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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한선교사 / B078 / Olsson, Verna / 3학년 5반 / 김향유(hwp)

닉네임
김항유
등록일
2019-12-13 20:34:48
조회수
107
첨부파일
 내한선교사_3-5_B078_김향유.hwp (20992 Byte)
Ⅰ. 들어가는 말

한국 기독역사를 돌이켜 볼 때, 한국 기독교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여성들이 있었다. 또한 과거의 역사 속에서 그 시대의 가부장적이고 남성 위주 사회라는 특성 때문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모든 분야에서, 특히 기독교 교육이나 여성 운동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던 여 선교사님들이 한국 기독교 선교 역사 가운데 존재했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교회사 내한선교사 과제 중에서 스웨덴 출신의 여성 선교사인 Olsson, Verna(한글명: 우울선)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Ⅱ. 기본 정보

Olsson, Verna (올슨 / 禹蔚善(우울선) / 스웨덴 / SA)
1. 생몰연도: 1888-? 스웨덴에서 출생
2. 학력: 1910.6.1 스웨덴 웁살라군영에 입대, 구세군사관학교 입관
1910.11.24 사관학교 부교로 임명
1911.11.20 구세군사관학교 졸업, 참위로 임관
3. 경력: 1911.12.24 구세군 선교사로 내한, 서울에서 활동
1913.3.18 문산포에서 여성사업 선교사로 부임
1913.6 서울로 전임, 여성선교사업에 종사
1916.7 서울에서 특별여성선교사업
1919.1 사관학교 부인반 사감으로 봉직
1920 안식년으로 귀국
1921.11 개성지방 지방관
1922 영동지방관으로 근속
1928 영국 및 스웨덴에서 청년부 사업을 연구
1928.2 한국본영 청년부 서기관 취임, 여성사업의 확충
1934.4 해주지방관 역임
1936.3 다시 청년부서기관 역임
1937.2 부령으로 승진
<구세신문> 가정란 필자로 활동
1938.12.19.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 스웨덴으로 돌아가 본국에서 은퇴



Ⅲ. Olsson, Verna의 선교 사명

Olsson은 1911년 어느 날 한국에서 그녀의 첫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두 명의 스웨덴 여성 선교사 동료들, 즉 Magda Köhler와 Sofia Frick과 함께 있었다. 그들은 극동(the Far East)의 비그리스도인의 나라에 있는 토착민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기 위한 사명을 가진 구세군을 섬기는 봉사자들이었다. 그들은 한국에 머물면서 일 년 동안 영어와 한국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언어 공부에 익숙해질 무렵, Olsson은 그녀의 동료 Sofia를 잃고 만다.
그녀가 문산포 마을에서 선교사역을 시작했을 때, 그녀는 그 마을에서 유일한 서양 선교사였다. 그녀는 2제곱미터의 제한된 공간에서 검소한 삶을 살았고, 전형적인 한국인들이 사는 온돌 바닥과 초가지붕이 있는 곳에서 살았다. 비록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그녀였지만, 여전히 그녀는 젊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었고, 먼 한국 땅에서 그녀 혼자 현장 선교사역을 시작해야 한다는 공포와 외로움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받기도 했다.
Olsson은 한국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한국인들에 대하여 “한국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평화로운 사람들이다.”라고 기록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녀는 한국인들의 생활 방식을 지속적으로 관찰하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특별히 한국인들이 부모와 노인을 공경하는 것에 대하여 존경심을 표했다. 그러나 Olsson은 한국인들의 “heathenness” 즉, 여성, 아이들, 동물들, 그리고 특별히 개들의 가혹한 취급에 대해서 지적했다. 또한 그녀는 여자로써 특별히 한국 여성들, 즉 여종과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할 책임을 맡은 소녀들에게 동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국에서 선교사역이 끝나갈 무렵 Olsson은 일본 식민 권위에 대한 종교적 박해의 목격자가 되었다. 매우 확고한 기독교 종교를 가진 그녀는 일본 황제 숭배와 교회 예배를 결합시키기 위한 일본 당국의 명령을 발아들이면서 어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의 한국 선교사 동료들은 감옥에 들어간 신도들을 위해서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여했을 때 외국 선교사들은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고 1941년 만주로 이주하게 된다.
Olsson은 34년을 완전히 극동(the Far East)에서 보냈는데, 27년은 한국에서, 2년은 거의 만주에서, 5년 1개월은 북경에서 보냈다. 그녀는 한국 선교에 대해서 이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27년 동안 한국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되었고, 나는 한국인들에게 매우 다정해졌다. 그리고 나는 나의 온 영혼을 다해 그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Ⅳ. Olsson, Verna의 선교 당시 한국의 상황

Olsson이 한국에 왔던 그 당시는 대한민국이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 시대(1910-1945)였다. 한일 강제 병합으로 나라의 주권을 강탈했던 일본은 조선 총독부를 설치하고 일본군의 대장을 총독으로 임명한 뒤 행정과 입법, 사법 및 군대까지 손에 쥐고 무단 통치를 펼쳤다. 그들은 대한민국 시민들의 모든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고, 민족의식을 기를 수 있는 모든 활동들을 철저하게 탄압했다. 또한 우리말과 우리 역사를 가르치는 교과서와 영웅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게다가 토지 조사 사업을 실시해 식민 통치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토지 제도를 정비하고 토지세를 거두었으며, 회사령을 실시해 민족 자본의 성장을 막았다. 심지어 교사들에게도 제복을 입히고 칼을 차게 했던 무지막지한 일본인들이었다. 또한 일제는 기독교에 대한 정책을 세움으로써 기독교를 탄압했다. 그들은 일본 황제 숭배와 기독교는 공존이 불가능함을 명시했다. 또한 한국교회는 민족운동 및 독립운동과 밀접한 유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의 주시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는 세계 여론 및 서구 제국과 연결된 세력이기 때문에 일제에 예속시켜 통제하기 어렵다는 생각으로 기독교를 탄압했던 것이다. 따라서 정보에 따르면 Olsson선교사는 일제강점기 시대에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것으로 추정이 되며, 그 당시에 선교에 대한 많은 어려움과 제한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독교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더 이상 한국에서 사역을 할 수 없었던 Olsson과 그 외의 많은 선교사들 역시 한국에서 추방되었던 사실들이 기록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Ⅴ. 나가는 말

사실 스웨덴 출신의 여성 선교사 Olsson, Verna에 대해서 많은 자료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Olsson, Verna에 대한 짧은 정보에 대해서 읽으면서, 미혼여성으로서 잘 알지 못하는 한국 땅에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을 당시 수많은 고충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그녀는 어려움에 대한 인식보다 선교에 대한 사명을 더 중시하며 선교활동에 최선을 다한 것 같다. 그녀는 무엇보다 여성 사역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인 듯하다. 한국 여성들에 대한 동정심을 보였던 그녀는 어떤 여성사업을 확충했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여성들을 위한 사업을 늘렸다는 것은 당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는 획기적인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처럼 한국 선교에 대한 열정과 열심을 가지고 사역을 감당했던 여성 선교사분들과 그 밖의 많은 선교사분들의 복음의 씨앗이 이 한국 땅에 심겨졌기에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이제 선교사를 파송하는 시대로 발돋움하여 여전히 그 사역을 발전시키고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복된 사명, 즉 하나님의 복음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 널리 퍼져서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가는 놀라운 일들이 필자를 포함한 모든 한국교회 사역자들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작성일:2019-12-13 20:34:48 125.129.230.20