스 선교사가 경험한 일화 중심의 회고록이라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한다.

2-4. 이승만 대통령과의 일화
필립스 선교사는 프린스턴 신학생 시절에 유학을 온 이승만 전 대통령과 깊은 친분을 갖게 되어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게 되고 한국 선교를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감리교로 귀의했고 혹자들은 독재자라고 할지라도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혼신을 다한 진정한 애국자라는 평가를 했다.

Ⅲ. 결어
자료를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교사님의 사역의 흔적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많은 양의 자료는 아니지만, 선교의 발자취와 그 열매들과 일화들을 보면서, 2000년전에 갈보리에 뿌려진 복음이 긴 시간을 지나 멀리 이 한국(조선) 땅에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은혜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면서, 겸손하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한 학기 동안 가르쳐 주시고, 사랑해주시고, 교회사를 보는 눈이 열리게 도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역사속에 뿌리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더욱 깨닫고, 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순종과 인내를 보면서, 졸업을 앞둔 이 시기에, 내가 사역자로서 가져야 할 정체성과 방향성을 다시 한번 정립하게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늘 강건하시고 평안하시기를 소망합니다.

* 사진 자료:
1. 추수감사절에 보낸 편지
2. '오백원자리 슈염' 표지
3. '오백원자리 슈염' 내지
작성일:2019-12-04 12:22:47 121.168.15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