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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사 게시판

제목

내한선교사/B68/Myers Mamie D. 1875-1934 MS/2017210313 3-5 이장원

닉네임
이장원
등록일
2019-12-12 00:10:01
조회수
826
첨부파일
 내한선교사 B68 (Myers, Mamie D.(1875-1934, MS) 3-5 2017210313이장원.hwp (2303488 Byte)
Ⅰ. 선교사의 기본사항

1. 이름: Myers, Mamie D. (마이어스 / 瑪義是 / 미국 / MS)
2. 생몰연도: 1875-1934
3. 출신 및 소속: 미국 남 감리교 소속 선교사
4. 한국선교기간: 1906-1934
5. 경력: 1906년 남 감리교 선교사로 내한, 원산에서 1년간 어학공부
1907 원산의 루씨여학교 제4대 교장에 취임, 학교 발전
1920 남북감리교 연합 전국여선교회 초대총무로 선임
1921. 4. 5 이완용의 주택이었던 명월관 구입, 기독교태화여자관 건립하여
초대관장에 취임, 여성과 아동을 위한 선교 및 복지사업 진행
1923 춘천으로 전임, 춘천 여자관 설립
1930 감리교 중앙협의회 실행위원으로 선임
1932-34 철원에서 목사로 시무
1934 귀국 후 소천
6. 참고문헌: 기백 5권; Y. T. Pyun, Miss Mamie D. Myers, KMF, XXX,12(1934.12); 남감리 교사; 김리교회사 Ⅰ; 감신대사; 감리교여성사, KMYB; CMYB; 기감동부연회록, 1937; 한국감리교회 외국인선교사.

4. 메이미 마이어스(Mamie D. Myers) 선교사의 활동과 사역의 열매

1) 마이어스 선교사의 활동: 내한 여선교사들은 서울을 비롯하여 인천, 해주, 평양, 영변, 공주, 개성, 원산, 춘천 선교 스테이션에 사회복지관을 설립하여 각종 복지사업을 벌였다. 가장 먼저 1906년 남 감리교 선교사 마이어스(Mary D. Myers)가 1915년 4월 뉴욕 선교본부에 사회복지관 설립을 요청하였다. 1920년 봄 월터 램부스(Walter Lambuth) 감독이 내한하여 조사한 후 설립이 착수되었다. 램부스 감독과 마이어스 선교사는 서울 중앙과 변두리를 놓고 사회복지관 위치를 물색하던 중 서울 한복판 태화관 자리를 정하여 1920년 9월 20일 매매계약을 체결하였는데, 당시 대지와 건물(‘순화궁’) 소유자는 이완용이었다. 이것이 서울에 세워진 태화사회복지관(Social Evangelistic Center)이다.

흥미로운 것은 태화(泰和)여자관이 조선을 대표하는 요릿집인 태화관(太華館)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종로구 인사동에 있던 이 집은 조선의 24대 왕 헌종의 후궁 경빈 김씨가 살아 순화궁(順和宮)으로 불렸는데, 1908년 이완용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완용 조카 한상룡에 따르면 이완용과 아들 이항구 셋이서 당구를 치는데, 갑자기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방문 앞 아름드리 고목에 벼락이 떨어져 둘로 갈라졌다고 한다. 이 일로 “이완용이 천벌을 받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이완용은 이 집을 떠났고, 1915년경부터 여관 겸 식당인 태화관으로 활용되었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4시까지 태화관 2층 맨 끝 방에서 33인의 민족대표가 3·1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축하연을 열었다. 민족대표 33인에 의해 독립선언식이 거행된 뜻 깊은 자리에 세워진 최초의 사회복지기관이었다. 이 사건으로 태화관은 문을 닫게 되었고, 빈집은 태화여자관으로 바뀌었다. 태화여자관은 이후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으로 바뀐다. 태화여자관이 있던 자리에 새워진 태화빌딩은 파란만장한 역사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북 감리회와 남 감리회 두 개의 여선교부가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마이어스가 초대관장으로 활동하였다. 사업 시작 당시 순화궁궐이라는 역사적 위치 때문에도 관심을 받았지만, 실질적인 사업을 하면서 태화복지관 설립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과 반응도 적지 않았다. 1921년 2월 27일자 「동아일보」는 “남 감리교는 예수교 전도와 여자교육 및 여성운동을 위하여 명월관 지점 태화관을 구입하여 태화여자관을 설치하다.”라고 보도하였고, 1921년 3월 25일자에는 태화여자관의 설립 목적에 대한 관장 마이어스의 인터뷰 내용을 보도하였는데, 마이어스는 “어두운 조선 여자사회를 위하여 새로운 빛을 주고자 각종 사업을 계획 중”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종교부, 의약부, 영아부, 사회부, 교육부, 도서부, 아동부 등 7개 부서로 나뉘어 진행될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밝혔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크게 교육, 사회봉사, 공중위생사업 그리고 복음전파 4개 분야의 사업을 펼쳤다. 태화여자관이 설립된 지 1년 만에 여자성경학원, 재봉, 야학, 여학교 등 4개 교육과정이 운영되었다. 마이어스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취급될 사업은 ‘가정을 개조하기 위한 교육’이라고 강조하였다. 서울에 태화복지관이 설립된 이후, 각 지역 선교 스테이션에도 사회복지센터가 설립되어 각종 사업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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