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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한 선교사 / B124/Struthers, Ernest B/Struthers, Elda Daniels / hwp버전 (2017210351 3-6 김현주)

닉네임
현주
등록일
2019-12-12 05:32:15
조회수
152
첨부파일
 기말보고서_3학년6반_B124_김현주.hwp (889344 Byte)
※ Struthers, Ernest B (스트러더스/영국/UCC)

Ⅰ. 기본 사항

1. 이름 : Struthers, Ernest B
2. 생몰연도: 1886-1977영국(온타리오주 갈트)에서 출생
3. 학력: 캐나다 토론토대학에서 예술과 의학을 공부
4. 연표
1953. 캐나다 연합 장로교 의료 선교사로 내한
세브란스병원 내과 의사로 부임, 결핵 예방사업에 전력
1954.1 세브란스 병원 안에 결핵 첫 진료소 개설
1954-58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 교수로 봉직
1957 다니엘스 목사와 결혼
1963.7 은퇴 후 귀국, 영국 결핵 예방 사업 고문으로 재직
5. 가족사항: Struthers, Elda Daniels, 양아들, 양딸

※ Struthers, Elda Daniels (스트러더스/장의열/영국/UCC)

Ⅰ. 기본 사항

1. 이름 : Struthers, Elda Daniels / 장의열
2. 생몰연도: 1906년-1997년 영국(온타리오의 콜포이만)에서 출생
3. 학력: 캐나다 터론토 임마뉴엘 신학교에서 신학 전공
4. 연표
1936.9 캐나다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함북 성진에서 활동
1940. 일제에 의해 귀국
1947.1 재내한, 이화여전 종교교육, 영어 교수로 봉직
1953. 한국 기족교 장로회 선교부 소속 사회 사업, 캬라반 운동
이화여대에서 기독교 문학, 성서영어 교수로 봉직
1963.7 은퇴 후 귀국
5. 가족사항: Struthers, Ernest B(남편), 양아들, 양딸

Ⅱ. 선교사 소개

Struthers, Ernest B, 캐나다 연합장로교의 의료, 영국출신, 그는 1920년대부터 중국에 의료선교사로 파송되어 산동선 칠루 의대에서 20년간 근무하였다. 중국이 공산화 되면서 캐나다로 귀국한 뒤 1953년에 캐나다 연합장로교의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왔다. 세브란스 병원 내과 의사로 부임했으며 세계 기독교 봉사회 한국위원회가 중점사업으로 전개한 결핵예방사업의 총책을 맡았다. 그리고 1954년 1월 세브란스 병원 안에 첫 결핵 진료소를 개설했다. 그 당시 서울에는 수 년동안 5개 병원에만 결핵 예방 진료소가 개설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그 당시 결핵에 대한 자료나 정보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Struthers, Ernest B는 한국의 결핵의 심각성과 결핵 치료의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가 보고한 내용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Pulmonary tuberculosis is without question the most important medical disease problem in korea. About 800,000 persons in South korea have active tuber-culosis – an incidence of 3.4% of the entire population. active tuberculosis is 50 times as prevalent in korea as it is the U.S.A. or in Canada, and yet only 4000 hospital beds are available to treat it.(written in 1963). almost 90% of the people have become infected to some de-gree by the time they reach 25 years of age. over-crowding and malnutrition, by-products of a major war and of very low living standards, have expanded the tuberculosis problem to its present huge proportion.


그는 1954년 1월 세브란스 병원에 결핵 진료소를 개설했으며, 8월에는 서울 적십자 병원, 11월 에는 서울 여자 의과대학병원, 그리고 1955년 5월에는 서울 시립병원에 흉부 진료소를 설립했다. 특별히 그가 했던 결핵 관리 프로그램은 굉장히 효과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환자는 통원 치료를 받았다. 환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가난하여 약을 기본적으로 제공했지만 진료비는 적은 액수나마 환자들에게 받았다. 그 이유는 약과 진료에 대한 신뢰성과 환자의 자존감을 위해서였다. 식량이 부족할 정도의 극빈자들에게는 식량을 제공해주고, 좁은 집에 결핵환자가 있는 경우에는 어린 아이들이나 나머지 가족들이 추가 감염되지 않도록 가설 구조물도 제공해 주었다. 결핵환자들을 향한 섬세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결핵환자 관리에 큰 성과를 얻게 되었다. 세계기독교봉사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Struthers, Ernest B의 세브란스 결핵관리 사업은 한국의 결핵관리 사업을 선도했다고 말할 수 있다. Struthers, Ernest B와 함께 사업을 감당했던 스콘 선교사는 이 사업의 의의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효율적이고도 경제적인 것으로 판명된 이 통원프로그램은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현명하고 과묵한 캐나다 의사 닥터 어니스트 스트러더스의 지도력과 비전 덕분이었다. 그러나 더욱 큰 의미에서 말한다면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역사였다. 때가 무르익었고 한국인들이 이를 수용할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Struthers, Ernest B는 하나님의 때에 준비되어 쓰임받은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여시고, 한국인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허락하셨다. 또한 결핵에 탁월한 의료선교사를 보내시고 그를 통해서 치료 받게 하셨다. 그의 상세한 이력을 보면 다음과 같다.


Education and Positions Held:
- Dickson Public School, Galt, Ontario: 1892-1900
- Galt Collegiate: 1900-1906
- University of Toronto: 1910 (B.A.)
- University of Toronto, Medical School: 1912 (M.D.)
- Diploma of Tropic Medicine and Hygiene, London, 1925: (D.T.M. & H)
- University of Toronto, School of Hygiene: 1937-1938 (D.P.H.)
- Royal College of Physicians and Surgeons Certificated Internal Medicine: 1948 (C.R.C.P)
- In France: 1917-1918 (Captain, R.A.M.C)
- Washington: 1944-1945 (Consultant to the Surgeon-General, U.S. Army)
- Cheeloo University College of Medicine: 1930 (Professor, 1934-1950)
- Dean of the Medical College: 1942-1948
- Editor, Chinese Medical Journal: 1942-1944
- Controller, Cheeloo University: 1943-1944
- Medical Specialist, Ontario Department of Health: 1950-1953, 1963-1964
- Severance Union Medical College, Seoul, Korea, Professor of Medicine: 1953-1960
- Director, Church World Service T.B. Control Project: 1953-1960
- Consultant in T.B. to Republic of Korea, Department of Health and Social Affairs: 1961-1963
- Librarian, Orthopaedic and Arthritic Hospital, Toronto: 1966-1973


Struthers, Ernest B는 그의 일생을 바쳐 의료계에 몸을 담았던 사람이며, 한국결핵사업의 시작에 큰 획을 그엇던 사람이다.

그런 인생의 중반에 큰 일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바로 Elda Daniels를 만난 것이다. 그녀는 신학을 공부한 목사이자 교육자였다. 1957년, 하나님께 쓰임 받는 두 명의 선교사가 그 인생의 중반에 하나가 된다. 그리고 슬하에 양딸과 양아들을 두었다.

Elda Daniels는 1936년에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로 내한 했다가 일제에 의해 1940년에 귀국했다. 그리고 1947년에 재내한 했으며 이화여전에서 종교교육과 영어교수로 봉직했다. 그리고 1953년에는 한국 기독교장로회 선교부에 소속되어 사회사업과 카라반 운동에 함께했다. 이화화여대에서 기독교 문학과 성서 영어교수로 봉직했다. 그가 이화에서 봉직했던 사실은 Korea missionary directory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사진첨부).
작성일:2019-12-12 05:32:15 175.223.3.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